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쌓기/파리여행 2024

Day 01 # 2 파리 여행ㅣ21. March. 2024 with 남해

_교문 밖 사색가 2024. 4. 1. 23:34

Day 01 # 2 파리 여행ㅣ21. March. 2024 with 남해

 

비행기 안 - RER - 숙소

 
 
1. 파리에서
 
일행이 택시를 제안했지만 나는 아직 RER을 타보지 못해서 RER을 타보자고 했다. 티켓을 구입하기 위해서 센터로 갔고 거기서 나비고 티켓에 대한 걸 검색해 보니 일주일 티켓은 맞지만 그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가능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목요일에 도착했으니 지금 사봤자 일요일까지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거기에다가 사진까지 8유로를 내고 찍어야 했다. 그래서 그럴 바에야 전에 사용했던 10장 묶음으로 티켓을 구입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결론이 났다. 하지만 그것도 파는 곳만 팔지 팔지 않는 곳은 팔지 않아서 오늘은 그냥 일일 티켓으로 숙소까지 가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 판매기로 향할 때 우리에게 일일 티켓 판매하는 곳이 있냐면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한국인이 있었다. 우리는 혼자 온 분을 티켓 구입을 도와주며 끝까지 기다려주며 함께 열차에 탔다. 알고 보니 발레리나였고 오디션을 보러 왔다고 했다.  
 
약간의 경계하는 모습이 있었다. 티켓을 끊고 어디까지 가냐는 말에 답을 하지 않고 우리는 북역까지 간다고 하니 그제야 한 코스 더 간다고 하는 등의 모습이 그러했다. 당연한 이치였다. 해외에서는 한국인이 가장 위험하다고 했으니 발레리나 입장에서는 우리는 경계 대상이었던 거다. 더군다나 오디션 일정으로 급하게 1박만 하고 다음날은 다른 나라로 가니 정신이 없는 와중에서는 더 경계심이 생겼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발레리나도 이렇게 해외에서 오디션 볼 정도면 꽤 하는 축일텐데 몇 퍼센트나 이런 해외 오디션을 보냐니 약 10% 라고 했다. 그리고 왜 해외를 생각하냐고 하니 한국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얼굴만 보면 발레를 할거 같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는데 그것도 발레리나들 사이에서 놀림 재료였다고 했다.
 
가장 가고 싶은 도시는 바르셀로나라고 했다. 특별히 그곳이 발레로 유명해서가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가 그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타깝지만 강한 타입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해외로 나가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꼭 자신만의 목적을 가지고 해외로 나갈 필요는 없다. 그렇게 나가서 연애를 시작해도 되고 그곳에 익숙해져서 삶을 살아가도 되기 때문이다. 돈이 된다면 더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 친한 친구와 틀어졌을 때 대책이 없다는 것은 꽤 큰 위기로 다가올 수 있으니 반드시 독립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2. Day 03 in 남해ㅣ01. April. 2024
 
오늘은 양봉을 시작했다. 힘들게 막바지를 할 무렵 한 할아버지가 왔다. 어머니는 뭐 하러 왔냐고 물으니 대를 빌리러 왔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보고 얘는 누구냐고 했다.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나도 내일모레 50이 되는데 외국인 노동자 취급을 하며 하찮게 물어봤다. 엄마는 아들이라고 했다. 그러면 태도를 고쳐야 할 텐데 대충 넘어간다. 우리 집 강아지들이 그 노인을 향해서 한없이 짖어댔다. 그러니 그 노인은 강아지들 버리라고 했다. 
 
여기까지 들어만 봐도 알거다 요즘 노인들도 대책이 없다. 어른이 아니다. 그냥 노인이다. 어린애에서 그냥 늙어만 진 상태로 살아가는 존재다. 어제 일기에도 말했지만 이런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스마트 폰 영향 말고는 찾아내기 어렵다. 
 
예전에는 시대가 변해서 그랬다고 했지만 그러면 젊은 층부터 서서 변하면서 노인들은 그래도 어른스러움을 지탱했는데 요즘은 노인들이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다. 
 
이 노인은 우리집에 다가올 때 인사를 해도 받지도 않았고 일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대충 보고 갈 생각을 해야 하는데 자기 목적은 고춧대를 빌리는 것이니 그걸 끝까지 얻겠다고 어슬렁 거리면서 있는 모습도 불편했다. 끝까지 얻어갈 생각이면 예의라도 챙겨 잡수고 오시던가 해야 했는데 말이다. 어머니도 무시하고 일만 하셨다. 나는 뭐 저런 인간이 있냐고 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이 시골에 많다. 고사리를 어렵게 채취해서 파는데 고사리 먹고 싶다고 그걸 그냥 달라고 하는 인간도 있고, 양봉하는 집에 꿀도 그냥 달라는 인간도 있고, 어제는 드라이브를 하는데 굳이 전화를 해서 커피 얻어먹으러 왔다고 연락을 하고 집에 도착하니 그걸 확인하고 어슬렁어슬렁 오면서 진짜 얻어먹고 가는 인간도 있다. 꿀을 타주는 엄마표 커피는 마을에서 인기가 있기도 하지만 사람이 없는 걸 알면서도 전화까지 해서 그러는 건 지나친 처사다. 
이것 말고도 자기들이 밥을 살 때는 돼지국밥 사면서 엄마는 고기만 사달라고 하는 인간들도 있다. 이유는 엄마가 돈을 많이 벌어서 그렇다고 한다.   
 
여러모로 하이에나처럼 변하는 노인들을 잘 관찰하게 되는 것 같다. 게으른 인간이 살아남는 방법은 부지런한 인간들 사이에서 빈대를 붙어서 사는 방법밖에 없다는 식으로 산다. 절대 자신이 부지런하게 살려고는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결국 내가 내린 최종 결론은 이제 안전한 장소는 없다. 자연재해가 아니더라도 인간들이 이렇게 하이에나처럼 변하는데 안전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시골이랍시고 인간성이 살아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 차라리 익명성이 있는 차가운 도시가 더 살기 좋다. 인간성을 내세우며 빈대 붙어사는 인간들을 보는 것은 더 역겨울 때가 있다.
 
그러니 안전한 곳을 찾지 말고 안전한 계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나는 발레리나에게 발레가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끝까지 하면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튜터로 일을 할 수 있고, 고급 운동이기에 좋은 계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무시를 당하는 삶이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하이에나 같은 인간들과 사는 것은 더 역겨울 수 있다. 심지어 자신도 하이에나가 되었는데 그걸 모르고 자신은 그 속에서 정당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될 거다. 아마 오늘 온 노인분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 거니까.
 
그러니 같은 힘듦이라면 그냥 더 높은 곳에서 무시를 당하는 것이 더 낫다. 직접 무시를 당하든 돌려 깎기로 당하든 하이에나들 사이에서 사는 건 무조건 더 힘들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대한민국이 가장 위험한 건 어른에게서 배울 게 없는 세상이니 어린 친구들도 어른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노인이 될 거라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고려해봐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