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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ㅣ30. March. 2024

_교문 밖 사색가 2024. 3. 31. 01:19

파묘ㅣ30. March. 2024

 

* 김고은의 신들린 무당 연기

 

소문을 너무 듣고 가서 본 지라 별로 감흥이 없었다. 만약 안 듣고 갔다면 감탄까지는 아니더라도 오~~ 할 정도는 되었다고 본다. 생각보다 짧기도 해서 그런 거 같다. 그러니 늦게 보는 사람들에게는 관람 포인트가 될 수 없을 거 같다.

 

* 그럼 1% 는?

 

후반부를 가르는 부분에서 영화는 애국심을 내새우는 최민식의 대사로 인해서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하지만 그래도 이도현과의 관계가 있다 보니 명맥이 끊기지는 않는다. 이 시점의 대사에서 일본이 한국의 정기를 끊기 위해서 정을 박았는데 99%가 거짓이라고 유해진이 말하지만 최민식은 그럼 1%는?이라는 대사를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대사가 이도현과의 관계로 간신히 인해서 연결되는 스토리보다 더 흡입력이 있었다. 하나의 진실이 아흔아홉개의 거짓으로 둘러싸여 있으면 그 하나의 진실도 거짓이 되는 세상의 논리를 설명해 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한 명의 진짜 무당이 아흔아홉의 가짜 혹은 실력이 부족한 무당으로 인해서 진짜 무당조차 가짜로 오해받게 하여 그 진짜 조차도 사라지게 되는 현상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도 잘하는 의사가 있고 못하는 의사가 있는데 말이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체계화 시키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최저점 상향 평준화를 이루지 못해서 사기꾼이 더 많아진 세상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못하는 의사라도 체계화된 교육으로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으니 그런 노력을 했었어야 인정을 받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신을 어떻게 체계화 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여러 신을 인정하는 힌두교도 했으니 못할 거까지는 없었다고 본다. 그냥 못한다고 단정을 짓고 안한걸 큰소리로 호통하듯이 게을러서 안 한 거뿐이라고 본다. 그 체계화가 오해를 낳는다고 할지언정, 지금처럼 가짜 무당들이 들끓어서 진짜도 가짜로 오해받고 가짜가 더 진짜 같은 세상으로 만들어지는 것보다는 낫다.

 

굿 보다 댄스로 서양에서 인정을 받는 무당들로 인해서 명맥을 이어가는 것이 그리 좋은 건 아닐 거라고 본다. 그들의 환영이 과연 진짜의 모습을 보고 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거다.

결국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 나 때문인거고 무당이 무시당하는 이유는 다 무당들이 게을러서 그런 거다.

 

* 대살굿

 

김고은이 신세대 무당으로 나온 만큼 이런 건 설명을 해줘야 한다고 본다. 과거의 그대로 하는 거 말고, 이제는 오랜 경험을 통해서 왜 인간의 혼이나 수명 등이 다른 동물이나 물체로 전의 되어 인간에게 잠시라도 유리하게 이용되는지는 양자역학을 엮어서 설명을 해주면 좋았을 거라고 본다. 서양인들은 양자역학은 알아도 굿은 모를 테니 무속인들이 양자역학을 공부해서 굿과 엮어서 설명을 할 수 있는 영역까지는 왔어야 할 시대다. 

 

결국 이런 공부를 하지 않으니 영화에서도 설명이 없고 무당이 무당으로 밖에 무시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본다. 혼령과 정령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도 충분히 원자 단위로 분해해서 설명을 할 수 있었는데 아쉽게 느껴진다. 

아울러 굿을 할 때 쇠를 중심으로 나는 소리의 주파수나 춤의 운동 에너지 주변 관객을 끓어들이는 퍼포먼스 등이 굿에 효염이 있다는 것을 설명해 줬다면 좋았을 거다.

 

그랬다면 연예인들이 무대에서 쇼를 하는 것 자체가 굿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차이는 신을 모시는 것과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과 돈을 받고 타인을 위해서 하는 차이라는 정도가 있다는 것도 여러 SNS를 통해서 설명이 쉽게 되었을 거라고 본다. 

 

* 1,000 만

 

천만까지는 갈 영화는 아닌데, 다들 부정하면서 다들 믿고 있는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의 종교인 무속에 대해서 상위 1%의  흡입력 있는 배우들이 나와 연기를 하니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위화감이 사라지니 가능했던 관객수 같다.

 

개인적으로 어머니가 남편에게 집도 재산도 다 뺏겨서 아팠을 때 병원에서는 못 고치는 것을 굿으로 고쳤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그 원리에 대한 관심이 많다.

 

심장이식을 받은 사람이 생전에 따지 않던 사이클을 탔다고 한다. 알고 보니 기증자의 취미 사이클이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이걸 우연이라고 한다. 확률이 5% 이하 이기 때문이어서 그렇다. 그럼 5% 이하는 모두 진실이 아니게 되는 것인가? 그러니 이제는 이런 신앙을 무속이라고 비하하지 말고 무교라고 존중을 하면서 인도의 다신교처럼 그런 형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히 가능한 시대가 왔다고 본다.

 

굳이 이 영화의 천만의 의미를 따지자면 이런 여정으로 가는 초석이 되는 관객수가 아닐까 한다. 문화가 대중으로 스며들 때 대중은 관심을 가지고 알고 싶어 하며 그러면 그것이 돈이 되고, 돈이 되면 학자들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연구가 되지 않아서 버림받고 무시받던 자식(무속 신앙)이 지금에서야 관심을 받지만 그것 또한 진짜 관심이 아닌 조롱의 관심 같아서 애처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영화를 무시하지 못하는 건 지금 우리나라가 국민을 대하는 자세가 마치 연구하지 않은 이런 무속 신앙과 같은 자세로 대하고 있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