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경험론/연애

대한민국 새로운 연애관 friend with benefits(FWB)

_교문 밖 사색가 2023. 1. 2. 16:29

대한민국 새로운 연애관 friend with benefits(FWB)

 

 

 

결혼 제도가 잘못되었다면 연애관이 바뀌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건 자신들의 잘못이다.

 

 

 

우리나라 이혼율은 2020년 기준 21만 쌍 결혼, 10만 쌍 이혼이다. 50%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5년 안에 헤어지는 경우가 10% 정도다. 60%다. 여기에 황혼이혼, 거기에 별거, 각방 같은 감정적 이별까지 다 합치면 70%가 넘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다.

 

 

이 말이 내포하는 의미는 현대의 결혼 제도는 실패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실패한 결혼 제도에 대해서 아무런 비판 없이 살고 있다. 어려우면 그냥 안 하면 된다는 식이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가족은 아주 중요한 행복의 요소다. 그냥 안하면 되는 수준이 아니라는 말이다.

 

 

▼ 가족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글

 

행복은 사람 사이에 있다.

행복은 사람 사이에 있다. 20대의 고난을 스킵하면, 30대의 행복이 스킵된다. 그러면 당신이 이 생에 이룰 가족이 스킵된다. 가족은 행복의 근원이다. 지금 지구에 불가사의 한 일이 벌어져서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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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우리 같은 일개시민이 이런 제도에 대한 반발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국가 시스템을 넘어 세계적인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이 결혼 제도를 어떻게 바꿀 건가 말이다.

 

 

독일에서는 2부 2처제*를 일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행 중이다. 지금 결혼 제도에 대해서 문제점을 인지한 사람들이 의견을 합쳐서 그렇게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들은 평균 수명이 늘어난 현재, 1부 1처제로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고 서로 평생 함께 하기 위해서 가능하면 행복하게 함께 하기 위해서 2부 2처제를 자처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방식이 좋다고 말은 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은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방식이기에 이들이 죽을 때 이렇게 산 것이 행복했다,라는 증언도 없거니와 있다고 해도 아직은 그 수가 적기에 확증할 수 없는 시점이다.

*서로의 법적인 상대방은 정해놓은 채 육체와 정서적 교감만 2부 2처제로 나누고 있는 상태다.

 

 

그나마 알 수 있는 정보는 당시 시점의 인터뷰인데 이들은 지금의 삶의 방식이 1부 1처제보다 더 행복함을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이건 극히 일부 사람들이 하고 있는 방식이고, 조금 깊숙이 들어가서 원시 마을이나 섬에 시행되고 있는 제도보다 더 적은 규모이기에 아직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고 봐야 한다.

 

 

 

전 세계 이혼율은 평균 50% 정도이다. 이 정도의 통계 수치만으로도 현재의 결혼 제도는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어느 지역은 30% 정도고 우리나라처럼 70%면 평균이 50%가 나오고 그렇게 됨으로 인해서 전 세계적으로 결혼 제도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는 방식은 일어나기 어렵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도 공식적으로는 50% 정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는 다른 서양은 그들의 발달된 연애문화*로 인해서 이혼율이 50%라고 해도 지금의 결혼 제도에 크게 불만이 없다면 결혼 제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니는 어려울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불평등한 사회에 그나마 1부 1처제는 유일하다 시피한 평등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동양의 사랑에 대한 고정된 가치관, 교육 등의 문제로 지금의 결혼 제도가 완벽하거나 옳다고 굳건히 생각하게 된다면 아무도 지금의 결혼 제도에 대해서 반기를 들지 못할 것이다.

*재혼 문화과 보편화 되어있고 이별 문화가 성숙하다면 1부 1처제 제도가 불만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바뀌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 바로 연애관이다. 이제는 원나잇 스탠드에서 감정은 죽인 채 서로의 이점도 챙기는 장기적인 연애관인 FWB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 원나잇 스탠드

 

원나잇 스탠드는 위험하다. 과거에는 여자들에게 위험했으나 요즘 시대는 확실히 남자들에게 위험하다. 합의해서 서로 관계를 가져놓고는 여자들이 당했다고 하면 그 문제는 남자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이건 확실히 여자를 가볍게 본 지난 시대의 벌을 받는 느낌이라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사랑도 섹스도 앞선다. 굳이 직업의 위험을 걸고 원나잇을 하려고 하는 남자는 줄어들게 되었다.

 

 

한창 미투 운동이 벌어질 무렵, 한 회사의 여사원은 임원을 만나서 회식 때 남직원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했다. 그 여직원은 임원들과 조용히 자신의 연봉협상과 원하는 직위를 받을 것을 합의하고 남자 직원을 해고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이다. 회식 때 서로 잔 것은 합의하에 이뤄졌었고, 그건 미투 운동 1년 전이며, 그동안 별일 없이 잘 지냈으며 2차 가해도 없었다. 그냥 그날 서로 잘 놀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여사원은 회사에 자신이 남자가 아니기에 진급에 제외가 됐다고 생각했고, 연봉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투 운동이 벌어지니 그 남자 사원을 팔아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그렇게 쫓겨난 남사원의 친구가 그 여사원을 찾아가서 "넌 어떻게 그렇게 비열하냐."며 비난했다. 그래서 그 여사원은 "조용히 해, 너도 쫓겨나기 싫으면."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현재의 분위기와 여권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다.

 

그리고 이건 실화다.

 

 

 

이러니 여차해서 하게 되는 원나잇은 자연히 남자들 사이에서 위험한 관계로 인지가 된 것이다. 섹스만 원하던 여자들은 수요가 느는데 공급이 부족한 현상이 생겼다.

늘 그렇듯 절대적으로 예쁘고 잘 노는 여자들은 물 좋은 곳에서 잘 즐기고 있지만 대충 생기고 적당히 사는 여자들은 욕구를 채울 수 없었던 것이다.

 

 

중간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문제가 된 것이다.

 

 

권력이 강해지면 성욕도 강해진다. 남자가 섹스에 욕심을 내는 것은 신체적 호르몬 작용이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내면에는 권력을 이용하고 싶은 욕구와 합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자들이 권력이 강한 곳은 여자들의 섹스에 대한 주도권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오은영 박사도 말했듯 성욕은 본래 남자나 여자나 차이가 없다. 그런데 과거 우리는 대법원에서 조차 여자는 성욕이 없다고 단정하고 법을 집행하기도 했다. 이 말은 '권력=성욕'이라는 뜻이고 그동안은 사회적 약자로 삶을 살아야 했던 여자들은 성욕을 거세당하여 스스로도 그런 것이 없다고 착각하거나 갖어서는 안 되는 욕망이라고 설득을 하며 살았던 것이다.

 

 

권력이 강하다는 것, 그것이 집단화를 이뤘을 경우 남들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자신들 계층에서는 가능하다는 특권의식이 생기게 되고 가장 대표적인 행태가 바로 섹스다. 섹스는 본능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요즘처럼 여권이 강해진 시점에 특권층에서만 누리던 섹스라는 행태가 일반층에도 내려와 욕구를 채우고 유사 특권의식을 느끼는 욕망을 남모르게 얌전히 누리고 싶어 하게 된 것이다. 허나 미투 운동 같은 사회적 억제로 인해 공급이 부족한 현상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래서 수입한 남녀 관계의 형식이 바로 FWB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21215516670

 

제자와 성관계한 30대 여교사…아동학대 아닌 불륜일까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 다니는 남학생과 수차례 성관계를 하는 등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여교사가 재판에 넘겨졌다. 대구지검은 15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대

www.segye.com

 

 

https://www.youtube.com/shorts/_wulMBZSM28

 

 


 

▶ 기존 연애 방식

 

난 연애를 가르칠 때 운동이 하고 싶으면 트레이너와 사귀라고 하고,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영어 강사와 사귀라고 한다. 어차피 네가 만나는 연애 대상들은 결국 결혼을 하기 위해서 만나는 예행연습 대상들인데 기왕이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진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랑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으면 이유 모를 화학적 거부반응부터 일어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말을 10여 년 전부터 했으니 그때는 더 했다.

 

 

이 말에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연애=사랑'이라는 사회적으로 당연시하는 분위기와 나는 사랑만큼은 올바르다는 식의 착각으로 인해서 사랑에 조건을 따지는다는 것은 '이기적이다, 못된 생각이다'라는 부정적 단어가 머릿속에 자리 잡아서 그럴 거다.

 

 

그럼 그렇게 연애하고 결혼한 우리는 행복한가? 그래서 우리나라 결혼 생활이 안정적인가? 그래서 결혼해서 낳은 자식들을 굶기고 때려죽이나?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722500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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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당신 인생에 있어서 거의 반드시 일어날 이벤트적 사건이다. 지금은 삐걱 거지만 그래도 아직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러하다.

 

그래서 연애를 한다. 연애의 1차 목적은 성욕의 분출일지 몰라도 점차 성욕에 익숙해지면 결혼 대상을 찾는 방향을 찾아간다. 즉, 연애란 결혼을 함에 있어서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정서적, 육체적 대상을 찾는 과정이다. 심지어 옛날에는 경제적, 육체적인 욕구를 드러내면 욕먹는 시대도 있었다. 허나 지금은 발전이 되어서 이 3요소를 당연히 여긴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

 

 

왜냐면 현실의 결혼은 사랑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사랑에 대한 정서를 통일된 관념으로 공유하는 것이 없다. 기존의 사랑의 관념은 돈이 없어도 되고, 몸이 아파도 오직 정서적, 감정적으로 선량한 사람을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함께 하는 것이라고 강요했다. 

 

 

실제로 난 이런 사례를 본 적도 있다. 몸이 전신 마비가 오고 중풍도 와서 의식은 있지만 산 송장이 된 남편을 케어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봤다. 심지어 그 여자분은 둘째 부인이고 혼인 신고도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면서 살았다. 자세한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것에 동감을 했다.

 

심지어 결혼할 대상이 세상을 사고로 떠나면 남은 사람은 영혼식도 했던 시대가 불과 40~50년 전까지 존재했다.

 

 

이게 사랑이라고 치자. 맞는 말 같으니까. 그럼 현대의 우리는 과연 경제력이 없고 신체가 건강하지 않은 이런 사람과 결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결혼과 사랑은 일맥상통하지 않는다.

 

 

결혼은 조건에 의한 결합이 맞고, 조금 각박한 말로 하자면 인생의 중요한 사업이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포장으로 우리는 이 말에 동의를 하면서 살아오게 되었다.

사랑으로 포장을 하니 쉽게 내뱉지 못하는 말, 결국 결혼은 조건이고 인생 사업인 것이다.

 

 

이걸 받아들이고 자신의 입으로 내뱉고 자신의 귀로 듣는 사람들은 일찍 사회 눈이 띄어서 그런 사람을 찾는다. 허나 사랑이라는 포장을 그래도 벗어던지지 못하는 사람은 내심 조건을 찾으면서 그래도 사랑이라는 포장이 가능한 대상을 찾는다. 후자가 겉으로는 인간적이라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속내를 들키면 조건 다 갖춘 배우자를 찾으려는 욕심이 강한 사람이라도 볼 수 있다. 반대로 전자의 사람은 냉정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은 결혼과 사랑은 동급이 아니라는 것을 빨리 알고 행한 현명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아는 전자의 사람들은 의사, 변호사를 만나서 살고 있다. 내가 아는 후자의 사람들은 내심 의사를 만나고 싶어 하면서 겉으로는 아닌척하다가 공무원도 아닌 그 비슷한 직업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서 애써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살고 있다.

겉으로만 착한 척하는 어설픈 착함은 내 인생은 물론이고 함께 할 반려자의 인생도 함께 불행하게 만든다. 어설픈 착함은 내가 착하게 살고자 다 가진 사람들 찾는 욕심 가득 찬 거짓 착함이고, 나를 착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망상이며, 결국 반려자를 속이는 행위로 이어진다. 그리고 속았다고 느낀 반려자는 이미 늦은 시점이며, 이미 늦어버렸으니 되돌리 수 없다고 판단하면 자신이 잘못이라고 자책하면 살아가게 된다.

 

 

이런 현상은 사람들은 단어에 담긴 뜻에 영향을 받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단어를 정확히 이해를 하고 사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사회 공감적인 단어를 완성시키지 못한 채 희생의 강요를 아름답게 생각해서 인간다운 것이다,라는 식으로 왜곡되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기에 우리의 연애가 결혼이 어려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회가 꼭 사랑이라는 공감적인 단어를 완성시킬 강제성은 없다. 그러니 우리가 개인적으로 사랑과 행복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개인적으로 현실적 의미로 완성을 해서 살아가야 한다. 그걸 (개인) 가치관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그렇게 단어의 뜻이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으면 개인적으로 단어의 의미를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흡수를 하고 그것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생기고 사회는 비교적 안정을 찾는다.

 

 

서로를 속이고 자책하는 결혼 생활을 벗어나는 연애를 하고 싶다면 결혼은 조건이자 인생 사업이다,라는 개념을 인정해야 한다.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기존의 연애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욕망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포장되어 있는 연애를 추구하던 사람들은 앞에 내가 말한 연애 대상을 찾는 방식에 거부감이 들겠지만, 결혼은 조건이라는 말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내가 발전하기 위한 연애를 추구하고 그 대상을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몸을 만들고 싶다면 트레이너랑 연애를 하고,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영어 강사와 만나는 것이 좋다. 같은 돈을 쓰면서 연애와 운동을 병행하면 돈이 더 든다. PT를 등록하면 거의 연애하는 수준의 돈이 든다. 두 배로 든다는 뜻이다. 그럴 바에야 그냥 트레이너와 연애를 하면 좋지 않나? 뭐가 잘못인가? 그 사람이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다. 당신이 연애가 하고 싶어서 애써 소개팅하는 평범한 직장인이 반드시 더 좋은 사람이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둘 다 똑같이 미지의 사람인건 동일 조건이다.

 

 

그렇다면 왜 거부감을 가지고 미리 거부를 해야 하는가? 의미를 모르는 거부감이다. 기분 탓으로 인생을 결정하지 마라. 그건 동물이나 하는 행위다.

 

 

인간은 이성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시간이라는 개념을 넣어서 자신의 미래를 미리 계획을 하고 그 계획을 실천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 사람이 바람둥이일 거 같아서 그런가? 그럼 너도 바람을 펴라. 연애하다가 헤어지던가. 연애가 그런 거 아닌가? 평범한 직장인 혹은 소개팅남은 바람을 피우지 않을거라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것인가? 평범한 사람은 바람을 피지 않는다는 혹은 못한다는 발상은 능력부족이라는 착각적 고정관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소개팅남이 평범하다는 보장은 무엇이며, 당신이 소개팅하는 이유는 조건이 맞아서 하는 건데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건 안전에 대한 보장을 받고 싶어 하는 심리에서 나오는 나를 속이는 착각이 아닌가?

 

 

결국 상대방의 연애 성향이 걱정이어서 나의 성장에 맞는 목적에 연애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여전히 '연애=사랑'이라는 단어에 갇혀 살아서 그런 거다. 사랑은 상처 주지 않는 것이니까.

당신이 아무리 '결혼=조건'이라는 공식을 받아들였다고 해도 결국은 나는 다르다, 나는 그래도 희생적인 사람이라는 오해의 단어인 사랑이라는 것을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이런 식으로 바라는 것은 나는 조건을 인정하지만 너는 나에게 사랑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랑이라는 감정의 기형적인 변형을 뇌 속에서 만들어서 받아들인 것이다.

결국 어설프게 하지만 나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받아들인 '결혼=조건'은 사랑을 포장한 절대적 이기주의를 안에 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적 이기주의자가 바로 무의식적 당신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이기주의가 싫거나 겁쟁이어서 그 연애를 포기하는 당신은 성장 가능한 연애를 거부하는 게으름 뱅이거나 성장을 포기하고 이미 다 가진 사람을 만나서 그냥 있는 그대로 살기를 바라는 결국 또 이기주의적인 사람인 것이다. 허나 이번에는 절대적 이기주의자가 아닌 게으른 이기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최종 목적은 놀면서 사는 결혼 생활일 것이다. 결국 이 둘을 합치면 절대적 게으른 이기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성장을 멈춘 사람들은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운 약자들이거나 약자로 전락을 한다.

 

 

약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원샷원킬을 바란다는 것이다. 어떤 핑계를 대서든 연애를 최대한 경계를 하면서 가능성 높은(조건 좋은) 사람들만 만려고 하는 것이다. 약한 데다가 게으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생은 대학만 나오면 더 이상의 성장은 필요 없다는 사회적 착각 때문에 연애가 성장의 가장 큰 도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가장 큰 착각은 결혼을 인생의 안정적 도피처로 착각하는 것이다. 결국 사랑을 운운하면서 가장 큰 사업으로 생각하는 존재들은 이런 약한 절대적 게으른 이기주의자라는 것이다.

 

 

이런 약한 사람을 만난 상대방은 과연 연애할 때 알아차리지 못할까? 결혼을 하면 남은 인생을 함께 해야 하고, 애도 낳아야 하고, 해마다 집안과 부모님들 행사를 챙겨야 하며, 여행도 가야 하고, 지속 가능한 직장도 지속 가능한지도 모른 채로 살아가야 하는데 설사 돈 걱정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런 사람을 만나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싶을까? 양준혁 와이프처럼 자신은 어리니 그걸 무기로 계속 남편 재산이 내 거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그걸 법적으로 만들어달라는 사람을 만나면 연애하고 싶을 때 헤어지고 싶지 않을까?

 

 

약한 절대적 게으른 이기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해 줄 사람을 만나면 매달린다. 왜냐면 이들은 사랑이라는 왜곡된 희생의 의미가 강한 단어를 상대방에게 강조를 하고 너도 사랑을 했으니 연애를 한 게 아니냐면서 자신의 단점을 어떻게든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이들이 헤어질 때는 상대방에게 빼먹을 거 다 빼먹고 나서다. 결국 (사기적) 사업을 한 것인데 자신들은 사랑이라고 하며 상대방을 탓한다.

 

 

정리하자면 나는 결혼이 조건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쿨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상대방은 나를 조건으로 보지 않고 사랑으로 봤으면 좋겠고, 나는 성장은 하지 않을 것이니 상대방의 돈으로 남은 평생을 편하게 살겠다,라는 것이 기존의 대한민국 연애관, 사랑관이었다. 흐물흐물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사랑관으로 보호막을 만들어버린, 연애를 함에 있어서 약한 절대적 게으른 이기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다 가진 상대방과의 이별의 사유가 될 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상대방이 착하면(순하면) 이런 감언이설에 넘어간다.

 

이런 사람과 몇 년씩 연애를 하면 혼기가 넘어가기 일쑤다. 그래서 마지못해 결혼을 하게 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경험이 적기에 반대되는 사람을 찾다가 결국 같은 목적을 지닌 다른 빌런을 만나게 된다.

이런 사람을 단절하는 건 연애를 많이 해봐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착하면(순하면) 사랑이라는 왜곡된 논리에 넘어간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단어를 스스로 정립하고 연애를 많이 해야 착한(순한)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지난 20년 정도의 대한민국의 연애관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대한민국의 이혼율은 비공식적으로 70%가 넘는다.

 


 

▶ 그렇게 등장한 대한민국의 연애관 FWB

 

 

기존의 연애관의 문제점은 1. 정해지지 않은 사랑관으로 인해서 조건을 사랑으로 둔갑시켜서 다 가진 순한 사람들을 현혹시켜서 그들의 재산 같은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행태, 2. 이런 연애를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만나는데 원하는 것을 얻기 전까지는 헤어져주지 않으니 길어진 연애의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혼기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연애에도 제한 시간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대학생 때부터 연애가 가능하다고 암묵적 사회적 규칙이 있으니 3년씩 3명만 만나도 30대가 된다. 혼기가 찬다는 말이다. 고작 3명을 만나서 뭘 안다는 말인가? 약한 절대적 게으른 이기주의자를 만나지 않아서 1년 정도 연애를 한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사회적 분위기는 20대 때 3명 이상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연애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FWB는 확실히 개념화하지 않은 위험한 사랑이라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고 만남을 추구한다. 원 나잇이 아닌 지속적 만남이니 남자들도 법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서 믿을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서로 감정이 들면 한쪽의 일방적 요구로 헤어짐이 가능하다. 그리고 서로 다른 대상을 만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이런 규칙을 내포하고 있다.」

 

 

얼핏 보면 FWB는 지금의 대한민국의 연애 문제점을 잘 보완한듯하다. 하지만 이 연애관도 문제가 있다.

 

 

1. 결혼하기 좋은 상대방을 찾기 위함이 아닌 결혼을 하지 않으려니 수입한(생겨난) 연애관이라는 것.

2. Benefit의 개념이 성장이 목적이 아니라 섹스에 목적을 둔 만남이라는 것이다. (benefit = sex)

 

 

내가 운동이 하고 싶으면 트레이너를 만나라는 것,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영어 강사를 만나라는 것은 성정을 위함이 있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건 연애라는 것은 안정적이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지속가능 하기 위한 과정이기에 가능한 솔루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절대적으로 맞다. 

 

연애도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시기에 목적을 둔 만남은 순수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이런 방식을 거부한 사람들은 도태되고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혼=조건'이라는 공식을 받아들인 다면 이걸 상대방에게도 같은 조건이다. 상대방도 당신의 조건을 볼 거라는 뜻이다.

 

 

그러니 결혼 생활이 행복하게 유지되려면 나도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운동을 하려면 트레이너를 만나서 연애를 하고 몸을 만들라고 한 것이다. 그 와중에 그 트레이너가 괜찮으면 지속적 만남을 통해서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고 아니라면 몸을 만들고 헤어지든 더 아니면 와중에 헤어지면 되는 것이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성장을 한다면 내 가치는 높아지고 그 사람이 괜찮으면 결혼도 가능하지 않는가? 이런 만남이 문제가 되는가? 연애라는 것이 다 결혼을 할 대상을 알아보는 탐색전인데 이런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완전히 배제하고 연애를 생각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리고 서로 괜찮은 것을 확인했는데 그 와중에 이 사람이 너무 인간적이고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사랑에 빠지는 것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사랑을 동반하는 결혼이라는 것을 이런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다.

 

어차피 학교든 직장이든 소개팅이건 간에 서로 알아보고 만나는 건 다 같은 건데 왜 이런 만남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배제하고 연애를 해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살 사람들 찾으려는 태도 자체가 비효율적인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거다. 앞에서 말한 약한 절대적 게으른 이기주의자란 뜻이다. 심지어 이들은 다 가진 사람이 그냥 자신을 알아보고 다가와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같이 착한 사람이라는 탈을 쓰고 산다. 심지어 그 탈이 진짜 자신인 줄 안다.

 

 

이것도 다 착함이라는 단어의 뜻을 사회적으로 제대로 적립시키지 못해서 생겨난 사태다.

 

 

성장을 배제한 FWB 연애관은 제대로 작동을 하기 어렵다. 이건 곧 B=SEX가 되는 꼴이 되어버린다. 이건 지금 세대들이 결혼을 포기했기에 생겨난 부작용이다. 나는 결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필요한 연애관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이걸 결혼을 포기하니 받아들인 연애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건 성장을 빼고 연애와 결혼을 생각하는 우리들의 사회적 관습 때문이다. '결혼=조건'이라고 생각을 해도 그건 내가 만나는 상대방에게 적용되는 것이고 상대방은 나를 사랑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무의식적 이기심을 버리지 못한 부작용이 FWB 연애관을 수입해도 그냥 지속 가능한 섹스 상대와의 만남으로 전락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종교가 수입이 되어도 우리나라 토속 신앙과 합쳐져서 기복 신앙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물며 '결혼=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절대적 게으른 이기주의자들은 오죽하겠나?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 나 자체로 바라봐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게으른 거다. 그래서 '사랑=게으름'이라고 볼 수 있는 우리의 가치로는 FWB 연애관이 제 역할을 해내기가 어렵다.

 

 


 

 

▶ 그럼 왜 우리는 성장을 멈추었는가?

 

 

일단 너무 피곤하다. 지독하게 공부를 해서 대학에 들어간다. 그 과정이 심하면 유치원 때부터 이뤄진다. 고등학교 때 피크를 달란다. 그나마 80년대는 대학 때 놀았다. 그래서 그 세대는 여유가 좀 있었다. 그래서 낭만이 존재했던 것이다. 허나 지금은 대학 때도 취업을 위해서 앞만 본다. 이러니 행복한 결혼을 위해서 더 성장을 해야 한다는 생각할 에너지가 있을까? 그냥 배터리가 다 된 거다. 너무 지치고 살길이 막막하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심지어 우리의 과거의 사랑관과도 맞아떨어진다. 그러니 더 그대로 있어도 된다는 설득력을 얻는다. 완전히 맞는 말로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사회적 분위기다.

 

 

그럼 이대로 살면서 과연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유지해 가면서 살아갈 수 있고 자식을 올바르게 키울 수 있으며, 인스타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 그러니 더 성장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한 논리다. 허나 사람들은 너무 지치면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심지어 25년 동안 생각하는 법도 배운 적이 없다.* 배터리가 방전이 된 상태에서 배운 적도 없는 생각을 하려니 되지 않는다. 그러니 성장이 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성장은 마치 어떤 기관이나 학교에 가야지 가능한, 자격증이나 졸업장을 따야지 증명이 되는 거라고 착각을 한다.

*우리의 교육 방식은 외워라, 의문을 품지 마라, 베껴라의 과정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게 고작 이 정도 수준이고 대학을 나와도 이런 상태라면 우리는 대학을 왜 가야 하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튼 이것이 사회적 대답이라면 DNA 대답은 용기다.

과거의 인류가 지식이 없을 때는 용감한 사람이 우선 죽었다. 제일 쉽게 얘를 드는 것이 독버섯 이론인데 먹는 게 중요했던 원시시대에 용기 있게 먼저 나서서 독버섯을 먹은 사람은 죽었다. 전쟁도 그렇고 혁명도 그렇다. 요즘 환경 운동가들도 기업이나 정부에게 청부 살해를 당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최근 과학자들이 30년 정도 지나면 지구의 환경에 큰 재앙이 닥칠 거라는 경고를 길거리에 나와서 했다.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내세우려고 환경 운동을 한건 자살 행위일 수 있고 심지어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를 당한 걸로 나는 알고 있다. 물론 언론 보도는 없이 소문으로만 도는 얘기다. 그래야 정부와 기업들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먼저 용기 있게 나서는 사람들은 죽었다. 그걸 인지한 유전자를 이어받은 우리는 현대는 죽을 도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필요한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보다 먼저 하고, 먼저 떠나고, 먼저 시도하고, 먼저 실패해서 아닌 방법을 알아내는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현대의 우리는 남들이 한 거 따라 하고, 남들이 성공한 거 모방하고, 남들이 해서 잘된 거 주워 먹으려고만 하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지금의 성장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를 만들지 못한 것에한 자성을 하지 않고 오징어 게임이나 만들어서 좋다고 한다.

 

이것이 다 고대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DNA 유전자 때문이다.

 

 

 

허나 그걸 아는가? 이걸 극복하려고 우리는 교육이라는 것을 학교에 받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교육은 사회를 중심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가르치지 않고 지식만 강요하는 아직도 60년대 방식을 고수하면서 지식의 종류와 방향만 바꾸면서 버티고 있다. 그러니 사람들은 사회에 나와서 더 이상의 성장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성장을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나마 직장에서 버티려면 성장을 해야 한다는 강제성이 들어오니 결국 학교에서 숙제 해결하는 수준의 성장만 하고 있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하면 다행아지만 나중에 그것도 하기 힘들어지면 다 포기하게 되는 것이고 40대가 되면 회사에서 시키지 않은 성장이 되어있는 리더십을 갖춘 사람들만이 살아남는다.

 

 

이렇듯 우리는 용기 유전자의 부재, 방향을 잃은 정채 된 교육, 불필요한 과잉 교육 현상으로 인한 에너지 방전으로 인해서 성장에 대한 개념도 생각하지 못하는 절묘한 삼박자를 고루 갖춘 민족이 되었다.

 

 

이러니 노는 여자들이 잘될 수밖에 더 있나! 남들 시선을 무시한 채 노는 용기, 방향을 잃은 교육을 받지 않아 남아 있는 뇌의 공간, 불필요한 과잉 교육을 피해 축척한 에너지로 이들은 과감하게 '결혼=조건'을 받아들이고, 남자들이 원하는 조건의 여자가 되기 위해서 최소한 섹스라도 제대도 연습한 상태가 되었고, 많은 노는 남자들을 만나 실패라는 경험을 해보고 결혼할 남자라는 조건을 인지하는 수준이 되었고, 그런 남자에게 어울리기 위해서 노는 여자라는 이미지를 감춰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말을 조신하게 하는 법을 배웠으며, 앞으로 살아갈 에너지를 자신의 과거를 들키지 않고 남자를 만족시키는 여자가 될 것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는 건 에너지 여유가 있으니 당연히 노는 여자들이 잘 사는 것이다.

 

이런 노는 여자를 만나면 약한 게으른 절대적 이기주자이면서 착한 사람이라고 착각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한 것보다는 행복할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용기로 죽던 무지와 전쟁의 시대가 끝이 났고 먼저 도전해서 실패하는 자들이 하나라도 안 되는 방법을 먼저 알아서 다음 도전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는데 우리는 여전히 용기를 부정하고 살아가고 있다. 결혼 분야에서는 노는 여자들이 포문을 먼저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 같다. 우리가 인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말로는 재미 삼아하면서 말이다.

 

 

심지어 FWB는 잘 생각해 보면 노는 여자들과 연애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차이점은 학력에 대한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도 옛날 얘기지 요즘 세상에서는 크게 작용하지 않을 거 같다. 실제로 차이가 난다고 한들 그들의 대화 수준은 학력에 의한 차이는 없기에 과연 직장 생활을 하지 않고 집안일만 하려는 사람들에게 학력 차이는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봐도 좋다. 하지만 이들의 방향은 다르다. 노는 여자들은 안정적 결혼 생활을 우선시하고 남자를 공부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FWB를 즐기는 사람들을 결혼을 포기하니 즐겨보자는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나라 연애방식은 화류계나 다름이 없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서울은 프러포즈 비용이 천 만원이나 든다고 한다. 명품백과 반지 그리고 호텔 서비스를 합친 금액이다.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프로포즈를 한다는 것 자체도 이상한데 프로포즈 상품이 정해진 것은 확실히 남자들 기준으로는 화대를 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보여지는 삶의 대명사인 인스타그램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꼭 프러포즈뿐만이 아니라 얼굴과 몸매로 연애를 하려는 사람들은 중간중간에 꼭 물질을 요구하는 것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선물을 넘어선 요구는 화대와 다르지 않다. 차이는 만남의 지속성이냐 아니냐의 차이인데 그것도 지속적으로 업소를 방문하면 지속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연애가 소문을 타니 너도 나도 물질을 요구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고 급기야 프러포즈 비용까지 그들의 사회에서는 공식화되는 것이다.

 

 

여러모로 대한민국의 연애가 조건녀들과 다르지 않은 행태로 흘러가고 있고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과 다를 게 없는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경계 모호성의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이런 흐름으로 봐서는 FWB의 연애관의 수입은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shorts/pM0D5VacWJY

 

 

 

 

이건 여담이지만 최지우나 한예슬이 업소남들의 신분을 세탁해서 결혼을 하고 연애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을 거다. 그리고 이들을 뒤에서 욕하는 사람들도 있을거고 안타까워 할 사람들도 있을거다.

하지만 이 상황을 뒤집어 보면 매일 같이 업소에 드나들면서 여자들과 놀아나는 남편과 업소에서 일하는 남자들의 차이점이 뭐가 있을거 같은가? 내가 볼 땐 거기서 거기다.

 

 

그럴 바에야 결혼 후 업소에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유리하고 내가 돈이 많으면 그걸로 만족하면서 업소남을 개과천선 시켜주는 작업을 하는 것이 나에게 더 충성을 할 거라고 본다면 난 최지우나 한예슬이 더 현명한 선택을 한 거라고 본다.*

*이 논재는 업소남들이 업소에서 일을 할 때 손님으로 온 여자들의 돈을 삥 뜯은 행위는 논외로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예가 쿨의 이재훈이다. 지속적인 업소에서 지속적인 같은 업소녀를 만나서 지금은 애 낳고 함께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연애의 형태가 화류계 영역과의 모호함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GSwJNFAVS8o

 

 

 

이 여담을 하는 이유는 어쩌면 물질 사회로 가는 마당에 정신을 강요하는 문화가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이상하게 보지 않고 특히 서울 사람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과거에 성형에 대한 인지가 좋지 않았지만 다 받아들이듯 이런 현상도 곧 다 받아들일 거라고 본다. 

 

 

결국 이 문제는 연애가 물질화가 되어 화류계와 비슷한 양상을 띤다는 것이 문제가 아닌 사람들이 성장을 멈춘 상태로 정신을 버리고 물질만 탐하는 사회가 문제가 된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성장을 포기한 삶의 형태가 문제가 된다는 뜻이다.

 

 

그 문제는 연애에도 드러나고, 직장에서도 드러나며, 가족 간에 관계에서도 드러나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드러나며, 모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도 드러나며, 운전을 하는 도로에서도 드러나기에 우리는 안전의 층이 얇은 사회에서 살게 되어 강남역에서 대낮에 살인 사건이 일어나며, 카페에 앉아 있다가 옆구리에 칼에 찔리기도 하고 우크라이나는 전쟁의 공격을 당하며 겨울을 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shorts/TO1sj9ZCBkM

 
가장 안전해야 할 가족이라는 붕괴되면 사회가 붕괴되고, 사회가 붕괴된다는 것은 결국 국가가 붕괴된다는 뜻이고, 국가가 붕괴되면 주변국에서 침락하게 되어 있다. 전쟁은 그렇게 시작된다.

 

 

연애 문제로 너무 간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삼풍백화점은 기초부터 잘못되어 무너졌다. 당시 최고급 제품만 팔았던 백화점은 보이지 않는 기초가 그러했던 것이다. 그래서 5년 만에 무너졌다. 성수대교도 그렇다.

 

연애야 말로 직접적 인간관계의 가장 중요한 기초 공사다. 친구야 안 맞으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친구라고 맞춰가는 것이 어느 정도 정립화 되어 있지만 연애는 인성과 돈과 감정과 미래를 모두 다 사용해야 하는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관계에서 가장 기초적이고 직접적인 관계의 시작인 것이다.

 

 

이 관계가 무너지니 지금의 사회는 불신으로 인간관계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면 내가 아는 사람들 말고는 다른 사람들은 적이 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연애부터 삐걱대는데 어떻게 모르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

 


 

얼마 전 옆집에 새로운 사람들이 이사를 왔다. 나는 그들을 처음보고 인사를 했다. 인사를 받은 이웃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왜 아는 척을 하냐는 식으로 나를 꼴아봤다. 그 집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난 이들과 인사를 안 한다. 그러는 와중에 평소에 인사를 하고 지내는 어른과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평소에는 먼저 아는 척하시는 분이 앞만 보고 있어서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그러더니 그 어른은 "난 또 누군가 했네" 하시며 반갑게 대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새로운 사람들이 이사 오면서 인사라는 당연한 인간관계의 시작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이전에는 버스에서 내려서 집으로 오는 길에 같은 버스에서 내린 여학생이 앞서가고 있었다. 심지어 같은 문을 지나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내가 먼저 버튼을 눌렀다. 보니 나보다 한 층 아래여서 난 내 버튼을 취소하고 걸어 올라갈 생각을 했다. 그 여학생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엄마~~~!!!" 하고 소리를 지르며 급히 도망치듯 달려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이다. 난 왜 저러나? 싶었다. 당시 광고에는 에너지 절약으로 한 층 정도는 취소하고 걸어 올라가는 것을 홍보했다. 난 그걸 한 것뿐인데 난 괴한으로 오해를 받은 것이다. 

인간관계의 몰락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몰락의 시작이 바로 연애다.

연애는 가족을 이루는데 가장 근간이 되는 인간관계의 직접적 행위다. 그래서 내가 이 블로그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연예인 것이다.

 

 

깻잎 논쟁으로 웃고 떠들지만 이런 논쟁은 애초에 벌어지면 안도는 아주 유치한 수준인데 이걸 쟁점화해서 화제로 퍼져나가 스트리밍 서비스 소재로도 나온다. 연애를 의심하는 이 소재는 인간관계가 무너지니 생기는 현상이다. 그냥 웃고 넘어갈 문제가 아닌데 다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니 결국 무관심과 무지가 인간관계를 무너지게 한다.

 

 

 

이런 내용까지 내가 언급하는 이유는 FWB의 흐름이 결혼을 제대로 하기 위함이 아닌 결혼을 포기하는 현상으로 나타난 것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결국 물을 에너지로 쓰려고 댐을 건설했는데 그 댐이 무너져서 홍수가 나는 꼴이 되어버린 것처럼 이미 연애 관계의 붕괴로 인해서 인간관계의 댐이 무너졌으니 FWB는 연애의 재공사라고 하기보다는 홍수의 흐름대로 가는 현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서 FWB는 믿을 수 없는 인간관계와 연애로 인해서 생겨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접촉의 부재와 모르는 사람들과의 공공장소에서의 약한 유대관계의 단절*로 인해서 생겨난 외로움을 달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과거의 공공장소에서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어려우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인지가 되었다. 허나 지금은 조금이라도 접근을 하면 위험하다고 꺼린다. 그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해서 더 가중되었다. 너무나도 시의적절하게 나타난 코로나19로 인해서 우린 이런 것들을 당연한 사회현상이라고 착각하게 되었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모르는 존재들로 인해서 우리는 혼자여도 혼자가 아니라는 무의식이 자리를 잡았던 때가 80년까지였다고 본다. 이제는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헤칠 수 있는 적으로 인지된다. 공공장소의 약한 유대관계가 이렇게나 중요하고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였는데 그 관계가 단절이 됐으니 사회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길 가다가 내가 어려울 때 반드시 내가 아는 사람이 근처에 있을 거라는 근거는 없다.

 

 

과연 이런 흐름을 탄 FWB는 우리 사회의 기초 공사를 다시 재건할 수 있을까? 홍수가 끝이 나 바닥이 드러나면 이렇게라도 시작한 FWB의 관계로 새로운 건설적 연애, 새로운 인간관계의 재건 가능할까?

 

난 회의적이다. 그래서 난 이 나라를 탈출하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마냥 회의적이지는 않다. 최소한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으로 인해서 남녀들이 적으로 간주되어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는 FWB가 훨씬 낫기 때문이다. 만남 자체를 차단하는 것보다야 이렇게라도 연결이 되는 것이 사회가 안정적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들이 성장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더없이 좋은 연애관으로 발전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러니 이런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괜히 FWB 연애관에 대해서 비관적으로 비판하는 자세는 삼가야 한다.

난 FWB 연애를 하는 사람들보다 이성 자체를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반사회성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본다. 그 사람들이 꼭 페미니스트라서가 아니라 우리 인간은 이성이라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고 그 이성의 위로와 인정으로 큰 기쁨을 누리며 인간다운 감정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은 결국 사람 사이에 살아야 하고 그 사이에 행복이 있다. 지속적인 만남이 있어야 그 행복을 가족 형태로 만들 수 있고 사람을 잘 알아야 그 가족을 유지할 수 있으며 성장을 해야 변화되는 사회 속에서 학교에서는 불가능한 자녀들의 교육을 밥상머리에서 시킬 수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런 당연한 과정이 너무 어렵다. 그 와중에 생겨난(수입한) FWB는 지금은 섹스에 치우친 조금은 부정적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해도 페미니스트가 판을 치는 대한민국에서 여차하면 인간관계가 단절이 될 상황에서 최악은 면한 새로운 인간관계 행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난 회의적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가 이런 위기의 시기를 극복한다면 FWB가 성장의 의미를 포함해서 안정적 가정을 꾸밀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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