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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는 # 8, 외로움 # 6

_교문 밖 사색가 2025. 1. 8. 15:32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는 # 8, 외로움 # 6

 

외로움은 암세포와 같다. 사람의 감정을 점점 병들게 만든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미래는 AI가 인간의 일을 다 대체하게 되니 되려 인구가 많은 것이 국가의 짐이 될 거라는 논리였다. 2 + 2 =4라는 논리로는 정확하다. 그리고 제러드 다이아몬드 입장에서는 자기 책을 많이 읽는 국민이다 보니 지적 수준이 아주 높을 거라는 생각에서 그럴 거다. 우리나라는 공원도 없고, 커뮤니티도 없으며 극강의 편리함으로 인해서 인간관계는 최소한만 하다는 것도 모를 거다.

 

PISA 교육 국장이 코로나 시기 때 서양에서는 학업 성취도가 많이 떨어졌지만 아시아 국가에서는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지 않은 이유를 디지털 의존도가 낮고 교사와의 단절이 적었다,라고 말한다. 아마 이 사람은 우리나라의 문화 자체를 모를 거고 사교육이라는 단어도 모를 거다. 설사 안다고 해도 공교육을 무시하는 수준이라는 정도는 아닐 거다. 여기에 사람과 세대와 동물과 자연이 어울려 지내는 공원이 없다는 것도 모를 것이며, 커뮤니티 문화는 자식 키우는 맘카페 수준으로 폭력적인 성향이 강하며, 사람은 최소한으로만 만나며 모르는 사람들은 다 적이고 지성적 대화는 무시당하는 걸 넘어서 안 하는 걸 지나 모르는 수준까지 왔다는 것도 모를 거다. 당연히 교실 안 학생들은 거의 옆의 친구(?)도 그리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는 것도 모를 테고 말이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나라 인구가 적어지더라도 살만할까?

 

ㅣ친구

 

▷ 학교 다닐 때 교사들은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교사들이 말하는 친구는 같은 반 학생을 넘어서 학교 학생 전부를 말한다. 기준은 자기 직장에서 문제 일어나는 거 안 좋아하니까 말썽 일으키지 마라,라는 뜻이다.

 

양아치들은 이 말을 듣고 친구들과 친하게 지낸다. 방과 후에 학교 옆 아파트 단지에 모여 담배도 피우면서 음담패설과 욕을 하고 서로의 우정을 다진다. 물론 학교 안 화장실에서 우정을 다지기도 한다. 그리고 단순 재미와 용돈 벌이를 위해서 적당히 약한 이들을 괴롭히면서 말이다. 양아치들의 친구 기준은 같이 담배 피우고 음담패설 욕설도 하며 주말에 만나서 자기들 딴에는 멋이라고 느낄 옷을 입고 여자들이 올법한 장소에서 헌팅을 하며 여차해서 섹스도 할 수 있는 동료를 친구라고 한다.

 

이들은 교사의 말을 잘 듣는 (착한) 학생이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이들은 친구가 폭력적 어려움에 닥치면 함께 싸워주는 의리도 보인다. 이건 교사들이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을 넘어선 의리의 수준까지 간 것이다. 이들이 악하게 보이는 건 교사가 정한 친구의 범위와 이들의 친구 범위의 차이로 인한 폭력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경계면의 차이로 학교 규칙을 어겨가며 우정을 다지는 이 계층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우정(?)이 지속되는 집단일 거다. 

 

교사 기준 모범생인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혼자다. 이들은 친구가 필요 없다. 대신 이들과 친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 곁에 있다. 그래서 모범생은 인간관계에 대해서 노력하지 않는다. 학교라는 시스템에 잘 적응한 이들은 사회에서 분명 강자가 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으로만 살아가도 충분하다.

 

이들은 양아치들도 건들지 않는다. 학교 시스템이 모범생을 보호하고 있는 구조라서 교사들은 늘 이들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편들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절대적 친구가 없다. 

 

수능을 치고 혁상이(가명)와 수영을 배우러 다녔었다. 어느 날 수영장에서 안병민(본명)이라는 서울대에 합격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서 저녁 겸 얘기를 하러 자리를 잡았다. 주제 중 하나가 친구였는데 안병민은 우리 보고 진짜 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우리는 각자 있다고 했다. 자기는 없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기억하는 안병민은 공부는 잘하지만 비겁하고 야비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초등 동창이었기 때문이다.

 

공부밖에 모르는 모범생들은 시스템 속에서 안전과 안정을 찾는 존재기에 그것을 벗어날 어떠한 행위도 용납하지 않는다. 학교는 그렇게 해야만 살 수 있는 곳이다. 즉 이들은 양아치에게 있는 의리를 배우지 못한다. 성적이 떨어지더라도 어려운 친구를 돕는다는 개념이 없으니 애초에 성적과 상관없이 사는 양아치들과는 다른 세상인 것이다. 그래서 친구대신 얻은 것이 서울대다. 안병민은 그걸로 만족해야 하는데 막상 서울대에 들어가 보니 아쉬운 건 친구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무래도 부산에서 서울로 가게 되니 혼자라는 생각에 자극을 느꼈을 거라고 본다. 어쩌면 서울대 합격을 진심 어리게 축하해 줄 친구를 만들지 못해서 그랬을 수도 있을 거 같다.

 

아무튼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교사 기준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학생으로 분류가 되며 아울러 학교 이력에 도움이 되는 존재들이기에 적극적 보호 대상으로 인지된다. 이들의 외로움은 학교 시스템에서 시작되었다. 아마 이들은 사교육이 없어서 집에서 공부만 할 것이기에 사교육 유무와도 상관이 없는 외로움을 겪게 되었을 거다.

 

가운데 끼어 있는 학생들 중 상위권은 학교에서 인정받는 모범생이 되기 위해서 모범생 흉내를 내며 모범생과 같이 친구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서울대도 못 가는데 서울대 가려고 친구도 포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이들은 사회 기준으로 제법 괜찮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다. 다만 40대에는 80% 이상이 나와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회사 다니는 동안 준비를 잘하면 두 번째 기회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99%는 하지 않는다. 

 

이들은 친구도 없고, 서울대도 아니고 의대도 아닌 상태로 살다가 대충 40대 때 사라진다.

 

중간 중에 중간은 대체로 친한 친구를 만든다. 우리나라 학교 시스템에서는 겨우 여기에서 친구의 영역이 생기는 거다. 그러면 이들이 친해서 그런가? 대체로 아니다. 그냥 학교 생활 무사히 넘겨보려고 대충 하나 잡아서 친하게 지내보는 거다. 증거로 이들 중 한 명이 양아치와 대치 상황이 되더라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고 대체로 모른 척한다. 그래도 이해하면서 관계를 지속한다. 일단 학교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그쪽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부류에서 가끔 돌연변이가 생긴다. 그 돌연변이는 공부 잘하는 동급생 하나 잡아서 친한척하며 지낸다. 어차피 혼자 지내는것보다 둘이 좋다면 기왕이면 공부 잘하는 동창랑 함께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그런 거다. 그리고 이들은 대체로 공부 못하는 착한 동창을 찾아 양아치보다는 비교적 약하게 그리고 은은하게 꾸준히 놀리면서 공부 잘하는 동창과 동질감을 얻으면서 살아간다. 이렇든 저렇든 간에 이들은 어떻게든 이 지긋지긋한 학교 생활을 무사히 지낼 수 있게 도와줄 동창을 한 명 찾는다는 것이다. 아마 이 돌연변이는 양아치 짓을 했으면서 자신은 양아치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 거다.

 

그래도 돌연변이 이외의 이 부류는 이렇게라도 친구를 만들어 지내다 보면 진짜 잘 맞는 친구를 찾을 수도 있고 여러 조건들이 운 좋게 맞아떨어지면 관계의 지속성을 가질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실패하면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혼자다. 처음부터 혼자였던 거보다 충격이 커서 마음이 약한 친구들은 사회 적응이 쉽지 않다. 사회에서도 약자, 친구가 없기에 약자라는 타이틀이 삶을 비굴하게 만들 때도 있다.

 

친구 결혼식에서 이 부류의 돌연변이 동창을 만났다. 여드름 투성이인 강민(정확하지 않음)이는 여전히 여드름 투성이인체로 결혼식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 여드름은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기웃 거리다 중간에 사라졌다. 신랑과 신부 둘 다 친하다고 친분을 과시했지만 결혼식이 끝나고 이들 부부와 함께 하는 자리에서도 끼지 못했다.

 

강민이는 양아치도 아니면서 양아치 흉내 내다가 제일 친한 친구에게 양아치 짓을 하다가 결별하게 되고, 그러다 공부 잘하는 권택수(가명)에게 붙어서 대충 공부 못하는 동창 함께 놀리는 동질감으로 버티다가 졸업 후 권택수에게 버림받고 이런 결혼식 자리에서 마치 우리는 같은 착한 부류였잖아.. 하는 식으로 접근하다 무시당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고 좋은 대학을 간 것도 아니고 당연히 직장도 좋지 않다.

 

(중간) 하위권들은 양아치도 못되고 학교에서도 무시당하며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도 못한다. 공부에는 뜻이 없는데 지금 사회 시스템이 학교를 강제하니 다니는 거라서 공부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좋게 말해) 미리 사회 예행연습을 하는 양아치들과는 성격도 맞지 않고, 이런 상황이다 보니 주변 동창들이 이 부류와 친해질 이유를 찾지 못해서 친분도 쌓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자발적 아싸가 되다 보니 모든 집단에게 무시를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가끔 오타쿠 성향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차라리 그러면 다행이긴 하다. 대체로 이들은 이 사회 시스템에 회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기에 무료함을 느끼는 거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이들이 마음을 고쳐먹어 사회적응 모드로 돌입하면 성적이 상위권으로 오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지 그러고 싶지 않고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이들은 외로움을 스스로 선택한 계층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는 방법? 혹은 사귀지 못하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학교에서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는 학원까지 가서 공부를 하는 상태이니 놀이를 통한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혼자 살 수 있으면 혼자 산다. 그게 제일 편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뤄온 사회 구축 시스템만 잘 이용하면 돈으로 얼마든지 약한 유대관계로 지낼 수 있다.

이런 기본을 바탕에 두고 강한 유대 관계를 만들어 가려고 한다면 불편함을 감수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동안은 불편하더라도 그냥 그래야 하니까..라는 생각으로 결혼을 지속되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제도는 함께 하는 (학교) 문화의 부재로 인해서 실패했다. 그래도 인구는 유지할 수 있는 출산으로 이어지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결혼을 해도 출산을 하지 않는다. 서양을 이걸 비혼출산으로 어느 정도 덕을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기본 가족 구조에서도 외로움을 해결하지 못했고 가족도 만들지 못하는 쪽이다.

 

이런 구조에서 친구를 사귀는 방식도 학교에서 만들지 못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 함께하는 공원문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성숙한 커뮤니티 문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우리는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결혼제도에서도 직장에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겨울 거리에서 붕어빵 장사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외로움은 점이다. 인간 하나하나가 점이다. 그 점이 서로를 향해서 이어져야 유대관계가라는 것이 형성된다. 그때서야 우리라는 개념이 자리 잡힌다. 이제 우리나라는 우리라는 개념이 없다. 절대 외로움 단계에 빠져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국가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잘 사는 것이 중요하지 국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그것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서로 유대관계를 형성해서 국가에 대한 최소한의 노력을 기할 때 통하는 이론이다. 우리 모두 각자가 자기만 생각하면 국가는 사라지고 국가가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

우리는 이미 35년 동안 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아무 이유 없이 예, 예 거려야 했고 그러지 않으면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내가 어릴 때 할머니는 순사 온다,라는 말로 손자, 손녀들을 겁을 주시려고 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나도 그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사회가 온다면 아니, 이런 사회가 올 가능성이 있는 사회라는 것 자체가 우리는 행복할 수 없는 사회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이런 사회에 진입했다. 50%의 국민이 이런 사회를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고 투표권이 없는 학생들까지 포함하면 이미 50%가 넘었다. 이런 사람들이 20%만 넘어도 위험한데 이미 50%는 가볍게 넘어선 것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자기 책 많이 읽는 국민이 이런 생각으로 살아간다는 꿈에도 모를 거다. 

 

현재 대한민국은 외롭다. 외로움은 나약함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당하지 않으려면 강한 척을 한다. 그 강한 척을 붕어빵 장사에게까지 하는 폭력성을 드러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서울대는 아무 생각이 없다. 역시 친구가 필요 없다는 모범생답다. 친구가 필요 없는 인간은 점이고 그 점은 자기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이런 서울대생들이 자기밖에 모르는 정치를 해도 국민들이 똘똘 뭉쳐서 나라를 지켜냈는데 지금 학교 시스템은 서울대나 전문대나 다 같이 친구가 필요 없게 만들어버린 시스템이기에 이속에서 자란 국민이 국가를 지켜낼 수 있을 거라고 보는 건 있을 수 없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외로움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심을 낳게 된다. 고로 외로움은 국가는커녕 옆사람 가족, 와이프, 자식, 친구, 붕어빵 장사꾼 모두를 신경 쓰지 않는다. 자기가 조금만 불리하게 여겨지면 감정적으로 먼 순서대로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에 들어간다. 이렇게 사회는 병드는 것이다. 외로움은 암이다. 우리나라는 50% 이상 암에 걸려있다. 그러니 이제 어떠한 치료제도 말을 듣지 않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이러는 와중에 인구도 줄어든다. 이 간격을 AI가 채우면 과연 좋은 세상이 올까? 유명한 외국인 학자가 우리나라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 말을 믿어야 할까? 하긴 우리나라 학자들도 우리나라는 모르는데 차라리 희망적인 외국인 학자말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거 같긴 하다.

 

돈 25만 원 준다고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 돈으로 순사가 무섭다고 벌벌 떠는 시대로 회귀하려는지도 모르고 좋다고 받아 처먹으려고 그 사람을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결정을 했다. 이때가 기회다 싶을 거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힘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제는 이 고비를 넘긴다고 한들 희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시대라는 것이 더 힘겹게 느껴진다.

 

어느 정치인도, 어느 학자도, 어떤 사회도 대한민국의 진짜 위기는 외로움이라는 것을 언급은커녕 진단조차 하지 못하는 판국에 하루하루 위기를 넘기는 것만이 최선인 나라에서 산다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난 지금의 대한민국이 베트남보다 잘 산다고 할 수 있을지언정 베트남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는 아니라고 본다. 이 와중에 인구마저 줄어들어 대화 가능한 사람이 줄어드는 상태가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하는 것도 희한한 발상인 거 같다.  

 

결국 이 말은 대화는 ChatGPT와 하고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냥 내가 사는 세상이 최소한 이상하지는 않다고 느끼게 해 줄 NPC들이라고 느끼는 것이 최선인 세상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거 같다. 이렇게 되면 암세포가 정상세포를 공격해서 암세포로 만들듯이 사람은 ChatGPT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진짜 사람들을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니 여차하면 적으로 간주해서 공격하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이런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금도 우리는 붕어빵 장사꾼들을 공격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되면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미워하는 세상이 될게 뻔하다. 그리고 이때쯤이면 우리나라는 우리나라가 아니겠지. 또다시 말이다.

 

(사족)

 

우리나라는 철학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사람들끼리 잘 살아갔던 것은 학교 시스템이 허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어서 사람이 살만했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 시스템은 입시에 너무 완벽 적응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문화가 사라졌다. 철학도 없고 학교 시스템도 만들지 못한 시대에 이 사회의 인간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져 사람 사람살만 한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무에서 유가 창조되길 바라는 마음과 같다.

 

완벽이 좋은 거고 허술이 나쁜 게 아니다. 허술한 빈틈이 있어야 그걸 인간미로 채울 수 있다. 그중 가장 강한 힘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AI가 발전하니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사회적으로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을 숫자로만 생각하는 아주 얄팍한 생각일 뿐이다. 인간은 사랑을 할 줄 아는 숫자 이상의 존재다.

 

[오징어 게임 시즌 2 포스터] 나는 기훈이 형이 대의를 위해서 다시 게임에 참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456억이 있어도 세상에 혼자 밖에 없다는 그 외로움 이런 엄청난 경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하고도 교감할 수 없다는 외로움이 그를 다시 게임에 참하하게 만든 것이다. 이렇듯 외로움은 자신이 파괴가 되든, 남을 파괴시키든 암세포처럼 그렇게 주변을 파괴시켜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