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경험론/인생

독서 # 1ㅣ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부터 틀렸다

_교문 밖 사색가 2025. 1. 12. 15:50

독서 # 1ㅣ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부터 틀렸다

 

보통 사람들의 독서법은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다. 그리고 거창하지 않아야 생활이 된다.

 
 
우선 아래 영상부터 보자.
 
https://www.youtube.com/shorts/u20w7Y9-_L0

 
 
나는 그래도 책은 읽어야 한다는 주의지만 이지영 강사가 독서를 해야 한다고 하는 근거에는 반대다. 이유가 너무 거창하다. 우리는 독서를 성인군자가 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독서는 그냥 내가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좀 더 윤택하기 위함 정도가 딱 맞다고 본다.
 
이제부터 이지영 강사가 독서를 해야 한다는 두 가지 근거로 독서를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알아보자.


 
 

내가 나의 주인이 되고, 내가 뭘 원하고, 뭘 향하는지를 중심을 잡고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 너무 좋다. 하지만 이렇게 사는 사람이 과연 몇 % 나 될까? 여기에서 독서로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솔직히 인류 역사상 이런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궁금하다. 여러분 주변을 보라, 단언컨대 이런 사람 하나도 없을 거다. 잘 사는 사람은 그렇게 보이는 것 정도가 다고, 이렇게 비슷하게 살려고 취미 생활로 시간을 활용하며 살아가는 것뿐이지 내 평생 내 삶의 영역에서는 저렇게 사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런 이유는 저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거에는 성인군자라고 불렸고 위인이라고 책에 나온 사람들이며, 지금 이 시대에는 일론 머스크 범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가능한 삶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다 독서로 이렇게 됐을 거다. 하지만 우리가 일론 머스크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독서를 하는 건 너무 진입장벽이 높은 말이다. 그리고 과거 성인군자들의 생각의 재료 수단이 책 말고는 없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책을 읽는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 삶에 주인이 되는 경우는 없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내가 뭘 원하는지도 독서로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아마 평생을 살아도 원한다는 개념도 찾기 어려울 거다. 중심을 잡고 살아간다는 것은 가치관을 만들어서 그걸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켜나간다는 뜻인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상황에 맞게 적당히 움직여야 살아갈 수 있는 삶이다. 물론 기본 인간적인 면은 지켜가며 살아가야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우리 같은 사람들은 독서로 이지영 강사가 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다. 그래도 지금보다는 책을 읽던 시대의 사람들을 보라 다들 꼰대가 되지 않았는가. 책을 읽고 삶을 살았던 사대의 사람들도 부장이 되면 그냥 보통 사람들이 되고 자기는 자리 잡았다고 안주하려고 노력하는 방식이 바로 꼰대다. 그리고 되려 어처구니없게 자신은 그런 책 읽었다고 자신은 지적인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살며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을 폄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교수들 보라 책 읽는 게 일인 사람들도 지금 시대를 보고 옛날 사람들은 이런 말을 했다, 저런 말을 했다,라고 말하는 것이 전부고 그게 마치 자신의 일을 다 한 냥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어도 나는 안전하니 나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산다. 이것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태도다. 그리고 이것이 발전이 되어 학력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무시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것이 책을 읽은 시대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다.
 
아무튼 이지영 강사는 철학(윤리, 정치철학)을 전공했고 그 전공으로 경력을 쌓았고 성공도 했으며 그에 따른 부도 축척을 했기에 자신은 독서로 그런 삶을 찾아서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마 독서가 아닌 교과서와 입시책만 보고 서울대에 들어가 전공서적만 보고 성공한 서울대 생도 그렇게 생각할 거다. 100번 양보해서 책을 읽고 이지영 강사는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해보자. 근데 이지영 강사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지 않는가! 우리는 직장 생활도 빠듯해서 힘들어 죽겠는데 책을 읽고 철학을 전공한 사람의 수준으로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렇다면 철학과가 왜 필요한가? 그냥 독서 클럽이나 만들면 되는 것인데 말이다. 
 
과거 급제를 위해서 형설지공의 시대에나 할법한 독서 근거를 현대 일반인에게 추천하고 영상을 남기는 것을 철학 전공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입시 강사 다운) 철학을 반만 배운 꼴인 거다. 철학을 통해서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철학을 저변확대 시켜주는 일을 해야 할 사람이 독서를 통해서 인생을 (거의) 통달하라고 하는 것은 지금 시대에 과연 맞는 말인지 스스로 고민을 해 볼 문제다.
이지영 강사는 자신이 말한 저 세 가지 주제가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생의 거의 모든 숙제라는 것을 알고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런 이유로는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 물론 이지영 강사가 철학을 완전히 전공한 사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입시를 위해서 사회탐구를 공부하고 동양철학을 공부했다면 우리처럼 직장일 따로 하고 공부한 사람은 아니기에 전공자 수준으로 충분히 공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의 인기도 있다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진짜 전공을 하지 않았기에 독서를 일반일이 해야 할 이유를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고 봐지기도 하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렇게 말했다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신도 이런 SNS를 통해서 하는 말이 교과서 수준이라고도 볼 수 있을 거라고 충분히 추측 가능하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전공자도 같은 수준이지만 말이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만날 사람들을 통해서 앞으로 미래의 꿈을 그립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날 사람들에는 한계가 있고,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간접 경험에도 한계가 있어요.
하지만 책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주 독특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고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경험을 하는 내용들이 들어있고, 그것들을 볼 때마다 여러분의 세계는 확장되거든요.

 
 
정말 주옥같은 말이다. 다 맞는 말이지 않는가. 2 + 2 = 4입니다,라는 공식에 딱 맞아 부합하는 손댈 곳이 없는 말이다. 하지만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2 + 2 가 5도 될 수 있고 6도 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책을 읽고 독서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이 정도도 모를 리 없을 거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만난 사람들 만날 사람들 그리고 TV 드라마, 영화를 보고 한 간접경험들로 충분히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그릴 수 있다. 꼭 책을 보지 않고서도 말이다.
 
내가 해외에 살고 싶다는 꿈을 꿀 수 있게 된 건 런던과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이다. 한인민박에 머무르면서 그곳에 민박집을 하는 주인들, 그곳에서 무급으로 일을 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스텝들, 그리고 놀러 온 다른 사람들이 자리 잡은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가 너무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였다는 것을 알았다. 용기도 없었다는 것도 알았다. 나가 내 스스로 한계를 긋도 살고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는 독서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우리의 직접 경험으로 얼마든지 미래를 그릴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 직접경험으로 우리의 미래를 그릴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책이라는 간접 경험으로 미래를 그릴 수 있겠는가. 이지영 강사의 독서를 해야 할 근거는 형설지공의 시대에 농사나 짓던 마을 안에서만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나 책으로 그런 삶을 접하면서 살았던 방식인 거다. 지금 누가 그런 삶을 살고 있는가? 지금 내가 엄마 일손을 도우 온 이 동네도 60대 가장 나이 어리다.
 
하지만 지금 지구에서 이런 삶을 살고 있는 뜻밖의 인물이 있다. 바로 일론 머스크다. 일론 머스크는 지구 자체를 농사나 짓던 시대처럼 제한된 공간으로 생각하고 산다. 그러니 그는 지구밖의 세상을 꿈꾸는 생각을 책을 보며 했을 거다. 화성에 가면 최소한 인류의 멸종은 막을 수 있다는 신념을 책을 통해서 만들며 화성 이주의 선봉에 섰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대)도시도 너무 큰 삶의 터전이기에 그 안에서 얼마든지 자신의 일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일론 머스크 같은 신념(삶의 방식)까지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쁘며,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정보만 파악하기도 벅찬 시대에 책으로 자신의 미래를 세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껏해야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동안 오래 일했으니 누가 뭐라 해도 쉬고 싶어서 퇴사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외국 한달살이 하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 할 수 있는 책에서 얻는 위안이고 행동방식이다. 지금 대도시 시대에는 책은 사람들에게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한 것이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만들어 행동으로 옮긴 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만난 사람들의 경험으로 자신의 미래를 그리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안되면 책으로도 불가능하다.
마치 독서가 인생의 만능 치트키인냥 말하는데 독서는 생각의 재료일 직접경험을 이길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그릴 직접 경험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문제는 의지가 있냐 없냐는 것 뿐이다.
 
그리고 요즘 시대는 오징어 게임이나 크리스터 놀란 감독의 영화로도 얼마든지 책은 대체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천룡팔부를 찾아봤다. 요즘 내가 뭔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에 중국 무협영화에서 나오는 대인이라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가 너무 고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보고 해소가 되었다. 남자는 옳은 일을 위해서 외롭고 고독한 길을 스스로 정해서 가는 것이 맞는 거 같다,라는 생각에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내 삶의 태도를 다시 다질 수 있었다. 
 
나는 책을 보지 않았다. 독서만이 답이 아니다. 내가 천룡팔부를 보고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내 어린 시절에 중국 무협 영화에 나온 사람들이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심지어 그것이 신체의 한 부위를 잃고 목숨까지 잃어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면서 남을 돕는 혹은 약자를 돕는 행위를 함에 그들의 탓도 하지 않는 대인의 생각을 흡수하며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어릴 때 책을 읽지 못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재미도 없었고 무엇보다 읽어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데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무언가를 보고 배워야 한다는 것은 알았고 그것이 학교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학교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드라마와 영화 다큐멘터리였다. 결국 이것들도 어차피 글에서 나온 것들이니 내가 이것을 보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볼 수 있는 것은 다 봤다.  
 
그리고 내 나이 50세가 다 되어가서 내린 결론은 책은 인간사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문화 수단이고 가장 다양하며 지금까지도 유용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지금 시대에서는 보통 사람들을 위해서는 영상으로도 충분히 대체가 가능한 수단일 뿐 절대적 수단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가며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생각이 가장 중요한 수단이지 책은 생각에 보조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겪는 사람들만이 유용하며 그 사람들을 최대한 넓게 만나보기 위해서는 여행만큼 확실한 수단이 없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날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인생에 가장 큰 무기를 얻는 것이다.
 
책은 이 아래 수단일 뿐이고 영상으로도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수단이 되었다. 독서 자체는 그리 우리 인생에 중요한 수단은 아니라는 뜻이다. 지금 현대인들이 지능이 떨어지는 것은 과거 농촌 사회와는 다른 복잡한 곳에 살고 있고 그곳에서도 적응을 하지 못하는 단계에 있으며 그마저도 너무 급진적으로 변하기에 정신을 차릴 시간도 없어서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단계에 있어서 그런 거다. 이런 상태에서 느린 호흡을 가진 독서가 마냥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보통 사람들은 지금의 삶을 적응하기도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