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은 사회의 분위기가 규정한다.
선과 악은 사회현상으로 결정이 된다. 고로 태어날 때부터 선악이 규정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인간 또한 생존본능으로 살기 때문이다.
내가 아주 어릴때 국내에서 선풍적으로 인기를 끈 미국드라마가 있었다. V(브이)라는 드라마였는데 외계인이 침공해서 지구인들과 전쟁을 벌이는 내용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건 다이애나(외계인)가 쥐를 꼬리만 잡아서 입으로 그냥 생채로 먹는 장면이다. 그건 TV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꽤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아무튼 그 외계인과의 전쟁에서 범죄자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분명 나쁜 사람이라고 규정된 사람들었으나 외계인과의 전쟁에서는 영웅적인 행동을 한다. 다시 말해서 악에서 선으로 바뀐것이다. 싸우는 대상이 달라졌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이런 논리를 모를때 나는 그런 변화를 아주 흥미롭게 바라봤다.
지금에서야 드는 선과 악은 누구와 싸우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사상일 뿐 선하고 악하고는 없는 것이다. 심지어 태어날때 조차도 말이다.
내가 중학교 2학년때 노은석(가명)이라는 같은 반 친구는 전학을 온 친구였다.
어느 하굣길에 그 친구가 양아치 집단에게 끌려가는 것을 목격했다. 나와 몇몇은 그들을 뒤따라 갔고 양아치 집단은 자신들이 아는 폐허가 된 빈공장으로 노은석을 끌고가서 싸움을 했다.
처음에는 1대1인것처럼 보였지만 노은석이 쓰려지니 이내 7명 정도 되어보이는 똘마니들이 집단구타를 했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혼자 그 똘마니 일곱명을 막아섰다. 1대1은 그렇다 치더라도 집단 구타는 비겁해보였기 때문이다.
뒷날 나는 그 똘마니들에게 끌려갔다. 내가 자기들을 무시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중에 제일 약한 똘마니를 앞세워 나를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폭행하려고 했다. 나는 목재로 둘러쌓인 야외 공장으로 끌려갔다.
나는 그 약한 똘마니에게 협박을 했다. "다 때려라. 하지만 얼굴은 안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학교에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을 것이고 나는 사실대로 다 말할거다. 그렇게 되면 너희 집단은 해체가 될거다. 왜냐면 나는 학교에서는 모범생이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난 내가 학교에서 선에 해당되는 인물이라는 것을 어필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약한 똘마니는 대충 두어대 때리는 시늉을내고 다른 똘마니들에게 할 일 다 했다는 식으로 표현을 하며 나를 놓아주었다.
다음날 이 얘기는 학교에 소문으로 퍼졌다. 그리고 노은석은 나를 '애써' 찾아와 거짓말 하지 말라고 주변 다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집단 구타를 당할때 내가 막아주고, 그 똘마니들에게 끌려간 건 모두 증인이 있었기에 노은석은 금방 꼬리를 내렸다.
그럼 노은석은 선인가? 악인가?
노은석은 학교에서 적당히 공부를 하고 모범생 분위기를 내는 친구였다. 그래서 중학교 기준으로는 나와 같이 '선'에 해당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노은석은 자신을 도와준 나를 '거짓'이라고 '모함'하려고 했다. 사실 확인을 하려고도 하지 않고 말이다. 이런대도 그는 선일까? 학교에서는 성적인 떨어지지 않는 이상은 여전히 중학교 기준으로는 선일거다. 하지만 학교보다 규모가 작은 나에게는 '악'이 되었다. 자신을 도와준 유일한 사람을 고맙다고 하기는 커녕 심지어 모함하려고 했던것에 대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에게는 악이다. 솔직히 그 약한 똘마니보다 더 재수없는 녀석이라고 생각이 되어진다.
그럼 그 집단 폭행에서 의기 투합해서 노은석을 발로 함께 밟은 그 똘마니 7인은 어떤가? 선인가? 악인가? 학교에서 문제아로 이미지가 박힌 그들은 학교에서는 '악'이다. 하지만 나름 그들의 집단에서는 자기들끼리는 의리를 지키는 '선'일거다. 집단폭행도 그들 사이에서는 의리를 지키는 행위이자, 자신들의 조직을 더 강하게 만드는 행위였을거다.
다시말해서 학교에서는 '악'이지만 학교보다 규모가 작은 그들 사이에서는 '선'이라는 뜻이다.
노은석은 특별히 친한 친구가 있는 녀석은 아니었다. 좀 개성이 강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적을 두는 성격도 아니고 자기 주장이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다.
그런 녀석이 만약 공부를 아주 잘해서 검사가 되고, 대학교수가 되고, 사회지도층이 되었다면 어떨까? 지금 굳이 비유를 들자면 조국과 같은 인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정은 가능하다.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밖에 모르기에 어떻게든 서류에 자신의 이름만 박혀있는 삶을 살면 다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살기 좋다.
사람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형성하지 못하면 정의를 모른다. 도덕도 모른다. 선에 해당되는 보이지 않은 개념들은 모두 사람 사이에서 살기 위해서 형성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동물 사이에서도 약한 선의 개념은 있을 수 있으나 인간처럼 뚜렷한 개념은 없다. 그러니 이런 부류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것이 선이라고 생각하며 심지어 그것도 직접적인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게 되어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대한민국의 지도층의 가장 큰 문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양야치 집단은 최소한 그들의 집단에서만큼은 의리의 집단이다. 문제는 그들이 사회에 나와서 깡패가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조국만큼 깡패도 쉽게 접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이둘 중 누가 더 악일까?
내 기회를 어떻게든 불공평하게 훔쳐가는 지도층의 악이 더 악일까? 내 기회는 훔쳐가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왠지 있으면 안될거 같은 깡패가 더 악일까?
만약 지금 대한민국에 전쟁이 나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전쟁이 난지 한 30년은 되었다고 해보자. 그러면 한 세대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니 우리는 학교에서 지식을 배우기 보다는 '살인 기술'을 배울거다. 그리고 적을 살해하면 영웅적 대접을 받을거다.
이런 사회라면 학교에 반항적인 양아치 집단은 영웅화가 되는 것이다. 미국 드라마 V(브이)처럼 말이다. 공부만하는 말뿐인 사람은 무능한 인간이되거나 아니면 공부를 아주 잘해서 지도층이 되어 조국처럼 안전함속에서 역시 말로만 전쟁을 하는 '비열한 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선과 악은 사회 분위기가 정하는 규정일 뿐 고정되어 있지 않는 사상이다.
고로 학교도 60년대에서 80년대 무지의 시기에는 선의 역할을 담당했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다양성의 사회로 변화함에 따라서 고정되어 있는 교육 방식을 고수하는 지금의 학교는 악에 더 가까운 역할을 하고 있는 샘이다. 내가 볼때는 거의 정치, 미디어와 함께 초대형 가스라이팅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급변하는 사회에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규정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저출산이다. 2023년 상반기만 따지면 2022년 0.78명의 출산율보다 더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결혼을 하고 애기를 낳는 것이 정상인듯한 방식에서 결혼을 하지 않아도 애기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고 하면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저항이 아주 심할것이다. 즉 악으로 여긴다는 거다. 하지만 서양은 비혼출산율이 50%에 육박한다. 그러면 서양은 비정상(악) 인가? 참고로 우리나라는 2.2%다.
아마 결정내리기 쉽지 않을거다. 옛날에는 이런 대화를 하면 그건 서양이니까.. 하면서 넘어가는 사람들도 많았으나 이런 세계화 시대에 서양과 동양을 구분해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전근대적인 생각이다. 80년대 이전까지만해도 해외여행이라는 것이 대중화되지 못했기에 하는 말을 지금도 한다는 것은 함께 산다는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인거다.
쉬운 예로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솔로는 대체로 6대6으로 남녀를 모아놓고 5박 6일 동안 이성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 최종선택을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여기에 출연한 사람들은 대체로 사회에서 연애하는 방식대로 사람을 알아보려고 하려고 한다. 그 대표적인 말이 '직진'이다. 그놈에 직진은 다른 이성이 없을 때나 하는거고, 연애를 확정했을 때나 하는거고, 결혼을 했을 때나 하는 말인데 대놓고 6명의 이성을 앞에 두고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하는데, 초반 이미지 한 번으로 자신은 직진하는 사람이다,라고 규정을 하며 한 사람만 쫒아가는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마치 그게 자신이 연애에 있어서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자신감의 표정을 드러내며 말이다. 정말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 표정은 없다.
사회처럼 한 사람 만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는 일단 마음에 들면 직진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 사회에서는 지속적인*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여기저기 다른 이성을 만난다면 되려 무리가 따른다. 심지어 다른 이성이 접근해오거나 내가 접근하기가 쉽지도 않다. 요즘 들어서는 사람을 더 믿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으니 더 그렇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은 어느정도 검증이 된 사람들을 모아놓고 기회를 만들어서 서로를 얼마든지 알아보라고 만들어놓은 자리이다. 이사람 저사람 알아봐도** 누가 뭐라할 사람이 없는 버블 세계***에서 사회 습성인 직진을 그대로 하는 것이 미덕이고 선인냥 자신감 찬 표정으로 인터뷰하는 출연자를 보면 생각이 깊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 느껴진다.
*거시세계는 모든 관계가 연결되어 있어서 지속적인(컨티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미시세계는 확률로 모든것이 결정되는 양자(퀀텀) 세상이다. 여기에는 양자 도약이라는 말이 있다.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사람은 첫 번째 이미지로 꽂힌 사람을 지속적으로 알아가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을 알아보고 마지막에 선택한 사람일 수 있다는거다. 이과생들은 이말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컨티뉴의 반댓말로 생긴 단어가 퀀텀이다.)
***출연자들은 나는 솔로를 '솔로 나라'라고 사회속에 다른 세상이라는 표현을 한다.
아무튼 나는 솔로에서 최종커플이 생존해서 나간다고 치자면, 이 사람 저 사람을 알아보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린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럴거다. 어차피 방송으로 나오는 것이고 그리고 그들은 사회로 돌아올테니 사회방식대로 하는 것이 맞지 않냐고 하겠지만 그런 전국적으로 심지어 넷플릭스까지 나오는 방송까지 나와서 자신의 이미지만 신경쓰고 나오기에는 너무 희생이 큰 경험이 아니겠는가? 어차피 나간거 목적에 맞게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방향으로 나는 솔로 시스템에 부합하는 생각으로 자세를 고쳐서 나가는 것이 생존에 더 적합하다.
그리고 강한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거고 살아남은 자들은 변화에 적응을 했기에 살아남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솔로 시스템을 충분히 활용을해서 자신과 맞는 좋은 사람을 만나 평생 행복하게 산다면 그 방송에서의 이미지는 얼마든지 바뀐다.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로 나온다면 직진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려고 최종선택을 서로 한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솔로에서의 세상은 일시적 변화로써 그 변화에 잠시 적응한 상태라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이렇듯 '직진'이라 불리는 연애방식은 상황에 따라서 선이 될 수 있고 멍청함(악)이 될수도 있다.
이런 간단한 상황에서도 선과 악은 충분히 갈리는데 도대체 선과 악이라는 개념은 진짜 존재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다시 말하지만 지금처럼 변화무쌍한 세상에 선과 악은 진짜 존재하는 것인지? 존재한다면 얼마나 가치가 있는건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KYqOt5kpQKc
◆ 다시 노은석과 양아치들
노은석은 나에게 즉 작은 세계에서는 '악'이고 학교 세계에서는 '선'이다. 양아치들은 자기들 세계에서는 '선'이고 학교 세계에서는 '악'이다.
우리는 학교를 다닌다. 양아치들도 학교를 다니고 노은석도 학교를 다닌다. 양아치들은 우리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노은석은 고마움을 모른다. 이들과 대면할 확률은 거의 비슷하다. 중학교때 내가 양아치들과 시비붙은 건 이것과 함께 한 케이스 더 있을 뿐이다. 하지만 노은석과 같은 케이스로 마음에 상처를 받은 경우는 더 많다. 그럼 이 둘은 나에게는 '악'이다. 하지만 양아치들 사이에서는 그리고 노은석은 내가 '악'이라고 생각할거다. 내가 작은 정의를 행했다는 건 이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그럼 심판격인 교사들의 개입이 필요하다. 학교 입장에서는 노은석과 같은 케이스는 친구들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케이스라고하며 서로 화해하라고 할거다. 학교에서 노은석은 선이기 때문이다. 양아치들은 학교에서 징계를 내릴수도 있다. 악이기 때문이다. 양아치만 악이라는 규정이 내려졌다.
학교의 목적은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자립적으로 살아나갈 수 있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부잘하면 친구들끼리 그럴 수 있는 케이스로 치부가 되어 선의 흔들림이 없다. 과연 옳은것인가? 결국 교육, 학교, 교사들 다 전부 자신의 목적인 서울대에만 치중한 악의 집단이라고 봐야 하지 않나?
아마 조국도 학교 다닐때 '선'으로 인정받았을거다. 서울대 교수할 때만해도 '선'으로 보였을 거다. 근데 그는 '악'이다. 깡패보다 우리에게 접촉할 빈도수가 높다. 단지 상해를 입히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학교는 노은석을 선으로 보는 것이 과연 옳은 방향인가? 다행히 노은석은 그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친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주변에 사람을 두지 못하는 성격은 고등학교때도 여전했다. 그렇다면 사회에서는 친구를 만들 수 있었을까? 친구 만드는 법을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면 사회에서는 더 불가능하다.
고로 그는 어쩌면 직장에서 사람들에게 상처와 불합리함을 주는 인물로 성장했을 수 있다. 이 경우는 양아치들의 깡패가 되는 확률보다 아주 높다. 양아치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그냐 유야무야 다 흩어진다.
이들은 우리 시대때는 먹고 살려면 직장에 다녀야 했고 공부를 못했기에 낮은곳에서 시작해야 했다. 만약 적응을 못하면 집에서 은둔을 하는 꼴로 살게 되거나 지속적으로 양아치 짓이나 정신차리고 새 삶을 살려고 하거나 아니면 어느순간 사라지는 꼴이 된다. 다시 말해서 양아치들은 사회로 나가면 크게 점접이 없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난 직장생활하면서 노은석같은 사람들을 수도없이 봤다. 가는 곳마다 있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실시간으로 이런 상사와 동료를 두고 괴롭힘을 당할거다. 당신이 좋은 직장을 다니면 당신을 괴롭히는 직장 상사, 동료들은 학교에서 다들 선이었을거다. 하지만 양아치 출신의 직장동료는 본적이 없다. 설사 있다고해도 그들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약간의 불성실함은 있을지언정 말이다. 하나같은 노은석같은 인간들만 나를 괴롭혔다. 이게 대부분의 현실이다. 양아치들은 자신이 악이라고 깨닫게 되는 순간 정신차리는 기회라도 있지만 노은석같은 경우는 학교에서 선이라고 보여지는 삶을 살았기에 거의 평생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산다. 변화의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피부로 와닿은 악은 알고보면 학교에서 다들 선이라고 불려졌던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럼 이건 선인가? 다시 말하지만 학교 자체가 악일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물론 그렇다고해서 양아치들의 선이라고 할수 있는건 전혀없다. 하지만 만약 그 양아치들이 같은 학교생을 괴롭히지 않는다면 어떤가? 실재로 그랬다. 이들은 학교의 처분을 두려워해서 가능하면 같은 학교생들은 삥을 뜯지 않았다. 그래서 마주치는 일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과의 접촉은 거의 노은석과 같은 비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시비붙을만하면 싸울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상해를 입히려고 한다는 점과 집단으로 덤빈다는 점은 더 악한 점이다.
그럼 노은석이 선일 수 있는건 양아치들이 상해를 입히기 때문인가? 옆에 더 악한 것이 존재하면 나는 선이 되는 것인가? 이건 상대적 선인가? 그렇지 않을거다. 그냥 상대적 약한 악이라고 불려져도 상관없을테니 말이다.
만약 여기에서 노은석이 공부를 못했다고 가정하면 어떨까? 그는 선이 될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거다. 착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지언정 그건 선의 개념보다는 순하다는 개념에 더 가깝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주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존재로 인정하는 수준을 말하는거다.
그리고 이 수준은 고등학교에 가면 악이 된다. 왜냐면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존재였다.
학교에서는 올바른 사람이 되라는 교육이 없다. 공부잘하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개념만 있다. 굳이 올바른 개념이 있다면 선생들 말만 잘들으면 올바른거다. 그럼 공부잘하는 양아치는 어떤가? 학교에서 선일 될 수 있는가? 가능하다. 좋은 대학에 가는 학생은 양아치여도 선이 된다. 심지어 서울대 갈 정도면 선생님들은 건들이지 못한다. 자신들의 경력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는 서울대를 우러러 보는 노예 정신이 깃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잘하는 양아치가 싸움을 하고 피해를 입히면 학생들끼리 의례의 그럴 수 있다는 쪽으로 기운다. 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부못하는 순수한 애가 싸움에 휘말려 피해를 입게 된다면 같이 싸웠기에 같이 처벌을 받는다. 친구끼리는 그러면 안된다는 명분으로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순수한 애는 악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순수한 애 학부모가 학교에 불려오면 죄지은 사람처럼 오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공부를 못한다는 것 자체가 학교에서 시키는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무능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능은 악이다. 하지만 학교의 기능은 그게 아니다. 그렇기에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악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학부모는 충분히 학교와 싸울 수 있는 명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싸울 수 없다. 명분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건 무지다. 그리고 무지는 악이다. 그래서 공부를 못하지만 착한 자신의 자녀를 학교에서 구할 수 없다. 그리고 학교의 개념을 모르는 교사들도 무지하기에 그들도 명백히 악이다.
그렇게 착한 학생들은 고립된다. 역시 학교는 악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런 학교에서 노은석같은 사람을 배출해서 사회에 내보내니 우리가 다니는 회사가 그런거다. 공부를 너무 잘하는 사람들 배출하면 조국같은 인간이 나오는거다. 양아치를 교화할 생각을 하지 않고 악으로 규정만해서 방치를 하니 세상이 어지러운거다. 공부못하는 착한 학생을 불편하게 대하니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하는거다. 그들을 좀 더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만들어줬어야 했다. 학교는 말이다.
그러니 결국 학교는 악이다. 그렇다면 그런 악으로부터 선이라고 인정을 받은 노은석은 진짜 악인 사회생활 밀착형 악이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양아치들이 선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도 악이다. 하지만 우리와 밀접한 접점이 더 많은 악은 명품 브랜드 로고를 박은 옷을 유치하게 입은 덩치들보다 양복을 입고 권력위에서 입으로 우리는 주무르는 인간일 수 있기에 진짜 악이라고 하는 것이다. 조국처럼 말이다. 그들은 깡패나 양아치들과 달리 선의 위치에서 악을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자신들이 하는 행위는 다 '선'이라고 말이다.
결국 학교가 악인 이유는 2000년대 이후의 사회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60년대 교육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걸 개인의 삶에 적용을 하자면 나이에 맞게, 자신의 공간에 맞게, 자신의 지위에 맞게, 자신의 지갑사정에 맞게 변화를 추구하지 못한 것 자체가 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사회에서의 적응을 포기하고 학교에서 배운대로만 살려고 애쓰는 페미니스트들이나 공직자, 학교 교사들 그중에도 전교조 같은 집단과 직장에서 80년대 방식으로 입으로만 일하는 상사들도 악이라고 봐도 좋다. 심지어 연애를 80년대 방식으로 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악이라고 봐야 한다.
사회로 진출했다면 어느 규정정도 수준에서는 사회에 적응하려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극단적으로 전쟁이 나면 적군은 죽여야 하는게 맞는거다. 살인은 나쁘다고 학교에서 배웠다고해서 우리가 적군을 죽이지 않으면 결국 적군이 우리는 죽인다. 그건 적군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가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우둔해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적군은 그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행동인것이고 그 적군은 학교방식대로 사는 우리를 300명 죽이고서는 아마 장군으로 승격할거다. 그 적군은 그 나라에서는 거의 절대선으로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그럼 두가지 의문이 든다. 선이란 강함인가? 강함(선)이라는 그 범위는 어떻게 규정이 되는것인가?
◆ 선이란 생존할 수 있는 힘, 즉 강함이라고 볼 수 있는가?
내가 학교 다닐때 국사 시간에 우리나라는 남에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착한(선한) 나라를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상 전쟁으로 가장 많은 영토를 확장한 광개토'대왕'은 세종'대왕'과 동격이다. 강함을 인정하면서 우리나라의 약함을 미화시키는 이기적이며 모순적 교육을 동시에 받아왔다.
역사적으로 생존에 승리한 존재들은 정의라고 규정한다. 그 강자의 후손이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피엔스도 네한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살아남았기에 존재하지 않는가. 생존에 유리한 강함이 선이라고 보는건 크게 무리가 없다. 물론 이또한 이기적이며 모순적인 논리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한들 마냥 당하기만 한 우리나라가 선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냥 약한거다.
약하다고 함은 악하지 않다는 뜻이지 선하다는 뜻이 아니다.
선과 악 사이에는 선하지 않은 존재도 있고, 악하지 않은 존재도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공부못하는 착한 존재는 학교 사정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했다. 중학교때는 비교적 선하지 않은 쪽에 속하지만 고등학교때는 악이거나 악하지 않은 쪽에 속한다. (교사가 인간적이면 악하지 않은 쪽이고 교사가 학교 특화된 사람이면 악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고3은 무조건 악에 속한다.)
나의 경우는 중학교때는 선에 속하다가 고등학교 진학후 악으로 전락했다. 나는 지금 되려 학교 방식대로 살고 있지 않아서 잘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말하다보니 선과 악은 내가 속한 분위기에 따라서 달라지는것이 확실한거다.
다시 말해서 학교에서 선은 사회에서 악이 될 수 있다는거다. 사회로 진출해 시키는대로 하는 무능하면서 악하지 않은 존재가 되어 살다가 정직원이 되지 못하거나 어쩌다 정직원이 되면 후배에게 무능을 감추기 위해서 악을 행하는 선배가 될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어쩌다 좋은 선배가 됐다고해도 후배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 선배만 앞세워서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징징거리는(악) 후배를 만날 가능성도 높다.
결국 학교라는 악의 집단에서 선이라고해도 사회의 분위기에 맞게 변화하지 못하면 악하게 살아가게 되거나 악하게 살아가게 될 잠재력을 갖춘 사람이 되는거다. 그러니 지금 우리 사회가 각박한거다. 같은 사회에 학교형 인간과 사회변화형 인간들이 서로 자기가 맞다고 뒤섞여 살고 있으면서 서로 맞다고 해야 하는 싫은 상황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양아치 집단이 자기들끼리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다른 접촉을 차단하고 살아간다면 그들은 그들은 그 집단안에서는 선인가? 그들끼리 의리를 지키면서 서로를 돕고 산다면 선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기 싫은 공부못한다고, 다른거 못하게 막아놓고, 너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강조하는 학교라는 악의 집단에서 서로 의지하고 살기 위해서 조직된 집단이 뭐가 잘못이라는 말인가?
◆ 다시 일곱 양아치의 똘마니
나를 때리려고 했던 그 친구는 중1때까지만해도 아주 착한 친구였다. 그리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그 친구는 환하게 웃으면서 학교생활을 하던 친구였다. 그래서 그 친구가 나를 불러서 끌고가려고 할 때 나는 사실 꽤 놀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그 집단에 정식 단원이 되기 위한 입단식으로 나를 사용한 듯 하다. 아무튼 그의 착함이 아직 남아있기에 나의 협박에 쉽게 넘아갔다. 아직 겁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친구가 왜 갑자기 양아치 집단에 들어간지는 모르지만 적당한 이유는 어디에 소속될만한 곳을 찾지 못해서일거다. 가정은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공부를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양아치 집단과 어울리면서 소속감을 느끼게 됐을거다. 이 집단은 과연 악인가? 악이라면 학교가 그 친구를 악으로 밀어넣은건 아닌가? 그리고 이런식으로라도 소속감을 느껴서 사회에서 강남역 살인자가 되지 않을 경우의 수가 있다면 어떻게 봐야 할것인가?
예를 들어 그 약한 똘마니는 프로 당구선수가 되고 싶었다고 해보자. 양아치에게 당구를 치지말라고 하는 학교는 얼마든지 상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양아치들이 선생말 들을 필요없다고 해서 같이 당구치러가자고해서 당구장에 가면 잘못인가? 되려 자신의 길을 빨리 찾은 이 친구에게 학교에서 응원해주고 대신에 당구장은 양아치들 소굴이니 건전한 곳을 찾아주고 양아치들이랑 어울리지 말고 술, 담배하지 말라고 하는게 더 유익한 방향이 아닌가.
아무튼 학교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니 성적도 떨어지고 자존감도 떨어지는 와중에 양아치들이 쫄지마라고(낙심하지 말라고) 친구가 되어 주었고, 그는 당구를 계속 칠 수 있었다고 해보자. 술, 담배는 기본이고 여자들이랑 놀면서 섹스도 해보고 약자를 괴롭히는 희열도 느꼈다고 해보자. 하지만 시간이 지나 개과천선을 하게 되었고 그래도 양아치들과 함께 당구친 경력으로 나중에 더 노력해서 프로 당구선수가 되어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고 해보자.
그럼 이건 선인가? 아닐거다.
이들이 악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들 집단보다 더 큰 조직인 학교나 사회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어쩔 수 없이 행하기 때문이다. 술, 담배는 물론이고 강간*도 말이다.
*강간은 실재로 같은 반 양아치들이 쉬는 시간에 다 들으라는 식으로 자랑을 해댓기 때문에 넣은거다. 그들은 그런 짓을 하고 자랑을 하는 건 우리보고 자신들이 선생과 같은 위치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뽐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학교에 어쩔 수 오지만 우리는 학교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던거다.
아무튼 내 경우는 친구 두 명과 남포동을 걸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어깨동무를 하던 고등학생 세 명은 약간의 알콜 냄새를 대낮에 풍기며 우리보고 친한척하며 형이 돈이 좀 필요하며 갚는다고 돈 좀 가진거 있냐고 빌리자며 삥을 뜯길뻔한 경험이 있다. 이들은 결국 양아치 집단은 자신들 사이에서 선을 행할지언정 그 밖의 세상에서 악을 행해야 자본이 생겨서 유지가 되기에 어쩔 수 없는 악이 되는 것이다.
버블 세계인 나는 솔로에서는 양자도약적으로 알아봐도 좋다고 했지만 사회에서 직진을 하기 위해서 나는 솔로 프로그램안에서는 가능하다고 한것이다. 다시말해서 나는 솔로에서 이 여자 저 여자, 이 남자 저 남자를 알아보는 것이 합리성을 갖었다고해서 사회에서도 그러면 양아치 소리를 듣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양아치들 세계는 그들만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기에 악이라고 규정을 할 수 있다.
결국 그들만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굳이 악이라고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없는 존재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학교라는 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하던, 싸움을 잘하던, 악은 아니다,라는 위치에서 약게 살아가야 한다. 결국 제일 피해자는 선하지 않은 위치에 있는 학생들이고 그 중에서 공부까지 바닥이면 제일 위험하다.
약한 똘마니 그 친구가 그랬다. 그래서 그 친구는 양아치 집단에 들어간 것이다. 학교도 그를 거부했고, 사회분위기와 부모는 억지로 학교로 내몰았으며, 성적은 오르지 않았고, 공부도 하기 싫었을 것이다. 그냥 노는게 좋았던 웃음 많은 그 친구는 그렇게 혼자가 되어 생존본능에 의해서 무리에 들어가야 했던 것이다.
이쯤되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구분이 안될거다. 하지만 역사와 현실은 그냥 강자가 선이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선생이 선이고, 공부잘하는 학생이 선이고, 축구 제일 잘하는 친구가 선이고, 싸움 제일 잘하는 친구가 선이다. 나머지는 상황에 따라 선하지 않거나 악하지 않은 쪽에 속해서 외톨이가 된다. 그래서 스스로 학교에서 살기 위해서 만들어진 집단이 바로 양아치 집단인거다. 결국 양아치 집단은 이 사회가 공부만 강요하고 지식만 강요한 시스템 속에서 학교라는 건물로 몰아넣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살고보자는 식으로 만들어진 버블집단*인것이다.
*나도 인정받고 싶다. 다른 방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그걸 못하게 하고 나쁜거라고해서 억울하다고 하는 집단.
이렇게까지 말을 한다면 과연 이걸 악으로 규정할 수 있겠는가? 학교에서 시키지 않는데로 행동하는 집단이랍시고 악이라고 규정하는 교사들은 40년이나(현 70년) 되는 교육 시스템의 근간을 1도 건들이지 않고 살아가는 집단이고 생각없는 집단이다. 이런 집단안에서 우리는 25년 이상을 버티고 살아가고 있으니 다들 약해빠진 인간들이 되어서 이 불안한 세상에 변화와 적응을 포기하게 만들고 어떻게든 안전하고 안정적인 삶이나 살려고 발악하게 만든다.
이말인즉슨 학교는 돈이나 많이 버는 것이 목적인 삶을 심어 넣어버린 교육이나 하면서, 돈 많은 사람들 노예로 살게 만들어버린 교육을 하고 교사들은 선과 악을 자신들 기준으로 정해버렸다는거다. 자신들이 변화가 없고 성장이 없는 직업이다보니 그 직업이 천의 직업인줄 알고 딱 그런 기준으로 교육이라는 것을 하니 지금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은 위험에 처해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으니 누구하나 제대로 문제점을 보지 못하는 위기에 직면해있다.
나에게는 고3 때 짝인 동준(가명)이가 고등학교 생활중에 제일 인간적이었다. 그는 양아치였다. 그는 양아치 집단에서 서열이 좀 높은 편이었고 집단을 이루기 보다는 개인으로 활동을 했다. 개인활동을 하는 양아치는 자신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으로만 보지 않으면 주변 친구들을 인간적으로 대했다.
나는 짝이었기에 그를 양아치로 보기보다는 인간적으로 대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그 친구는 하루종일 학교에서 잠만 자는데 나는 그 친구가 자는 것을 일절 건들이지 않았고, 선생으로부터도 몇 번이고 구해준적이 있다. 물론 처음에 내가 깨웠을 때 양아치 답게 아주 과격하게 나왔다. 여타 다른 짝들이 귀찮게 구는것처럼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깨울 때는 선생이 접근해오고 있다는 것의 신호라는 것, 즉 자신을 도와주려고 한 것에 대한 신호라는 것을 알고 나에게 호의적으로 대했다.
고등학교 생활중 2년 동안 가장 나를 괴롭힌 이상준(실명)은 집단에 속했다. 어쩌다 강한 양아치와 대치를 하게 되면 겁에 질린 표정으로 피하곤 했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을 건들이지 안을 상황이면 반에 제일 날뛰며 미친 웃음으로 다들 날봐라,라는 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말은 학교에서 악하지 않은 공부못하는 집단이 학교의 부정어린 취급에 저항하기 위해서 조직을 만들고 나름 학교에 저항하는 행동인 담배를 피는 행위를 교사들 몰래하며 희열을 느끼고 주말에는 학교에 여학생을 대리고와 섹스를하고 보란듯이 콘돔을 흘려놓지만 선생들에게는 걸리지 않을만한 곳에 버리는 짓을 하며 스스로 선생과 맞먹는 어른이라는 만족을 하다 어쩌다 걸리면 거짓말과 적당한 핑계로 미꾸라지처럼 피해다니면서 자신들을 꼬라지를 한심하게 보는 집단에 폭력을 행사하고 싶은 욕구에 치밀어 올라 제일 약한 선하지 않은 공부못하는 존재를 찾아서 자신들의 욕구를 폭력으로 풀어 학생신분을 유지하는 행태가 된다는 뜻이다.
제대로 된 리더십이 없는 교사와 오래된 시스템으로 망가진 학교 조직으로 인해서 약한 구역에서 살아보려고 만들어진 집단이 학교에서 가장 악한 집단으로 진화하여 학교눈을 이리저리 피해다니고, 어쩌다 한 방 맞으면 열받아서 또다른 약한 구역에서 사는 선하지 않은 애먼 사람을 괴롭히고 구타하는 일로 마무리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졸업을 한다.
그리고 사회에서도 똑같은 일은 반복된다. 교사는 상사로, 공부잘하는 학생은 일잘하는 직원으로, 일 못하고 악하지 않은 집단은 여전히 조직을 만들어 뒤에서 흉보고, 일 못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은 모든 잘못을 뒤집어 쓴다. 어쩌다 잘한 일은 다른 사람의 공로로 뺏기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뒤집어 쓰기도 한다.
학교와 사회의 큰 차이점은 법이 좀 더 가깝다는 점이다. 그래서 폭력에 노출되는 빈도는 거의 없지만 누명으로 대체되어 괴롭힌다. 회사에 찍힌다는 것은 학교와는 차이가 크다. 돈줄이 끊긴다는 뜻으로 돈줄이 끊긴다는 것은 생명이 끊긴다는 뜻이다. 이런 불안에 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면 법에 저항하는 욕망을 자지고 칼을 들고 강남역으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또 애먼사람인 가장 약하다고 여겨지는 여자를 찾아서 말이다.
이상준도 고등학교 1학년 처음봤을 때는 양아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성적은 뜻대로 나오지 않고 학교에서 외면받는 존재가되다보니 '생존본능'이 발휘되어서 양아치로 변질이 되었다. 그리고 중학교때는 학교에서 인정받는 선일테니 중학교때부터 양아치 짓을 한 학생보다는 약한 양아치가 되어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생존본능으로 조직에 들어갔을거다.
이처럼 새로운 세상에 직면해서 적응방법을 누군가 정해놓은대로 살면서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자신의 인생에서 1년은 커녕 6개월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캄캄한 방에서 이들은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그들은 지금 자신이 어떻게 살다가 이런 지경까지 온건지 생각하게 될거다. 그 억울함은 분노로 바뀌고 그들은 법은 이제 의미가 없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을 그냥 싸이코 패스라고 부른다.
그렇게 부르는게 편리하고 우리와 따로 분류해야 우리는 다른 사람이라는 안심을 하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다. 앞에서 내가 적은 내용이 원인이라고 말을 한들 아무도 들어줄 사람도 없고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들은 이런 내용자체를 모를거다. 무의식에 각인된 내용은 의식으로 인지하기 못하기 때문이다. 그냥 죽여보고 싶어서 그런거라고 밖에는 인지할 수 없다. 양아치 새끼들이 그냥 때리고 싶어서 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래도 약한 양아치는 담배와 여자와 술로 의기투합해서 서로의 의리를 다지면서 살기라도 하지만 선하지 않은 구역에 사는 존재들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외부에 투영되는 착하다는 이미지라도 있어야 하기에 집단도 만들지 못하고 홀로 자신의 정신을 갉아먹으면서 미쳐간다. 그럼 양아치랍시고 집단이라도 만든 그들은 완전한 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선하지 않는 구역에서 미쳐버려서 사람을 죽인 사람들이 진짜 악인가? 일단 다들 후자는 긍정할거다. 모든 과정을 다 아는 사람들은 이성적으로는 애매하더라도 감정적으로는 확실하게 위협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자는 우리와 이제는 동떨어진 세계이기에 애매하게 느껴질거다. 결국 상황이 선과 악을 결정한다.
강자는 약자를 도울 줄 알아야 선이다. 그럼 반대로 악은 남을 해칠때 악이 된다. 선하지 않은 사람은 제구실을 하면서 여유를 즐기면 사는 사람들이다. 악하지 않은 사람은 제구실을 하면서 좀 부족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이말은 이 세상에는 선도 별로 없고, 사실 악도 별로 없는 말이다. 대체로 80~90%는 그냥 선하지 않고, 악하지 않은 사람들도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이 집단을 이룰 때가 가장 위험하다. 학교에서 교사들은 악하지 않은 집단에 속할 수 있다. 그들은 조직적이다. 학생이라는 집단의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여차해서 그들이 봉기를 하면 겉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폭력성을 띄고 정당화까지 성공했다. 그 예로 나는 중학교 수학여행때 밤에 화장실을 갔다고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는데 아직도 내가 왜 맞아야 하는지 모른채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교사들은) 이런 절대 폭력을 얻고서도 선하지 않은 공부못하는 학생을 돌보지 않았다.
고등학생때는 되려 공부못한다고 악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양아치 집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자기들 실적올리려고 때리는 행위와 양아치짓하는 행위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 학생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공부못하니까 악이라고 규정하고 약하니 무시하기도 했다. 그들은 학교에 다니지만 사회적으로는 법에 가까운 존재니 교사들이 공부못하는 착한 학생을 무시하는 태도는 양아치들이 때리고 싶어서 때리는 행위와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행위와 같은 행위 아닌가?
참고로 수학여행때 화장실에 갔다고 맞은 학생들은 다들 선에 속한 학생들이었다. 자는 시간이기에 화장실에 혼자가는 건 규칙을 혼자 어기는 행위니 다 같이 가서 정당성을 만들고 싶어서 같이 갔던거다. 하지만 그 교사는 혼자 밤에 당직을 서고 있어서 우리가 때로(5명) 화장실에 있으니 겁을 먹어서 기본 욕구를 해결하는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때렸을거다. 즉 그 교사도 겁*을 먹어서 자신의 '생존본능'에 의해서 그랬다는거다. 세상에 화장실 갔다고 때리는 교사가 어디있는가? 아무리 밤에 자야 한다고 규정된 시간이라도 말이다.
*과거의 경험이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무조건 때렸을거라고 추론해본다. 최소한 이런 핑계라도 있어야 교사라는 직업을 할 수 있는거다. 그냥 때리기만 한거라면 미친놈이고 그런 미친놈이 교사를 한다는 것은 세상이 미친거다.
결국 선의 위치에서 겁을 쉽게 먹는 약한 존재는 악이 된다는 것이다. 약한 선은 되려 사회와 주변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악이 될 수 있다는거다.
결국 강한것이 선에 가깝고 약한것은 악에 가깝게 된다. 그리고 약한 존재는 생존본능이라는 무의식으로 타인을 경계하게 디되는 것이다.
◆ 이런 일은 왜 발생하는가?
강자가 개입하지 않아서다. 강자는 선을 행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즉 부자집에서 자신들의 자녀들이 교사의 어리석음에 오염되지 않게 보호하고 있지만 부자들은 학교는 커녕 최소한 그 반 자체를 보호하지는 않는다. 되려 자기 자식들이 강한 악이 되어 문제가 되면 보호하기 바쁘다. 이런 시대에는 부자들이 개입하기 좋다. 부자의 개입은 학생들을 개몽시키기 가장 좋은 무기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 외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거다.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선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때로는 악하지 않은 쪽에 있을 때도 있다.
양아치 중 강한 양아치도 개입을 하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개입을 하면 싸워야 할 수 있는데 그러면 자신이 위험하거니와 되려 학교로부터 악으로 규정이 되어버려 존재의 부정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을 행하려 했는데 악으로 규정되는 억울함 말이다. 심지어 같이 담배피는 즐거움과 여자를 공유하는 즐거움까지 포기할 이유는 더 없다.
공부잘하는 친구도 개입하지 않는다. 그들의 꿈은 개인적으로 잘사는 직업을 찾아서 사는것이기에 굳이 엉뚱한 사명감에 젖어서 싸우는 일은 없다. 이들은 부자가 되는거다. 그리고 이 순환은 계속된다. 아무튼 양아치들은 공부잘하는 애들은 건들지 않지만 애써 개입을 하면 분명 응징이 있을거다. 그러니 애써 위험한 상황을 만들 명분이 없다. 심지어 대통령하고 싶다는 반 1등도 개입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통령을 못할거다. 사실 이들의 개입은 학교에서 환영받을거다. 공부잘하는 집단은 학교에서는 무조건 선이기에 강한 양아치와 같은 개입이라고해도 정의를 실현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험하다.
결국 악이 퍼지는 이유는 선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강자의 위치에서 선을 행하지 않는 확률과 약자의 입장에서 집단을 이루고 자신들이 선이라고 우기고 악을 행하는 확률은 비교하자면 압도적으로 후자가 높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괴로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거다. 실제로 여러분들의 월급은 강자인 사장이 올려주지 않고 버티고 있지 않은가. 그나마 우리가 그래도 근근히 버티고 사는건 고 이건희 회장이 삼성 직원들의 월급을 올려줘서 다른 대기업들도 울며겨자먹기로 올릴 수 밖에 없어서 그런거다.
그리고 중소기업이라도 다녀야 200~300만원이라도 벌어서 살수 있다는것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슬픈 현실이다.
그럼 반대로 여러분들이 사장이 되면 어떨거 같나? 아마 비슷할거다. 올려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람이야 그냥 또 구하면 되는데 왜 올려주겠는가? 죽지 않을만큼만 주면 버티고 일할 사람들이니 말이다. 우리가 딱 그런 존재인거다.
강자들은 고 이건희 회장처럼 삼성나오면 집한채 산다는 말이 나와야 한다는 가치관이 있어야 그래도 월급을 올려줄텐데 그런 신념을 어디서 배우겠는가! 바로 학교 아닌가! 그런 학교가 악의 집단인데 우리가 그런 가치관을 배웠을거 같은가. 그러니 우리 사장님도 우리를 하찮게 대하는거고 우리가 사장이 되어도 직원들을 하찮게 대할거다.
즉 교육은 강자가 되었을 때 선을 행할 수 있는 올바름이나 사회적 가치를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악에 대항하는 힘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신념으로 사는 교사들에게 서울대만이 인간이다,라는 교육이라는 정책으로 실적만 어떻게든 쫒는 회사 시스템의 학교로 인해서 사회로 진출한 강자들이 선을 행할거라는 기대는 거의 찾기 어렵다. 설사 있다고 해도 경직된, 유연성 제로의 정의감에 휩싸인 사람들이나 약간 있을 뿐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결국 사회전반에 퍼진 철학이야 말로 구원이 되어줄 수 있다. 내말은 이제부터라도 철학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배우지 않아도 퍼지는 태어나서 25년 동안 자연스럽게 삶에 녹아드는 철학으로써 국민성으로 무의식속에 스며들 능동적인 철학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과거의 우리나라는 착하게 살아라. 공부해라. 돈을 쫒지 말고 일을 쫒아 열심히 일해라, 라는 철학으로 살아왔다.
교육도 이 철학으로 그렇게 변화없이 버텨온거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착하게 사니 호구같은 인생을 살고 있고, 공부하면 개천에서 용나는 세상은 이미 끝나 돈이 곧 공부인 세상에 살고 있고, 돈을 쫒지 않고 열심히 일하니 거지만 되는 세상에 대한 배신감으로 억울한 삶을 살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는 철학이 없다. 이런 배신감이 IMF 이후 급속도로 우리 삶에 퍼졌는데 이걸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이황, 이이의 정신은 솔직히 모른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철학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솔직히 다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더 친숙하게 여겨질거다. 모든건 수로 이루어졌다는 피타고라스의 철학도 알거다. 거기에 존재의 철학이나 이성의 철학의 발달로 중무장한 강자는 약자를 무조건 도와야 한다는 철학과 삶을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서양철학이 대중에게 퍼져서 국민들이 그것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사회는 훨씬 안정적일거다. 그래서 서양이 더 앞선거다.
공부하지 않아도 아는 철학, 즉 국민성으로 스며드는 철학,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철학이 우리에게는 사라지고 없다. 새로운 철학이 나와야 하는데 대체 철학을 강구하지 못한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서양도 무너져가고 있다. 영국의 브렉스트나 파리의 시위현장, 미국의 마약 현장을 보면 그렇게 보인다. 단지 우리의 3대 철학은 사라져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거 같고 그래서 제일 빠르다는거다.
내가 볼때 국가의 3요소는 국민, 영토, 주권이 아니라. 국민, 영토, 국민성(국가 철학)인거 같다. 국민을 하나라 묶을 수 있고 사회를 안정적으로 만들고 국가를 믿을 수 있는 안정적인 철학이 있어야 국가의 지속성이 유지되고 주권을 이에 맞게 따라오는 요소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 연설마다 통합통합하는데 솔직히 그들은 통합이 뭔지 모르는거 같다.
3대 철학으로 버틴 대한민국은 철학이 사라진 현재 마치 지금의 대한민국에 난민이 되어 사는 것처럼 산다. 그래서 명품으로 자신을 무장해서 방어하며 살아가는거 같다. 여기에 국민들도 과거의 모습과는 다른 진화된 모습인데가 영토위에 세워진 건축물들은 거의 서양화되어 있다. 근데 여기에 맞는 새로운 철학은 없고 기존의 철학은 과거의 유물이다. 그 철학으로 살아가려면 생존하기 어렵다.
이것이 난민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그래도 영토가 사라진게 아닌게 다행인정도인거지 정서적 영토는 사라진 정신적 난민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각자 알아서 살아가는 대한민국에 놓여진거다.
각자 알아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정신적 가치로 국민을 묶어주지 못하니 같은 민족을 나도 한번 죽여보고 싶은 충동에 죽이는 범죄까지 나오는 현상까지 치달았다. 다민족 국가의 대표인 미국은 최소한 같은 민족끼리 개인적 원한 없이 죽여보고 싶어서 죽이는 사회는 아니다. 이건 마치 다른 민족을 죽이는 것과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 일어나고 있는거다. 이 현상은 마치 돈으로 구분된 계층을 다른 민족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가난한 사람은 기존 국민이라고 생각하는거고 부자들은 이민 온 부자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 그들때문에 내가 힘든거라는 식으로 같은 국민을 생각하는 경지까지 온듯 하다. 이건 현재 대한민국이 같은 민족 사람이라고 묶어주는 철학(정서)의 부재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사건으로 우리는 인문학자의 태도를 비판해야 한다. 아무도 학교 담을 넘어선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않는다. 즉 선이 움직이지 않으니 악이 퍼지는거다. 그리고 우리처럼 담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만 칼에 찔리고 토막나는거다. 하긴 학교에서도 제대로 못하니 이런 일이 일어나는거라고 본다면 담을 넘어서도 제대로 못할거다.
이런 사람들에게 몇 천씩 주고 4년 이상을 배운다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없으니 사회가 어지럽다는 결론은 나지만 최소한 개인에게라도 말이다.
https://www.youtube.com/shorts/7esp7edW1i8
https://www.youtube.com/shorts/_38HVdd_g4I
◆ 그렇다면 선과 악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노은석은 자신'만'선일거다. 완벽히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을 찾을 때까지는 경계를 할거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상준은 자기가 속한 양아치 집단까지가 선일거다. 이상준은 집단에 지속적으로 보호받기 위해서 어느정도 자기 주장은 굽힐줄도 알거다. 사회에서 알아주는 대학에 들어가면 대학이 선의 경계다. 해병대에 가면 해병대가 선의 경계다. 사회에서 알아주는 직장에 들어가면 직장이 선의 경계다. 다른 지역에 살아도 같은 출신을 반갑게 대하면서 경계를 허물어 합치는 현상을 보면 알거다. 그러다 나이들어서 더이상의 집단에 들어가지 못하면 국가가 선의 경계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에게 다른 나라에서 반겨줄리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난 인간은 집단 이기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집단에 속해야 안전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들어서 보니 그건 아주 나약한 자아때 생각한 결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식으로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면 내가 나약해졌을 때는 선의 단위가 나밖에 되지 않는데 그럼 나 이외에는 악이 될 가능성이 높기고 내가 약하면 약할수록 타인이나 타집단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서 악으로 간주하게 되어 싸움과 타툼과 전쟁은 끊이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서 노은석은 양아치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해서 정의를 위해서 양아치 집단을 물리치기 위해서 싸웠던게 아니라 양아치를 하찮게 봐서 그런거다. 이상준이 나를 2년동안 틈만나면 시비를 붙인건 고등학교로 진학해서 자신의 자존감이 떨어진 이유를 몰라서 그런거다. 만약 내가 아니었어도 다른 상대를 골라서 괴롭혔을거다. 3학년때 다른 반이 되었는데 그런 상대를 찾아서 괴롭혔으니까. 자신을 위치를 안 노은석은 조직을 만드는것보다 공부를 선택해서 학교의 보호를 받은 것이고, 자신을 알지 못했던 이상준은 조직에 들어가 보호를 받은것이다.
다시말해 자신의 위치를 안 노은석이 양아치를 하찮게 본 이유는 중학생이니 학교에서 대신 복수가 가능한 상태여서 그런거고, 이상준이 나에게 지속적으로 시비를 붙인 이유는 행여 나에게 맞으면 자신이 속한 양아치 집단이 복수해줄거라는 믿음(사실)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즉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인거다. 실제로 이상준은 나에게 한 번도 싸움을 건적이 없다. 깐쭉대면서 시비를 붙였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싸움을 건적은 없다. 나도 이상준이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던게 아니라 그 뒤에 이재성(본명) 이하의 함께하는 양아치 집단이 무서워서 참았던거다.
나 또한 중학교 때는 나의 위치를 알고 있었기에 양아치 집단에 끌려갔어도 되려 학교를 무기로 협박을 할 수 있었던거다.
이렇듯 경계라는 것이 자신들에게는 생존본능 혹은 보호본능이라는 이유로 '선'의 경계가 될 수 있지만 그 밖에 존재들에게는 '악'의 경계가 될 수 있다는거다.
상황에 변화하지 않으려는 고집에 이어서 타집단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태도 자체가 '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단위의 가장 큰 경계가 바로 국가다. 우리는 국가를 벗어나 살아가니는 굉장히 힘들다. 타국이 보기에 그리 강한 사람이 아니고 설사 강하다해도 유명하지 않으면 그 강함을 들어낼 기회가 없다보니 그렇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국가 대 국가를 기준으로는 무조건 대한민국 편이 될 수 밖에 없다. 최후의 상태에서는 국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우린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존본능으로 인해 우리는 광개토대왕도 대왕이고 침략만 당한 우리나라는 호구같은 민족이 아니라 착한것이라는 모순이 결합 가능하다.
여기에 일본이 개입하면 더 극명하다. 아무리 봐도 석굴암은 우리가 방치하고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재건한거처럼 보이는데 이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안되는 민족이다. 되려 일본이 석굴암의 정기를 끊었니 망치려했다는 걸 믿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다.
나의 큰집 외삼촌은 민주당 편이다. 이유는 오직 일제강점기로 인한 일본의 거부반응 때문이다. 다른 이유가 없다. 정치를 잘한다는 나름의 기준이라도 있으면 토론이라도 해볼텐데 그냥 일본이 싫어서 민주당 편이다. 그래서 외삼촌쪽 어른중에 누가 일제강점기때 고문이라도 당했는지 알아보니 아니란다. 그냥 싫은거다. 일제강점기때 살았던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사람이 국뽕에 쉽게 찬다. 그런 이유는 자신을 증명할 무언가를 해낸것이 없기 때문이다. 남들 공무원 무시하던 시대때 할거 없어서 공무원 했다가 공무원 시대에 접어들어서 으쓱하고 다닌지 몇 년 되지 않아서 퇴직을 하니 거의 무에 가까운 인생이다. 거기에 결혼을 세번이나 실패를 했고, 그중 세번째는 사기 결혼을 당해서 동네에서 쫄팔림을 달고 산다. 그리고 네번째 부인이랑 어찌저찌 산다.
이런 나약한 사람이 기댈곳은 오직 하나 국가다. 한 국가의 국민이라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삼촌의 기댈곳은 국가뿐이라서 문재인 뽕*에 차는거다. 국가에게서 버림을 받으면 살기 어렵다. 그렇다고 국가가 챙겨주는것도 아닌데 심리적으로는 국가 편을 들어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큰집 외삼촌은 민주당이 경계라고 하겠다. 하지만 민주당은 외삼촌이 어려워도 도와주지 않을거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외의 존재는 악이 된다. 도와주려고 현실을 알려주는 것은 상처다. 그 상처를 받고 싶어하지 않은 국뽕러들은 아무리 고마운 존재라도 이런 사람들을 악으로 본다. 이런 사람들은 무조건 일본은 악이다.
결국 국뽕은 '기댈곳 없는 나 = 국가'라는 동격이라는 착각에서 차오르는 헛된 감정이다. 민주당이 일본을 심판한다고해서 우리나라에 나을게 하나도 없는데 그렇게 한다고 잘하는거라고 감격에 찬다는 것이 인생에 뭐가 되움이 된다고 말이다.
어느 국가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은 국뽕에 찬다. 결국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은 결국 범지구적인 통일은 있을 수 없고 결국 국가라는 단위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조직 단위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다보니 인간은 전쟁을 피할 수 없다. 다같이 지구적 기후 재앙을 막으려고 하지 않을거다. 단편적으로 아이폰이 3년에 한 번 나온다는 말은 하지 않지 않는가! 아이폰부터 해야 갤럭시도 따라하고 샤오미도 압박을 할 수 있는거다. 설령 다 같이 되지 않더라도 시도라도 해야 하는 것이 세계 1위라는 명분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전 케이블 하나 통일하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를 보면 인간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본다.
심지어 애플이 지속적으로 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건 나약한 사람들 덕이다. 그들은 늘 새로운 제품으로 무장을해야 괄시를 받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한 사람들은 필요한것만 산다. 필요할 때 구입한다. 심지어 애플이 아니어도 괜찮다. 자신이 명품이면 갤럭시를 사용해도 괜찮기 때문이다.
미국은 캐나다의 자원과 멕시코의 노동력만으로 충분하다고 이제는 대륙 단위로만 살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국제사회에 경찰로써의 의무를 행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여기에 미국에 크게 두 방 먹었어도 진주만에서 자기들이 잘못했으니 그런거라고 다 이해한다면서 미국 밑으로 들어간 충성스러운 일본도 끼워주었다. 이런 세상에 우리나라만 고집한다고 한들 잘 살 수 있겠는가?
미국이 인공위성 이제는 돈내고 사용하라면 어쩌겠는가. 해상무역도 각자의 군사력으로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나라는 당장 대만해협*만 중국에게 점령당해도 무역에 막대한 지장이 생긴다. 광개토대왕은 대왕이고 한번도 타국을 침략하지 않고 당하기만 민족이라서 착한 민족이라는 모순된 논리로 타국을 모두 악으로 집단 이기주의 태도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대만해협으로 무역하는 양은 80% 이상이다.
그리고 이걸 한없이 축소시키다면 혼자만 선이고 나머지는 다 악이라는 개인 이기주의 태도로도 살아갈 수 없다. 아무리 국뽕에 취해도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아무리 밉고 싫다고해도 지지고 볶고 함께 사는 전라도나 경상도처럼 일본도 중국도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라고 여기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건 중국의 생각도 같아야 한다.
안중근 의사도 일본 새끼들한테 잡혀서 감옥에서 고문을 당해도 한중일이 힘을 합쳐서 동북아시아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안중근 의사도 그랬고 학교에서는 친구끼리는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고 함께 하는거라고 배웠어도 왜 국가 단위에서는 그걸 용납못하는 모순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이만큼 성장했으면 가능할 법도 한데 말이다. 결국 철학이 없어서 그런거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생존에 위협을 느끼면 살고자 하는 본능이 살아나고 그러면 모든 상황이 모순적이라도 이기심으로 모든것을 받아들이는 '생존본능'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구역에는 선과 악은 없다. 동물 사회에서 선과 악을 구분지어서 보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자면 전세계인들이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세계시민 과정을 통일해서 넣어야 할텐데 학자들이 그런거 시도라도 하겠는가? 쓸데없는 지식만 집어넣지 말고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인간들의 태도를 넣어 오해로라도 인간들을 죽이는 일은 만들지 않는 최소한의 시스템을 만들 수 있으면서도 만들지 않고 외면하는 강자들을 보면 약자나 강자나 다들 자기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구역만 구축하면 그걸로 우려먹는 삶을 살려고 한다는 것 같다.
결국 선과 악의 경계의 가장 명확한 구역은 안심, 안전 구역이라고 할 수 있을거다.
약자의 안심구역은 강자가 우리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는 구역까지 구축하는 것일테고 강자의 안심구역은 약자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침해하지 못하게 하는 구역까지일거다. 비록 그것이 착각이나 상상의 구역일지라도 말이다.
◆ 친구라는 선의 경계
마블(영화)의 토니 스타크는 친구가 없었다. 왜냐면 친구가 필요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강자였다. 하지만 한 번 납치당한 후 세상의 진실을 보게 되었고 그 이후 우주적 존재가 오는 것을 보고서는 친구를 만들었다. 심지어 스티브 로저스를 보고 친구라고도 했다.
DC의 슈퍼맨(애니메이션)도 그랬다. 지구를 혼자 지킬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우주적 존재들이 계속 침공하고 지구적 재앙도 계속 발생하니 혼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저스티스 리그(친구)를 슈퍼맨 주도하에 만들었다.
결국 친구라는 관계는 내가 무언가를 함에 있어서 약함을 인정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감에 따라 큰 일이 있을 때 서로 돕고 살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그건 개인도 마찬가지고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 위기가 보일때야 그렇게 하겠지만 대체로 그러면 늦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을 인지하고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적당히 맞는 친구를 만든다.
지금은 지구적 위기에 당면한 상태다. 그러니 국가도 서로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미국의 대륙적 화합*은 이러함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동북아 화합을 하고 EU와 화합을 해서 힘의 구도를 만든 다음 서로 힘의 균형을 맞춰서 평화를 이뤄내야 할텐데 지금의 세상에서는 정치인들 포함해서 다들 이런쪽에는 관심이 없어 불가능할거 같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국민의 표가 궁한 직업이니 국민들이 관심 가질 이슈에만 신경을 쓴다. 결국 우리 모두가 관심이 없다.
*2026 월드컵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대륙간 월드컵이다.
왜일까? 그건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 너무 거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지구적 위기를 상상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주변에만 관심이 있다. 주변이라는 경계는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극의 빙하가 녹아서 해수면이 높아지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건 이성은 논리로 수치로 알아들을 수 있다. 하지만 각개인의 세포에게 위기라는 공포심을 심어주기에는 공간적으로 너무 멀리 있고 시간적으로 멀리 있다.
인간은 국가라는 공간을 넘어가면 인지하기 어렵고, 10년의 세월을 넘어가면 상상하기 어려워 한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라는 공간을 넘어간 삶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10년 뒤에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대비하지 않는다. 지금의 직업과 수입이 그대로일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런 믿음으로 버틴다. 그 믿음은 사실이라고 받아들인다. 남이 경고하듯이 말하면 아니라고 하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믿음으로 산다.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렇게 살지 못한다. 불안해서 뭐라도 하기 때문이다.
안전과 안정의 삶에서 불안만큼 인간이 무언가를 준비하게 만드는 요소는 찾기 어렵다.
그러니 사람들은 자신이 10년 뒤에도 안정적으로 안전할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착각*하면서 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남이 말하면 아니라고 말할정도로 자각은 있지만 자신의 삶에서는 절대 그럴리 없다는 강한 믿음의 상태.
그러니 교육은 세계 공통의 시민 교육을 실시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공간적으로 지구를 인지하게 만들고, 철학 교육을 통해서 죽음이라는 개념을 삶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해서 자신의 삶을 죽음까지 계획하게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평생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 선의 세상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적 내지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진정한) 친구를 만들 수 없다. 이제는 친구라기 보다는 경조사용 동맹아닌가. 지금의 삶이 안전하다고 느끼기에 그런거다. 그래서 혼자서 적당한 관계만 만들면 잘 살수 있을거라는 착각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힘든 시기니 위기때 도와주지 않을거라는 것을 규정한 사회 분위기이기에 경조사 때나 사용하는 정도의 친분만 쌓는거다. 결국 위기, 위험이 없기에 친구가 없어지는거다.
기껏해야 국가 중심적 선의 세상이 한계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이 각자가 선이라고 싸우는게 아닌가. 이건 지구적 재앙인 환경 재앙을 수치로는 알아도 인지하지 못해서 그러는것이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반도체(삼성) 없었으면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됐을거다.
이 말은 우리에게는 선과 악이라는 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세상에 살고 있다. 적과 위험, 위협이 없는(인지하지 못하는) 세상에 선과 악을 인간이 어떻게 규정하고 살아가는가? 개인이 선이고 타인은 악이고 내 국가는 선이고 타국은 악이고 타국은 반대로 생각할텐데 어떻게 이 세상에 절대선과 절대악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 선과 악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인간 사회에서 지구적 절대선이라고 함은 어떻게든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걸거다. 여기에는 인간뿐만이 아니라 각종 동식물을 포함한 자원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된다고 보는가. 이거보다 작은 범위는 인간선이라고 볼 수 있을텐데 인간을 위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거라고 보는가? 절대선을 행하는 단체의 사람들은 과연 인간단위에서는 선을 행하고 있을까? 아마 그들 집단 이외의 집단은 악으로 지정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면 절대악은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들일거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약한 절대악을 행하고 있다. 살아가는 시간동안은 우린 이 절대악을 벗어날 수 없다. 강한 절대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거의 기업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기업의 물건없이는 못사는 지경에 이르렸다. 유튜브만 보더라도 탄소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거보면 그렇지 않는가.
결국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쾌적하게 산다는 것 자체가 절대악의 개념에 들어간다.
물론 혼자서 그러면 자연의 자생능력으로 복구가 가능하다. 빌 게이츠만 그러고 산다면 말이다. 근데 빌 게이츠보다 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심지어 연 3억 정도만 벌어도 그렇게 살 수 있는데 빌 게이츠보다 돈 많은 사람들만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법이 만들어지면 과연 그건 절대선의 경계가 될 수 있다고 보는가?
결국 우리는 연 3억 정도만 저축하고 살 수 있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유지될거라는 계획만 있다면 한남동 한강뷰 아파트에서 탄소 뿜뿜 내뿜고 살고 그걸 당연히 여기며 어떠한 죄의식도 없이 살아간다. 누구도 죄의식을 가지라고도 하지 않는다. 결국 우린 약하든 강하든 절대악을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이건 너무 강력한 선과 악을 말하는 듯 하다. 조금 가볍게 인간의 선과 악을 다루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인간적 선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들을 말하는 것일거다. 물론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선이다. 하지만 우리는 행동으로 증명되지 않아도 선으로 본다. 앞에서 실컷 말한 공부 잘하는 존재들 말이다. 과거에는 공부만 잘하면 소위말하는 높으신 양반이 되어서 나랏일을 하기에 공부잘해서 특히 서울대 갈거 같으면 선으로 인정한다. 행동으로 보여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심지어 약한 악 정도까지는 무난하게 넘어간다. 대체로 상대방의 잘못으로 말이다.
이런 현상은 사회에서 능력있는 사람도 선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다소 다른건 사내에서는 학교에서처럼 일만해서는 선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로 돕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진짜 공부잘해서 판검사 하지 않는 이상은 일반 회사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나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서로 돕는 법을 배운적이 없고 그러다보니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적이 없기에 사내에서는 악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빨리 진급해서 악하지만 덤비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야 유리하다. 공부 잘해서 회사에 들어간 존재들은 이걸 잘 안다. 그래서 경쟁을 또 한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회사 밖에서는 선이기 때문이다.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능력이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하기 때문이다. 실재로는 도와주지 않더라도 말이다.
우린 이런 무의식 때문에 공부잘하고 좋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 선의 행동을 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이라고 인지를 한다. 그리고 이들은 거의 상대적 위치에 존재하고 있다. 좋은 회사위에 더 좋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그들을 더 착한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기에는 외모도 포함된다. 잘생기고 예쁘면 착한거다.
그래서 이들은 대체로 선하지 않은 사람들이 된다. 그리고 자신들을 상대적으로 공부를 못하거나 낮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선으로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 반대로 인간적 악은 공부를 못하고 좋지 못한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리고 이들도 딱히 행동으로 잘못을 증명하것이 없는데도 악으로 치부된다. 예를 들자면 환경미화원 옆에 지나가면서 자기 자녀보고 공부못하면 저런 사람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환경미화원이 되면 안되는 직업이 아닌데 그렇게 말하는건 악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악하지 않은 존재 분류된다.
그리고 이들은 이 부류 사이에서 작은 버블 세계*, 즉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악하거나 선한 존재로 증명이 따로 된다. 하지만 여전히 큰 세계에서는 이들을 모르기에 공부잘하고, 직장 좋고, 잘생기고, 예쁜것으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선과 악으로 보여지게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양아치 집단같은.
우리는 선하다고 보여지는 곳에 나쁜 사람들이 더 많고, 악하다고 보여지는 곳에 선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직간접 경험으로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좋은 직장에서는 직위를 잃으면 의미가 없다. 그러니 지킬것이 많고 훔쳐야 할 계급은 적다. 그러니 악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동료애를 느끼기는 어렵다. 그래서 삭막한 직장 드라마에서 찐한 동료애가 나오면 우리는 괜한 위안을 받는다.
하지만 좋지 않은 직장에서는 더 잃어버릴 것도 별로 없고 훔쳐야 할 계급이 없기에 동료애라는 것이 어느정도 존재한다. 아플때 대신 일해주는 것을 당연시 하는것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절대적이지 않다. 늘 그렇듯 우리는 상대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치열한 회사에서도 미생의 오과장 같은 사람도 있고, 서로 돕고 살아가야 하는 직장에서도 그래도 한자리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든 직장생활 그래도 버틸만하다고 다니며 그래도 그 인간만 없으면.. 하면서 다니는거다.
결국 생존하기 위한 사회 계층에서 생존하기 위한 욕심이 사람을 사람 사이에서 비열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동물사회도 마찬가지다. 보호색으로 숨어서 사냥을 하거나, 보호색으로 숨어서 자신을 보호하거나, 직진으로 가려고 하는듯 하다가 오른쪽으로 턴해서 위기를 모면하거나, 오른쪽으로 가려고 하다가 직진으로 턴해서 사냥을 성공하거나 하는식으로 말이다.
결국 선과 악이라고 느끼는 것은 우리는 같은 인간이니까 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가 결정을 하는 것이고 그 마지노선이 법이라는 것이다.
실재로 인간이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개인에게 국가를 넘어선 개념과 10년이라는 시간의 개념을 넘어서는 것보다 더 느끼기 힘든 개념이다. 우선 내가 살고 봐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는 얼마든지 주변에게 나쁜 짓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어서 높은 자리에 있거나 더 높은 연봉을 받으면 얼마든지 무마가능하다. 심지어 부러움을 살때도 있다.
다 함께 살아가야 하지만 나에게 방해가 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나락으로 보내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기에 모두 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개념은 인간이 가지기 아주 어려운 생각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80억명이나 되고 아직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하면 얼마든지 나를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도 된다.
과연 이게 잘못일까? 진짜 악일까? 못 된 것일까?
인간 사회에서의 절대선은 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사람일거다. 가령 술취한 일본인을 지하철에서 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잃은 청년같은 사람말이다. 이 청년은 진짜 절대선일까? 상대적으로 술취한 사람보다는 건강했기에 위험한 사람을 구해 자신의 선을 증명했다. 하지만 그 청년의 부모는 어떻게 생각할까? 심지어 일본인을 구하다가 참변을 당했는데 말이다. 그 일로 인해서 일본은 우리나라에 대해서 단 하나도 변한건 없다. 심지어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청년에게서 얼마나 귀감을 받고 살고 있을까? 아마 제로일거다.
고르바초프는 세계 평화를 위해서 소비에트 연방을 해체했다. 그리고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허나 러시아인들에게는 러시아를 망친 대통령으로 치부된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고르바초프에게 얼마나 귀감을 받고 정치를 할까? 아마 제로일거다. 그리고 그 자리는 지금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결국 선과 악은 각자의 삶의 경계안에서 사회분위기에 맞게 설정하는 것이다.
심지어 문제가 나에게 발생하면 스스로 모순적으로 생각하는 현상도 일어난다. 그리고 그걸 스스로 자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누군가 지적해주지 않으면 그냥 모른채로 자신만 다 맞다고 흘러간다. 지적을 받는다고해서 순순히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끄끝내 거부하다가 마지막 코너에 몰려야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가는 경우는 실제로 거의 없다. 지적을 하는 사람도 상대방의 인생을 전부 다 기억하지는 않기에 사례가 떨어지면 코너까지 몰고 가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게 벗어날 길이 보이면 그대로 도망가고 잊어버리고 산다. 그리고 자신은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면 마음이 편한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험한 세상 살기 어려울거다. 자신이 악하다고 생각해서 행동 자체를 고치기는 어려우니 말이다.
그래서 아는 것을 실천하고 그 앎이 선한것이면 그 사람은 존경받을만 하다.
아무튼 이런 삶에 선과 악이 존재한다는 것 조차 무의하게 보이는데 왜 굳이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악하다 선하다는 문제를 를 아직도 풀지 못하는 숙제라고 계속 여기는 것일까?
일단 인문학자들이 게을러서 그렇다. 그러니 아직도 2,500여년전의 학문이나 잘안다고 교수를 하는 세상 아닌가! 과학자들처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라는 질문에 닭이 진화과정에서 우선이라는 답을 내놓을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인문학자들은 그런 노력이 없다. 심지어 과학자들은 영혼에 대한 어느정도의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여기까지 온 과학자들은 솔직히 존경할만하다고 본다.
학자들의 이런 게으름으로 인해서 인문학은 이제 개인 취미 생활용으로 전락해서 지적으로 보이는 용도로 밖에 사용되지 않는거 같다. 어디가서 칸트가 어쩌고 저쩌고하면 지적으로 보이니까 말이다. 칸트의 말을 실생활에 적용시켜서 삶을 나아지게 하는 학문은 없는거 같다. 다 인문학자들이 게을러서 그렇다.
학교 담안에서 안전하게 옛날 얘기나 하면서 돈버는 삶에 만족하는 인간은 AI보다 나을게 없을거다. 어서 학자들이 AI보다 나아져야 인간들이 다 같이 나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텐데 말이다.
두 번째 이유는 다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명제에서 벗어나지 못해서다. 솔직히 혼자서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살거면 하루종일 욕을 해도, 벌거벗고 다녀도, 노상방뇨를해도 아무도 뭐라할 사람이 없다. 주변에 진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그 사람은 악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태어날 때 혼자인 상태로 태어났는데 굳이 애써 악이나 선이라는 개념을 넣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자라는 사람들은 신생아를 사회적 존재로 일단 넣어놓고 생각을 하니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는 우아함으로 자신들을 치장하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가 아닌 사람속에 존재로만 보기 때문이다. 동물은 무조건 생존본능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거다. 인간의 몸도 아직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그렇기에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과 악이 아닌 생존본능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인간은 크게 세가지로 움직인다. 뇌, 호르몬, 몸(뼈와 근육)의 세포*로 말이다.
호르몬으로 우리는 본능적으로 애기를 낳아야 한다는 개념을 탑재하고, 몸의 세포는 현재의 안전을 담당한다. 하지만 뇌는 이 모든 것을 담당해서 생존에 적합한 계산을 하는 용도다. 단지 인간이 그것을 생각하는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고 대체로 생각하는 존재가 리더가 되어서 우리를 지금까지 이끌었다.
예를 들면 일론 머스크로 인해서 우주개발, 화성진출, 그전에 아르테미스 계획이 진행중이다. 이건 일론 머스크가 일류에 대한 생각을 우주까지 생각했기에 가능한 것이고 그 전까지는 나사조차도 우주는 포기했었다.
*개인적 의견이다.
이렇듯 생각은 아무나 하는것이 아니다. 이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시키는대로 살면서 선하지 않은 부류와 악하지 않은 부류로 나뉘면서 적당히 이기적으로 살면서 리더를 따르거나 거스르는 방향을 선택하며 사는 것이다. 대체로 사회악은 거스르는 방향으로 선택을 해서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악행을 저지르게 되어 있다. 생존본능으로 인해서 말이다. 일론 머스크가 화성에 가야 한다고해서 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듯이 학교라는 조직이 무조건 좋다는 쪽으로 생각해서 따라야 하는 이유는 없다. 그렇기에 거기에 반항하는 집단도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반대의 조직은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학교라는 조직에 속하면서 양아치라는 집단은 필연적으로 생존본능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건 단세포 생물에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단세포 생물들도 단체로 움직이는 편이지만 몇 마리 정도는 따로 움직인다. 왜냐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외부 공격이 있다면 그 공격은 단체에게 집중될테고 그렇게 되면 따로 움직이는 몇 마리가 생존해서 다음 세대를 생산해서 지속 가능한 종족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단 생존본능으로 인해서 반대 입장은 생겨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인간도 자연상태 그래도 태어나서 나고 자라는 것이 전부인데 일부 생각하는 존재이 이런 사회를 만들었다고해서 다 같은 존재라고 착각해서 생겨난 오류인것이다.
그런데 이런 습성을 받아들이거나, 공부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2,500년전에 너무나도 유명한 맹자님이 한마디 했다고 그 말에 넘어가서 아직도 이 문제는 풀지 못하는 숙제랍시고 다 맞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학자들로 인해서 인간의 삶의 방식은 2,500년 전이나 크게 다를게 없다. 다르다면 발전한 과학기술로 인해서 스마트 폰을 들고 다니는 세상이거다. (과학은 발전했는데 인문학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거나 악하지도 않고 교육을 받아서 선해지거나 악해지지도 않았다.
태어날 때 혼자 성공할 유전자가 있다면 혼자 있는 삶이 좋아서 끼어드는 주변 친구를 싫어할수도 있고, 유전자가 약하면 사회적 관계를 갖는 습성을 타고나서 사회성이 좋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그냥 생존본능이다.
교육도 지식만 넣는다면 당연히 아무런 변화를 일으킬 수 없고, 기껏해야 함께 해야 좋은게 있다는 것을 깨다는 것이 있다면 어느정도 변화가 가능하겠지만 그것 또한 생존을 위해서 그런거지 선과 악이 바뀌는 경우는 아니다. 친구도 결국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생존의 범위의 차이로 인해서 진정한 친구냐 경조사용이냐로 구분된다.
노은석은 혼자살아도 좋다는 유전자를 타고났을거라고 가정해본다. 그러니 자신을 도와준 나에게 함부로 대했던거고 자신으로 인해서 위협을 당했다는 것도 혼자가 좋은 입장에서는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거다. 신세를 지면 갚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라는 것을 지키기 싫기 때문이다.
이상준은 약한 유전자로 태어나서 적당히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다가 고등학교 때 학교라는 집단을 거스르는 존재쪽으로 방향을 틀었을거다. 하지만 혼자서는 학교를 감당할 수 없다는 (무의식적) 판단에 양아치 조직에 들어갔을거고 혼자서 잘 버티면서 주체성을 잃지 않고 비합리적인 조직인 학교생활하는 내가 부러워서 틈만 보이면 시비를 붙였을거다.
여기에 전쟁이 나면 그래도 적군과 잘 싸울 수 있는건 이상준일 수도 있기에 이상준은 인류적 생존본능에 의해서 학교라는 집단을 거스르는 존재가 되었다고 봐도 좋다. 학교에서 시키는대로 하는 학생들은 전쟁이 나면 도망가거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와도 머뭇거리다 죽임을 당할테니 학교를 거스르는 존재는 국가 단위로 필요한 존재인것이다.
결국 인간도 동물이다. 그래서 생존본능에 의해서 살아간다는 내용을 이제 마무리하려고 한다.
언젠가 인간이 뇌를 다들 생각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지금의 전쟁과 환경 재앙, 가난의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서 그야말로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었으면 한다. 그리고 기왕이면 그에 맞게 카르다쇼프 척도 1단계인 행성문명 단계를 만들어서 에너지 문제까지 해결해 돈도 거의 필요없는 적당한 다툼이 있는 평화의 세상이 왔으면 한다.
그리고 이런 세상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자들이여 어서 학교담을 부수고 세상으로 나와서 부지런하게 삶의 지혜를 사람들에게 전파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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