讀書(독서) # 1ㅣ독서는 연구하는 자세로 읽어야 한다
책 읽기는 취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공부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방법인 것이다.
ㅣ책 읽기
책 읽기는 그냥 활자를 읽으면 된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책은 빈센트 반 고흐의 '영혼의 편지'라는 책이다. 이건 큰 어려움 없이 술술 읽힌다. 1편을 다 읽고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 감동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돈 맥클레인의 빈센트를 유튜브에 찾아서 듣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 있는 스타벅스에서 노을 진 낙동강뷰를 보며 곁들여 들으니 더 좋았던 기억이 있다.
이런 책 읽기는 개인적으로 마음의 풍요를 느끼게 해 준다.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마찰이 일어나는 곳에 윤활제 역할을 해서 하루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해 준다. 그래서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한다. 종이의 질감도 여기에 한몫보텐다. 나는 책을 읽고 모두 스캔을 하고 보관하지만 그래도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종이책으로 읽는다. 아직 우리 세대는 종이에 쓰여 있는 활자를 읽는 감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알파 세대들은 교과서도 태블릿으로 읽는다고 하니 그 느낌을 모르고 살지 모르겠다.
아무튼 요즘처럼 돈, 돈 거리는 삶에서 배고파도, 추워도, 아파도 그림만 그리려는 사람의 숭고한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2권도 나와서 읽고 있는 중이다.
ㅣ독서
반면 독서는 저자와의 대화다. 내가 작심하고 대화를 시도한 책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다. 한 줄, 한 줄이 어렵다. 한 페이지를 읽으면 진이 빠진다. 아직 서론인데도 이해를 하지 못해서 억지로 파고들어야 한다. 한글을 읽을 수 있다고 해도 어렵다. 단어 하나, 하나의 뜻은 분명 다 아는데 그걸 모아놓고 문단으로 만들고 페이지로 넘어가면 이해가 불가능해진다.
물론 독일인도 읽기 어렵다고 하고 전공자들도 영문 번역본과 함께 읽어야 이해가 간다고 할 정도로 어려운 책이다. 아무튼 나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이 많기에 이 책을 다 읽어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 운이 좋아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이방향으로 전공을 할 생각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책을 읽을 때 하이데거가 말하는 의도를 어떻게든 파악하는 자세로 읽어야 한다. 실제 저자는 없으니 내가 스스로 의도를 파악하려는 태도는 필수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의문을 품고 다른 책을 이런 태도로 또 읽어야 하는 일도 있다. 반 고흐 책처럼 그냥 술술 읽고 넘어가면 안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렇게 독서를 하는 태도로 책을 읽는다면 우리는 이지영 강사가 말하는 주체성을 키울 수 있다. 심지어 반 고흐 책을 읽을 때도 독서의 태도를 취하고 읽는다면 반 고흐의 삶의 태도를 연구하게 되고 그의 삶의 방식에서 행복을 엿볼 수 있다면 우리는 돈, 돈 거리는 사람이 아닌 반 고흐처럼 목적을 향해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꼭 그림이 아닌 다른 분야를 찾아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책을 독서의 태도로 읽지 않는다. 그냥 활자를 읽어나가는 것뿐 그걸 독서라고 하기로 결정하고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그나마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도 독서의 목표를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삼은 것이고 그것을 자랑할만한 것이라고 여긴다. 왜냐면 독서는 시험을 치르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교과서와 참고서, 문제집을 읽을 때 교사의 지도를 받고 작가의 의도를 가르쳐 주는 데로 암기한다. 심지어 진짜 작가의 의도와 달라도 상관없다. 무조건 교사가 가르쳐주는 데로 외우면 된다. 20년 간 여기에 익숙해졌는데 대학에서도 독서를 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냥 읽는 거다. 그것도 전공서적이 전부일 거다. 이것도 교수나 강사가 가르쳐주는 데로 암기하는 것이 전부지 스스로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런 책을 쓰고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을 거다. 그렇게 우리는 25년 정도 독서하는 법을 거세당해 버렸다.
그러니 독서를 하라는 사람도 활자를 읽으세요, 권수를 채우세요,라는 정도 수준의 말 이상은 하지 못한다. 독서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제 우리 주변에는 독서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독서를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만날 수 없는 계층에 숨어 있다. 설사 독서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한들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왜냐면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간혹 유튜브에 초대 손님으로 나와서 인터뷰를 한다고 해도 우리는 관심이 없다. 돈이 안 되는 말도 말이지만 독서의 의미를 거세를 당한 사람은 기능을 잃은 사람이라는 뜻이니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 없는 거다. 설사 우연히 유튜브 영상을 보러라도 말이다. 무(0)에서 유(1)를 창조하는 것은 1에서 100까지 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
그렇게 20세기를 끝으로 대한민국에서 보통 사람들이 독서를 하는 삶의 태도는 역사 속으로 묻혀버렸다.
책 읽기는 취미로 가능하다. 의사가 그림을 그리는 것도 취미가 될 수 있다. 글을 쓰는 것도 취미가 될 수 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직장 다니면서 책 읽기는 취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독서는 스스로 하는 자기주도 학습이다. 졸업 후 선생도 교수도 없는 환경에서 내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를 찾아서 나만의 생각을 집중적으로 파고 해체해서 재조립하는 공부라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대성공을 한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스위스 특허청에서 직장생활 5년을 일하며 자기만의 연구로 빛이 입자라고 주장해서 노벨상을 받았고,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에서의 중력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을 해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우리나라 학교형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만 그쳤다면 빛은 파동이라고 했을 거고 중력도 그러려니 하는 것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그랬다면서 말이다. 딱 지금 우리나라 교수들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기존의 정보에 의문을 품었고 반항심을 품고 책을 파고들었으며 지식을 해체하고 재조립을 하면서 빛도 입자라는 결론을 내려 논문을 냈고 그걸 실험으로 증명했다. 중력 또한 그러려니 하는 것으로 끝낸 뉴턴을 뒤로하고 떨어진다는 것은 무엇인지부터 파고 들어서 다이빙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중력 상태를 연구하여 중력의 근본적인 원인을 논문으로 냈다. 실험으로 증명할수 없는 논문기에 노벨상은 받지 못했지만 과학계는 정설로 받아들인 상태다. 심지어 이런 연구로 인해서 빛도 중력에 의해서 휘어진다는 것도 증명을 했다.
그렇기에 독서는 단언컨대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공부다. 지금 넷플릭스에 올라온 '중증외상센터'라는 드라마도 의사가 쓴 시나리오이고 지금은 의사를 그만둔 상태로 차기작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웹툰을 넘어 시나리오 작가까지 이뤄낸 성과는 공부를 했기 때문이고 그 공부의 기반은 바로 독서라는 것이다.
학교는 과거의 자료를 모아서 알려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1차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면서 독서를 통해 공부를 다시 한 다음 제2의 직업을 가져야 완전히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다.
1차 직업은 학교와 사회가 옛날 지식을 마구잡이로 구겨 넣어주고 이해를 떠나 그걸 머릿속에 많이 넣은 사람 순으로 연봉이 높은 직업으로 갖게 된다. 그러니 대학을 나와서 정한 자신의 첫 직업은 자신의 인생이 아니다. 첫 직업의 대다수는 이미 성공한 사람이 만들어 놓은 공간에 들어가는 것뿐이다. 즉 노예라는 뜻이다. 단지 연봉이 높으면 주체적으로 사는 느낌이 들뿐이다. 국민 대다수가 다 노예니 모두 노예가 아니라고 착각하는 것은 덤이다. 연봉이 낮고 손발이 고생을 하면 그 사람은 드디어 느낄 수 있다. 이건 내 인생이 아닌데..라고 말이다. 그때 늦더라도 시작해야 한다. 독서를 말이다.
독서는 책을 보면서 하는 연구다. 공부라는 뜻도 연구라는 뜻이다. 결국 이 둘은 같은 것이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실제로 공부라기보다는 과거의 지식을 '습득'하는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학교에서 하는 습득을 공부라고 말하고, 책 읽는 것을 모두 독서라고 말해버려서 진짜 공부라는 의미를 망각하고 연구자의 자세를 애초에 싹도 틔워보지도 못하게 하여 드디어 21세기에는 씨마저 다 말라비틀어져 버리게 된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만든 독서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과거 그 어떤 어른도 해석하려고 하지 않았고, 지금은 해석하지도 못하며, 21세기는 책을 읽을 필요도 없다고 여기게 되어 독서의 의미가 따로 있는 것조차도 완전히 망각하게 되어 그냥 풀이 그대로 '책을 읽음'이라는 풀이에 갇혀서 아무도 독서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수능이 중요하다. 1차 직업에서 성공을 이뤄내야 하기 때문이다. 독서라는 문화는커녕 기능조차 없으니 제2의 인생, 2차 직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런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면서 독서를 할 줄 안다고 해도 우리나라 안에서는 그 뜻을 펼치지 못한다. 이미 사회가 그렇게 오염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학 안 나오면 만나주지도 않을 거다. 만나기는커녕 기회조차 없을 거다. 그냥 그런 사회다. 그러니 한국에서 잘 살고 싶다면 교과서 위주로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거다. 예뻐지려고 해야 한다. 부모 잘 만나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살려고 한다면 정확히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철학이 살아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면 독서는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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