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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 5ㅣ인성이 사라진 사회에 인생을 바꾸는 책은 교과서다

_교문 밖 사색가 2025. 1. 28. 19:43

독서 # 5ㅣ인성이 사라진 사회에 인생을 바꾸는 책은 교과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
이걸 인지하고 사는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여야 독서라는 것이 의미 있다. 허나 지금 사회는 이걸 부정하고 사는 사회다.

 
 
ㅣ한진 택배 남해
 
21날 택배가 설연휴로 인해서 늦어진다고 양해를 부탁한다고 문자가 왔다. 남해는 택배가 밤 10시 넘어서도 온다. 다음날 아침 택배를 확인해 보니 스텝대디 회사에서 설 선물 택배는 있는데, 내가 주문한 다이소 택배는 오지 않았다. 배송 완료문자도 오지 않아서 또 며칠 있다고 오려나보다 싶었다. 23일 오후, 택배가 여태 오지 않아 4시가 조금 넘어서 남해 한진 택배 기사에게 연락했다. 자신은 택배를 이미 보냈다고 하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택배 도착 시간은 21일 10시 59분이었다. 하지만 실물 택배는 도착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설 선물 택배도 한진에서 배송한 줄 알고 그 밤에 힘들어서 내것은 깜박하고 간 줄 알고 차분히 설명을 했다. 하지만 택배 기사의 태도는 자기는 했으니 따지지 말라는 식이었다. 가족 중에 누가 챙겨놓고 몰라서 그럴 수 있다고 하고, 강아지가 먹었을 수도 있다고 하며, 누가 가져갔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 남해 집은 누가 가져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걸 말하니 택배 기사는 인정했다. 집을 아니 당연한 논리다. 설사 그 다이소 제품을 개가 먹을 수 있다고 해도 박스 잔해가 없었다. 바람에 날려간다고 한들 앞에 논에 떨어져 있어야 한다. 가족 중에 누가 챙기면 늘 놓던 곳에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해당사항이 없다고 했다. 
 
그 와중에 나는 선물 백배를 자세히 보니 한진이 아니라 CJ에서 온 걸 확인했다. 나는 택배가 없어졌으면 둘 다 없어져야 하는데 CJ 것만 있는 것은 배송 오류 거나 물류 창고에서 놓친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하기 위해서 다시 설명을 드리자면요.. 하니 그 택배 기사는 "아니 됐습니다. 설명 안 하셔도 됩니다." 하며 건방진 말투로 내 말을 잘랐다.
 
그래서 그냥 나도 한 번 다시 찾아 볼테니 기사분도 한 번 다시 찾아봐달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배송 완료 문자가 오지 않은 것을 캡처해서 문자로 보냈다. 그 기사는 다음날 24일이 되어서도 문자를 확인하지 않았다. 다시 5시가 조금 넘어서 전화를 했다. 한 번 찾아보셨어요? 하니 기사분은 "아뇨, 찾을 필요가 없어서 안 찾아봤습니다." 하는 것이다. 나는, 찾아봤는데 없었습니다. 어디서 착오가 났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줄 알고 그럼 됐다고 말하려고 했다. 설도 다가오는 데다가 고작 30,000원 정도의 다이소 물품이었기에 어머니가 얼굴을 보고 택배를 받는 환경이니 기사분에게 억지를 부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태도는 아주 시건방진 태도였다. 어제의 그 태도가 피곤함에서 오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의 고정 태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왜 문자는 아직도 확인하지 않냐고 하니 확인할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확인하라고 하니 지금도 확인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며 비아냥 거렸다. 화를 내며 몰아붙이니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답하라고 하니 "네네 말씀하세요~ 고객님~" 하는 것이다. 이 새끼야 똑바로 대답하라고 하니 "고객님 욕은 하지면 안되죠~" 하는 것이다. 이 택배 기사는 자기처럼 비아냥 거리고 책임 회피하는 말은 되고 새끼 정도의 욕은 유튜브에서 본 게 있어서 따라 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도 욕을 빼고 너 자식한테도 이렇게 사람을 상대하라고 가르치냐고 하며, 평생 택배나 하며 네 자식도 택배나 시켜라,라고 했다. 잠시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욕설이 들어가 있지 않으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이 새끼 정도가 나쁜 건지 사람을 상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나쁜 건지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었던 거다. 아는 건 어디서 들은 패턴어로 대꾸하는 것이 전부였다. 택배 이야기는 자기는 배송했다, 그래서 모르겠다, 알아서 챙기셨어야지 왜 자길 탓하냐, 가 전부였기에 한번 움찔한 기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화를 들고만 있었지 듣고 있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대꾸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는 택배는 박스 뒤적이는 소음을 냈다.
 
아무튼 택배는 우리집에 흔적도 없다. 


나는 이 택배 기사와의 통화를 통해서 약간의 공포감이라고 해야 할지 위화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감정이 들었다. 어째서 이 기사는 자기 아들을 비하하는데 가만히 있고 사람이 흥분하면 의례의 쓰는, 그리고 자신이 잘못해서 듣는 새끼라는 정도의 단어에는 반응을 했을까? 대체로 새끼라는 정도는 그냥 넘어간다 특히 자신이 잘못을 했을 정황이 있으면 말이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자식 욕하는 건 못 참는데 근데 이 사람은 반대로 하고 있었다. 
 
새끼 정도도 욕이라고 생각하고 욕은 하시면 안 되죠,라는 말은 유튜브에서 보고 배웠으나 욕을 섞지 않고 문장으로 자식을 비하해도 가만히 있는 것은 유튜브에서 보고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자신도 찾아볼 필요가 없다는 말을 생각 없이 내뱉을 수 있었던 거다.
여기에서 솔직히 가족은 건드시는 게 아니죠,라는 말 정도는 나와야 하는데 그건 정치인들이나 그 주변인들 사이에서 하는 말이라서 배우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니 배울 수 있는 점도 자기 영역 안에 있는 수준에서만 배울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그것도 유튜브로 말이다. 어떻게 삶의 태도를 유튜브를 통해서 배우는 건지 위화감이 들었다. 그것도 철학 채널이 아니라 쇼츠로 말이다.
정확히는 인생도 아니다 패턴어 하나 배운 게 다고 심지어 맥락도 파악해서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조건반사적으로 사용하며 그걸 자기 인생에 혹은 최소한 자신의 직업에 사용하고 사는 것이다.
 
이걸 말을 간단히 말하자면 지능이 낮아서 그런 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능이 낮은 이유는 사람과의 관계를 신경 쓰지 않아서다. 그러니 설이라는 기간도 신경 쓰지 않은 거고, 아들 비하도 그냥 넘기는 거다. 결국 인간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의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능을 높이는 것이 된다. 반대로 자기만 생각하면 지능이 낮아진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인간과 연결이 되기 위함인데 그걸 무시하고 자기만 아는 사람이 되니 아무리 좋은 교육을 받아도 지식은 늘어나도 지능이 높아지지는 않는 것이다.
 
이 사람은 지능이 낮으니 자기는 했다, 알아서 챙겨야지 하는 말이나 하는 거고, 찾을 필요 없어서 안 찾았다, 고 말할 수 있는 거다. 그리고 자신은 똑똑하게 잘 처신했다고 생각할 거다. 만약 지능이 평범하고 사람도 자주 만날 수 있는 환경에 있다면 '빈말'이라도 자기도 혹시나 해서 찾아봤는데 없었다고 했을 거다. 이건 '거짓'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예의'인데 사람과의 연결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니 이걸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는 떳떳하니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저능아 발언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 시대가 전국을 휩쓰니 되려 사람의 접점이 적은 시골에서 더 위험한 사람들이 나타나는 거 같다. 사람 귀한 줄 모르니 사람 얼굴을 알고 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서로 주고받는 정이라는 것도 모를 가능성이 높다. 일만 하면 된다는 1차원적이 생각으로 사는 것이 전부가 된 사람이다. 더군다나 택배는 혼자 일하고 혼자 힘드니 서로를 위로하고 독려하고 다독여주는 사람이 없기에 이 사람은 지능을 다시 찾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본다.


ㅣ니콘 키미션 80
 
액션캠이 태동인 2017년, 니콘에서도 키미션이라는 액션캠을 냈다. 방수 기능이 있었는데 SD카드 슬롯에 물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해서 AS를 보냈다. 이틀 뒤에 기사가 전화가 왔다. 제품에는 이상이 없지만 자기가 내 편을 들어서 교체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아주 건방진 말투였다.
 
나는 그 건방진 말투가 너무 마음에 안 들어 '왜 네가 내편을 들어주냐'며 아주 위협적으로 대했다. 물이 들어간 건 제품이 문제인데 제품이 문제여서 바꿔줘야지 왜 니가 내편을 들어주냐고 하니 기사가 움찔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당장 서울로 찾아갈 테니 주소 불라고 했다. 만약 제품에 이상이 없으면 그냥 내가 가져가겠다고 했고 만약 문제가 있다면 다시는 네가 일을 하지 못하게 손가락을 다 잘라버리겠다고 했다.
 
그러니 다시 말해보라고 했다. 제품에 문제가 있냐 없냐고 하니 제품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통화 녹음 파일을 보내라고 했다. 니 건방진 목소리를 내가 가지고 있다고 갑자기 생각나서 열받으면 올릴 거다,라고 하니 '이 전화는 녹음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계속 추궁하니 떨리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그렇게 새 제품을 받았다.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고용이 안정적이어서 좀 건방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거기에다가 인류가 스마트 폰 사용 8년째 되는 해여서 사람들은 혼자서도 즐거움을 찾아서 지내는데 익숙해진 시대로 진입을 한 시기였다. 안정을 이룬 자에게 다음 단계는 존중받고 싶어 하는 욕구다. 사실대로 말하면 되는 것을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으스대고 싶어서 거짓말까지 하는 인간의 출연이었다.


ㅣ보스 사운드 링크
 
보스 사운드 링크 제품은 스마트 폰에서 블루투스 연결 버튼을 누르면 바로 전원이 켜지는 아주 신박한 제품이었다. 페어 해서 들으려고 두 개를 구입했는데 그중 하나가 충전에 문제가 생겨 AS를 보냈다.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길래 전화를 하니 제품 접수된 것이 없다고 데스크 직원이 아주 시건방지게 말을 하는 것이다. 내가 찾아보라고 했다. 그러더니 귀찮다는 듯이 대충 뒤적이는 소리를 내더니 내 물건을 발견하고 있었다면서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냥 접수해 드릴까요? 하는 것이다. 나는 이미 서울 놈들 외국계 회사 다니는 놈들 다 그렇지 하는 생각에 빨리 해달라고 끊었다. 
 
3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길래 전화를 하니 시스템 문제는 다확인해서 고쳐드렸는데 혹시나 더 확인해보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안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혹시 모르니 배터리도 교체해 드릴까요?라고 나를 회유했다. 그러라고 했다.
 
이틀 뒤 AS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그 직원은 짜증을 내면서 요즘 배터리는 40% 정도 남으면 바로 충전해줘야 한다고 훈계를 하는 것이다. 옛날 배터리는 다 쓰고 충전했지만 요즘 것은 다르다며 말이다. 나도 아는데 왜 이렇게 건방지게 자신만 아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준다는 식으로 고마워해야 한다는 뉘앙스까지 풍겼다. 심지어 두 번, 세 번을 말했다.
 
한 번 더 했다면 니콘처럼 훈계해주려고 했는데 딱 마지노선에서 그쳤다. 그리고 그 제품은 여전히 베터리 시스템 문제로 정기적으로 고장이 난다. 2달 전에도 고장 났다.


일단 내가 보스는 비교적 잘 참은 이유는 스피커가 두 개여서 내 생활에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여유 있는 자가 착하게 굴수도 있는 거다. 아무튼 이것도 니콘과 같이 안정이 되었으니 존중을 바라는데 어디서 존중받을 곳이 없으니 무시라는 방법을 사용해서 똑같은 짓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시기도 니콘 사건보다 한 두 해 뒤에 있었다.


왜 이런 몰지각하고 몰상식한 인간들이 출연을 하는 것일까? 결국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다. 그나마 도시는 약한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구조여서 최소한의 상식은 통하는 듯하다. 하지만 시골은 약한 유대관계도 찾을 수 없기에 지금 시대에는 확실히 시골이 좀 더 저능하게 행동한다는 느낌도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과격하고 확실하게 눌러줘야 한다.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은 평등한 관계가 없다는 뜻이고 사람을 상하관계로 인식하기에 자기보다 위나 아래로 판단한다.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직장에는 다녀야 하기에 사람관계를 이런 수직적인 관계로만 인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동창 같은 지인 수준 인간관계에서도 상하로 나눈다.
 
이거 여담이지만 내가 25살 때 전화로 여행 숙박 회원권을 파는 전화가 왔었는데 상품 설명을 열심히 하고 너무 좋지 않아요? 하길래 네 좋네요,라고 답하니 그러면 회원 가입을 하세요, 안 할 이유가 없잖아요,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별로 필요 없어서 안 하고 싶다고 하니 그 사람이 말하길 고객님 여자친구 없으시죠? 어째요 연애도 못하고.. 하는 거다. 나는 이때 타인에 대한 각성을 했다. 인간이라고 다 똑같은 인간이 아니구나. 이제는 사람과 사람처럼 생긴 동물을 구별해서 대해야 하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세 번이나 참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버릇없이 굴면 그건 이 사람의 태도 자체가 그렇다고 받아들이고 아주 강하게 어필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군대에서 내 성격과 성향을 의도적으로 바꾸지 않았다면 이런 사건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그냥 사람 좋게 바보처럼 당하면서 사는 걸 착한 거라고 착각하며 살려고 했을 거다.
 
아무튼 결국 이 사회에서 사람을 돈으로만 대하고 돈이 안 되는 사람이면 자기 발밑의 노예라고 불쌍하게 생각하며 상대적으로 자기는 으스댈 수 있는 느낌으로 하루를 연명하는 것을 넘어, AI 식으로 사람을 대하는데 AI보다 한참 수준이 떨어지는 저능아 태도로 사람을 대하게 되는 것은 결국 그 사람 주변에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매뉴얼대로 자신을 아끼는 수준에서 머물게 되어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거기에 학교에서는 친구도 못 만들고 사회에 나와 돈이 없으면 인간관계는 만들거나 유지할 수 없으며 사회 시스템과 본능에 의해서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이런 과정을 거친 사람이 제대로 된 가정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며 자식을 낳더라도 본인도 매뉴얼적으로 밥 먹이고, 공부하라고 하고, 학교 보내고, 돈 있으면 학원 보내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도 악기와 같이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도덕을 연습할 사람이 없다. 
결국 주변에 사람이 없는 인간의 삶은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니 자신은 택배를 배달했다고 의무를 다했다고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고, 자신은 AS접수 택배를 몰랐으니 접수를 안 했기에 잘못이 없어서 사과를 하지 않았던 것이고, 제품에 문제가 있어도 어차피 보낸 사람은 모를 거라고 생각해서 존중받고 싶은 욕구로 거짓말로 제품에 문제가 없다고 하며 고마움을 받으려고 했던 것이고, 같은 존중의 욕구로 인해서 다 아는 것도 자기만 아는 척하면서 혹은 이 사실을 아냐고 묻지 않고 잘난 척을 하며 무시하는 태도로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씩 하는 것이다.
 
그나마 도시에 사는 인간들은 약한 유대관계의 일상 주변에 NPC적 사람들이라도 있어서 존중 받고 싶어 하는 욕구라고 느꼈기에 강한 압박을 주면 끼익대는 것이 있었는데 아무리 시간이 10년 가까이 지났다고 한들 시골에 사는 인간은 자식을 비하하는 말에도 반응이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 정도면 좀비라고 불러도 되는 것 아닌가 한다. 동물과 좀비의 특징은 주변에 아무리 같은 종족이 있어도 서로 소통하지 않고 자기 기본 욕구만 채우려고 하는 태도로 삶을 지탱하는 수준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형이 사람이니 좀비라고 불려도 충분한 수준이라고 본다. 굳이 세분화하자면, 정신은 좀비, 육체는 최소한의 생존 프로그램만으로 움직이는 안드로이드 수준이 지금 이들에게 딱 맞는 위치일 거다. 
 
그리고 여기까지 이른 이유는 아버지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표준 인간상이 없기 때문일 거다. 아버지는 자식에 대해서 이러해야 한다는 것을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배우지 못했을 수도 있다. 친구 아버지를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없는 사회다. 하지만 얼마든지 책으로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회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는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생각을 하지 않으면 흡수를 못한다. 저건 드라마잖아, 저건 영화니까, 하는 생각으로 접근을 해버리면 문장은 맞는 말이기에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게 된다. 아버지는 돈 벌어서 학교와 학원만 보내면 되는 사람으로 스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걸 하고 있기에 남이 자기 자식을 비하는 말도 별생각 없이 넘길 수 있는 거다. 나는 아버지로 할 일 다 했으니 나머지는 자식들이 알아서 하는데 그것이 택배면 어쩔 수 없지, 같은 생각이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올바른 삶이 아니다. 그렇기에 생각이라도 해야 책이나 영화를 보고 그 삶을 현실로 변환해서 흡수할 수 있는데 인간 대다수는 그리 생각하는 능력이 특별하지 않다. 그래서 대체로 대학 나와서 맞는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인 것이고 사회가 호황기일 때는 별문제 없이 살아가지만 불황일 때는 일자리를 스스로 만들거나 스스로를 브랜드화하지 못하고 징징대며 집에서 사는 거다.
 
그러니 인간의 인격도 직장처럼 있다고 생각하고 표준화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책을 읽고 영화를 보더라도 그 나이에 맞게 살기 위해서 표준화 모델에 적용해서 자신을 바꾸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직장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30대는 어떻게 해야 할지, 50대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바로 표준 인간상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그게 있었다. 그래서 인간 같지 못한 사람을 금수만도 못한 놈이라고 했고, 벌레보다 못한 인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 나는 이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드라마에서 사용하는 것도 못 봤다. 표준 인간상이 없으니 다들 자유분방 해졌다. 성향 상대주의로 인해서 그것도 개성이랍시고 불려지는 꼴이 된 거 같다.
 
하지만 지금 시대 아무리 내 말이 다 맞다고 가정하고 표준 인간상이 있다고 한들 이런 과정을 전 국민이 압도적으로 함께 행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다. 누구 한 명이 이런 과정을 거쳐서 좋은 사람이 된다고 한들 주변에서 누가 인정해 주겠는가? 만약 이런 과정으로 그 사람이 다시 태어나 '공자'가 되었다고 해보자. 그럼 주변 사람들이 과연 그 사람을 2,500년 전의 공자처럼 인정해 줄까? 아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공자를 '씹선비'라고 할 것이다. 너무 못생겼다. 변태처럼 생겼다고 하면서 말이다.
 
결국 나는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 사람들은 인간성을 회복하기 불가능한 임계점을 지난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본다.
 
그러니 독서는 개개인의 뇌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영상으로는 부족한 앎의 즐거움을 채우기 위해서 정도가 딱이다. 지금 시대는 독서로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바뀌더라도 그 바뀐 삶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말이다.


인생을 바꾸려면 세 가지를 바꾸라는 말이 있다. 시간과 공간과 사람이다. 근데 우리가 직장 다니면서 시간 활용을 자유롭게 할 수 있나? 이사 그리 쉽게 갈 수 있나? 제일 쉬운 게 사람인데 주변에 사람이 있어야 바꾸든 말든 할 텐데 함께 있어도 혼자 살기로 결심한 인간들에게 이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리고 이런 말도 다 배울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인데 생각을 할 줄 모르는 인간들에게 이 세 가지를 바꾼다고 해서 배우겠는가? 만약 배울 의지가 있다면 시작은 책과 영상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니 지금 우리나라에서 인생을 잘 살고 싶다면 어차피 친구 못 사귀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학교에서 악착같이 공부해서 서울대 의대를 가라. 친구도 못 얻는 세상 어떻게 서든 학력이라도 확보해서 의대라도 가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도 얻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나라 삶에서는 맞아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럴러면 교과서라는 책이나 파는 것이 상책일 거다.
 
이지영 강사의 동영상속 관객들은 보아하니 다들 학생 같다. 만약 이지영 강사 말이 100번 1,000번 맞다고 해도 그 강의를 듣고 삶이 바뀌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해서 입시도 실패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성인들에게 밥벌이하고 있어서 그래도 좀 여유 있는 사람들에게 강의하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학생들에게 하는 강의 치고는 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 이 시대에 이런 외모로 공자가 아무리 바른말, 옳은말 한들 과연 씹선비말고 어떤 말을 들을까? 공자도 어찌할 수 없는 세상 사람의 인생이 독서로 바뀌지 않는다. 설사 개인의 삶이 바껴도 주변 사람들이 좀비면 바뀐 의미도 없다. 그걸 미리 생각하면 독서를 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냥 출세나해서 여유있는 삶을 살면 끈끈하지는 않아도 약한 유대관계의 사람들과 함께 사는건 가능하다. 잘난척도 해도된다. 우월감도 느낄 수 있다. 한국안에서의 삶은 이게 맞을지 모른다. 이미 학교에서 그러라고 가르치고 있고 말이다. 그들은 부정하겠지만.

 


(여담)
 
정황상 택배는 오지 않은 듯하다. 만약 왔다면 택배는 CJ와 한진 이렇게 두 번이 왔어야 했는데 강아지들은 한 번만 짖어댔다. 그리고 CJ 택배는 아침에 확인했다. 한진 택배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계속 추궁을 하니 한진 택배 기사 "그럼 다이소에서 안 보냈겠죠."라고 했다. 자신이 보냈다면 대체로 끝까지 의견을 밀어붙이게 되어 있다. 거기에 확신을 주기 위해서 집 어디 위치에 정확히 놓고 갔다는 말을 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만약 배송 오류를 했다면 분실보다 찾기가 쉬워서 그렇게 무례하게 하지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 기사는 나는 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강아지가 먹었을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말만 되풀이하며 결정적으로 스스로 다이소 박스 제품을 본 적이 없다고도 말했다.
 
아무튼 이제는 이런 사람들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어떻게든 분리되어 사는 삶이 안전한거다. 하지만 우리에게 택배는 분리될 수 없는 사회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니 이 불안은 이제 기본값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리고 택배 기사를 불안해야 하는 사회가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어머니가 나를 말린 이유는 내가 그 기사를 너무 몰아붙여서가 아니라 요즘 사람들이 무섭기 때문이라고 했다.

 

* 보통 택배가 완료되면 10일 처럼 배송 완료문자가 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정황상 택배가 오지 않았다고 확신을 했기에 공손히 문자를 보냈으나 읽지도 않았고 다음 날 아주 비인간적인 태도로 나를 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