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4위로 살아남기 위한 지침서
착하다는 것은 인생의 함정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지금 세계 경제 10위의 국가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일본에게 강제 점령을 당하고 해방된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3년이나 전쟁을 치면서 아프리카보다 못살던 나라가, 자원도 없어서 홀로 설 수 없을거 같은 나라가 세계가 놀랄만한 경제 성장을 이루고 문화 컨텐츠 힘을 발휘한다.
허나 지금 대한민국 청년들은 삶을 어려워하고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존재하게 만든 교육의 힘이 상향 평준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OECD 대학 진학율은 50% 정도다 우리라나는 70%가 넘는다. 개인적으로 90%가 넘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적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평균보다는 20% 넘게 진학을 한다. 말이 70%지 2008년 이후로 80%에 가까운 수치다. 결국 30% 가까이 더 대학을 간단 말이다.
왜 더 높은 교육 수준으로 인해서 삶이 어려워야 할까?
▶ 착한 사람병
우리나라 사람들은 착하다는 말을 아주 좋아한다.
공부를 잘하면 착하다. 부모님 말 잘들으면 착하다. 선생님 말 잘들으면 착하다. 우리 시골집 강아지도 착하다.
착하다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바로 똑똑하다라는 개념이다. 우리집 아이는 똑똑하다. 이말은 말을 잘 듣는다, 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말이 정답인냥 과거 지식만 잡다하게 늘어놓은 책을 외우고 평가를 잘 받으면 똑똑한거다. 그래서 착하다고 한다.
시골집 강아지도 똑똑하다. 앉으라면 앉고 기다리라면 기다린다. 그래서 똑똑한 강이지 '벌이'를 우리 가족은 착하다고도 한다.
학교에서 공부하라고 해서 공부만해서 그 증거인 성적이 잘 나오면 착한거다. 앉으라고 하니 앉은 강아지는 시키는대로 사람말을 잘 알아들어야 하는 환경에 적응을 잘하니 똑똑한거고 착한거다.
말을 잘는데 공부를 못하면 착하지도 못되지도 못한 그 사이에 끼어버린다.
강아지가 말은 못알아듣지만 사람을 공격하지 않고 얌전하면 순하다고 한다. 착하다고 하지 않는다. 고로 착한건 똑똑하다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하는 민족이 바로 우리나라다.
허나 사람의 경우 학교에서 순하다는 말을 쓰지는 않는다. 애는 착한데... 라며 말을 흐린다. 그래서 착하다는 말의 의미도 흐려진다. 순하다는 말은 동물에게가 쓰는 말인듯 하다. 이 말을 사람에게 적용하자면 학교 선생님 말을 잘 듣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듣는 착함이 있기에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조건은 갖추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 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미완의 착함이라는 뜻이다. 고로 학생에게 완전한 착함은 똑똑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착하다는 말을 좋아한다.
똑똑하다는 말은 출세를 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때 착하다는 완성의 의미는 출세를 할 수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고로 학생때 착하다는 말은 출세와 같은 의미다.
성적이 잘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일탈을 꿈꿀 수 없다. 그래서 공부만 한다. 그래서 착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착한 행동은 그리 많이 하지 않지만 착하다.* 왜냐면 공부를 잘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세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세는 돈을 많이 번다는 뜻이다. 그 말은 그 돈으로 효도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효도가 당연했기에 착하다는 효도와 일맥상통하는 의미다.
*반에서 1등하는 학생이 싸움 말리는거 본적이 없다. 되려 못본척 자기 공부만 하는데 이건 착한게 맞는건가?
그래서 요즘은 착하다는 말이 퇴색되었다. 똑똑해도 출세가 어렵고, 어렵게 출세를 해도 효도를 안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착하다는(똑똑하다는) 여파는 아직 존재한다. 여전히 똑똑해야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해야 연봉을 높게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너도나도 대학을 간다. OECD 회원국보다 30% 더 간다. 그렇다보니 착하지 않은 학생들도 대학에 간다. 그에 반비례해서 취업문은 좁아진다. 기업들은 자신의 직장에 맞는 인재를 찾는데 그런 인재가 없어서 좋은 자리는 수입을 한다. 외국에서 인재를 들여온다는 뜻이다. 고 이건희 회장은 이런 어쩔 수 없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삼성의 연봉을 모두 올려줬다. 외국 인재들에게만 고액의 연봉을 주게되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걸 염려해서다.
그래서 그 이후로 삼성의 연봉이 높은거고 대기업도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하기 시작했다.
외국에서 인재를 들여온다는 것은 비단 외국인들뿐 아니다. 세계 경제 10위인 우리나라 사람들도 유학을 많이 간다. 상향평준화된 교육에서 차별화를 두기 위해서는 유학은 이제 필수다. 그러니 서울에서의 취업은 인서울이라는 개념에도 취업이 어렵다. 연고대가 기본이 되어버렸다. 유학파들이 날뛰기 때문이다.
이것이 세계 경제 10위 힘이다. 착하지 않아도(똑똑하지 않아도) 모두 대학을 가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유학을 간다.
물론 직장은 많을거다. 허나 요즘 세대는 나도 대학 나왔는데, 나도 인서울인데라는 생각에 동기들보다 못한 직업은 생각도 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이런 불안한 세상에 튼튼한 직장을 먼저 선점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기도 할테니 더 그럴거다.
▶ 그럼 왜 기업들은 유학파를 선호할까?
유학파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비교가 가능한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제품을 팔아 돈을 벌려면 타국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한다. 더 좋은 기업 문화를 만들려면 선진국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한다. 더 글로벌한 기업을 만들려면 사람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한다.
결국 경험이다.
기업이 선호하는 것은 결국 이윤추구가 가능한 인재를 원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어떻게 팔 수 있을지 알고, 인재들이 더 있고 싶은 기업에 대한 문화가 무엇이며, 우리기업에 다닌다는 자부심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기업의 인재다.
그래서 어학연수라도 다녀와야 하는 이유는 바로 비교 가능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정보로 산출할 수 있고 산출된 내용을 실행으로 옮겨서 물질화 시킬 수 있는 경험의 최소한이 바로 어학연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학연수는 언어를 배우러 가는 곳이 아니다. 언어는 그냥 기본이다. 어학연수 수준의 언어 공부는 한국에서 가능한데 굳이 어학연수를 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비교가능한 경험치를 쌓아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블로그에 자주 예를 드는 실사례는 건축학과생들 이야기다.
다시 말하자면 한 한생은 모든 과목에 A를 받으며 최고 성적으로 졸업을 했다. 한 학생은 거의 모든 학점을 D로 마치고 졸업을 했다. 그 둘은 같은 건축 회사에 입사를 했다. 그리고 그 회사에 끝까지 남은 사람은 D학점을 받은 사람이었다.
D학점의 학생은 집에 돈이 없어서 매일 새벽까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4년동안 말이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자신이 책으로 본 건축을 보러 4학년 여름방학때 세상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리고 책과 다른 현실을 직시했고 그것을 포토폴리오로 만들어서 이력서에 제출을 했다.(자소서도 없던 시대의 이야기다.)
당신이 대기업의 임원이고 면접관이면 누구를 뽑겠는가?
또 하나의 전설같은 이야기는 바로 에베레스트 등반을 해서 자소서 증거로 제출한 사람이다. 자신의 경험이 회사에 도움이 될거라고 한 이 이야기는 삽시간에 퍼져서 돈있는 사람은 헬기를 타고 가서 인증 사진 찍고만 오는 웃지 못할 진풍경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만큼 면접관들은 경험을 중시한다는 얘기다.
물론 헬기까지 동원되어 가짜 경험(혹은 유사 경험)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에베레스트 등반은 입사 동기 금기사항까지 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궁금한건 왜 아직도 학력위주로 취업이 된다는 것일거다. 왜냐면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교경험이 가능한자 다음 타자는 결국 학력이 높은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가장 불리한 사람들은 아마 4위~10위 대학 출신 사람들일것이다.
마치 제네시스가 나와서 그랜저가 애매한 위치에 있는 상황과 같다.
과거 그랜저의 위상은 대단했다. 하지만 제네시가 G90, G80, G70, GV90, GV80, GV70, GV60 을 출시하면서 그랜저는 왠지 모르게 서민차가 되었다. 10년 전만해도 성공한 30대라는 컨셉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그렇다. 심지어 벤츠도 흔한 세상이 되었으니 더 그렇다. 그들만의 세상에서는 그래도 좋은차 탄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만의 세상에 산다는 건 좋지 못한 환경에 산다는 뜻이니 그랜저 탄다고 좋다는 말을 하고 듣는 세상은 그냥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것처럼 4위대학 이하의 인서울 대학 출신들은 기존 스카이에도 밀리는데, 세계 경제 10위의 나라의 위상을 증명하는 유학파에서도 밀려서 지금은 기업 기준으로는 그냥 그런 대학 출신이 되었을 것이다. 기업이 바라지 않는 그냥 그런 대학출신 말이다.
기업이 당신을 좋아라하면 아마 여기 대학 출신들이 싫어하는 근무 조건의 직장일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들어갈 직장이 없다.
그럼 이들도 D학점 학생처럼 유학은 아니더라도 경험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건 어떨까?
난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 경험치의 증명이 바로 오현호 파일럿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치로 삼성 중동 총괄 매니저까지 갔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남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학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나는 이렇게 안해도 될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진다. 학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나 이렇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카이는 그래도 좋다. 그래서 원하는 살을 살 수 있다면 그래도 된다. 누가 뭐라고 하나!? 나는 공자나 맹자처럼 사람은 이래야 한다는 식의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각자가 원하는 삶을 살면 그 조건이 되면 그러고 있다면 그걸 유지할 수 있다면 그렇게 살아라.
허나 그 미만 학력의 소지자들이 스카이 출신들의 삶을 살기를 원하면서 그렇게 되지 않는 상태를 살고 있고, 자신이 원하는 기업에서는 원치 않는 학력으로 그래도 나는 좋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그 기업에서 러브콜을 바라는 삶을 살고 있다면 기업이 원하는 경험치를 올려야 하는건 너무 당연한 얘기가 아닌가? 그런데 이들은 스카이와 한끗 차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스카이 공부못하는 학생보다 자신이 학점이 더 좋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바람을 놓치도 않고 자신을 더 강화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이대로 원하는 삶이 다가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내 근처의 누군가는 경험치를 올리기 위해서 사막을 횡단하고 남극을 완주하며 자신을 극강으로 올렸다. 그래서 대기업에 들어갔다. 가족들은 취업준비 하지 않는다고 염려를 했지만 그것이 기업이 바라는 존재가 되는 길이었다. 그리고 이 친구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사업을 했다. 20대는 수익 대부분을 기부를 했다. 자신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기부는 할만큼 했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위해서 살고 있다. 30살 첫차를 벤츠 CLS를 뽑고 직원 10명을 두고 서울 한복판에 자신의 사업체를 꾸려가고 있다.
그리고 오현호도 삼성을 그만두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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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객실 승무원에 합격하다.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에 합격하다. 취업이나 삶을 사는 방법은 다 똑같다. 둘 다 잘 안 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아무것도 안 하기 때문이다. 의뢰자분이 대한항공 채용에 합격해서 보낸 합격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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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고학력자들은 경험치를 올리려하지 않는가?
"착해서다."
착하다는 건 학생때는 똑똑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하고, 사회에 나가면 출세할 가능성을 내포하며 그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뜻이고 그 돈으로 언젠가는 효도도 할것이라는 근본 착함에 접근이 가능하다는 내포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가능성의 가장 큰 단점은 시키는대로 한다는 전제하다.
부모님과 학교에서 바라는 공부만 하는 학생이어야 한다는 대전제는 어느 한곳에 맥이 끊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든다.
즉 공부를 잘해서 4위 대학에 갔는데 뜻하지 않게 취업이 원하는 곳에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한다. 대부분 하던걸 연장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더 공부를 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석사를 하거나 로스쿨을 가려고 하고 MBA도 준비하려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왜 더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정도면 당연히 원하는 곳에 입사가 되어야 하는데 왜 안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더 공부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 나오지않는다.
그러면 백수가 된다. 더이상 착하지 않는 사람이 된것이다. 좋게 말해서 취준생이다. 학교는 너를 외면하고 부모님은 그래도 좋은 대학 나왔으니 곧 되겠지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망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적당한 곳을 찾아서 권유도 해본다. 허나 이유를 찾지 못한 착한 사람(시키는데로 하는 사람)은 난 시키는대로 잘 했는데 왜 이렇게 된것지에 대한 절망감을 느끼며 분노의 원인을 학교와 부모에게 돌린다. 왜냐면 난 시키는대로 성실히 이행한 착한 사람이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탓을 하니 잘못이 없어진거 같다. 그래서 여전히 착함을 유지한다고 착각하기까지 한다. 허나 삶의 지속이 가능한 근원인 취업은 여전히 안된다.
원인을 찾은 사람은 집안에 원망이 생긴다. 결국 남들은 유학을 갔다와서 잘되는데 우리집은 돈이 없어서 그렇다는 생각이 나를 휘감는다. 자신이 스카이를 가지 못한 건 생각하지 못하고 경험을 하지 못한건 생각하지 못하고서 말이다. 부모가 원하는대로만 살아온 시간이 원망스럽다. 이렇게 될바에야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할걸.. 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사실 이들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막연히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이렇게 남탓을 해야 이들은 여전히 착한 사람 코스프레가 가능하다. 최소한 자기 자신에게는 말이다.
더 공부하는 학생들은 일단 사회로부터 도망쳐와서 안도를 하지만 더 심한 강도의 공부와 요구가 들어와 지친다. 기존에 시키는대로 하는 시스템과는 다른 공부방법에 따라가기도 버거운 공부에 생각까지 해야 하는 방식이 나를 괴롭힌다. 심지어 어느정도 정치도 해야하고 사교성도 있어야 하는 과정이 잘못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목표없이 더 공부를 하니 동기부여는 꿈같은 이야기다.
이전까지는 착한 사람으로써 시키는대로만 하고 무조건 책상에서만 있으면 성적이 나왔는데 도망쳐온곳은 더를 요구하는 곳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목적없이 시키는데로 살아온 학생들은 자신의 길이 막히게 되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멘붕에 빠지게 된다. 우린 이들을 착한 학생이라고 불렀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인생을 대충 25년동안 시키는대로 살아온 착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회에 내동댕이 쳐졌을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 한다.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정신력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80년 인생에서 무려 1/3 가량을 시키는대로 살아갔는데 그리고 실제 능동적으로 살아갈 인생에서는 무려 반을 시키는대로 사라갔는데 이제와서 어떻게 스스로 생각하며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그 옮긴 행동을 어떻게 결과로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과정을 스스로 할 수 있겠는가?
착함이라는 말은 마약과 같다. 내가 마치 잘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마약을 해서 착각에 빠지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 마약을 무려 25년 동안 맞았다. 그러니 착함을 포기하지 못한다. 금단현상은 나를 죽도록 괴롭게 한다. 착함을 포기한다는 것은 못되지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변한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끊지 못하는 것이다. 주체적인건 과거의 삶의 방식들과 싸워야 하는 괴로움이 있다. 싸운다는 것은 못된것이고, 괴로움은 피해야 하는 것이라고 착한 사람들은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다. 그러니 주체적이라는 것을 악이라고 착각하는 일도 발생한다.
내가 겨울마다 농사일을 도우러 시골에 간다. 동네중에 '로또'라는 강아지는 그 동네에서는 인간과 다름이 없는 대우를 받는다. 로또의 남은 인생 14년 정도는 목줄없는 자유로운 상태로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살아갈 것이다. 허나 지금 청년들은 인생에 1/3 을 학교라는 목줄에 묶여서 공부만 25년을 한다. 이렇게 공부만 인생을 어른이 되는 나이 이상을 시키면서 어떻게 스스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여기대한 고민은 이제 이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그리고 사회는 풀지 않을게 뻔하니 부모가 풀어야 한다.
부모가 학교에서 사회에서 바라는대로 역시나 공부만 시킨다면 그 자식도 결국에는 이런 고민에 빠지게 되고 그 부모는 결국 캥거루족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목표없이 석사한다고 하고 로스쿨 간다고 하며 쓰는 몇 천만원의 돈은 덤이다. 더 똑똑한 백수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근본 원인은 부모들도 학교 공부외의 인생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대학 4년을 졸업하면 이제부터는 인생을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부모들도 대학 졸업하면 저절로 취업을 해서 저절로 돈을 벌고 저절로 효도를 받을거라는 막연한 환상에 사로잡혀서 경험을 위한 삶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녀들이 더 공부를 한다면 빚을 내서라도 공부를 더 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세상이 변해서다.
부모 세대의 세상은 대학은 꿈꾸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래도 주변에서 대학을 나오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다. 그 삶을 엿들으니 서울에서 하얀색 와이셔츠를 입고 번듯한 직장에 잘 다니고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내 자식도 대학에 가는 세상이 왔다. 80~90년대만해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삶을 살았다. 한창 국가의 경제가 성장을 하고 있었고 운과 노력의 결정체인 88 서울 올림픽도 치렀으니 국가의 성장은 더 발전적이 되었다.
허나 90년대 후반부터 균열이 생기면서 2000년대 들어서는 뭔가 뜻대로 되지 않는 느낌을 받게 되었으나 개념치 않았다. 그렇게 그런 느낌을 무시한 결과 세상은 지금 어른이 상상도 못할 지옥화가 되었다.
그 시대를 지금 학생들은 치르고 있는거다. 부모도 경험한적이 없고 그 자녀들도 경험해본적이 없은 세상을 말이다. 그리고 이런 세상을 만든 어른들은 착학 학생이었던 취준생들에게 말한다. 정신력이 걸러먹었다고 말이다. 어른들은 학교에서 특히 대학교에서 정신력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것은 모르니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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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힘든 이유
인생이 힘든 이유 급변화에 적응하라. 그렇지 않으면 40대부터 사라진다. 얼마 전 같은 직장에 다니던 한 살 많은 형이 쫓겨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같은 직장에 다니다가 이직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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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세대들은 뭔가 삶을 살기는 살았는데 자식들에게는 물려줄 지적 자산이 없는 상태가 되었고, 지적 자산이 없어도 돈있고 공부잘하는 자식들은 그래도 취업을해서 사람 구실을 하고 살지만 돈없고 공부도 적당히 한 자식들은 이게 뭔지 어리둥절한 세상에 내동댕이쳐져 세상을 두리번 두리번 거리고 있는 상태라는거다.
지적 자산을 물려받지 못했지만 취업한 자들은 사회적 강자가 되어 갑질을 만들어냈고 그 갑질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인간들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하는 법도 잃어버리고 있다. 요즘 친구라는 개념이 과거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거다. 과거의 친구 개념이라는 친구를 하나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 세상이다.
친구만 그러면 다행이다. 평생을 함께 해야할 배우자들도 우리라는 개념이 결여된 상태에서 결혼을 해서 서로의 편의만 따지다가 70% 가량은 이혼을 한다. 비공식적 세계 최고 수치다. 배우자까지도 그렇다고 치자.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고 자녀들도 부모에게 마찬가지로 대한다.
우리는 유례없는 개인화 된 세상을 살고 있고 그건 도시가 심할 뿐 시골도 균열이 온지 꽤 시간이 지났다.
그야말로 없이 살때는 착함이 똑똑한것이었고, 취업이었고, 돈이었고, 효도였다. 허나 있는 삶에서 착함이란 무능함이고, 갑질이이 되었다. 착함의 타임라인이 일직선에서 양갈래로 갈리면서 두부류로 나뉘었다. 무능함과 갑질로 말이다. 어이없지 않나? 둘 다 착함에서 출발했는데 말이다. (물론 돈으로 똑똑함을 해결하는 변종도 생기긴했다. 똑똑하지 않아도 아빠 회사에 취업하는 건 당연한 이치가 되었다. 이들로 인해서 갑질은 더 강화된 문화로 자리 잡아갔다.)
▶ 착함이란 무엇인가?
착함은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어른이 시키는대로 하는 것을 말한다. 첫 대상이 바로 선생님과 부모님이다. 그런데 이들은 세상을 모른다. 이들은 공부만 하라고 한다. 그러면 인생이 저절로 살아진다고 믿고 있는 대상들이다. 부모는 과거의 경험으로 그렇다고 하고 있고 선생님들은 자신이 그래서 그렇다고 한다.
이들의 말을 착실히 들은 4위 이하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부모님의 직업과 교사라는 직업 이하의 삶을 살게 된다. 이들을 뛰어 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그런 삶을 살게 되는거다.
이들을 뛰어넘은 유학파와 스카이는 사회에서 저절로 되는 삶을 살고 있을거다. 우리가 소문으로 듣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그러면 역시나 공부가 맞았다고 다들 생각한다. 그러니 여전히 부모들과 선생님들은 공부하라고 한다. 스카이를 들어가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와도 억지로 시킨다. 무슨 믿음으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그런다.
이걸 확대해보겠다. 아이히만은 유대인 600만명을 죽였다. 이동 수단이 여의치 않아서 스스로 정비를 해서 끝내 죽였다. 히틀러는 말할 것이다. 아이히만은 충실하다고(착하다고) 말이다. 시키는대로 인종 청소를 했으니 그것도 600만명이나 죽였으니 얼마나 착하다고 생각하겠나? 그리고 아이히만은 재판을 받을 당시 나는 잘못이 없다.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러분의 부모나 교사들은 히틀러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 허나 히틀러도 당시에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고 그런 지시를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부모나 교사들도 자신들이 맞다고 생각하고 공부만 하라고 할것이다. 결국 시대오류적인 착각에 빠져서 현실을 모르는 자들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내 인생이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게 된다.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개인적으로 보면 다 똑같이 힘든 인생이고 타인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고 안되면 남탓하는 인생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누구말을 듣고 싶다면 이 세상을 제대로 아는 사람의 말이라도 들어야 사회에 나왔을 때 제 역할을 시작할 수 있다.
변화된 사회를 모르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사회에 나와서 (사회적) 미아가 되는 것이고 남탓을 하면 스카이 출신들의 예를 들면서 그들은 잘하는데 너는 왜 못하냐는 식으로 당신을 내몬다. 그러게 공부하지 말라고 했냐면서 공부 잘해서 스카이 들어갔으면 이러지 않았을거 아니냐면서 말이다.
시골동네 개들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물거하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목줄을 한다. 집에 묶어두면서 죽은듯이 살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교육은 학교라는 목줄에 묶어서 앉아, 일어나, 손, 먹어라는 것을 배운다. 과거의 지식들만 죽어라 암기만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에 적응한 우수한 스카이들은 사회에도 진출한다. 적응은 서로에게 피해끼치지 말기로 약속하고 서로에게 도움도 주지 않고, 부탁도 하지 않는다.
스카이 이하의 학생들은 목줄을 풀어줘도 집밖으로 못나간다. 주인이 없이는 도망가는 개마냥 새로운 주인들이 나를 찾아주기까지는 사회에 나가지 못한다. 심지어 4위 이하의 대학 출신들은 자신이 원하는 주인상도 있어서 그런 주인들이 나를 불러주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는 도도한 태도도 취한다. 거기 갈 바에야 새로운 목줄을 부모님돈으로 장만하겠다고 석사 이상을 노린다. 낮은 직장으로 인해서 자신의 학력이 퇴색되는 느낌이 싫을거다. 오직 착함으로 얻은 것이 학교 이름인데 그 이하의 직장을 간다는 것은 나의 착함이 어리석음으로 변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25년 인생이 부정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인생을 살바에야 30%들은 그냥 대학을 안가는 것이 더 낫다. 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는 4~5년을 학교에서 돈을 쓰면서 필요없는 공부를하고 스타벅스에서 일을 하는가? 차라리 고등학교 때부터 공무원 준비를 해서 수능때 공무원 시험을 치는게 더 낫다.
고등학교야 다들 졸업을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대학 생활을 어차피 사회 생활로 진출할 과정에 필요없다고 판단이 서면 과감하게 생략을하고 사회 생활을 배운다고 생각하고 대학을 포기하는 것이 본인들 인생에도 사회적 문제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인것이다. 남들 간다고 대학가고, 남들 보낸다고 대학보내면 당신들이 원하는 남들처럼 된다는 것은 스카이 갈 능력이나 될때 남들처럼 살게 되는 것이다. 여차하면 현실적 남들처럼 논다. 진짜 보편적 남들처럼 된다는 것이다.
아니면 대학 갈 돈을 비교 가능한 경험을 하는 곳에 써라. 2년 돈 벌고 2년 경험을 하면 다른 인생이 보인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문장으로 알면서 시키는대로 착하게 학교가서 공부나하는 인생을 사는 모순된 여러분의 삶에서 여러분만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경험이 불가능하던 시대에는 책으로 이런 시도를 했고 그것이 체계화 된 장소가 학교일뿐이다. 체계화 되니 공부는 의지가 있으면 누가 하는 수단이 되었고 지금은 의지가 없어도 강제로 해야 하는 수단이 되어 노예로 사는 법을 배우는 곳이 되었다. 결국 인생을 사는 방법을 아는 것은 경험이 최고의 공부다.
▶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
지금 대한민국 교육 환경에서 어러분들은 고등학교 때까지 주체적으로 살 수 없다. 더군다나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더 그렇다. 서양도 한 때는 우리나라와 같이 암기식 교육이었다고 한다. 허나 1968년도에 68(교육) 혁명이 파리에서 불어서 아메리카를 넘어 일본까지 갔다. 이 (교육) 혁명으로 암기식에서 자기 주도적인 생각을 갖는 방식이 교육에 도입이 되었다.
금기하는 것을 금기한다는 구호의 68(교육) 혁명은 독일에서 히틀러에 대한 만행을 정식으로 사과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우수한 교육이라도 히틀러 같은 사람에게 휘둘리면 히틀러와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에 대해 동의를 하고 교육 체계가 사고 중심으로 바뀌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이런 혁명이 과연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겠는가? 68(교육) 혁명은 베트남전이 그 도화선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TV가 도화선이다. TV의 대중화가 사람들의 눈을 뜨게하고 7명의 학생이 시위를 하며 그작이 되었다. 지금은 언론도 통제가 되니 그럴 수 없다고 하겠지만 지금 세상은 유튜브라는 매체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허나 지금 누가 그렇게 하겠는가? 지금과 그때가 다른 가장 큰 이유는 이제 우리가 살만하다는 거다. 세계 대전이 막 끝난 시점에 시작된 베트남 전쟁의 모순이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과 비슷하지만 우리는 이제 먹고 살만하다 세계 대전이 막끝난 가난의 시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혁명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니 주체적으로 살 수 없다. 돈도 부모님에게 있으니 그럴 수 없다. 심지어 대학을 다닌다는 것도 금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 주체적으로 살 수 없다.
*우리나라 대모하던 시기를 봐라. 70년대 활발하지 않던가. 먹고 살기 어려울때 말이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돈에 집착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경제적 자유는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 취업을 해야 한다. 그리고 돈을 한 10년간 벌어라. 그리고 돈을 모아라. 돈을 모으면서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찰을 해라. 25년 이상을 시키는대로 살았으니 추제적으로 산다는 연습을 10년 이상 해야 한다. 더군다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연습을 한다는 것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이러면 다들 싫어한다. 25살과 35살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묻는다. 평생 히틀러 밑에서 시키는대로 살래? 라고 말이다. 히틀러는 사람 죽이라고 하는데 우리 엄마는 사람죽이라고 안해서 다행이라고 하며 돈 안벌고 주체성도 포기하며 집안에 망신으로 살면서 그래도 좋은 대학 나왔다, 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어쩌다 친구가 맛있는거 사준다면 좋다고 나가서 얻어먹는 삶을 살거냐는 거다. 그럼 그 음식은 맛있을까? 직장 생활하니 불쌍하다, 라며 그 친구 위로해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나? 진정한 꿈을 찾기 위해서는 지금의 물질보다는 집에서 생각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친구에게 설교를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나?
35살때부터라도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일단 경제적 자유를 위한 돈벌이가 우선이고 그 돈벌이 기간동안 주체성의 연습은 필수다. 그러니 퇴근후의 자신의 삶이라도 주체적으로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연습에는 돈이 든다. 퇴근을 하려면 직장이 있어야 하는건 당연하다. 마음에 안들어도 이게 우리나라 태어난 죄라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빨리 받아들여라. 그나마 우리나라에 태어나서 다행이지 북한에 태어났으면 이런 기회도 없다. 왜 반드시 북아메리카나 유럽에 태어날거라고 착각하는가?
아니면 스카이 들어가면 된다.
못들어가면 10년뒤의 삶을 준비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근데 이걸 아무도 안한다. 사회에서도 교육에서도 이걸 시키지 않으니 안한다. 착해서다. 시키지 않으면 안한다. 주체적 계획은 없다. 마치 AI와 같다. 시키지 않으면 안하는, 프로그램이 되어 있지 않으면 하지 않는 로봇과 같다는 것이다. 이런게 다 착해서 그런거라니 믿어지는가?
난 교육이 마치 인간을 기계로 만드는 프로그램과 다름이 없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결국 우리나라 교육은 시키는대로만 하라는 식의 교육인것이다.
생명의 본능으로 목숨이 왔다 갔다해야 살아갈 방법을 찾는데 부모님이 어렵게 살더라도 모아둔 돈이 좀 있어보이면 생존본능이 발생이 되지 않는다. 역시나 어디서 들은데로(배운대로) 꿈을 찾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하고 싶은것을 찾아서 하지 못하면 직장 생활도 얼마하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하다며 말이다. 그러면서 서양에는 갭이어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아무것도 안하면서 나도 그러는 중이라고 착각한다.
세계 경제 10위의 위엄이 지금 청년들의 사회적 생명을 죽이고 있다는 뜻이다. 바로 한국전쟁 이후로 만들어진 교육의 틀과 함께 말이다. 지식만 외우게 하는 교육도 문제지만 선생님이 부모가 시키는대로 공부만하게 하는, 공부 이외에는 다 쓸데없는 짓이라는 교육이 딱 교육기간까지만 열심히 살게 하고 사회에서는 물밖에 나간 고기처럼 맥을 못추게 하고 있다.
그럼 정치인들은 이걸 모를까?
그럴리가! 아니까 유학을 보내는거다. 노예가 되지 말라고 말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노예가 되어야 정치인들에게 편한거고 자신들 자식들은 노예를 부리는 주인이 되어야 하니까 그 자식들은 우리나라가 아닌 선진국에서 공부를 시키는거다.
여기까지 이해가 되면 어학연수를 다른 나라와의 비교경험을 위해서 가는거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거다. 언어를 진짜 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국에서 가능하다는 것은 김영철이 증명했다.
내가 처음 런던에 한 달간 여행 갔을 때 왜 이렇게 시위가 많아? 라는 것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소수의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나라는 시키는것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TV나 보면서 때쓰는 수준이지만 이들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로 나와서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래야 정치인들이 듣고 자신들의 의견을 들어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진짜 목숨이 간당간당할 때나 하는데 말이다.
처음에는 선진국이 왜 이래? 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정당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시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선진국이라는 것을 안다. 이걸 봤기(경험했기) 때문에 그리고 생각을(우리나라와 비교를) 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돈을 모으는 기간동안 돈을 주체성을 키우는데 써라. 그건 비교가 가능한 경험을 하라는 말이다. 비교가 가능하려면 돌아다녀라. 여행을 하라고 하고 싶은데 여행을 하라고 하면 쉬러 가는거라고 착각을 해버리니 비교 가능한 경험을 하러 가라고 말하겠다.
돈이 좀 있으면 선진국으로 가라. 돈이 없으면 승무원을 해라. LCC에 들아거서 동남아라도 보는것도 아주 큰 도움이 된다. 그러다가 여행 목적으로 선직국에 가면 보는 눈이 달라진다. 정안되면 국내라도 돌아다려라. 일단 나가라. 나가야 뭐든 비교 가능한 경험을 하니까. 그러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라. 그리고 그 목적에 맞게 자신의 경험을 물질로 만들어내라. 나처럼 블로그를 하든 유튜브를 하든 정보화 시켜서 물질화 해라. 참고로 인스타그램은 여기에 속하지 못한다.
이게 지금 우리나라 4위 이하의 삶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더 가능하면 몸을 만들어라. 몸을 만들기전과 비교하는 삶을 살아봐라. 남들이 쓸데없다는 것도 만들어봐라. 쓸데없는 것을 한 삶과 아닌 삶을 비교해봐라. 쓸데없는 짓을 잘한다는 것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를 알게 될거다.
아니면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더라도 스카이 이상을 가던가 유학을 가라.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통한다. 일단 좋은데 취업을 해서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는가? 이런 대학을 나와서 좋은데 다니면 주체적으로 살지 안아도 주체적으로 사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산다. 왜냐면 다들 부러워하니까. 그러면 된거다.
아니면 학생때부터 제대로 놀아라. 그러면 뭔가 깨닫는다. 깨닫는다는 것은 목표를 잡았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에 맞는 대학을 찾아서 들어가서 인생을 시작해라. 이럴러면 돈을 모으는건 필수다. 놀더라도 돈을 모으면서 놀라는 뜻이다.
아마 후자는 힘들테니 그러면 시키는대로 일단 공부만 하면서 살다가 적당한 곳에 들어가서 돈 모으면서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것을 연습한 후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라. 이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다. 다소 오래걸리겠지만 현명한 방법이다. 그래도 공부잘한다고 칭찬받으면서 부모와 선생님의 간섭을 덜받고 살 수 있는 학창시절도 보내는 장점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주체성이 생기면 여러분들의 똑똑함과 결합하여 스카이 인생도 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게 될거다.
최소한 스스로의 인생에 후회는 없는 삶을 살것이라고 장담한다.
https://spike96.tistory.com/16464416
당신이 열심히 노력하지만 인생을 보상받지 못하는 이유 (직장 노력이 무의미한 이유)
다들 열심히 살 것이다. 어떤 분들은 인생 살기 버겁다고도 느낄 것이다. 아마 30대 때에 서서히 느끼면서 40대가 되면 막막할 것이다. 그래도 출근할 직장이 있으면 아침 8시 30분까지 출근하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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