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망해가고 있다 # 7ㅣ저출산은 되려 기회다.
나는 희망이 있다고 쓰고 싶은데 결국 절망으로 향해간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기술 선생님이 지금 학생수로는 전인교육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20명까지는 떨어져야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현재 그 시대가 왔다. 그리고 내가 알아본 바로는 전인 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술 선생님이 틀린 것일까? 아니면 가능한데 지금 교사들이 무능해서일까? 아니면 알고도 하기 싫어서일까? 혹은 그들도 하던 데로 살아가는 무뇌성 인간이기 때문일까? 여하튼 안된다. 나는 그 이유가 기존의 교육을 받아온 사람들이 사회로 나가지 않고 바로 학교로 돌아와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건 공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교사들은 절대 사회를 알지 못하며 사회로도 나갈 생각이 없을 것이며 그래서 사회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관심도 없다. 그들은 (오직) 그들의 인생에만 관심이 있고 연금에만 주목을 하고 산다. 이 말은 교사들은 학생에게 관심이 없다는 뜻과 연결되기도 한다. 이들은 오직 학교의 목표인 대학 진학에만 목적을 두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도 어찌하겠는가? 누구하나 전인교육 말을 한다고 한들 그 사람을 중심으로 뭉치는 일은 없고, 연금에 혹시 누가 될까 봐 (교육) 혁명 같은 생각은 절대 없을 거다.
그래서 나는 이 글에서 가정교육이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가정교육이라는 것이 지금 저출산과 맞물려 부활의 가능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출산은 위기라고 하지만 그건 기존의 대한민국 방식을 계속 추구했을 때 위기인 것이지 상황에 맞게 방향을 바꾼다면 얼마든지 기회가 될 수 있다.
ㅣ철학과의 폐지
취업이 되지 않는 문과 중 특히 철학과는 드디어 존폐의 위기에 몰렸다. 최근 들어 동국대도 철학과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럴 바에야 철학과를 시민들에게 개방을 해서 어른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본다.
무료든 유로든 간에 시험을 보고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신청만 하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서 인간이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타인의 시선에 왜 그렇게 갇혀 사는지 등등을 배울 수 있다면 그 배움으로 자녀들을 가르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되는 것이다.
이게 가능해지면 더 배운 부모로부터의 가정교육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일반 소시민들이 어떻게 이런 철학적인 생각을 다하면서 살겠는가? 그렇다고 서점에 들러서 책을 하나 사서 읽어본다고 한들 일반 사람들은 그 책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 대표적인 예로 쇼펜하우어 철학이 그렇다.
쇼펜하우어가 언제 혼자 살라고 그랬는지 살펴볼 문제다. 쇼펜하우어는 우정도 중요하다고 했는데 왜 혼자 살라고 하는 메시지로 우리에게 전달이 되는지 알아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헤겔을 싫어했다. 칸트가 만들어 놓은 철학을 이리저리 손질하는 꼬락서니가 보기 싫어서 싫어했던 거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철학자였던 헤겔에게 패해서 쪽팔림에 야반도주를 했고 스스로 월계관도 쓰기 어려운 나이라고 한 때가 돼서야 '여유와 보록'이라는 책을 내고 사람들에게 인지도를 얻은 것이다.
그러니 여유와 보록에서 하는 말들은 자신의 변명 철학일 뿐이다. 그걸 지금 사람들은 고독에서 찾은 철학이라고 칭송하는 건데 이런 사연을 아는 나는 솔직히 쪼다 철학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쇼펜하우어는 여자는 아기를 낳기만 하면 되는 존재라고 말했다. 이것이 과연 고독에서 찾은 철학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물론 이 말에는 쇼펜하우어가 살면서 어머니를 비롯한 여자들에게 당한 사연이 있어서다. 그런데 그 대단하다고 칭송받는 철학자가 자기 경험만을 가지고 여자를 저런 식으로 단정 짓는 것은 너무 일반인스러운 생각 아닌가? 그러니 그의 철학(여유와 보록에 한해서만)은 고독에서 찾은 철학도 있는 거지 모든 철학을 고독 속에서 찾은 건 아니다.
아무튼 쇼펜하우어가 우정도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대화가 가능한 존재, 결이 맞는 존재와 어울리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외로움을 멀리하라고도 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헤겔보다 나은 존재라고 생각했기에 주변에 대화가 되는 상대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자신이 젊었을 때 한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책으로 여유와 보록이라는 책을 냈을 거라는 추론은 합리적인 생각이다. 그 와중에 꽤 합리적이고 통찰력 있는 글들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 사람들은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 쇼펜하우어가 그랬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온갖 미디어에서는 그의 말이 다 맞다고 한다. 심지어 다 맞다고 치더라도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상 그 말에 동의하는 콘텐츠를 아무 생각 없이 올려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그러니 누가 제발 이런 현상 제대로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대학이고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철)학자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철학과를 폐지하기보다는 철학과를 더 개방적으로 사용할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일단 여유가 되는 사람들부터 듣게 해서 자신의 행복의 근원을 찾게 해서 만족도를 높여 주변에 그 지식을 퍼트리고 궁금하게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듣는다면 그리고 이 현상이 전국적으로 동시다발적(Big Push)으로 이뤄지게 한다면 주변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되고 더 나아가면 토론도 가능하게 되어 성숙한 어른이 탄생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그렇게 되었을 경우 이미 나이가 있으신 어른들은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어른들은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존재가 되며, 그 존재가 결혼을 해서 아기를 갖었을 때 철학적 소양을 갖춘 인간이 되어 자식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건 단순히 80년대 주먹구구식의 그냥 착하게 살아라,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냥 그런 거니까,라고 말했던 철학과는 수준을 넘어 차원이 다른 클래스를 만든다. 이런 수업은 전 국민이 들어야 한다. 아이 없는 사람들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부모뿐이 아니라는 것도 알 것이며 그렇기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온 마을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는 근본적인 원인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은 지금 시대에 위기가 아닐 수 있다. 정부의 막대한 정책으로 인해서 저출산을 극복하는 나라들은 우리에게 충고한다. 저출산 정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본질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이다. 이런 말은 철학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독일은 육아휴가라는 말은 옛말이다. 지금은 부모시간이라고 하며 회사를 쉰다고 한다. 육아는 휴가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서 나온 언어다. 그리고 이들은 부모의 시간과 마을이라는 공간을 충분히 활용해서 함께 양육을 하는 시스템을 갖춘다. 그래서 부모도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들고 부모의 삶도 질을 높인다.
우리나라는 마을 단위보다 더 시스템을 만들기 좋은 아파트 단지가 구조가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유럽처럼 공동양육 시스템을 만들지 않을 거다. 그런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치인들도 몰라서 그런 문화 혹은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돈 몇 푼 쥐어주고 아이 낳으라고 부추기는 것이 전부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아무도 가지 않는 철학과를 시민들에게 개방을 해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방법이 있다.
저출산은 되려 기회다.
저출산 자체는 위기가 아니다. 저출산은 그냥 저출산이다. 우리가 혹은 정부가 과거의 생각을 지금도 여전히 하던 데로 지속한다면 저출산은 위기인 거다. 다시 말해 사람을 인적자원만 보고 그래서 머릿속에 지식이나 넣어서 자원으로만 쓸 생각만 하면 저출산은 위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저출산을 활용해서 잘 리모델링한다면 우리는 다시 심지어 더 크게 부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기회가 철학의 대중화이고 지금 그걸 이룰 시기다. 바로 저출산이라는 위기로부터 얻는 것이다.
하지만 이걸 기회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애초에 철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없었으니 되살려야 한다는 개념이 존재하기 만무한 것이다. 그러니 이걸 아는 학자층에서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움직여야 하는데 철학과 교수들도 그냥 직업이니 하는 일 수준으로 철학을 공부하니 하는 말이 전부 죽고 없어진 사람들의 말이나 따라 하면서 나는 이 말 안다. 너는 저말 아네, 하는 수준에서 자신들이 지적인 존재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기 바쁘다.
그러니 철학(과)을 개방해야 한다는 생각은 추어도 하지 못하고 할 수 있더라도 하고 싶지 않을 거다. 일만 많아지니까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 철학자들은 철학을 배웠지만 글자로 입력한 수준에 그치고 철학적 자질을 현실에 행동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하지 못한 AI라고 볼 수 있다. 행동을 하지 않는 철학은 철학이 아니다. 만약 행동하지 않는 철학도 철학이라면 우리나라 철학은 AI가 맡아서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철학을 AI에게 배우는 것은 모순적이기 때문에 철학과는 폐지가 되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는 논리가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MBTI가 철학을 대신한다. 그것도 삶의 아주 깊은 부분이나 멀리 보는 부분을 보는 것도 아니라 그냥 성향 정도만 보는 수준이다. 어쩌면 그래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만약 MBTI가 삶의 깊은 부분까지 점령하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알고리즘에 불과한 수준으로 머물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MBTI 철학을 바탕으로 무비판으로 받아들이는 쇼펜하우어 철학에 우리는 결국 또 돈이라는 목적을 답으로 내놓고 살 수밖에 없는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있다. 하긴 쇼펜하우어 이전에 서점 철학과의 주인이었던 니체도 실패한 철학이 더 수동적인 말을 하는 쇼펜하우어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변화시킬리는 만무하다.
요즘 들어 나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최선의 세계일까? 아니면 최악의 세계일까? 혹은 이 사이의 어디쯤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결론은 최선의 세계다. 시대가 여기까지 왔고 수많은 사람들이 유학을 갔다 왔으며 그 사람들이 한자리하고 있는 곳도 많은데 지금의 대한민국의 교육을 오롯이 지식위주라는 것은 우리에게는 사유의 힘을 대중에게 퍼트릴 수 없다는 증거라고 봐야 한다. 그러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한들 더 나은 세상이 될까? 아마 아닐 거다. 우리는 생각하는 힘이 없는 민족이다. 굳이 있다면 지난 글에 올렸듯이 생각하는 수준이 의식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일 거다. 의식주는 물질을 말한다. 물질이상의 세상을 생각하고 스타벅스에서 대화로 끌어내지 못하는 민족에게 있어서 이 보다 더 나은 세상이 있을까? 이보다 더 편리한 세상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은 편리한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다.
나는 여기에서 이 저출산이라는 위기가 곧 기회이고 희망이 있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지금 대한민국이 최선의 세계라면 이 위기는 진짜 위기이고 기회는 없으며 고로 희망도 사라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로 우리가 이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려면 진짜 돈에 미쳐서 많이 벌든가? 의식주 이상의 사유를 할 줄 안다면 그 사유가 통하는 나라의 영주권을 따든가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어쭙잖게 인간답게 산답시고 의식주 이상의 생각은 하지 못하면서 착함이라는 거적때기 둘러쓰고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에게 간섭하지 않으면서 나만 안전하게 살려는 심보로는 아마 이 대한민국을 버티기에는 어려운 삶이 될 거다. 이미 시작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어쩌면 쇼펜하우어 철학이 우리에게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이미 이런 사회라는 반증이라고 보이는 시발점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 시발점은 결국 대한민국이 망해간다고 봐야 할 시발점과 일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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