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쌓기/파리여행 2024

2024 파리 여행ㅣ에피소드 # 1

_교문 밖 사색가 2024. 5. 5. 23:56

2024 파리 여행ㅣ에피소드 # 1 
 

* 지하철 소매치기
* 지하철 무임승차 문화
* 지하철 의자 간격이 좁은 이유

 
 
파리의 지하철에서는 도착역의 개찰구가 없다. 신기한 일이었다. 생각해 보니 지난 파리 여행에서도 그랬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가끔 역무원들이 내리는 승객을 대상으로 지하철 표를 검사를 했었고 나도 그 일을 겪은 기억이 났다. 
 
아무튼 생마르탱 운하에서 점심을 먹은 후 지하철을 타러 갔을 때 어느 흑인이 아주 가볍게 개찰구를 건너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그 개찰구를 넘어서 돌아오는 것이다. 미처 나는 보지 못했는데 그 흑인이 개찰구를 넘어서자마자 역무원과 눈이 마주쳐서 그 흑인은 곧바로 건너온 것이라고 일행이 알려줬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우리가 노트르담 대성당에 갈 때였다. 런던에서 온 일행이 다시 돌아가야 해서 불가피하게 아침 출근시간과 겹치게 우리도 움직이게 되었다. 우리는 표를 구매하기 위해서 역무실로 갔는데 마침 그때 유모차를 끌고 온 분을 도와주기 위해서 역무원이 막 나와 도움을 주고 있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백인 여자도 역무원에게 볼일이 있었는지 역무실을 두드리고 서성이면서 기다리다가 지하철 오는 소리를 듣고서는 긴 다리를 이용해서 가볍게 개찰구를 넘어서 가는 것이었다. 아마 출근길이어서 바빠서 하는 수 없이 그랬을 거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 굳이 애써 역무원을 찾는 액션을 취했을 리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두 에피소드를 연결시키니 왠지 모르게 파리의 지하철 무인승차 문화가 인간적이라고 느껴졌다.
 
만약 우리나라 같았으면 개찰구를 넘어선 그 흑인을 무조건 잡아서 30배의 과징금을 물렸을 테고, 그 백인 여자는 CCTV에 찍혀서 역무실에 있는 역무원이 나와서 잡으러 갔을 거다. 언듯 보면 이것이 정의라는 이름에 맞는 거처럼 보인다.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는다. 아주 단순한 공식에서 오는 정의감은 우리나라에서 아주 익숙한 규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년이 넘는 지하철 역사를 가진 파리는 역무실을 더 넓히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그러니 우리나라처럼 큰 역무실에 CCTV를 설치해서 감시하는 시스템은 없어보인다. 역무실도 작으니 일하는 사람도 적을 거다. 보아하니 한 사람이 그 시간을 온전히 담당하는 듯하다. 그러니 그 한 사람이 유모차를 끌고 온 시민을 도와주면 역무원에게 볼일을 봐야 할 다른 시민은 발을 동동구를 수밖에 없다. 그것도 출근시간이면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럼 그때 하는 무임승차는 과연 처벌을 받아야 하는 행위인가,라는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되려 이런 문화가 인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모든 상황이 규칙에 의해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혼란이 온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은 너무 빡빡하게 굴면 민심만 사나워진다는 생각도 있다. 그리고 완벽한 규칙이라는 것이 이뤄지려면 완벽한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데, 역무원 한 명을 두고 완벽을 바란다는 것은 시민의 편의를 불편하게 하는 행위일 수 밖에 없다. 그 한 명이 화장실을 가고 식사를 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시민은 그 시간을 기다리거나 피해야 하는데, 너무 바쁜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때는 지하철 요금정도라고 생각하는 수준에서 국가가 어느 정도의 시민을 여유 있게 대해주는 모습이 되려 나는 더 정상이라고 보였고, 더 정의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문제로 역무원 한 명을 더 두는 것은 예산 낭비고 그 예산은 세금이니 더 합리적이라고도 보였다. 
 
아울러 시민이 이런 여유를 누릴려면 그 흑인과 눈이 마주친 역무원처럼 대충 봐주는 문화가 있어야 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한 선택을 한 시민이 다리 하나를 개찰구에 걸치고 다음 다리를 넘기는 순간 역무원과 마주쳤다면 억울함을 느끼지 않고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 필요한 일처리를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라면 다리 하나를 걸친 순간 현행범으로 잡혀서 30배의 요금을 징수당할 테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퍼포먼스다.
 
물론 우리나라는 역무원 자체가 필요없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인간적일까? 어느 쪽이 A.I 시대에 더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느 쪽이 시민들이 인간미를 느낄 수 있을까?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유모차를 끌고 나와도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시스템이 좋아 보이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역무원이 도와주는 시스템이 왠지 더 인간 적라고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거다.   
 
아무튼 모든 지하철 역에서 그런건 아니지만 파리 지하철역에서 하차하는 길에 개찰구가 없는 건 시민 개개인을 생각하고 종합적 규율의 효율성을 따져서 더 인간적인 정책으로 나온 그들의 결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정치는 그리고 정책은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Galaxy S24 Ultra] 흑인의 무임승차를 목격하기 전, 역 앞에 있는 '정의, 평등, 박애'를 새긴 동상을 구경하고 탔다. 어렴풋이 감을 잡게해준 프랑스 문화의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