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정글북, 네이버를 부모로 둔 MZ세대 집단 현상의 이해
MZ세대의 방황은 정이 있는 부모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다.
(2023.03.01 최초 발행)
어릴 때 모글리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했다. 정글북이라는 소설을 애니메이션화 한 것인데 어릴 때 정글에 버려진 소년이 늑대부모에게 보살핌을 받고 늑대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모글리 이전에는 추석특집으로 MBC에서 하는 '타잔'이라는 흑백 미국 드라마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실제로도 존재하는 경우도 발견이 되었다.
https://m.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409601010
이 말은 인간은 누구에게 키워지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에도 이런 말은 나온다. 동물은 자궁에서 거의 완성형으로 태어나기에 출산 후 수분 후 바로 걸음을 걸을 수 있지만 인간은 완성되지 못한 채로 태어나 지속적 보살핌을 받아야 하므로 불자에게 맞겨지면 불교인이 되고 기독교인에게 맞겨지면 크리스천이 된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늑대에게 길들여지면 늑대의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차범근 아들로 길들여지면 축구 선수로 살아가며, 허재 아들로 길들여지면 농구 선수가 되고, 이병철 아들로 살아가면 사업가가 되고, 노동자 아들로 길들여지면 노동자가 되며, 법률가 아버지가 있으면 법에 눈을 뜨게 되고, 정치가 아버지를 두면 정치나 도덕을 무시하는 합법적 사기를 치며, 예술가 부모를 두면 창조성을 발현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이건 단순히 유전자만을 이어받은 것이 아닌 부모의 평소 행동을 보고 정신을 이어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노동자 자녀들이다. 이들은 인간의 기본적 조건양 생각하는 공부 해라, 착하게 살아야 한다,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살지만 그런 현실에서는 삶이 어렵다는 모순을 경험을 한다. 그것을 인지하는 것이 거의 중2쯤, 14살이 되는 시점이다. 모순을 가르치는 부모와 그에 맞지 않는 현실을 보며 도망가고 싶지만 돈이 없기에 몸은 집과 학교에 예속되어 살게 되고 정신은 방황을 한다. 이것이 중2병이라고 불려지는 병이다.
이건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먹고살기 바쁘기에 정신적 소양의 대표라고 부를 수 있는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고자 하는 일을 찾아서 하면 그 일로부터 나오는 철학이 생기는데 노동자들은 마지못해 돈을 벌어야 하는 삶을 살기에 철학을 가지기 어려운 상황의 삶을 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중2병은 어른이 자녀들에게 옮긴 전염병이지 때 되면 의례 앓는 병이 아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지? 착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성실하게 왜 살아가야 하는지? 성실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를 알려주며 놀아주고 시간을 보내주는 자녀들은 중2병에 걸리지 않는다.
리처드 파인만은 우체부 아버지와 주말마다 숲에서 놀았다고 한다. 거기에서 새들을 관찰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학교에서 새에 대해 책으로 배운 친구보다 알지 못해서 놀림을 받았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새 이름을 아는 건 중요하지 않다. 그건 얼마든지 나중에 알 수 있는 거라고 하며 중요한 건 그 새들이 왜 저기에서 저런 행동을 하며 그 행동 이후 어떻게 하는지를 관찰하는 태도라고 배워 중2병 없이 그 태도로 양자역학의 대가가 되었다.
이 사례는 노동자 부모를 둔 자녀라도 과학자적 태도를 가진 아버지를 가졌다면 노동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건 모글리가 늑대에게 길들여진 것의 대척점(?)에 있지만 비슷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제아무리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그리고 노동자 가족과 함께 살아도 늑대에게 길들여지면 결국 늑대가 되고, 과학자적 태도(철학)와 취미를 가진 노동자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면 과학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세대에게 실패 경험해서 지적, 경험적 재산을 축적하라고 하는 것이다. 과학자가 되지 못한 우체부는 그 아들을 과학자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심지어 관찰하는 태도는 제인 구달*처럼 고졸 출신이지만 동물학자가 될 수 있게 만들거나 인류학자가 되게 만들기도 한다. 현재 나의 실패는 나의 자식들에게 얼마든지 더 성장이 가능한 만능 줄기 세포와 같은 태도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졸 출신으로 10년 동안 유인원을 연구하여 박사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이런 변화는 주어진 삶 그대로 살며 공식적인 삶을 답습하는 실패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는 것만 아는 것은 절대 다른 것은 모른다는 뜻이다. 이건 도전이 없는 삶을 뜻하고 도전이 없는 삶에는 변화가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다들 공무원, 선생님이나 하라는 말을 부모에게 듣는다. 그 부모가 공무원이고 선생님이면 더 그렇다. 그런데 그 부모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욕을 하고 한숨을 쉬면서 일한다. 이런 부모에게 공무원 하라는 말을 들으면 중2병이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한 거다.
https://www.youtube.com/shorts/t-aWG2W2yBQ
이런 시대에 드디어 인터넷이 들어오고 네이버가 등장했다. 다음이 먼저 등장했지만 네이버가 문장으로 검색이 가능하다는 광고가 나와서 다음을 넘어버리고 급성장을 하게 되었다. 인간이 브라우저와 상호작용을 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세상은 빨리 변화가 되었고 안 그래도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부모들은 더 살기 급급해져서 자식들에게 더 공부만 하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 MZ세대들은 궁금한걸 네이버에게 대화 방식으로 물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네이버는 영혼이 없이 답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더 전문적으로 답을 하는 지식인이라는 것도 생겨났다. 네이버는 다 맞았다. 부모보다도 선생님보다도 더 정확한 답을 제시했다. 다 잘될 거라는 부모의 말보다는 현실을 말하는 네이버가 더 가까이 느껴졌다. 네이버는 친구이자 부모이자 선생님이었다.
그렇다. 지금 MZ세대는 현실판 모글리이고, 네이버는 길을 잃은 아이를 거둬들인 늑대부모가 된 것이다.
모글리는 생존에 적합한 동물이 되었다. 늑대의 동료인 표범과 곰의 도움을 받으면서 정글에 적응하면서 살았다. 생존이 우선인 동물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럼 네이버 자식이란 무엇인가? 네이버는 정보다. 그뿐이다. 정보의 바다라고 불리는 인터넷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상위 정보 체제다. 그러니 네이버에게 지식과 지혜를 배운 세대들은 그 자식이라고 불려도 무방하다. 우리는 그들을 MZ세대라고 이름표를 붙여줬고 그들은 그냥 '정보자체'로 길러졌다. 좋은 대학 나오면 고급정보고 고졸은 정보가 별로 없기에 무시를 당한다.
그래서 정보자체인 지금 MZ세대들은 대학만 나오면 끝인 거다. 돈이 필요하니 혹은 학교에서 취업을 하라고 프로그램된 것을 입력했으니 일단 취직은 하겠지만 자기가 학교에서 배운 정보와 다르면 회사를 어려움 없이 그만둔다. 자신의 정보와 다른 건 에러가 생겼다는 뜻이기에 컴퓨터 화면에 에러 블루스크린이 뜨듯 더 이상 명령어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MZ세대가 원시 AI라도 되었다면 새로운 환경인 사회에 적응을 하려고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의 말을 억지로라도 들어서 출력을 하려고 했겠지만 MZ세대는 그냥 '정보자체'다. 그뿐이기에 학교 같은 강제 정보 입력 기관이 아닌 곳에서 스스로 새로운 정보를 수집해서 적응을 하지 못한다. 그냥 자신과 다른 정보는 다 튕겨내어 버린다. 이건 '학력 = 실력'이라는 잘못된 교육을 인해 생겨난 인식이 무의식에 자리 잡아서다.
그럼 이전 세대는 무엇인가? 바로 앞에서 말한 원시 AI다. 기성 꼰대는 486이라서 변화처리가 너무 느려서 변화가 없다시피 하는 수준이고, 빌 게이츠는 세상의 변화에 즉각적 변화가 가능한 슈퍼 컴퓨터다. 그래서 세상의 정보를 오감으로 입력한 마이크로 소프트(빌 게이츠)는 Chat GPT에 1,000억 원을 투자할 수 있었다. 변화에 민감한 걸 넘어서 변화를 예상까지 가능한 슈퍼 컴퓨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의 뇌는 컴퓨터 처리 방식과 흡사하고 더 효율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건 인간의 뇌를 기준을 하는 말이다. 인간을 그렇게 규정하기에는 너무 기계스럽다.
네이버 이전 세대들은 정보를 사람에게 얻었다. 부모와 형제 동네 사람들, 학교 친구들 등등을 통해서 말이다.* 사람은 사람과 연결된 존재여야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발현할 수 있다. 실험 결과 150명 이하의 조직된 사회는 동물과 차이가 없다. 그러니 인간은 150명 이상 통용될 사회적 가치과 태도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자신만 아는 즉, 정보자체인 MZ세대는 오감으로 새로운 정보를 습득해서 자신의 삶에 적용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나는 아직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정보를 얻는다. 검색은 잘하지 않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과연 네이버가 답을 해줄 수 있을까? 우린 인간이 무엇인지 답을 명확하게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관념적으로 알고 있다. 그 관념은 사람들과 연결을 통한 대화와 토론, 감정의 교류, 다양한 문화적 경험, 타국의 다른 삶의 태도, 발전된 과학기술이 가져다주는 삶의 변화와 미래, 각기 다른 종교의 의미 그리고 사람에 대한 소설 등등의 직간접적인 경험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토대로 학자들이 인간에 대해서 멀찌감치 규정을 해주면 우린 그것을 어렴풋이 배워나간다.
그렇게 인간을 아는 것이다. 노자가 도를 도라고 부르면 그것은 도가 아니라고 하듯이 우린 인간을 사전적 의미로 배워 그것만이 인간이라는 규정을 내리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듯이 알아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푸틴 같은 잔인한 행동을 통해서 우리는 비인간적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느끼면서 최악은 피해 갈 수 있는 힘은 생겼다. 하지만 네이버는 이런 수준까지도 인간을 규정하는 힘을 기르지는 못했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35955&cid=40942&categoryId=31611
△ 인간은 비교적 쉽다. 인생이라고 물으면 더 답을 찾기 어려울 거다.
네이버는 감정이 없다. 네이버의 정보는 옳고 그름을 가르치지 않는다. 극단적인 예로 고등학교 때 남자친구와 잠자리를 갖어서 임신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람들과 의논을 해야 했고 과거에는 정말 크게 혼날지언정 부모님에게 말을 하고 해결을 했다. 맞아 죽을 년이라고 매를 맞아도 그게 맞다. 그리고 부모는 다시는 자신의 자녀가 그러지 않기를 바라면서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그 자녀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간다. 그 트라우마로 연애가 잘 되지 않으면 주변에서 눈치를 채고 도와주거나 힘들면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사람에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네이버에서 정보를 얻는다. 모텔에서 아기를 낳아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는 범죄를 배운다는 것이다. 그 어떤 어른과 친구들과 주변인들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해결하기를 바란다. 이건 정보일 뿐이다. 인간적인 건 매를 맞아도 그 잘못에 대한 인지를 배우는 것이고, 낙태에 대한 트라우마로 연애를 하기 어려우면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인간적이라는 것은 철학(인간)이 아직 인간이라는 것을 규정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네이버로 낙태를 하는 정보보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조금 가벼운 예를 들어보자면 남자친구가 동굴에 들어갈 시간이 필요하다고 할 때 네이버에게 물어보면 아마 그 남자는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을 거다. 그러니 뒷조사를 해보라고 할 거다. 하지만 그 여자를 잘 아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면 조언자는 여자보고 평소에 네가 하는 연애 스타일이 남자를 지치게 한다. 그러니 당연히 남자는 쉬는 시간이 필요한 거다. 너도 이참에 네 연애 스타일을 고쳐보도록 해라. 그렇지 않으면 남자가 다시 돌아와도 이런 일은 또 생길 거고 마지막은 헤어지자는 말을 들을 거라고 말해 줄수도 있다.
물론 네이버도 이런 글이 있을 수 있고 이걸 읽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을 거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글이 있다고 해도 당사자들은 그런 글은 읽은 적이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에게 감정이 있는 사람이 나를 걱정해서 나에 미래를 염려하는 말은 거부감이 들더라도 억지로라도 받아들여보려 하지만 감정이 없는 글은 그냥 없는 것과 같은 거다.
네이버를 통해서 지식을 얻은 여자는 자신의 잘못은 생각지도 않고 동굴남을 바람 폈다고 생각할 것이고, 이것이 여러 번 반복이 되면 자신이 만난 남자는 모두 쓰레기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나중에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서 모든 남자들은 다 쓰레기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이기주의는 생성되고 자식자마저도 남이라고 생각하고 귀찮으면 죽이는 MZ세대 부모가 탄생하는 거다. 그리고 이미 이런 식으로 정보자체가 된 여자에게 조언자가 조금 불편한 조언을 하면 이들은 자신의 잘못으로 유도하는 '가스라이팅'한다고 조언자를 폄하할 거다.
마치 약자를 보호하는듯한 단어인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의 유행은 주변의 친구들과 멀어지게 하는 말이라는 것도 우린 알아야 한다.
네이버를 부모로 둔 세대인 MZ세대는 과연 올바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지금 MZ세대는 외형이 인간인 정보자체라는 것은 단순 비유적인 말은 아닐 수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네이버 이하의 정보를 가진 인간은 과연 사회에서 필요할까?
우선 네이버 이전 세대들은 어떠한가?
사실 이 세대도 부모의 제대로 된 교육은 받지 못했다. 한국전쟁이 막 끝나 먹고살기 힘든 건 당연했고, 좋은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해라, 착하게 살아라, 성실하게 살아라,라는 말 말고는 가르침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세대는 사람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어쨌든 모르면 사람에게 정보를 얻었다. 그렇다! 여기도 정보다.
하지만 그 정보는 단순히 방법만 말하는 형태가 아니라 올바름을 기반으로 하는 감정이 있는 정보였다. 낙태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래도 부모에게 알려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탈이 없다, 부모가 무서워도 그래도 네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은 부모밖에 없다는 정보를 줬다는 뜻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일 수도 있다. 부모가 지랄 맞은 사람들이라면 차라리 낙태를 해라. 하지만 평생 이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할 거다. 그러니 최대한 잊도록 노력해라. 다음에는 순진하게 굴지 말고 좋은 남자를 만나라. 그게 너에게 더 낫다는 말을 해줄 수도 있다. 이렇게 상황에 맞게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건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다.
남자친구가 잠수를 해도 네가 잘못했을 수 있으니 너부터 어떻게 연애를 했는지 스스로 생각해 봐라, 같은 정보를 줬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준 것이 아니다. 이건 정보라기보다는 '정'이다. 올바름을 넘어선 그 사람의 안위와 미래의 삶을 걱정하는 사람으로서의 정(감정)을 전달하는 형태였다.
이런 정으로 연결된 사회는 노동자 부모를 두고, 늘 같은 말만 하는 부모를 두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연결이 가능했고 그래서 개천에서 용도 낫다. 무자본 공부만으로 말이다. 그리고 사람은 사람사이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사회적 진리로 받아들인 세대였기에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같은 개그맨도 정치로 세상을 바꿔보려고도 했고 정치가 안되면 눈치를 보면서 정치 개그를 하면서 세상에 이바지하고자 했다. 소설가들은 시대에 반항을 펜으로 했고, 학생들은 거리로 나왔다. 우리는 정으로 연결된 한민족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을 걱정하는 대화는 이런 힘이 있는 거다.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상대방을 걱정하고 염려하고 당장은 어려워도 해야 할 것을 알려주며 알고 싶어 하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닌 타인이 이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가야 할 정을 만나서 입으로 전달했다.
나 같은 경우도 아버지라는 사람이 돈을 벌어오지 않아서 신생아 때 병으로 죽어야 했다. 엄마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나를 포기했다고 했다. 하지만 옆집 아주머니가 그래선 안된다며 자기 친척 중에 의사가 있다고 하며 내 소식을 전했고 그 의사는 무료로 왕진을 하며 나를 살렸다.
그리고 세계적인 트럼펫 연주자인 루이 암스트롱은 어린 시절 너무 배가 고파 빵을 훔치고 걸려서 감옥에 갔다. 어린 나이에 감옥에 온 걸 불쌍하게 본 한 어른은 여기서 나가면 뭘 할 거냐고 물었고 답이 없던 루이 암스트롱에게 그렇게 살면 감옥이나 전전긍긍하는 신세가 된다고 하며 그때 트럼펫 연주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것이 전설의 시작이었다.
학창 시절 때 마돈나의 재능을 알아본 체육 선생님은 넌 이런 시골마을에 있을 아이가 아니니 뉴욕으로 가라고 했고, 마돈나는 세계적으로 성공해서 자신을 알아봐 준 선생님의 사망소식을 듣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선생님의 장례식을 자신이 주관해 거대하게 치렀다.
이건 네이버로 불가능하다. 네이버는 당신을 모르고, 트럼펫을 가르칠 수 없고, 의사를 환자의 사정에 맞게 무료로 불러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네이버 정보를 흡수하는 것은 오롯이 정보 접촉자 당사자의 몫인데, 성숙하지 못한 어린 친구들이 정이 없는 정보에 노출되어 성장해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라는 개념을 배우지 못한 것이 지금 MZ세대다.
심지어 이건 학교도 마찬가지고 학원도 마찬가지기에 네이버를 더 가까운 대상으로 믿는 학생들은 개인화가 되어 가는 것에 대한 아무런 거부감이 없는 상태로 길러졌다.
이런 것만 보면 데카르트가 인간은 태어날 때 기본 소양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보다, 존 로크가 인간은 태어날 때 백지상태로 태어나는 것이다,라는 말이 더 맞는 거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T6OuhCCPLpo
과거 서로 만나서 대화를 하지 못하는 경우의 가장 대표적인 정보체계는 책이었다. 책의 장점이자 단점은 궁금한 걸 물어볼 수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자면 나 같은 경우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청년들을 계몽하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했는데 사형 처분을 받고 탈출을 할 수 있었지만 악법도 법이라며 죽음을 받아들인 걸 이해하지 못했다고 지난 글에 올렸다. 그 생각은 어른이 되어서도 의문을 가졌고 나중에 다른 책으로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책을 읽고 의문을 가지면 그것을 계속 생각하게 된다. 스스로 답을 찾기도 하고 이런 뜻일까? 저런 뜻일까? 추론도 할 수 있다. 한용운이 시에 남긴 님은 국가일까? 사랑하는 사람일까? 같은 의문말이다. 그러면서 그의 다른 시도 비교해 보고 그의 일생도 찾아보면서 탐구하는 힘을 기를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책의 힘이다. 책은 의문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그래야 지속적 생각이 가능하고 책의 본질을 최대한 많이 뽑아 먹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정이 많은 인간을 넘어 지혜를 가진 인간이 되고 대표적인 직업인 학자가 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이런 과정으로 가는 길이 바로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토론이다. 토론은 의문의 꼬리에 또 꼬리를 물어가면서 대화하는 방식으로 지식은 물론 지혜의 확장이 이뤄지고 나중에는 뇌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게 없다. 책을 그냥 눈을 읽는 것도 되지 않아서 속독이랍시고 그냥 훑고 가는 수준이고 학교에서는 토론이라고 하면서 다하는 말이나 늘어놓은 수준에서 머문다. 그도 그럴 것이 교사라는 직업을 하지만 제대로 책을 읽지도 않았을 거고 토론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니 자신이 가진 지혜도 중고등학교 수준밖에 되지 않아서 토론을 리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이런 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리는 교육에 전혀 눈을 뜨지 못하고 그냥 학교만 가면 되는 줄 알고 살았고 그렇게 인터넷을 들어서고 네이버는 탄생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심지어 네이버는 화면으로 정보만 말한다. 찾고자 하는 것을 바로 알려주며, 당신이 알고자 하는 것만 찾아주며 그 정보의 의미는 물론이고 당신의 현재의 안위와 미래의 지속성을 걱정하지 않는다.
네이버는 결국 우리 너무 빨라져 버린 사회변화, 그로 인한 어른들의 무관심, 자신의 주머니만 신경 쓰는 정치인들의 야욕, 학자들의 무사안위주의에 태어난 신어른으로 자리 잡아버렸다.
https://spike96.tistory.com/16463594
▲ 그럼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런 신어른을 상대한 MZ세대는 과연 사람사이에서 사회생활이 가능할까?
엘리베이터에 부장님과 함께 타도 인사를 하지 않고 부서문을 지나서 인사를 한다. 점심시간에는 사수와 마주 앉아 밥을 먹어도 아이팟을 끼고 서로의 교감은 단절한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신어른을 접하며 살아온 세대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상인 거 같다. 더군다나 최소한 같은 또래 친구와 정을 교감하지 못하는 깊은 대화는 불가능한 사람이라면 더 그렇게 될 거라고 본다.
이들의 삶은 화면으로 이뤄져 왔으니 굳이 내가 불편하면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당연히 여긴, 그냥 전원버튼만 누르고 화면을 꺼버리는 되는 삶을 살았으니까 말이다.
이들에게 지혜를 가진 세대도 정보일 뿐이다. 망치는 모든 것을 못으로 보는 경향을 가지듯 이들이 정보자체가 되었기에 우리가 아무리 정과 지혜로 뭉친 존재라고 해도 이들은 우리를 정보이상으로 보지 않는다(혹은 보지 못한다.). 그래서 늘 이들은 꿀팁 꿀팁하면서 꼼수만 부리는 정보만 찾으려고 한다.
꿀팁은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지 인생을 편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에 적용이 되지 않는 무용지물 일뿐이다.
정은 간섭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었고, 지혜는 꼰대라는 말로 대체되었으며, 충고는 가스라이팅이라는 말로 대체되어 우리의 접근 혹은 인간의 접촉을 거부한다. 그러니 굳이 부서 출입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아는 척할 필요 없고 점심시간은 내 시간이니 교감을 이룰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MZ세대 자체가 정보가 되었으니 그들은 우리가 아무리 소크라테스 같은 인간이라고 해도 그냥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사람에 불과한 그것도 정확한 의미를 담은 정보가 아닌 일본 학자가 편의상 요약한 정보 수준으로 아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고 사용되지 않으니 그냥 들은 적 있는 수능용 지식수준으로만 인지될 뿐이다.
만약 박보영이 차태현을 먼저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렇게 오래갈 이유가 없어 보이는 배우가 이런 지속성을 보이는 건 아마 차태현을 가장 먼저 만났기 때문일 거다.
박보영이 과속스캔들을 찍을 때 처음 대한 선배가 차태현이었다. 차태현은 수입에 일정 부분은 항상 스탭을 위해서 써야 한다고 가르쳤고 촬영장에서는 항상 인사를 깍듯이 하며 화면에 나오지 않지만 수고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경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만약 박보영이 자신은 배우를 하려고 하는데 연기는 가르치지 않고 자꾸 연기에 필요 없는 정보만 남발한다고 생각하고 이걸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떨까? 아직까지 활동하는 지금의 박보영은 없을 것이다. 박보영을 대체할 배우는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체된 혹은 하루아침에 사라진 배우는 셀 수 없이 많다.
https://www.youtube.com/watch?v=zIAlOuBNb9o
지금의 MZ세대가 이런 식 일거다. 내가 제주도에서 같이 일한 군대 막 제대한 게스트 하우스 스텝도 그랬고, 26살 직장에서 일할 때 군대 막 제대한 알바도 그랬다. 어떻게 해서든 일터에서 더 놀 생각만 하고 하기 싫은 건 안 하려고 노력하며(짜증 내며) 돈은 돈대로 챙겨 받고 싶어서 안달인 내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희한한 세대였다. 그 세대의 이름이 지금의 MZ세대 초기 주자였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들은 밀레니얼(M) 세대인데 여차하다 보니 Z세대와 동급이 되어버린 세대가 되었다. 이건 아무래도 네이버라는 같은 부모를 둔 영향이 크다고 봐진다.
직장에서의 태도를 가르쳐주려고 해도 그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마치 야생동물처럼 말이다. 어떤 알바는 "나에게 좋은 말 해주시려는 건 알겠는데 나한테는 필요 없어요!"라고 하며 대들었다. 퇴근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 필요 없다고 하는 세대를 어떻게 가르치겠는가. 내가 꼰대인가? 이들이 사회부적응자인가?
차라리 인공지능 AI라면 입력이라도 해서 출력을 할 텐데 근무시간에 일이 없다고 퇴근을 해버리건 동물이 그 자리가 싫증이 나서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경우와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정보자체. 내 동영상 플레이어라는 프로그램(정보)에 동영상 파일을 더블클릭해서 작동시키니 맞는 코덱이 없어서 작동을 하지 않는 것. 그래서 나는 작동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MZ세대. 고성능 프로세서는 맞는 코덱을 인터넷에 연결해서 찾아서 다운을 받아 작동을 하게 할 텐데 정보자체는 그걸 어떻게든 해결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나는 했다. 하지만 안된다. 그래서 나는 안 한다.라는 공식(정보)을 내세우는 세대.
마치 이태원 참사 때 나는 지원 요청을 했지만 그들이 들어주지 않은 것이니 사고가 나도 나는 제대로 일을 한 것.이라는 공식을 내세우는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 그럼 정치인들도 MZ세대인가?
안타깝게도 네이버는 MZ세대들에게만 영향을 미친 건 아니다. 네이버가 등장할 때 어린애들만 사용한 건 아니니까. 그건 네이버를 처음 접할 시점의 정신적 수준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다들 정보차제 수준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영국의 브랙시트와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인 블록 경제체제이다.
어릴 때 본 동화 중 기억나는 것이 있는데 눈보라 속에서 두 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눈밭에 사람이 쓰러진 것을 발견하고는 한 사람은 업어서 같이 가자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지금 우리 사정도 어려우니 그냥 가자고 했다. 결국 같이 가자고 한 사람 홀로 쓰러진 사람을 업어서 갔다. 업어간 사람은 무게로 인해서 걸음이 점점 느려졌고 둘은 멀어져 갔다. 그리고 눈보라는 그쳤고 업고 간 사람은 이네 앞질러간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쓰러져 죽었다. 업어 간 사람이 살 수 있었던 건 두 사람의 온기를 나눌 수 있었기에 추위를 이길 수 있었다.
나는 동화중에 동화가 가장 인상 깊다. 인간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이유를 가장 명확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은 유럽을 포기하고 자신들만 잘 살기로 결심했다. 미국 자신들은 이제 스스로 살 것이며 캐나다와 멕시코, 일본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경제의 문을 닫겠다고 했다. 영국은 지금 엉망진창이다. 세계 최고의 교육학을 지닌 대학이 있지만 조 단위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총리는 거지에게 직업이 없냐고 물어본다. 영국의 엘리트 교육은 엘리트들이 국민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만든 시스템이라고 알고 있는데 지금 보니 이제는 자기들만 잘 살겠다고 만든 시스템으로 전락한 지 오래된 거 같다. 그 덕에 지금 영국 경제는 프랑스에게 밀렸다. 프랑스도 사르트르가 죽은 뒤 철학의 구심점을 잃어 국민들이 방황하고 있는 상태지만 그래도 근대 철학은 프랑스와 독일이 더 강했으니 영국보다 더 오래갈 거라고 본다.
아무튼 난 브랙시트 현상을 세상의 국가들이 아버지를 잃은 현상으로 봤다. 철학의 발전과 지금의 민주주의 근간을 만들었고 그리고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산업혁명을 이끌었으며 1차 세계대전의 멍청한 처사를 극복하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이 세상의 아버지 격 국가가 드디어 자식들을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나에게는 이 세상이 혼란의 시기가 오겠다는 것으로 인지했다.
(친) 아버지를 잃은 미국은 당연히 망나니 짓을 했고 대통령이 바뀌었어도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고 있다.
과연 이들은 구글에 영향을 받지 않은 세대라고 할 수 있을까? 심지어 브랙스 트는 국민투표로 이뤄졌으니 이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인터넷 검색 브라우저로 배운 세대에게는 자신만이 중요하다. 그래서 현대의 사람들은 인간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그러니 영국은 유럽연합과 함께 하기를 거부한 거다.
영국이 EU에 가입을 한다는 것은 동유럽 이주민이 영국에서 경제 활동이 자유롭다는 뜻이다. 물론 영국인들은 그만큼 일자리를 잃기에 불만을 느끼겠지만 그렇다고 탈퇴를 해버리니 지금과 같이 경제 몰락으로 이어지게 되는 거고 공유정서(온기)가 줄어들어 더 자기밖에 모르 되니 국제사회에서 더 고립되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 그래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한 마당에 영국연합들은 더 영국과 떨어지려고 할 것이고 그건 영국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세상을 배우고 지식을 익히고 사람에 대한 정을 모르는 세대는 MZ세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가장 강하게 어필된 세대가 MZ세대일 뿐 우리 모두가 감염되어 있고 정도 증상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보니 코로나 바이러스는 타이밍 맞게 발현이 되어 전 세계인들을 서로 뿔뿔이 흩어놓아 서로를 뭉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치 우리 지금 인간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 마냥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뭉치고 싶어 한다. 단 친한 사람들하고만 말이다. 친한 사람들. 서로 생각이 맞는 사람들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거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과 만난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발전, 변화를 하기 싫어한다는 기준으로 해석하자면 의미 없는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는 지속적 발전과 변화를 일으키는데 비슷한 존재(국민)끼리만 모여서 술 마시고 얘기를 한다는 것은 발전과 성장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니 영국이 고립되어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것과 같은 현상을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될 거라는 뜻이다. 우리나라도 한민족에 대한 정서가 있어서 영국보다 더 국제사회에 고립되고 붕괴할 수 있다. 발전과 변화를 일구려면 종의 다양성은 필수다.
얼마 전 26년 지기 형을 만났다. 내가 20살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만난 형이다. 중간에 큰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보통 사람들보다는 경제적 안정을 취하고 살아가는 형이었다. 그런 형이 40대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이미 1년 반전에 철학서를 읽는 게 좋을 거라고 말을 했지만 그건 이제 우리가 40대로써 그리고 형의 조카에게 세상을 말해줄 수 있는 (외) 삼촌으로써 살아가는 삶의 목표에 대해서 얘기할 때 한 말이지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방에서 보름동안 나오지 않았다고도 했고, 등산을 가고 두 시간 동안 한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한 곳만 응시하는 시간이 늘고 있다고 했다. 그런 형을 본 어느 등산인이 그 형이 위험해 보여서 말을 걸기도 했다고 했다.
돈으로는 별 문제가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이 형이 방황을 하고 있는 건 비슷한 유형의 친구들만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늘 술만 마시는 즐거움만 쫒는 친구들, 남에 뒷담화만 하는 친구들, 연예인이나 얘기하는 친구들, 이 형이 늘 술값을 대신내주 기를 바라는 친구들 등등. 그래서 난 가능하면 그런 친구들을 만나지 말라고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굳어진 친구 관계를 정리하면 이 형은 혼자가 되는 것이고 새로운 친구를 만들 힘이 없으니 외톨이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47살이 되어버렸고 작년부터 우울증을 겪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형은 내 생각이 많이 낫다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 연락하면 혼날 거 같고 철학 얘기를 꺼낼 거 같아서 안 했다고 했다. 하지만 삶의 목표를 잃고 멍한 삶을 살고 있는 형에게 철학을 운운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삶의 목표를 찾는 법을 알려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만약 이 형이 철학을 외면하고 그냥 갱년기로 호르몬 작용 때문이라고 넘겨버린다면 이 형은 평생 자신 인생의 목표를 찾지 못하고 평생을 표류하게 될 것이다.
새벽 4시까지 소주 26병을 마시고 남의 집 초인종을 눌러서 문 열라고 술주정하는 성향이 비슷한 친구들로는 인생의 목표를 재설정할 수 없다. 기껏해야 자식들 걱정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우울한 감정을 덮어쓰기로 외면하는 사람들이나 보면서 결혼을 안 해서 그런가? 하는 의문만 가지는 것이 다 일거다.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야 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굳어진 삶에서 다른 성향의 삶을 가진 새로운 방식은 거부감이 든다. 그래서 이 형은 다음에 만날 때는 철학 얘기는 빼고 하자고 한다.
20, 30대에 인문학적인 소양을 갖추지 못하니 40대 때는 그것이 불편하다고 판단을 하여 해야 할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서 무리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바란다는 뜻이지 타인의 삶을 보면서 더 나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의 삶을 배워간다는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방식을 정치인들이 정치를 한다면 그냥 국가가 몰락이 되는 당연하다. 즉 MZ세대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검색 엔진 브라우저의 자식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부자(권력자)들은 자신들은 안정적이라고 생각해서 네이버 세대 이전부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꺼려하면서 지냈다. 그들은 갑질문화를 만들었다. 자신들을 위해서 일하는 인간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이 없는 존재,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존재, 돈과 권력밖에 모르는 존재, 돈 버는 정보가 아니면 의미를 두지 않는 존재, 만나도 돈 되는 사람들만 만나는 끼리끼리 단체, 그 이하의 사람들은 외면하는 존재. 다시 말하자면 이미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부자(권력자)들은 MZ세대였던 것이다.
단지 차이는 그들은 부자(권력자)고 지금 MZ세대는 가난하고, 그들은 나이가 많고 MZ세대는 어리고, 그들은 그 세대의 소수 집단이고 MZ세대는 두 세대 전체를 아우르는 차이점으로 인해서 우리는 부자 MZ세대를 인지를 하지 못한 것이다. 그냥 부자는 못된 사람정도로만 치부하고 넘겼다.
그래서 지금의 MZ세대는 열심히 일하지 않고 돈을 많이 벌면서 걱정 없이 사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삶고 있다. MZ세대의 속성은 착취형 부자(권력자)와 같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사람이 정치를 하면 국민을 사람취급 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타국과의 연결도 끊어져 국가가 고립이 되고, 경제는 쇠퇴하게 되며, 주변 강대국들은 어슬렁 거리게 될 테고 한번 훅 찔렀을 때 깊은 상처를 받게 되어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리게 될 거다. 그리고 그들의 통장은 0 이 불어날 것이다. 하지만 우리 통장은 마이너스 숫자가 늘어갈 것이다.
결국 사람이 사람 사이에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모르는 세대와 부류들은 사회에서 생활이 불가능한 것이다. 권력형 MZ세대들은 우리를 더욱더 쪼으며 세금이란 이름으로 약탈을 할 것이고, 현시대의 MZ세대들이 나이가 들어 그 뒷세대도 같은 성향을 가진 세대로 성장을 한다면 그들의 압도적으로 세상을 지배해하는 꼴이 된다. 그러면 이들은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살아갈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버블 세상을 만들어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마치 좀비 세상에서 높은 벽을 쌓아놓고 살아가는 인간들처럼 말이다.
▲ 또 하나의 원점 네이버 이하의 정보화 인간은 사회에 필요한가?
아직은 기계적으로 필요하다. '사회생활 = 직장생활'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직장 생활은 크게 보면 회사가 돈을 벌기 위해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욕망을 파악해서 창조적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것을 대량 생산하고 파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네이버 이하의 정보화 인간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기는 어렵다. 욕망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도 되지 않고, 된다고 해도 그걸 대량생산으로 만들어 낼 초기 상품을 만들어낼 창조성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필요한 분야는 대량 생산을 하고 파는 행위다. 공장식(단순) 서류 작업을 하거나, 생산직 공장에서 일을 하거나, 생산된 물건을 파는 분야에만 필요할 거라는 뜻이다.
그나마 이 분야도 곧 AI가 접령을 할 거다. 기계식으로 일을 하면서 돈을 많이 받기만 바라는 MZ세대는 이제 사회에서 자리 잡을 곳이 없다. 지금 남은 자리도 곧 AI가 다 차지하게 될 거다.
이런 세상은 학력도 의미 없다. 점점 더 우리는 인터넷 검색 브라우저에 빠져서 살아가게 된다. 심지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은 검색도 하지 않고 그냥 대충 훑어보다가 재밌다 싶으면 보고 재미없으면 넘겨버린다. 무엇을 궁금해하는지도 모르니 무엇을 궁금해야 할지는 더 모른다. 시간의 개념을 배운 적이 없으니 늘 지금 재밌는 것만 쫓아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미래에 마땅히 내가 되어야 할 존재로 성장하기 위해서 인내를 하면서 공부하고 운동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이건 좀비와 같은 삶이다.
그러다 돈 떨어지면 돈 있는 사람에게 붙는다. 연애의 형태로 말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우리는 인간을 더 믿지 못하게 되고 점점 더 사람들과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지금도 이런 일들은 벌어지고 있다.
이런 세상이 징글징글한 사람들은 이미 AI와 대화를 하고 있다. 삼성 이재용 회장은 이미 그러고 있다. 그리고 이제 곧 우리도 그렇게 될 거다. ChatGPT가 세상에 등장했으니 말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인류는 신어른으로 ChatGPT를 두게 될 거다. 모르면 물어볼 수 있고, 대화도 가능하며, 키워드만 주면 각종 소설도 써주고 과제는 이제 믿고 맡기면 A+다. 심지어 도덕적 기능을 두어 학교 폭력에 복수하는 소설을 써달라고 하니 그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거부한다. 검색 브라우저의 옷을 입고 있는 AI는 점점 더 인간스러워진다.
인간은 ChatGPT를 두고 막을 것이냐 활용해야 할 것인가를 잠시 논의하다가 활용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네이버도 활용하지 못한 인간이 과연 이런 막강한 ChatGPT를 활용할 수 있을까?
솔직히 이런 막강한 ChatGPT를 다룬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5%도 되지 않을 거다. 우린 그냥 이 ChatGPT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거다. 그리고 우리는 서서히 뇌를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다. 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동물처럼 본능에 이끌려 사는 삶이다. 그 형체가 인간이기에 좀비라고 불려도 상관없을 거다.
부모가 인간이 아닌 AI(검색 브라우저)가 된 세상은 이미 예고편*을 치렀다. 그리고 본편인 ChatGPT의 시대가 막 시작되었다. 앞으로 20년 뒤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자연재해가 30년 뒤쯤에 1차 재앙으로 들어 닦친다고 하는데 당장 20년 뒤의 인간으로서의 삶이 위태롭게 느껴지는 건 나만의 과대망상인가?
*단지 그걸 아무도 모를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헛소리라고,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을 옥스퍼드 같은 대학에서 20년 동안 재직한 교수였다면 헛소리라고 할 수 있을까?
일단 ChatGPT가 자연재앙을 막으라고 하지 않는 이상은 우리는 자연재앙을 대비하지 않을 건 당연한 거 같다. 웃긴 게 나 또한 이글에서 ChatGPT에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거다. 자연재앙을 막을 생각이 없는 인간이 만약 ChatGPT의 명령으로 자연재앙을 막으려고 한다면 누가 인간인가? 누가 주인인가?
▲ 신어른이 인간으로 재등장할 수 있을까?
간디는 세계적인 인물이다. 간디를 몰라도 비폭력이라는 단어와 연결하는 건 그리 어려운 건 아니다. 영국의 지배에 인도가 있을 때 간디는 비폭력 운동으로 영국 제품을 불매하는 것으로 저항을 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를 위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원기 회복을 위해서 어린 여자애와 함께 잠자리를 하는 소아성애자였고, 아내가 아플 때는 영국인에게 진료를 받으면 안 된다고 해서 죽음으로 이르게 했지만 자신이 아프니 영국인들에게'만' 진료를 받겠다고 한 이기주의자였다.
전 세계는 간디의 이런 행동을 어느 정도 용인하고 묵인하고 그의 올바른 행동에 먹칠이 되지 않게 보호한다. 그래야 비폭력 저항이라는 인간다운 행동을 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위인전은 얼마나 위대한 인물로 묘사되는가!?
요즘 이런 인물이 나오면 묵인할 거 묵인해서 따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어떻게든 간디의 뒷이야기는 새어 나올 테고 우리는 그를 변태 성욕자라고 알게 될 테고 와이프에게 행한 이기주의 만행으로 경악할 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인터넷이 등장한 세상에서 다시 인간으로 어른을 두는 일은 생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완전무결한 인물이 나와봤자 그 사람도 잘못이라는 경험으로 인해서 배운 게 없는 그래서 성장하지 못한 아는 것만 알고 모르는 것은 몰라서 다 안다고 착각하니 세상을 반으로 쪼깨서 생각하는 인간으로 성장한 인물일 거다.
결국 우리가 어른으로 모셔야 할 인물은 올바름을 추구하되 세상의 상황에 따라 적당히 오염된 사람인데 우리는 그 적당한 오염이 마치 전부인 양 혹은 그 사람의 본래 모습인 양 폄하하여 세상에 떠벌리게 만들어 그 사람을 매장하는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다들 나만 중요하니 내가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고 어떻게 해서든 그 사람을 매장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 도구로써 인터넷이라는 것은 최고의 그리고 최강의 무기가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현재 최고의 인물은 유재석, 아이유, 오은영, 강형욱, 백종원 정도밖에 될 수 없다. 이 정도 수준이 지금 대한민국의 위인 아닌 위인으로 추대받고 있는 것은 우린 지금의 난관을 극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들이 그걸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는 일이고 있다고 해도 말하는 것은 정치적이고 정치적이면 적이 생기고 그럼 수입에 문제가 생기고 그걸 소속사가 보고 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김형곤 같은 연예인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상태이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 속도가 조금 늦거나 조금 빠르거나 할 뿐. 인간이 인간을 어른으로 모시고 인간 사회에서 인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 회생의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더군다나 중국은 한나라 이후 공자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시국인데 그 내용은 결국 국민이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요구하는 덕목만 활용한다. 공자도 군주에 대한 덕을 얘기했다. 하지만 공자의 시대에도 활용되지 못했고 그건 플라톤도 같은 입장이었다. 그래서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200~300년 뒤 한나라에서 공자의 사상을 도입했고 그것이 천황을 어떻게 모시는지에 대한 것만 어필한 것이다. 공자가 그랬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왜곡된 사상이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지금도 우리는 그것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효도를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낸다. 명절 때 반드시 부모님을 찾아가 마사지를 하고 용돈을 드려야 한다는 법을 만들었다. 자신이 가지 못하면 대리인을 보내야 한다. 그렇게 부모를 모시듯 국가를 대하라는 사상을 공자의 이름으로 퍼트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전 세대를 아울러 가장 불쌍한 세대가 MZ세대이지 않을까 한다.
전생이 터져도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가려고 애를 쓰면서 인류애를 느낀 세대가 있고(386), 그 안에서 어떻게든 희망을 보려고 노력을 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낸 집안이 있고(486), 그럼으로써 나라가 세계적인 국가로 발돋움을 하는 것을 지켜본 세대가 있다(X세대). 그 안에서 서로 조금은 맞지 않아도 그래서 서로 다투더라도 친구랍시고 서로 화해를 하면서 최대한 사이좋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인간미를 느낀 세대가 있다.(X세대, 밀레니얼 세대)
하지만 지금 MZ세대는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돈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이 마치 전부인 양 사는 세대처럼 다들 돈돈 거리면서 친구, 가족, 지인들과의 관계는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한다.
전 세대를 통틀어 자신들이 젊다는 것이 늙음보다 괴로운 세대가 지금 MZ세대가 아닐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 보이니까.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진짜 행복한 세대는 일제강점기 때 나라를 팔아서 부를 축척한 세대가 가장 행복한 세대 같다. 독립운동을 해봤자 그 자손들은 거지꼴로 살고 있고, 천안함이 북한에 공격을 당해 죽어간 청춘들은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에 비하면 보상금을 받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는 수준이다. 이태원 참사는 안타깝지만 이들이 세월호 유족과 함께 천안함 공격에 사망한 군인들과 보상을 나누자고 하거나 그들에게 더 줘야 한다고 말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런 어른들을 보면서 살고 있는 MZ세대들은 과연 인간과 함께 사는 세대가 맞는 걸까?
노자는 도를 도라고 규정을 하면 더 이상 도가 아니라고 말했다. 인간을 인간이라고 규정을 하면 그 안에 인간이라는 규칙을 집어넣어 버려 규칙밖으로 나가는 인간이 인간이 아닌 취급을 받게 된다. 그러니 더 나아질 수 있는 그 밖의 인간들은 더 좋은 인간이 되려고 해도 그 안에서 갇혀 발전이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을 단어의 규정이 아닌 토지나 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을 읽고 관념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지를 인지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판사도 인간을 노자가 도를 말하듯이 그런 기준은 이런 식으로 인지하며 할 거다. 판사가 의사의 기준으로 인간을 규정하면 아무도 처벌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푸틴을 인간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히틀러의 만행도 인륜을 저버린 행위라고 규정을 내려야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인간을 규정할 수는 없지만 폭력적인 행위를 통해서 비인간적인 것은 판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윌 스미스의 행위는 아무리 와이프를 위한 행동이라고 해도 아카데미에서, 전 세계가 다 보는 곳에서는 참을 줄 알아야 했고 조용히 뒤에서 해결했어야 했다. 그래서는 안 됐던 것이다. 그의 폭력은 정당해 보이기도 하고 작은 폭력에 해당되지만 그런 공공적인 장소에서는 대중을 향한 영향력이 크기에 그런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위험한 건 이 사건에서 우리나라만 윌 스미스의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처음에는 사회자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장소에서 아무리 웃기려고 했다고 해도 너무 했다,라는 생각이 들어 윌 스미스의 행위를 어느 정도 용인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 생각해 보니 전 세계가 보는 장소에서는 파급력을 고려해서 나중에 폐쇄된 공간에서 해결할 문제였다고 생각을 고치게 되었다.
비인간적 행위는 비인간적 행위인거지 상황에 따라 그리고 상대방에 따라 인간적 행위가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괴물을 죽이기 위해서 괴물이 되어야 하는 거지 괴물이 잘못된 존재이기에 내가 처분하는 건 내가 인간이기에 하는 거라는 식의 방식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후자가 바로 네이버스러운 생각이라고 보면 된다. 결국 브라우저의 생각은 보편적 노동자들이자 그들을 부모로 둔 사람들의 생각의 집합체이며, 그 이상의 생각이 있다고 해도 그 이상을 볼 줄 모르는 소양을 갖춘 상태이기에 있어도 보지 못하고 보더라도 다수의 생각이 아니기에 무시하게 된다.
이 말은 비슷한 인간들과 만나면 그냥 그 수준에서 머문다는 앞의 말과 일맥 상통한다. 네이버나 구글이나 비슷한 사람들 끼리의 정보와 지혜를 나누니 인간이 더 발전하지 못하고, 어른이 되지도 못하는 일이 20~30년 동안 발생했고 그들이 자녀까지 낳을 수 있는 기간이 걸렸으니 결국 네이버의 자식이란 인간이 진화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뜻이 된다. 마치 모글리가 늑대의 정체성에서 발전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그 이유는 비슷한 인간들의 영향을 받은 탓이고 심지어 그것도 직접 만나서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다. 자신의 잘못을 숨기며 신세를 토로하고 그러다 보니 그게 정상이라고 착각하고 그 착각은 사실이 되어 진실을 숨겨도 이상이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거다. 예전에 그것은 일부 부자들이나 하고 정치인들이나 하던 짓이었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보고 배울 것이 있는 어른들이 그런 그런 곳에 글을 올리며 영향력을 펼치겠는가? 설사 있다고 한들 우리가 찾아보겠는가, 찾아본다고 한들 우리 삶에 적용을 해야 한다는 자세로 배우겠는가!?
온라인에는 현실을 배울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삶을 살고 있고 삶은 현실이다. 온라인은 현실을 살기 위해서 조금 더 편리하고 참고만 하라고 만들어 놓은 세상인데 우리는 편리성을 앞세워서 온라인의 세상을 진짜라고 생각하고, 믿고, 따르며 그렇게 길들여졌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현실의 인간을 불편해하며 단절한다.
어떻게 보면 유튜브는 그래도 배울 게 있는 콘텐츠가 있고 접근하기도 좋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우리가 네이버에 10년 이상 길들여진 상태에서 대학 교수들의 통찰력을 애써 찾아가면서 배우려고 하는 태도는 많이 사라지고 없을 거다. 이미 돈돈 거리고 있지 않는가? 설사 찾아서 본다고 해도 내 삶의 태도로 수용하지는 못할 거다.
과거 책도 아주 소수의 적극적인 사람들에게만 허용한 발전된 삶인데 이런 사회에서 유튜브의 콘텐츠가 힘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을 거다.
이런 식으로 성장이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살아간다면 다들 인간을 외형으로만 규정하고, 나와 친한 사람만 인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살아갈 거다. 그리고 이미 그러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예쁘고 멋있는 인간, 부자인 인간, 그런 사람끼리 모여있는 집단, 권력이 법 위에 있는 인간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정도가 전부 일거다. 정보를 기준으로 하면 이들 이하는 나에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세상이 아닌 나와 친하고 비슷한 류의 사람들과만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산다면 조그만 문제가 일어나면 힘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즉각적 보복, 화풀이를 하게 될 거다. 과거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즉결 심판을 했던 시대처럼 말이다. 점점 좀비 세상이 되어가니 돈 있는 (비교적 착한) 사람들을 점점 더 자신들이 활동할 수 있는 세상을 돈으로 만들 거다. 그리고 담을 더 높이 쌓을 거다. 그러니 우리는 점점 더 돈 있는 사람들의 배울 것이 있는 태도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거다. 그러니 우리는 점점 더 가난해진다. 점점 더 가난해지니 점점 더 흉폭해진다. 인스타그램은 그걸 더 부추긴다. 소설 타임머신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는 아주 먼 훗날에는 진화된 인간과 괴물로 퇴화된 인간이 서로 분리되어 공존하지 못하는 세상이 될 거라는 상상은 그리 어렵지 않게 든다.
그 선봉에 우리나라가 있다는 것은 윌 스매싱 사태를 옹호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사태를 옹호한다는 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3700년도 더 된 법전이다. 인간을 그로부터 많은 성장 했다. 또한 누군가를 지켜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는 거다. 그건 자신이나 도덕, 사회적 관습을 이기지 못하는 태도이자 그 사람에게 예속되어 그 사람에게만 칭찬을 받으려는 태도다. 그건 우리만 신경 쓰겠다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태인 것이다.
기본 구심점 사상을 갖지 못하고* 공부해라, 착하게 살아야 한다,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상만으로 살아온 대한민국은 기술적으로는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뤘지만 감정에 입각한 도덕률은 원시적이라고 볼 수 있는 태도를 보였다.
*물론 있다. 우리도 율곡 이이, 퇴계 이황 같은 인물이 있으니 하지만 우리가 평소에 논하는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나, 공자 같은 사람들이고 우린 상식적으로 이이, 이황 같은 인물을 얘기할 정도의 지식을 가지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는 뜻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qhOUdbksSlo
https://www.youtube.com/watch?v=XI5cYrYmGjw
성장이 없는 인간 사회에서 우월감이라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타인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간다.
내가 우월해서 멈춰 있는 인간을 무시하는 행위는 그래도 좀 정당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성공은 소수만 하는 행위기에 나중에 외롭지 않으려면 무시하는 태도를 최대한 자제를 하려고 한다. 과거에는 그랬다. 진짜 착하거나 애써 착한 척을 함으로써 착함을 배우는 계기도 생겼다. 이런 것이 사회적 감옥의 긍정적 효과다.
하지만 멈춰진 인간 사회의 우월감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면 타인을 무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가장 대표적인 무기가 바로 외모다. 심지어 성형의 성장과 네이버(온라인)의 출현시기는 비슷하다.
지금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성형으로 커버해서 부자들을 만나서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는 시점이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부자도 예쁘기만 한 사람들을 거르고 인성이나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들을 찾게 될 거다. 그렇게 되면 과거에 성형이 없었던 시기에 예쁜 여자들이 살았던 삶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연예인이 되거나 화류계에서 일을 하거나 말이다.
예뻐졌는데 인간으로서 성장은 없고 돈 있는 사람들은 성장을 한 사람만 찾고 그래서 살아나갈 길은 젊고 끼가 있으면 연예인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화류계 말고는 살길이 막막하다. 예쁜 외모로 직장 생활을 해봤자 주변에서 가만히 두지 않을 거고 그럴 바에야 직장 생활보다는 화류계가 더 낫다고 생각할 것이 때문이다. 심지어 직장을 구하는 것도 AI로 인해서 불가능에 가까워질 거다.
https://www.youtube.com/watch?v=4FFzP4XRnQU
결국 우리는 인간으로서 성장을 해야 한다. 그것도 다 함께 말이다. 대충의 평균은 이뤄야 주변과 조화롭게 살면서 좀 더 잘살면 약간의 우월감을 충족하고 살며 조금 못살더라도 극복가능하다는 범위에 있다는 안도감으로 2세에 대한 교육에 더 질을 높이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숙제는 크게 5가지로 나뉜다.
1. 나와 어떻게 친해질 것인가?
2. 나의 가족들과 어떻게 화목하게 지낼 것인가?
3. 나의 가족 같은 친구들과 어떻게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지낼 것인가?
4.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어떤 매너를 갖추며 행동할 것인가?
5. 내가 모르지 않는 사람들과 어떻게 예의를 갖춰서 불편하지 않은 관계로 지낼 것인가?라는 숙제다.
행복은 사람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에 인생의 모든 숙제가 다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숙제를 풀어나가는 삶이 성장하는 삶이다. 사람이 사람 사이에 살아가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나와 닮아 있는 사람만 만난다는 것은 성장을 거부하는 만남이다. 또한 내가 인간 사이에 살아가는 존재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접촉이기도 하다. 나와 맞지 않아서 만남을 거부하는 행위는 성장을 거부하는 행위다. 전원 버튼만 누르면 끝나는 인터넷과의 만남에 익숙해진 습관을 인간사회에 적용시켜 정당성을 부여받아 행하는 잘못된 만남의 방식이다.
결국 우리가 회사에 가야 하는 이유는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나 또한 사회에 적응을 해나가야 한다는 존재라는 것을 각인하기 위해서, 그럼으로써 아랫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뛰어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내 삶의 방식이 다르기에 서로 융합해 가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 성장임을 깨닫기 위해서 등등 인 것이다.
결국 회사 생활이란 우리가 인간으로서 성장을 하기 위해 필수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 삶이 이제 실패로 결과를 낸다. 코로나19는 이걸 더욱 가속화시켰다. 그래서 회사도 우리가 싫다고 기계로 대체하고 우리도 회사가 싫다고 일확천금을 노리며 혹은 지구 곧 망한다며 지금 놀아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구직을 포기한다.
그리고 드디어 ChatGPT 시대가 등장했다. 활용을 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인간이지만 우리는 이걸로 완벽하게 인간관계를 단절할 수 있다. 회사도 안 가도 된다. 회사도 우리를 필요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이걸 활용할 수 있는 간 5%가 채 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 이하 20%까지 이해하지 못한 채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용도로 사용할 거다. 이들은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다. 네이버도 활용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ChatGPT를 활용할 수 있는가? 그걸 어디에서 배울 수 있는가? 누가 가르 줘주는가? 우리는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맞는가?
모글리는 사람 사회에 적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정글로 돌아간 건 기억한다*. 우리는 어쩌면 답을 다 알고 있으면서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상위 30%의 인간들의 부의 축적을 위해서 결국 우리가 희생되어 가는 과정의 초입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적응을 했더라도 힘들고 그리워서 돌아갔는지? 적응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ChatGPT를 활용해야 한다고 한 사람이 물리적으로 우리와 인간이기에 그러니 우리도 같은 인간이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오류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그 사상의 오용과 남용이 결국 우리는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뜨려 점점 가라앉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내가 동물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노동자 어머니와 놈팽이 아버지에게 태어나 자라난 내가 리처드 도킨스와 동급일리는 없다. 생물학적으로 같다고 어떻게 동급이 되겠는가. 이런 간단한 논리로 얼마든지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왜 우리는 자꾸 평등이라는 단어에 기대어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칼 세이건 같은 사람들에게는 나 같은 사람은 한심한 인간일 테고 나는 변명할 여지도 없는데 말이다. 그냥 인정하고 살아도 똑같은 삶이고 관점은 더 새로워져 더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데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 사태에서 벗어날 시각을 갖는 방법은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는 그 진리를 깨닫는 거밖에 없다. 이제 각자 살아남아야 한다. 이제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은 사람이 나타나 우리들을 가난(위기)으로부터 구원해주지 않는다. 설사 그런 사람이 있어도 우린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그 사람을 사라지게 만들어버릴 거다.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를 각자 알아서 구원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인간은 자신의 영역에서 서로 소통하지 않고, 서로 건들지 않으면 나도 건들지 않겠다고 살고 있는 들짐승 야생 동물과 다를 게 없는 거다. 즉 스스로 살아남지 못하는 인간은 결국 패자인 거다.* 변명은 없다. 누굴 원망하겠는가?
* 강한 자가 살아남은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거라는 말을 받아들이면서 이 말을 거부한다면 모순인 거다.
제일 무서운 건 이제는 죽는다는 말이 그냥 은유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물리적으로 죽을 수 있다는 거다.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구심점 사상이 없는 대한민국은 네이버의 등장으로 인간의 성장을 정지시켰다. 그래도 서양의 많은 국가들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구심점 사상으로 구글의 영향에서 비교적 잘 방어한 듯하다.* 하지만 커다란 두 국가는 혼자 살기로 결정을 했고 그렇게 하고 있다. 심지어 그 국가는 국가들의 아버지와 아들이다.
*간단한 예로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 독일은 결혼 제도의 모순을 깨닫고 2부 2 처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냥 결혼을 안 해버리는 쪽으로 선택을 한다.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철학이 이렇게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고대 함무라비 법전의 도덕률을 정답으로 인정하고 서로의 관계를 단절한다면 살기 참 힘들 거다.
600만 년 전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호모 사피엔스와 대화를 하기 위해 흔적을 찾아 100km를 걸어서 만났다. 그리고 서로 대화를 시도했고 소통을 했다. 그렇게 1~2시간 대화를 하고 끝내면 다시 100km를 걸어서 돌아갔다.
현대의 우리는 서로 옆 사람과도 아이팟으로 소통을 끊는다. 가족은 그냥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돈 벌어오는 도구다. 나는 그냥 공부만 하면 된다고 착각한다. 그 공부는 교과서를 외우는 거다. 대화의 소재는 없다. 말 통하는 사람만 친구고 다른 사람은 피곤한 사람이거나 적이다. 그런 사람은 피한다. 세계관을 넓히지 못하니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니 이 세계에서는 오직 자신만이 중요하다. 그래서 자신이 생략되어야 하거나 무시되어야 하는 상황을 극복하거나 나중을 기약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냥 지금의 나를 받아들일 사람과 상황만 중요하다. 늙음에 대해서는 일절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니 오직 예쁜 거만이 추구해야 할 덕목이 된다.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이런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잘못된 사명감*을 가지게 되고 적이 될만한 모든 대상을 적으로 간주하고 대한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을 하면 그나마 있는 인간관계도 다 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결혼은 세계관 확장이 주된 목적인데 되려 세계관이 축소가 된다.
*알고 보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함인데 윤리와 상대방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구속과 감시의 힘을 사용한다.
유일한 인간관계의 장인 직장도 우리를 필요하지 않는다. 우리도 더 이상 직장이라는 정글에 노출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안전한 집이 좋다. 세계관은 오직 스마트폰에 의지한다. 그렇게 또 자신만 중요한 사람이 된다. 네이버는 물론이고 ChatGPT도 여러분들은 세상에서 소중한 사람이라고 위로를 할 거다. 그렇게 하루를 버틴다.
600만 년 전의 조상의 인간 중심의 사상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는 지금 반대로 간다. 600만 년 이전의 호모 사피엔스는 동물이었다. 너무 복잡해져 버린 삶에 지쳐서 우리는 점점 단순한 삶을 그리워하게 된 지도 모른다. 단 이 모든 편안함을 다 가지고서 말이다.
생각 없는 부잣집 도련님의 삶을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다들 묘사했는데 돈 많은 동물이 되는 것이 결국 인간의 꿈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거 같다. 하지만 그건 인간이 아니다.
결국 감정이 없는 부모를 둔다는 건 인간이 아닌 삶을 선택하면서 인간 대접을 받고 싶어 하고, 주변의 상황을 무시하고 성장하지 않고 인간 대접을 받음으로써 기쁨을 누리고 싶어 하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부모가 되려면 사람에 대한 정과 사랑, 인류애를 느껴야 하고, 어떻게 다 함께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며, 그럼으로써 인간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알아야 하고, 아는 만큼 성장을 해야 하고, 성장에는 고통이 동반되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그 뒤에는 어른으로써의 존재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어른은 노인과는 다른 사람으로서 길 잃은 20대에 길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기에 단순히 나이만 든 노인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게 하며, 이 지식과 지혜를 내리사랑으로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이 부모가 그리고 어른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네이버와 ChatGPT는 이걸 모른다. 그리고 모글리는 정글로 돌아갔다.
https://www.instagram.com/reel/Cm7OSCGgFQP/?igshid=MDJmNzVkMjY%3D
https://www.youtube.com/shorts/MCMD2eUJRhI
'46년 경험론 >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학이 없는 국가는 국민을 사람을 죽이는 좀비로 만든다. (6) | 2023.11.16 |
---|---|
선과 악은 사회의 분위기가 규정한다. (0) | 2023.07.23 |
모카는 왜 목줄을 풀지 못하는가? (인간의 조건) (0) | 2023.06.04 |
저출산 원인은 국민을 향한 정치인들의 무관심 때문이다. (0) | 2023.04.17 |
교육을 뛰어넘은 재벌형 학폭은 통제 가능한가? (0) | 2023.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