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 6ㅣ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독서는 독이다.
돈과 외모를 추구하다 임계점을 넘은 현 대한민국에서 보통 사람으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독서는 인생의 돌파구가 될 수 없다.
나는 지금까지 독서라는 그 행위가 우리 인생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책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얼마든지 영화나 드라마로 보충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다 생각을 하기 위함이다. 독서나 영상은 모두 인간이 생각을 할 재료를 모으는 행위일 뿐 인생 자체를 바꾸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직접 일어나는 경험 말고는 없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말이다.
하지만 생각은 공교롭게도 주변인들이 필요하다. 생각이라는 것은 서로 주고받아야 지속되고, 확장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잔불로 그치고 금방 꺼진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대화 가능한 주변인들이 없다. 돈 밖에 모르는 민족이다 보니 돈 얘기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그나마 늙으면 건강 얘기 좀 한다.
올 설, 스텝 브라더 내외가 왔다. 스텝 네퓨는 초등학교 3학년이 올라가는데 또래 애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다. 덩치도 있어서 나는 식사 자리에서 키가 180cm까지는 클 거 같다고 했다. 듣기 좋은 말이니 반응이 있었다. 그래서 이 여세를 몰아 태권도하냐고 물었다. 태권도는 안 하고 방과 후 축구 교실에 간다고 했다. 내가 말한 건 운동을 하냐는 뜻으로 대표적으로 애들이 다들 태권도를 하니 물어본 것이라서 딱히 상관이 없었다. 나는 스텝 브라더에게 아빠가 같이 운동을 하면 좋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알 수 없는 침묵에 의해서 말을 꺼내지 못했다.
스텝 네퓨가 스마트 폰을 가지고 있는 걸보고 이번에 스마트 폰을 사줬냐고 물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줬다고 했다. 나는 이 여세를 몰아 chatGPT를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라고 했다. 알 수 없는 침묵이 다시 흘렀다.
나는 스텝 브라더 내외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전부 예상해서 모든 답을 준비하며 스텝 네퓨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지를 말하며 결국 어쩌면 해외로 보내야 할지 모르니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화가 되지 않으니 모든 건 침묵 속에서 묻혀버렸다. 나는 자식 앞날 얘기는 함께 논의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부모가 되어서 자식의 미래에 대한 얘기를 하지 못하는 것이 과연 부모인가! 생각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 사람을 생각하지 않아서다. 나는 스텝 브라더 내외가 한진 택배 남해 기사와 마찬가지로 자식을 생각하지 않는 태도는 일맥상통하는 거라고 느낀다.
이렇게 자기 자식의 미래마저도 생각하지 않는 세대에게 과연 타인들은 얼마나 의미가 있을 것이며, 타인이 의미가 없다면 굳이 뇌가 생각이라는 것을 할 필요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자식은 학교와 학원에 맡기고, 타인들과의 관계는 편리성으로 멀리하며, 권유에 의해서 속을 수 있는 상황은 그냥 안 하면 되는 것이고, 그래서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하니 고마움도 모르고, 설사 속으면 스스로 자책하기보다는 남 탓과 사회 탓을 하면 그만이기에 인간이 생각할 거리가 별로 없다. 마치 동물 사회처럼 말이다.
결국 인간다운 생각이란,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더 좋게 지낼 수 있을런지를 고민하는 것이 근본이며 그것이 바로 곧 지능이다.
학교 성적은 똑똑함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지능이 낮으면 그 지식을 사용할 수 없다. 똑똑함은 지능이 아니다. 지금 세대를 보면 안다. 다 대학 나왔는데 과거에 대학 안 나온 사람들보다 잘 사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다. 성공한 사람은 더 찾아보기 어렵다. 지능이 낮아서 그렇다. 지능이 낮은 이유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아서다.
스마트 폰으로 비유하자면 지능은 OS로 보면 된다, 똑똑함(학력)은 어플로 보면 된다. OS를 기종으로 표현하자면 지금 세대는 마치 LG옵티머스 뷰고 학력의 어플 수준은 chatGPT라고 보면 된다. 고로 기종 성능이 너무 낮아서 어플 아이콘만 깔리고 내용은 없는 상태 거나 겨우 깔렸는데 버퍼링 심하게 걸려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느린 상태라고 보면 된다.
즉 인간이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리 좋은 학력이 있다고 해도 성능이 낮아서 사용할 수 없는 스마트 폰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10년 전에 잘 나갔다고 TV에 나와서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10년 전에 잘 나갔으니 그래서 지금도 잘 나가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태도를 전국에 방영되는 TV에 나와서 말하는 건 확실히 지능이 낮아서 그런 거다. 잘 나간 건 10년 전인데 지금은 이런 사정이라고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니 쉬는 시간 없이 또 자랑하러 TV에 나간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하면서 그 똑똑함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거니 지능이 낮거다.
근데 이제 이런 사람이 태반이다. 그러면 이런 세상에서 그 사람은 과연 지능이 낮다고 생각할까? 아니다. 사람들이 나처럼 뭐라 하면 내 인생 내가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며 누가 피해를 입었다고 하면 할 말이 없는 거다. 이런 논리는 성향 상대주의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고 이 사상은 이제 사회전반에 깊게 뿌리를 박았다.
그러니 주변에 최소 세 사람 정도라도 한 마디씩 해줘야 염치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의 상태가 사회에서 어떻게 비치는 알 수 있을 텐데 그런 사람이 없어서 자기의 상태를 모르는 거다. 그러니 그 사람은 현재 자신이 지능이 낮다는 것을 모를 수밖에 없다. 되려 자기는 예쁘니까 우월하다고 생각하기까지 하는 듯하다. 이런 현상은 주변에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없어서 생긴다. 그리고 주변에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이 없으니 그런 거다. 어쩌면 이 사람이 그런 사람들을 밀어내서 그럴 수도 있다.
스마트 폰 영향으로 인식되는 사회가 넓고 얕아지는 현상으로 인해서 사회 주류 현상인 돈과 외모라는 급류에 휩쓸려버려 좁지만 깊은 친구의 도움의 손길을 애써 놓아 버리고 10년 전에 통한 외모로 어떻게든 삶을 더 연장시켜보려고 했을 거다. 자신을 진심으로 생각하기에 어려운 말도 서슴없이 해주는 지금의 친구는 그간 10년간의 자신의 한심한 역사를 다 아니 이제는 필요 없는 존재라 여기며 말이다. 잘만하면 다시 영광의 시대를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이런 어리석은 결정을 하게 만든다. 결국 지능이 낮아서다.
대화를 할 줄 모르니 주변 소중한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대화는 곧 지능의 척도다. 그리고 지금의 사회는 대화가 없다. 토론은 거의 불가능하다. 심지어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국민(사람)을 생각하지 않으니 지능이 낮은거다. 오직 학력과 사기로 올라간 그 자리에서 우리를 개, 돼지로 보며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며 이때다 싶어서 군림하고 있다. 심지어 그런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서지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을 보니 우리는 이런 지능이 낮은 시대가 평범하고 보통이고 평균인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고 확신한다.
이런 모습을 대중적으로 아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고 그 선봉에 나는 솔로가 있다. 24기가 진행되는 지금까지도 아무도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결혼을 전제로 하고 나온 프로그램에서 가치관에 대해서 말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건 아주 놀라운 일이다. 12명 x 24기 = 288명 중에 단 한 명도 없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러니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평균이라고 봐도 무방할 거 같다. 다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더라도 한 명도 못 봤으니 말이다.
작년 나트랑살이를 하기 위해서 김해공항 대합실에 있었을 때였다. 대합실에서 유일한 서양인이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시끄러운 와중에 말이다. 마치 세계 여행을 하는 짐을 꾸렸기에 책이 부담스러울 수 있었는데도 책을 가지고 다니며 읽고 있었다. 나머지 한국 사람들은 아무도 책을 읽지 않았다. 전부 확인했다고 볼 수 없지만 그래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 600여 명 정도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다. 대충 스마트 폰으로 책을 읽었다고 해도 과연 몇 명일까? 10명 될까? 내 생각은 그냥 0명인 거 같다. 이 정도면 이제 우리나라에서 살기로 결심하고 산다면 그냥 책을 읽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우리에겐 책을 읽어도 얘기할 주변인이 없다. 그러니 읽어봤자 소용이 없다. 자식이 책을 읽고 부모에게 대화를 신청해도 아마 부모들은 외면할 거다. 공부나하라고 꾸짖지 않으면 다행이다. 내가 책을 읽어도 주변 친구들과 대화를 할 수 없다.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 사회에 나 혼자 책을 읽는다고 해서 과연 인생이 바뀔까? 오징어 게임이 재밌고 재미없고만 따지는 사람들과 지내는데 대화가 통하는 사회일까? 나의 개인적인 도파민 분비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사회는 저능아 상태로 접어들었다. 고령화도 위험하지만 저능화 사회로 진입한 것도 위험하다. 정치인이 저능아 수준인데 당연히 위험하지 않겠는가!
세계에서는 알아주지 않는 서울대 하지만 그래도 서울대만 바라보는 교육과 부모들, 약간 선회해서 서울대 아니어도 의대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자위하는 한국사회. 이런 곳에서 살기 위해서 돈 없고, 권력 없이 독서를 하고 생각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외로움이 갇히기로 결심한 사람일지 모른다. 외로움에 갇힌 자는 과연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며 책을 통해서 경험한 간접경험으로 과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 나는 지난 글에 외로움은 죽음과 아주 가까운 유사 죽음이라고 표현했다.
이미 돈과 외모로 점철된 사회 그리고 다시는 회귀할 수 없는 임계점을 넘어버린 사회에서 과연 독서라는 행위는 어쩌면 정신적 자살, 감정적 자살 행위일지 모른다. 좀비 사회에서 나만 인간이기에 늘 좀비를 경계하면서 살아가더라도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산다는 그 끔찍한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잠시 아프고 그냥 같이 좀비로 사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는 세상에 살기보다는 돈이라도 추구해서 아무리 얕은 관계라도 돈 얘기라도 하는 친구라도 있는 것이 나을지 모르고, 혹시나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그에 따라오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잠시잠시의 여유가 더 나을지 모른다. 그 돈으로 명품을 사서 인스타그램으로 자랑을 하고 좋아요, 받으면 그게 더 나을지 모른다.
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래도 되는 세상 같다.
그래도 인간적으로 살고 싶다는 갈증을 느낀다면 드디어 희망이 생겼다. 바로 AI다. 지금의 돈만 쫒는 한국인들보다 효율적으로 대화가 가능한 AI는 감탄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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