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망하는 이유 # 10ㅣ아이패드를 든 그리스인
즐거움이 많은 세상에는 함께라는 개념이 없다.
2,500년쯤 인류의 지성은 폭발했다.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대가 태동한 지성의 빅뱅이라고 불려도 좋을 시점이다. 인류가 정착을 하고 농사를 짓고 약 만 년쯤 지나 생긴 일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소크라테스라는 위대한 지성을 얻었고 인류 4대 성인으로 추앙하고 있다. 그의 말은 플라톤이 정리를 해서 지금 우리에게도 전달되고 있다. 이 무렵 공자도 중국에서 활동을 했다. 공자 또한 4대 성인이다.
그럼 왜 이때쯤에 인류의 지적 활동이 폭발할 수 있었나? 그건 먹고살만한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귀족의 부는 노동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노예 제도가 있었으니 그들은 할 일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드디어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두고 생각할 시간이 충분했다. 그렇게 철학은 시작되었다.
그들의 철학은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흥미로운 이론들이었다. 그래서 시민들은 돈을 주고 그들의 지식을 구매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더 들으려고 했고 자신들이 어려움이나 억울함에 처했을 때는 소피스트들을 변호사로 고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플라톤은 아카데메이아라는 최소의 학교 형식을 띤 교육 기관을 만들었다. 앞 문장에서 나는 지식을 구매했다고는 표현했지만 이런 경우는 지금처럼 학교에 갔다고 생각하면 된다. 단지 그들은 지금의 우리와 달리 지식을 배우고 싶어 하는 순도가 훨씬 높았고 학력이 아닌 학식 자체를 더 추구했다. 그래서 꼭 학교가 아니더라도 소크라테스에게 직접 찾아가 대화를 통해 지혜를 얻었다. 당시 소피스트들은 돈을 받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술을 대접받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것이 지금의 심포지엄이라는 제도로 이어지고 있다.
이 말은 철학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은 쉽게 이른다. 하지만 단순히 돈만 있기에 철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돈에서 나오는 여유를 누릴 줄 알아야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여유의 첫 번째 요소는 앞에서 언급한 노예 제도다. 귀족들의 부는 스스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노예를 통해서 얻었기에 지금 우리가 부를 축척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근육을 쓰지 않았기에 에너지를 생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훨씬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뿐만이 아니었을 거다. 비교적 그들에 관대하고 허술하며 그들에게 유리한 법 또한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서 조심해야 할 것들이 줄어서 훨씬 여유가 생겨 한 번 붙잡은 생각을 집요하게 끌고 갈 수 있는 여력이 충분했을 거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자유로운 성생활로 인해서 대화의 폭을 넓힐 수 있었을 거다. 지금 우리가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는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라는 말은 4세기경 기독교가 로마에 들어오면서 생겨난 말이다. 즉 그 이전에는 남녀는 물론이고 결혼 유무도 떠나서 포도주와 함께 자유로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기에 자신만의 생각을 머릿속에 가두어두지 않고 대화의 상대를 쉽게 만날 수 있었기에 대중에게 철학이 보편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학자들은 연구도 하지 않고 인정도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는 대다수가 노예로 살고 있고 그렇다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2,500년 전 사람들처럼 여유로운 것도 아니며 정치인들에게 휘둘리기 바쁘다. 인터넷은 발달했지만 넷 안에서의 대화는 한정적이고 만남을 가지려면 대화가 통하는 상대는 반드시 동성에 동년배 정도의 동창이나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나 만나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사회다.
결국 지금의 사회는 생각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 그리 용의 하지 않는 사회다 보니 사람들이 생각을 확장시키기에는 퇴화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서양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철학을 발전시켜 여러 혁명을 거치며 지금의 사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그들도 철학이 흔들린다. 트럼프의 당선과 재선 그리고 영국의 브랙시트가 가장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ㅣ지식으로 대체 된 지혜
그럼 결국 세계는 이런 환경으로 인해 철학을 포기한 것일까? 만약 철학을 포기했다면 위와 같은 여유가 사라졌다는 이유가 전부일까?
내가 볼때는 오늘날의 인류는 철학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다른 즐거움을 선택한 것이다.
당시의 뭐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던 시절 그나마 사람들 만나서 말장난이나 하던 것이 재미의 전부였던 시절에 그것을 체계화하고 제대로 된 질문을 통해서 얻어지는 통찰이 그들에게는 지금 우리 사회의 물질을 얻어 느끼는 즐거움이었을 거다. 그래서 그것을 재밌어하는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아이패드 사서 좋아하듯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구매를 했을 것이다.
아이패드와 철학의 공통점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삶에 편리함을 준다는 것이다. 아이패드 100% 활용하고 그 값에 맞는 이익을 창출하는 사람 없듯이 철학도 100% 활용하고 이익을 내지는 못하는 추상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차이점은 철학은 구매하면 다들 모여서 그 구매한 내용을 식구들이나 친구들과 대화를 함으로써 함께 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지만 아이패드는 서로 따로 노는 도구가 되었다는 거다.
그리고 지금 시대는 아이패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패드 이외에도 차고 넘치는 물질로 인해서 현대인들은 다른 즐거움을 구매하고 있다. 그것이 철학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뿐이다.
당시 소크라테스와 같은 현대의 인물들은 이제 아이패드를 만들고 대중들은 그것을 구매하여 앱 속에 있는 즐거움을 구독하고 후원이라는 이름으로 구매한다. 앱 속에는 철학도 분명 있지만 철학보다는 명품이 더 삶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즐거움이 즐비한 이 세상에서는 철학을 구입하고 친구들에게 말을 하면 헛소리한다는 말을 듣거나 이상한 말한다는 말을 듣거나 사이비 같다는 말을 듣지만 명품은 부러움을 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변의 부러움은 내가 이 명품을 구매했어야 할 충분한 명분을 만들어주는 듯하다.
이렇듯 철학은 이제 구매를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은커녕 비웃음만 사기에 이제는 좋게 말해 개인취미 생활로 넘어선 정도고 나쁘게 말하자면 오타쿠 영역으로 숨어 들어간 분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이런 이유로만 철학을 포기했다고 볼 수 없다. 아직 그래도 독서 모임이 있듯이 철학도 이 정도 수준에서는 얼마든지 공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철학은 거의 멸종에 가까운 상태로 접어들었기에 이정도 수준이면 분명 천적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건 바로 지식이다. 쌍둥이 동생 같은 지식은 지혜와 너무 닮아 있기에 철학을 잡아먹는다. 철학적 깨달음의 영역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는 이제 돈 자체만 많이 벌어도 느낄 수 있다.
내 친구들은 없는 벤츠를 타고 다닌다면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내 삶의 방식이 맞았다고 생각하여 느끼는 감정은 자신감으로 대체되고 친구들의 부러움은 덤이다. 지혜 즉 철학으로는 우리는 벤틀리를 살 수 없다. 지식 즉 능력으로 우리는 헤르메스를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지혜를 지식으로 치환해서 살아가고 있기에 철학은 지금 중환자실에서 심폐소생술 받기 직전까지 같다. 더 심각한 건 학교라는 곳에서는 철학마저 지식으로 변환해서 가르치고 있기에 지금 세대들은 지혜와 지식의 차이를 구분할 줄 모르며 구분할 이유조차 없기에 같은 것이라고 착각하며 지식만 추구하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상태가 서울대 출신을 보면 부러워하는 것이다. 서울대 나온 것이 착하다는 뜻도 아니고 올바른 사람이라는 뜻도 아닌데 우리는 그들을 부러워하고 가까워지고 싶어 하고 집안에 서울대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이건 지식을 지혜와 동격 내지는 치환을 해서 생겨난 인간의 대표적 착각이다. 그리고 이건 여담이지만 대체로 나라는 서울대 출신들이 망치고 있다.
아무튼 이 뜻은 지식으로는 학력을 구매할 수 있으며 학력은 좋은 직장과 직업으로 등가 교환이 (거의) 가능하다고 믿으며 교환에 성공한 사람들은 높은 연봉으로 학력을 구매하려고 쓴 돈을 2~4년 안으로 환불받을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순수익이 발생한다. 이런 현실적인 삶도 해결해 주는 지식은 현시대에 철학보다는 더 강력한 힘을 지닌다. 그러니 지금 세대의 사람들은 굳이 철학을 알아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을 내려도 이상할 것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즉 지성의 빅뱅 시대에도 지금과 같이 사람들이 아이패드로 세상의 즐거움을 구경하고 에르메스로 자신을 표현하며 벤틀리가 달리고 있는 세상이었다면 그리스 사람들도 굳이 애써 소크라테스를 찾아가 지혜를 배우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소피스트들은 스마트 폰을 만들고 포르셰를 만들어 돈을 벌기 바빴을 테니 철학 자체도 태어나지 못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렇게 본다면 어쩌면 지금 사회의 흐름은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른다. 철학의 발전과 언어의 풍부함이 여타의 동물들과 인간을 구별시켜 놓았지만 사실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인간은 아주 부자연스러운 존재다. 그러니 여느 동물들과 같이 DNA에 새겨진 정보로만 사는 존재로 돌아가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는 되려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는 뜻이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동물은 육체에 새겨진 DNA 정보로만 살아가지만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책과 영상이라는 매체의 DNA 정보를 2차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이 동물보다 특별하다고 볼 수 없다. 동물은 강한 근육, 날 수 있는 능력, 자연치유 능력 같은 것이 있지만 인간은 당장 키우는 강아지만 흑화 되더라도 당해낼 도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나약하다.
결국 인간이 철학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지식마저 흡수하지 못한 계층은 동물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받을지 모른다. 이미 부잣집 강아지보다 가난 계층의 사람들이 이런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 세상이다. 아직은 국소적일 뿐이라서 우리가 인지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일 뿐이다. (인지하기도 싫고)
결국 인간의 철학은 모든 인간을 인간화하는 데는 확실히 실패를 했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학교를 만들어서 지혜를 지식으로 변환하기까지 해서 그리고 지금까지 나온 지식까지도 더 가르치면서 인간을 인간다운 존재로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동물의 능력과 동격 이상의 존재*가 되기 위한 지식을 습득하는 사람은 세상에 고작 10% 정도일 거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철학은 나머지 90%의 인간종을 위한 보호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이 능력이 바로 돈이다. 돈이 있어야 동물의 자기 방어 능력과 무기 격인 집과 차를 구매할 수 있고, 돈 있어야 동물의 스피드를 이용할 더 빠른 차나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으며, 돈이 있어야 동물의 자가치유 능력을 이용할 병원을 무서워하지 않게 될 수 있다.
아무튼 모든 인간을 인간화한답시고 학교를 만들고 지혜를 지식으로 바꿔버리는 바람에 인간을 동물과 비슷하거나 그 이하의 자연스러운 존재로 돌아가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다시 말해 지식의 양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그 지식으로만 뇌를 채우기 바쁘고 그 지식을 외우는 시간을 보내기 바빠서 철학의 친구인 생각할 시간을 만들지 못해서 지혜를 적립시키지 못한 것이다. 설사 생각을 해서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지언정 지식이 이미 뇌 속에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해서 지혜가 들어갈 공간이 부족해 힘을 쓸 여력까지는 없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런 와중에 그 생각을 대화를 통해서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나마 있는 개인의 지혜도 사라지게 만들어 버렸다. 인간에게 지혜가 사라진 이상, 먹이를 구하려고 사냥하듯 어슬렁거리는 동물처럼 인간은 돈만 알게 되고, 돈만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돈만이 생존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버렸다. 이런 관점에서 대한민국은 가장 진화된 민족이라고 봐야 할지 가장 앞선 민족이라고 봐야 할지 아무튼 정점에 있다.
이 말은 현 대한민국은 아이패드를 든 그리스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그리고 그리스는 민주주의로 소크라테스를 사형시켰다. 우리가 철학을 사형시켰듯이 말이다. 그리스는 로마에 흡수당했다. 하지만 그의 문화는 너무 강력해서 로마도 잠식시키지 못해 로마 신화가 아닌 그리스·로마 신화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도 문화적 콘텐츠가 넥플릭스 자본과 함께 힘을 과시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우리를 넘보고 있고 내부에서는 민주당이 권력을 평생 유지하기 위해 중국에 우리나라를 넘기려고 하고 있다.
인간은 동물과 같이 자연의 일부로써 자연스러운 존재가 되면 안 된다. 인간은 언어에 의해서 사회를 만들어가는 의도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부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더라도 인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국가를 이루고 살고 있고 그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의 숙명이다. 이 부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 우리를 뭉치게 만들었고 그래서 인간은 동물로부터 자연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면 결국 자연적 존재인 원시인이 되는 방향으로 간다는 뜻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를 구성하는 이 사회 속에서 우리는 그걸 가난한 사람, 거지(홈리스)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같은 민족이라고 할지라도 피해 다닌다. 그래서 앞선 글 독서 편에서 철학하려고 독서를 하지 말고 더 좋은 학력을 얻기 위해서 교과서를 보라고 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없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 가난한 자들은 돈 벌기 바쁘고, 부자들은 새로운 즐거움을 추구하기 바쁘기에 철학으로 즐거움을 찾기에는 너무 바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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