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룸/community room

대한민국이 망해가고 있다 # 4ㅣ가정교육의 부재

_교문 밖 사색가 2024. 6. 19. 14:41

대한민국이 망해가고 있다 # 4ㅣ가정교육의 부재

 

정치는 늘 부패했다는 건 역사가 증명한다. 고로 정치가 부패해서 나라가 망한 것이 아니다.

나라가 망하는 이유는 망한 국가를 국민이 회복하지 못하기에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2023년 어머니 칠순으로 가족들이 모여서 점심을 먹었다. 외삼촌 가족과 엄마의 큰집 오빠와 나의 스텝 브라더 가족도 왔다. 식사를 하는 와중 뜬금없이 외삼촌이 말했다. "학교 다닐 때는 너네 둘이 공부 제일 잘했제?!" 그건 자신의 딸과 나의 스텝 브라더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 둘은 초, 중학교 동창이었다. 어머니가 71살이 시작되는 날이었으니 외삼촌은 나이가 76이었다. 어머니에게 대한 덕담이나 인생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어른스러운 말도 한마디 없이 고작 그 말 뿐이었다.


한 살 어린 나의 사촌이자 외삼촌의 딸은 부산에서 수학강사한다. 이혼을 했고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어릴 때 결혼을 해서 아들 둘 모두 지금 군대에 있다.  46살인 스텝 브라더는 40년을 넘게 놀다가 간신히 취업한 곳에 1년도 안 돼서 잘리고 취업하기 싫어서 면접 보는 곳에서 아프다고 자랑하며 이제야 겨우 두 번째 직장을 잡았다. 자신의 아버지 유산을 노리며 건물 하나 있는 거 월세로 버티면서 살아가려고 하는 삶이다. 결혼은 했고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있다.

 

외삼촌이 너네 둘이 공부 제일 잘했다는 시점은 아마 중학교일 거다. 우리 때는 남녀가 따로 학교를 다녔는데 시골은 공학인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스텝 브라더는 전교 1등, 사촌은 전교 2등이었는데 사촌 동생이 하는 말로 아무리 공부해도 나의 스텝 브라더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고 어머니를 통해서 들었다.

 

사촌은 창원 교대에 들어갔고, 스텝 브라더는 심장이 좋지 않아서 심장에 페이스 메이커를 고등학교 때 달았다. 

 

사촌 동생은 교대를 4학년 1학기까지 다니고 자퇴를 했다. 임신을 하는 바람에 결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좀 이상했다. 휴학을 하고 남은 학기를 마치면 (지난 글에 올렸던) 나의 중학교 상업 교사의 마인드로 살 수 있었을 텐데 그걸 포기했기 때문이다. 지금 아무리 자신이 일하는 학원에서 수학을 제일 잘 가르친다고 해도 그래도 정식 교사가 되는 것이 더 좋은 거다. 늘어진 삶을 위해서도 말이다. 

 

ㅣ외삼촌

 

외삼촌은 평생을 일을 하지 않고 살아온 (놈팽이 분야의) 장인이다. 이런 인간이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장인이 맞다. 다행히 욕심이 없어서 집 밖으로는 잘 나가지 않는다. 그에게 옆마을 부산이고 광주일 거다. 어쩌다 차를 타고 여수나 진주라도 가는 날은 다른 사람들의 해외여행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평생 자신의 마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런 그가 자신의 딸이 임신을 해서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자퇴한다고 했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키우던 난을 팔아서 당연히 학교를 다닐 수 있게 지원을 해줬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놈팽이 장인이긴 했어도 한 가지 재주가 있었다. 난을 캐고 키웠다. 난을 키우는 방이 따로 있었다. 한 때 난이 많을 때에는 한 방에 10억 원 가량의 난이 있다고 들었다. 여담이지만 함께 난을 캐러 다니던 친구가 정동원 할아버지였다. 그래서 정동원이 뜨기 전에 좀 알았다고 한다. 아무튼 외삼촌은 자신의 아들이 대학 들어갈 때 등록금이 필요한 그때 말고는 난을 판 적이 없었다. 그 난들은 한파를 겪고, 혹한을 겪으며 죽어갔고 그렇게 죽은 난이 50억 이상은 된다고 들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왜 그 난을 팔아서 자신의 딸 대학을 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외삼촌은 난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지랄을 해라.",라고 말했다.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50억이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고, 외삼촌 내외는 물론이고 자식들 3명 모두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어머니가 한 말은 외삼촌을 옆에서 지켜본 의견이었을 거다. 외삼촌은 그냥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인간일 뿐이었다. 유일하게 난 캐는 것만 할 수 있었는데 그걸로 만들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날려버린 거다.

 

ㅣ외할머니의 가정교육 (60년대 가정교육)

 

외삼촌이 이런 식으로 사는 이유는 외할머니의 가정교육 때문이었다. 아들(외삼촌)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외할머니의 교육은 학력도 중요하지 않았던 시기 외삼촌을 그냥 놈팽이로 만들어 버렸고 그래서 외할아버지와도 많이 다투셨다고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서울에서 옷공장도 하시고 돈을 제법 버셨기에 외삼촌은 그렇게 방구석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걱정 없이 살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세월이 변해감에 집안은 기울었고 (집안에) 사기꾼은 늘 존재했으며 그렇게 돈은 증발했다. 그래도 외삼촌은 언제나 그렇듯 방구석에서 안전한 시간을 보냈다. 외할머니는 홀로 밭일을 했고 외손녀(앞에 말한 중학교 전교 2등)만이 외할머니를 도울 뿐이었다. 며느리(외숙모)는 집안일은 아랑곳하고 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외삼촌은 77년간 아무것도 안 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사니 남들도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이 자신의 자식이 되더라도 말이다. 남자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 여자는 집안일만 하면 된다는 그가 보고 듣고 익힌 외할머니의 가정교육은 자신의 자식들이 위기일 때도 의식을 하지 못하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1억짜리 난이 혹한에 타 죽어가든 한파에 얼어 죽더라도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한 이유는 외삼촌은 그 난이 자신의 집안에 있어야 자신이 완성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하는 삶은 자신의 삶에 돈이 별로 필요 없기에 자식에게도 돈이 필요 없다는 결론이 쉽게 나온다. 이것이 외삼촌이 교육받은 삶이다.  

 

그런 그가 동생 칠순에서 너네 둘이 공부를 제일 잘했제?라고 한 이유는 이제 난도 별로 없고 캐러 갈 기운도 없으니, 그나마 인생에서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자식들 학교 다닐 때의 성적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는 일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었지만 친구들 만나서 그 좋아하는 소주라도 한 잔 하려면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그 시절에는 자식 자랑이 필수였고 그러니 자식들 공부 잘한 얘기는 그에게 자랑이었다. 실제로 사촌형은 동네에서 공부 잘한다고 소문이 나서 동네에 서울대 나온다는 희망을 품어주었다. 그래서 외삼촌이 76년이나 인생을 살았어도 겨우 한 마디 한 말이 고작 그것이었다. 그리고 정동원이 미스터 트롯에 나왔을 때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하고 말이다.


ㅣ부뚜막에 먼저 올라갔으나 작전 실패한 얌전한 고양이

 

사촌 동생은 집안에서 유일하게 일을 하는 외할머니를 도운 유일한 손녀였다. 외할아버지는 몸이 좋지 않으셨다. 그래도 일거리가 있으면 먼 곳에 가서 일을 하고 돈을 벌어오셨다. 며느리는 택시 타고 읍에서 노는 것을 즐겼다. 첫째 사촌 형은 공부했다. 서울대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인물이라는 명성은 그를 자유롭게 했다. 셋째는 좀 날라리 기질이 있었는데 시골에 살아서 그나마 얌전하게 살 수 있었다. 물론 집안일은 돕지 않았다.

 

그래서 둘째는 동네에서 효녀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 사촌 동생은 왜 성실성을 왜 포기했겠는가? 더군다나 그 중요한 시점 그것도 마지막 시점에 말이다.

 

이런 것이 가정교육의 힘이다. 아무리 공부를 잘했다고 해도 가정교육이 없으면 힘들면 포기하고 싶고 의지하고 싶어 진다. 지금 사람들이 참지 않는 이유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가르치는 가정교육이 없어서다. 그러니 효녀 둘째는 자신이 힘들 때 남자에게 의지했고 자신의 공든 탑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정을 했다. 사실 자세한 얘기를 듣지 못해서 확신할 수 없지만 어쩌면 혼전 임신은 계획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자신이 대학을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한다면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아마 부모님 집에 엄청난 돈이 들어갔을 거다. 일하지 않는 부모님에게 필요한 건 무엇이겠는가? 바로 돈이다. 세 명의 자식들은 모두 자신들의 부모가 문제인걸 알고 있었다. 게으름을 눈으로 20년을 지켜보고 살았는데 그걸 모를 리가 있겠는가? 아무튼 그러니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불행으로 빨아들이는 부모를 끊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학력 자본을 버리고 남자에게 속해져 나는 돈이 없다는 버전으로 살아가려고 했을 거다. 

 

이게 맞다면 가정교육의 부재 + 부모의 게으름 + 부모의 무책임 = 부모 자식 간의 연을 유지하면서 금전 연을 끊어버리고 세상의 기준에 적당히 녹아들어서 적당히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삶을 위해서 자신에게 접근하는 남자들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사람을 선택해서 임신을 결심한 것이다. 그것도 2학년도, 3학년도 아닌 4학년 2학기를 앞두고 말이다. 이 시기는 임신이 계획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확실한 증거라고 본다.

그리고 아무도 둘째가 혼전임신으로 결혼을 할지 몰랐다. 공부 못하고 끼가 있는 셋째였다면 몰라도 말이다. 되려 셋째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염증을 느껴서 독신주의가 되었다. 자신의 부모를 보고서 말이다. 첫째는 재수해서 겨우 부산대 들어갔고 지인의 힘으로 LG에 들어가서 42살에 명예퇴사를 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삶에 위기를 느꼈는지, 많이 못생겼지만 그래도 집이 좀 사는 여자를 만나서 명퇴 직전에 결혼식으로 돈 좀 벌고 지금은 명퇴자를 위한 일거리를 하면서 여자 쪽 집안의 도움으로 잘 살고 있다. 사실 명퇴를 한 지 6년째인데 아직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부모에게는 삼성으로 이직을 해서 산다고 거짓말을 한 걸로 봐서는 그래도 최소한의 수입은 있어 보인다.   

 

아무튼 둘째가 그런 계획이 없었다고 해도 결국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자신의 학력자본을 완성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에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은 임신이 계획적이라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삶을 남자에게 맡겨버렸다는 뜻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맡긴 거지 인생을 포기한 꼴이다. 그러니 무계획이 더 나쁜 거다.

 

첫째는 대기업의 노예로 사는 것에 염증을 느껴 30대 초에 주식을 하다가 억대의 빚을 지고 열심히 노예로 살기로 굳히고 지금의 와이프를 만났다. 그의 어머니는 딸들에게 있는 돈 다 모아서 오빠를 도와주라고 했다고 했다. 둘째와 셋째는 엄마에게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혀를 내둘렀다. 평생을 아들아들하더니 아들이 이 꼴이 돼도 아들아들하냐면서 말이다. 외숙모에게 딸들은 그냥 노예였다.

 

아마 이런 가정환경에 살았으니 주식으로 돈을 날리고 빚을 진 와중에 결혼을 전략적으로 했다는 결론도 나온다. 그도 원래는 독신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나의 스텝 브라더는 고등학교 때 심장이 좋지 않아서 페이스 메이커를 달고 살았다. 그때 브라더 어머니가 오냐오냐 키웠고 그는 나의 외삼촌 뜻을 이어받은 후예가 되었다. 공부 잘한다고 이미 오냐오냐 키우고 있었던 와중에 그렇게 된 것이니 외삼촌의 뜻을 이어받는 건 무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같은 동네였으니 말이다. 심지어 심장이 (극도로) 아프니 운동은커녕 스트레스도 주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버셨다. 마치 나의 외할아버지처럼 말이다. 

 

재작년 배추를 가져가는 스텝 브라더에게 아버지는 다음부터는 돈 주고 사가라고 하셨다. 그 말은 들은 스텝 브라더는 "그럴 바에야 사 먹죠.",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아버지 다리가 부러져 운전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하루 시간을 내라고 했더니 볼일이 있다고 거절했단다. 평생을 놀았으면서 딱 하루 시간을 내라고 하니 마침 그날 볼일이 있냐고 하셨다. 아버지 생일로 시골에 왔길래 잡일을 시켰는데, 하지 말라고 한 건 해놓고 하라고 한 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솔직히 마지막 건 계획적인 면이 보이기도 했다. 그뒤로는 시골일을 시키지 않으니 말이다.

 

가정교육의 부재가 불러온 일이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 정신과가 보편적으로 사회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부자들이 가정교육 없이 자식들을 유학을 보내서 불러온 결과라고 한다. 자식들이 돌아와서 부모를 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료를 받기 위해서 정신과가 유행을 하면서 사회에 거부감 없이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 없이 오직 부모의 의지로 유학을 가서 외로움과 언어의 싸움에 몰렸고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중압감을 버티면서 살아온 삶에 억울함을 느끼고 부모에게 폭력을 휘두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가정교육없이 지식만 강요하는 교육의 패단이 이렇게 드러난다.


아무튼 중학교 전교 1, 2등 그것도 시골 중학교 성적 가지고 너무 지나친 비약이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때가 벌써 30년이 넘은 시점의 이야기다. 이때 중학교에서 반에서도 아닌 전교 1, 2등이면 어지간하면 고등학교 때 어느 정도의 결과치를 도출한다. 그리고 사회에서 한자리하는 위치에 있어야 하고 시대에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면 얼마 전까지 일하다고 은퇴하는 수준은 되어야 한다. 첫째(LG 명퇴) 수준정도 말이다. 그런데 가정교육이 없으니 이들은 모두 사회 부적응자가 되거나 죽지 않을 정도의 수입이면 적당히 자신을 위로하면서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밖에 살 수 없음이 정상이라는 듯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런 상황이니 개천에서 용은 날수 없고, 나더라도 그 용은 자신들만 행복하면 된다는 식으로 살아가는 삶을 추구할 거다. 지금의 용들처럼 말이다.

 

과거 박정희 시절은 다들 국가를 위한 존재들이었다. 다들 생각이 달라서 그렇지 하나같이 국가를 위한 생각들을 하고 있었기에 영수회담을 하면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고 어떻게든 합의를 보고 그래도 사회가 더 발전이 되는 방향을 정해서 나아갔다. 국가를 강하게 부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을 보라, 다들 자기 욕심 채우기 바쁘니 영수회담이 마치 서로 욕하기 위해서 하는 거 같다. 나는 잘하려고 했다,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 말 할바에야 그냥 진짜 잘하고 힘들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멋있는 건데 말이다.

  

하지만 그때는 가정교육보다는 사회의 가난이 이들을 가르쳤을 거다. 이제는 아사를 할 만큼의 절대가난은 없으니 70년대부터는 가정교육이 생겨났어야 했는데 자식을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인 식사시간에 밥상머리에서는 조용히 하라는 조선시대 예의를 들먹이며 입을 닫고 살면서 공부나하라고 하니 가난을 대체할 가정교육이 탄생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다 보니 지금 시대의 국가적 공인들은 하나같이 다들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간다. 그 자리가 대통령직이라도 크게 상관없어 보인다. 


나는 지금 공인들을 보면 결국 스텝 브라더나 사촌들이 지속적으로 공부를 잘하고 자기 욕심을 부렸다면 이들처럼 되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다. 같은 말이지만 가정교육이 없는 공통점과 한 방향 교육 시스템으로 태어날 수 있는 위대한 인물은 고작 지금의 정치인들 수준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말은 지금 누군가가 정의감 출중해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해서 공부를 잘하고 그 위치에 올랐다고 한들 결국 지금의 그들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 가장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 오르기 전까지의 태도는 정의의 사도였을지 몰라도 대통령이 되고부터의 행보, 태도, 눈빛, 표정은 권력을 얻은 자의 쾌락에 젖어 보였다. 이때부터 나오는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아사 수준의) 가난이 없는 와중에 가정교육도 없었던 시대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의 대한민국은 회복이 불가능한 노선을 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정치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 정치는 부가 쌓이면 부패하게 되어 있는 건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니 정치를 감시하는 국민이 총명해야 하는데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다들 불행은 나만 아니면 되고, 행복은 자신의 것이어야 하며, 꽃길만 걸어야 하는 삶이 정상이라고 착각하기에 정치를 감시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 최소한 정치의 부패로 나라가 망했을 때 다시 회복하는 힘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철학은커녕 가정교육도 없는 나라에 회복은 이제 꿈도 꾸기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에는 금수만도 못한 놈이라는 생각이 보편적 가정교육이 있었다. 스텝 브라더나 외삼촌, 나의 아버지 같은 놈팽이들은 그렇게 지칭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의 형상으로 태어났으면 그냥 사람이다. 그 사람의 행동이나 인격으로 구별되지 못한다. 오직 돈으로만 결정지어지는 사회다. 나의 스텝 브라더가 돈이 많았어봐라 누가 그를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겠는가! 되려 부러워하지.

 

그러니 지금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정치를 못하고 국민의 세금을 어떻게든 뜯어라고 해도 욕을 하기는커녕 부러워한다. 그래서 범죄자라도 당 대표가 되어 당당하게 큰 소리도 치고, 국회 자리도 12석이나 주고, 그의 딸은 억지로 의대에서 쫓겨났지만 그래도 예쁘다고 국민들은 그 사람을 인플루언서를 만들어준다.

 

가정교육이 없다는 것은 사회에서 인간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배우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옳고 그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강자와 약자로 구분을 하고 인간은 그 기준이 돈과 외모가 된다. 이제는 직업도 중요하지 않다. 그냥 돈만 많으면 된다. 이런 상태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교육의 내용을 바꾸지 않고 사교육은 더 강화가 되고 있다. 이 상태로는 결국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어주겠는 유토피아적 발언을 하는 인간들에게 의해 국가와 우리의 삶은 망가질 것이 뻔하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하지만 이제는 책을 읽기는커녕 유튜브가 있으니 읽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설사 읽는다고 해도 고민하는 힘이 없으니 그냥 읽기만 한다. 

 

그러니 교육은 공평하게 다 같이 배우는 것보다 국가를 이끌 사람들과 유지시킬 사람들은 다른 차원에 사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에 맞는 공정함으로 구분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그건 불의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죽어도 그런 대우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민족 아니겠는가! 나라가 망해가도 말이다. 나라가 망해도 다 같이 망한다면 나는 공평한 교육을 받고 함께 망하는 쪽에 서겠다는 민족인 것이다.

 

결국 사회 시스템으로도 나라를 구할 수 없는 심보를 가진 민족이니 결국 우리나라는 망하는 방향으로 머리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중인 거다.

 

그 목적지는 1950~60년 일거다. 중간에 멈춰서 80년대에 턴을 하면 좋겠지만 쭉 갈 거다. 왜냐면 가정교육이 없으니까. 이제 와서 착하게 살아라, 돈을 좇지 마라, 사람부터 돼라, 같은 가정교육*이 부활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부자는 부자로 계속 살아남을거다. 전쟁으로 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과거의 가정교육은 그냥 그래야 한다는식의 사회성을 띈 관념적인 가정교육이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를 알지만 이론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해서 우리는 가정교육이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

 

어쩌면 이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은 옷을 벗고 춤을 추는 육체자본을 이용해서라도 돈돈거리면서 조금이라도 모아두려고  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들은 본능이 발달이 되어 쥐가 지진이 일어나면 미리 대피 하듯이 말이다. 여전히 시키는대로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본능대로 돈을 모아두는 사람들보다 못한 미래를 살지도 모르겠다.

 

[응답하라 1988 캡쳐] 이시대는 가난에서 벗어나 경제 성장기 시점이다. 이때까지도 사회 관념적 가정교육이 남아있었다. 그 이하의 행실이 보이면 어른들은 금수만도 못한 놈이라고 매를 들고 가르쳤다. 이시기가 적기였다. 사회 관념적 가정교육을 이론적으로 확립해서 적극적 가정교육으로 전환했었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건 관과하고 경제 성장의 기쁨에 샴페인만 터트렸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의 삶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