46년 경험론/2024 Diary

Day 12 in 남해ㅣ28. February. 2024

_교문 밖 사색가 2024. 2. 28. 22:14

Day 12 in 남해ㅣ28. February. 2024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광고 카피 문구에 기대어 살기에는 지금 대한민국은 너무 위험한 상태인 거 같다.

 

 

1. 오공이 별님이도 드디어 오늘 계단을 올랐다. 역시 생물은 보는 것이 있어야 보고 배우는 거다. 그 짧은 다리로 어떻게든 오르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어제 산들이가 계단을 오른 모습이 자극이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가장 몸집이 작은 별님이가 진짜 악을 쓰고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오후에는 요령을 익혀서 자연스럽게 계단을 올랐다.

 

하지만 이것들이 계단을 오르니 신발을 물어뜯기 시작했고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방충망을 맹수의 발톱으로 긁어댔다. 좋아하는 것도 잠시고 고민만 늘었다.

 

2. 어머니 친구분이 시금치 2 포대를 주문했다. 절 방생 투어에 필요하다고 해서였다. 그래서 차에 시금치를 싣고 절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관광버스 3대가 움직인다고 해서 약간의 오르막에 있는 주차장까지는 가지 않고 도로 공터에 주차를 할 거라고 예상을 하고 기다렸는데 의외로 버스 두 대가 주차장으로 올라갔다. 나는 마지막 버스가 오를 때까지 기다렸는데 버스가 좀처럼 올라가지 않아서 세 대는 무리라서 그런가 보다 싶어서 어머니 친구분 있는 1호 차가 주차장으로 올랐다. 버스 옆에 주차를 했는데 기사분 같은 아저씨가 여기에 버스가 주차를 할 테니 나보고 나오라고 했다. 나는 이해가 금방 되어 차를 뺏다. 그걸 본 아저씨는 여기 대지 말고 저기 대라고 하는 거다. 나는 금방 나갈 거라고 했다. 그리고 1호 차 근처로 가서 차를 댔다.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없는 것이 있다. 바로 Could you pleaes~ 가 없다. 어디서 처음 본 아저씨가 나와서 나보고 자기 일행이 차를 대니 차를 빼라 마라 하고 어디다 댈지도 모르면서 여기대라 저기대라고 하는지 모를 일이다. 나도 곧 있으면 50이 되는데 따지고 보면 나와 나이차이도 많이 나지 않아 보였다. 아무리 내가 제 나이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자기들 동료의 부탁을 받고 온 사람이라는 것도 몰랐을 시점인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인 나에게 그냥 이래라저래라 하는 태도는 상당히 불손한 태도인 것이다.


이런 태도가 가능했던 시대는 80년 대까지였다. 90년 대부터는 균열이 갔고, 2000년 대부터는 이런 문제로 세대갈등이 생겼다. 그리고 지금은 2024년이다. 결국 어른들이 못 배운 태도를 보이고 있는 거다. 젊은 세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못 배운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런던 세인트 존스 우드 스타벅스에서 할아버지들이 4시쯤에는 모임을 가졌다. 빨리 오시는 분은 2시부터 동료들을 기다렸다. 한 명씩 모이는 상황에서 나는 자리를 떠났다. 더 오실 게 뻔했고 자리는 부족했기 때문이고 내 옆에서 자리를 잡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보신 할아버지는 연거푸 나에게 Thank you.라고 말하셨다. 90세는 되어 보이시는 할아버지가 말이다.

 

우리나라 스타벅스에서 6명 테이블에서 나 혼자 노트북 작업을 하고 있었다. 6명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왔다. 대충 자리를 보시고 내가 있는 자리로 와서 옆에서 웃으면서 말한다. 좀 나와줘야겠는데.. 알고 보니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대충 10년이 좀 안 되는 시점 일이다.

 

오늘 기사분은 나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됐다. 나도 런던 다녀오고 나서부터 부쩍 이런 예의 없는 상황에 욱한다. 아직 한국형 상식 패치가 적용이 되지 않아서다. 그런 표정이 보였는지 어머니 친구분은 연거푸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모르고 시금치 배달을 시켜서 미안하다고 하신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대한민국은 확실히 윗 물이 흐린 게 맞다. 한국 안에서는 누구 잘못인지 모를 경우도 많지만 세계 선진국을 기준으로 본다면 대한민국 기성세대들이 세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명백하다는 결론이 난다. 학교 다닐 때 영어는 위아래가 없는 상놈의 언어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상놈의 언어를 인지한 민족은 그 언어에 예의라는 옷을 입혀서 사용하는 국가가 되어 서로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나라가 되었다.

 

Give me~는 주세요가 아니라 달라는 말이다. 그래서 Can I have~로 바꿔서 사용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스타벅스에서 주문할 때는 Give me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Can I have를 사용하는 것이다.

 

같은 민족이기에 다 안답시고 그래도 된다는 식의 태도로 기성세대가 일관한다면 차라리 다민족이 낫다. 서로 모를 수 있으니 예의 바르게 살아가야 한다는 태도가 생길 테니 말이다. 서로 모르면 말 한마디 잘못해서 흉한 꼴 날 수도 있으니 더 예의에 집중할 수도 있는 거다. 적당한 위험은 나쁜 게 아니다. 그걸 조절 못하는 것이 나쁜 거다.

 

적당히 위험하고 적당히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국가가 쌍놈 국가처럼 보일지 몰라도 서로 예의를 지켜가면서 공존하는 법을 배울 줄 안다면 한민족 한 핏줄 국가보다 낫다. 아무리 한민족이라고 해도 단합이 안 되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는가.

 

그리고 더 최악인 건 지금 새로운 세대들이 기성세대가 되면 아마 지금의 기성세대처럼 할 거라는 것은 너무 명백하다. 어디서 보고 배운 것이 없으니 결국 지금 기성세대들을 똑같이 따라 할 거다. 지금 40대 들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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