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살이 Day 92 (17. November. 2023)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를 때는 부모님을 생각해라. 일단 그쪽으로 가면 나중에 길이 보인다.
일행이 지원서를 낸 곳에서 1차 합격을 했다고 연락이 왔다. 연봉이 4,000만 원이다. 예전 같았으면 말렸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도 앞으로 벌어질 사정에 대해서 얘기를 해줬다. 세금 20%를 공제하면 3,600만 원이고 월급으로는 270만 원이 안된다. 그 돈으로 월세 최저 금액을 150만 원으로 잡으면 120만 원이 남는다. 결국 아버지에게 손을 벌려야 한다고 했다. 그럴 바에야 그냥 고향으로 내려가서 나이 든 부모님 옆에 있으면서 집사형 효도를 고려하라고 했다. 어차피 같은 돈 받을 거면 그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여기에서 영주권 받을 때까지 버텨보려고 하다가 중간에 아버지 아프면 죽도 밥도 안되고 경력 쌓아서 5,900만 원짜리 직장으로 이직을 해도 월 400만 원이 안될 테니 생각보다 쉽지 생활이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경력을 쌓아 5,900만 원짜리 직장으로 이동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능력을 쌓아서 이직을 해야 하는데 단순히 경력만 쌓아서 이직은 한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능력을 쌓는 것은 퇴근 후 시간을 더 써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행은 능력을 더 쌓을 생각이 없다. 지금 수준에서 어떻게든 자기를 찾아주는 곳에 자신을 맞춰서 들어가는 것이 습성이 되었다. 퇴근 후 다른 소득을 찾을 거라고 했지만 지금까지 놀면서 그런 적이 없었는데 일을 하면서는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소득이 너무 적어서 생존하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면 금방 지쳐서 지속력이 떨어질 거라고 했다.
내가 고향으로 내려가라고 한건 일행의 아버지가 70대에 접어들었으니 하루하루 살아계신 것이 기적이고 당장 내일 돌아가셔도 이상할 거 없는 시점이 왔으니 타향에서 국위선양하는 효도를 하지 못하면 돌아가서 집사형 효도를 선택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다행인 건 일행은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의 집안 여력은 있었기에 그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집사형 효도를 할 수 있다.
70대면 여차하면 5년 남은 인생이시다. 내가 엄마와 지난 5년 동안 내 일을 미루고 양봉 일을 핑계로 남해로 내려가 함께 일을 한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효도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경험상 알고 있다. 일행이 이제 효도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물론 국위선양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고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되거나 그런 능력을 키운다고 생각하면 굳이 이런 옵션을 얘기하지 않았을 거다. 자식이 나아가는 길에 효도라는 이름으로 부모가 막는건 부모로써의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행은 능력을 키울 생각은 없다고 했다. 오직 경력만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다. 모든 논리의 균열을 희망 콘크리트로 메우려 했다.
직장이 힘든 상태에서 집은 혼자사는 집이 아니라 셰어를 해야 할 거고 하우스 메이트가 사람이 좋으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더 큰 스트레스가 생길 거라고 했다. 혼자 사는 집은 월세가 250만 원 안팎은 잡아야 하기에 손을 더 크게 벌려야 한다. 지금까지 얘기를 납득을 하면서도 일행은 그 직장에 들어가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고 했다. 머리로는 안다고 하면서 말이다. 관성의 법칙이다.
왜냐면 다른 옵션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만약 연봉 5,900만 원짜리 직장에서 제안이 왔다면 어디에 들어갈 거냐고 했다. 당연히 5,900만 원 직장이다. 거기에 들어가서 악착같이 따라잡을 생각으로 버틸 거다. 동의했다. 그런 거다. 다른 옵션이 없어서 4,000만 원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거다. 그 직장의 제안이 기회라면서 말이다. 혹시 덫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냐고 했다. 직장이 덫이라는 개념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을 거다. 일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일행이라서 20대 때 어설픈 직장에 들어가 메여 일하는 경험이 없어서 '목적 없는 직장=기회 박탈'이라는 덫이라는 개념이 없다. 거기에다가 더 이상 능력을 키우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으니 더 그럴 거다.
얼마 전 함께 하지 못한 일행의 동생이 왔다. 고학력임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해서 유튜버로 유명한 사람이 운영하는 회사에 들어갔다. 친구들은 대기업이지만 실무를 하지 않고 나는 한다는 자부심을 얘기하는 그 친구를 보고 일행은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보다 잘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타인은 그렇게 보지만 자신은 그렇게 보지 못했다.
전공과 학력을 살려서 능력을 키우지 못하면 미래가 없으니 이제 옵션은 4,000만 원 직장에 들어가서 영주권 취득을 위해서 5년간 아버지 용돈을 받아가며 고생을 하느냐 아니면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빠른 시일 내에 결정을 내려서 고향으로 내려가 집사형 효도를 하겠느냐의 선택밖에 없고 했다. 능력을 키우지 않겠다고 하는데 무슨 옵션이 더 있겠는가! 일행은 '능력=학력'이라고 생각해서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고 지금은 나이도 나이지만 학비로 손을 벌릴 수 없기에 학교도 포기한 상태다. 당연하다. 그러니 자발적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하는 건 앞에서 언급했듯이 일행은 모든 일을 관성으로 하기 때문이다. 시작한 일에 다른 옵션이 보이지 않으면 그냥 그만두는 것을 하지 못한다. 적당한 시점에 그만둬도 되는 일도 그냥 지속적으로 한다. 그게 아무리 소용없는 짓이라고 그냥 한다. 다른 옵션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사형 옵션은 일행의 선택권에 들어가지 못한다.
지난 대화 때 일행은 런던에서 제대로 된 직장(연봉이 높아서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직장)을 잡지 못하면 그냥 고향으로 내려가겠다고 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네가 생각하지 못하는 일중에 큰일이 아마 아버지가 아플 거다. 극단적인 경우는 침대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면 네가 대소변 가려주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절대 그냥 산책이나 하고 스타벅스에서 여유나 부리는 삶은 아닐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일행은 고향에 내려가는 것을 취소했고 어떻게든 취업을 해야겠다고 하며 그래서 지금 취업에 목을 매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오늘 일행은 이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여기서 취업을 하라는 건 능력을 키워서 연봉 최소 세금 빼고 5,000만 원 이상으로 시작을 해서 지속적 성장을 하라는 얘기였는데 중요한 얘기는 다 잊어버리고 그냥 취업만 생각한 거다. 그때 일행은 집사형 효도는 옵션에 들어가지 않는 걸로 결정을 한거 같다. 오늘 의식적으로 알지 못했다면 무의식적으로 거부반응이 일어난 것일 거다. 이미 자신은 고향에 내겨간다는 걸 선택한 적이 있는데 아버지 병시중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서 말이다.
아무튼 오늘은 그래도 병시중 얘기를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언급을 하면서 관성으로 생각해서 일을 하지 말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도 옵션으로 넣으라는 설득을 최대한 한 거 같다.
일행에게 있어서 5년은 별건 아니다. 하지만 일행의 아버지에게는 5년이라는 시간이 전부일 수 있다. 아버지와의 시간과 영주권을 교환해서 일행이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다. 반드시 후회한다. 살아 있는 동안 마음에 짐은 항상 무겁게 느껴질 거다. 일행이 깊은 고찰로 현명한 선택을 해서 남은 인생에 마음의 짐을 않고 살아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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