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ㅣ기훈이 형이 오징어 게임장으로 다시 돌아간 이유
당신이 진짜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지금도 하고 있지 않다면 그건 어쩌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아닌지 모른다.
나이 50이 다 되어가는 기훈이 형은 뭔가 부족한 사람으로 보인다. 마냥 사람이 좋아 보인다고 느끼는 시기도 지났기에 더 그렇게 보인다. 노모에게 용돈이나 타 쓰는 면도 그렇게 보인다. 그런 모습은 모지리거나 양아치거나 둘 중 하나의 모습이어야 하는데 양아치는 아닌 거 같으니 모자란 형으로 보는 것이 맞다. 딸을 대하는 면도 그렇다. 생일날 그의 모습은 양아치 자세로 보이지는 않는다. 사랑 가득한 모자란 아빠인 거다. 성기훈은 그냥 동네생활은 가능한 바보 형이다.
그런 형이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해서 살아남았다. 기적이었다. 자신의 바보스러운 선함을 오징어 게임 적용을 하니 가능한 일이었다.
오일남 할아버지는 서바이벌 게임에서 기피하는 대상 1호였다. 하지만 기훈이 형은 그런 오일남 할아버지를 함께할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해서 줄다리기를 이겨 살아남았다. 구슬치기 게임에서도 영감님의 배려로 인해서 살아남았다. 유리다리 건너기에서도 조끼를 양보해서 생존에 제일 유리한 포지션을 잡고 앞사람들의 생존본능적 행동에 의해 살아남았다.
그가 살아남은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바보라고 불려도 이상할 것 없는 그의 선함 때문이었다. 그렇게 기훈이 형은 자신의 삶의 방식이 통한 곳을 본의 아니게 찾은 것이다.
우승상금 456억을 들고 다시 사회로 나와보니 당뇨에 걸린 어머니는 전날 죽어있었고, 평생 놀아본 적이 없는 인간이다 보니 그 돈을 유흥으로도 쓰지 못했다. 좀 놀아본 형이었다면 미친척하고 다 잊어볼 심산으로 얼마든지 탕진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착하긴 했지만 사회적으로 선한 일도 하지 못했기에 그는 자선도 하지 못했다. 경마도 의미 없다. 푼돈 있을 때나 몇 십배 벌어보고 도파민 자극받았지 456억이 있는데 경마로 도파민을 자극받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무능력한 바보스러운 선함은 456억이 있어도 지금 우리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렇게 기훈이 형은 죽은 사람들 핑계로 증오심을 키우며 다시 오징어 게임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 명분은 그 게임을 만든 사람들을 찾아서 오징어 게임 자체를 없애려고 한다면서 말이다. 아마 진심일 거다. 증오심으로 상대를 한 상우를 마지막에 456억을 포기하고 용서까지 하면서 함께 게임장에서 나올 생각까지 했는데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으니 기훈이 형의 표면적 이유는 정의일 수밖에 없다.
서울대 조상우는 기훈이 형의 분신이었다. 조상우를 업어서 학교까지 함께 한 일은 기훈이 형이 제일 혹은 유일하게 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조상우가 서울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조상우의 서울대 수석합격 지분은 자신에게도 있다는 그것이 기훈의 형의 자랑을 넘어 나는 착한 사람이다, 같은 것을 증명할 신념 같은 것이었다. 그 누구도 심지어 조상우 조차도 인정하지 않지만 말이다. 이렇든 저렇든 기훈이 형은 상우가 잘되면 좋았다. 바보니까 조상우는 당연히 자신을 고마워할 거라는 착각 속에서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기훈이 형은 그런 상우를 버리고 456억을 챙길 수 없었다. 자신의 자아이자 분신인 상우가 죽는 건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상우 없이 쌍문동으로 돌아가봤자 더 이상 자신을 내세울 어떠한 명분도 없었다. 늙은 노모 고생이나 시키며 빚까지 지고 이혼한 대리기사로 사는 인생에 서울대 수석합격 상우는 기훈이 형의 유일한 자랑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상우는 마지막에 자살을 선택했다. 이제 그에게 쌍문동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노모도 없고 하나뿐인 딸도 새로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갔으며 자신의 자랑인 서울대 수석합격 조상우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혹은 쌍문동에서)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상실한 그런 기훈이 형의 방향은 당연히 오징어 게임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의식이 그를 오징어 게임장으로 이끌었다. 그래서 그는 딸에게 가는 미국행 비행기 입구에서 발길을 돌린 거다.
흐름상 시즌 2에서는 딸을 보고 대학 등록금이라고 통장하나 건네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정의를 행사한답시고 준비를 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는 비행기 입구 바로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딱지남은 핑계다. 그의 무의식은 오징어 게임장을 떠날 수 없다.
오징어 게임 이전 자신의 가장 큰 자랑거리인 조상우의 마지막이 거기에 있었고 심지어 동네 바보형이었던 자신은 오징어 게임장에서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그건 남들이 아무리 자신을 바보로 취급했을지언정 지난 자신의 삶이 옳았다는 증명이 된 기분이다. 그렇게 오징어 게임장은 기훈이 형의 제2의 쌍문동, 고향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다시 돌아간 두 번째 게임에서도 그의 선함은 통했다. 근대 5종 경기에서 해병대 신입을 받지 않고 오일남 할아버지와 같은 기피대상 1호인 만삭 임산부를 받았기에 딱지치기에서 한 방에 통과를 할 수 있었다.
이와 대비되는 조가 첫 번째 조인데, 첫 조는 양동근 모자를 받지 않았다. 양동근 어머니가 기피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첫 조는 비석 치기에서 시간을 모두 다 소진해서 사살당했다. 하지만 양동근은 비석 치기를 두 번만에 해결했다. 그것도 어머니의 마인드 컨트롤에 의해서 말이다. 그 모자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한 몸이었다. 그렇게 최약체라고 인지되는 현주조는 불가능할 거 같은 그 경기를 첫 번째로 통과해 모두에서 희망을 주었다.
만약 기훈이 형 조에서 만삭인 여자 대신 해병대를 받았다면 첫 조처럼 딱지치기에서 시간을 다 보내게 되어 첫 조처럼 사살당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선함이 옳다는 것을 또 증명하며 게임을 통과해 생존했다. 하지만 그의 표면적 동기부여는 여전히 그를 괴롭혔다. 그가 생각하는 정의를 행함에 반대파들에 의해서 여러 번 뭉개졌다.
3년 전 경기 때는 살아남기 바빠서 사람들을 선동하지 못했고, 경험이 없어서 쭈그러들어있었고, 따지고 보면 규칙도 달랐으니 사람들을 선동할 수 없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경험을 했고, 규칙도 마치 기훈이 형이 들어왔으니 네 뜻을 펼쳐봐라는 뜻이 변경되었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았기에 선동할 수 있었다. 누가 봐도 001번이 리드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어떠한 양보 멘트 없이 모자란 자신이 끝까지 리드를 했다. 자신은 이제 3년 전 우승자였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그저 사람 좋은 동네 바보형이 아닌 3년 전 우승자 그리고 착한 사람 방식으로 생존한 무언가가 되었다. 기훈이 형은 오징어 게임을 즐기고 있었던 거다.
과거 같으면 사람들의 업신여김에 기가 죽어서 쪼그라들었을 거다. 업어서 서울대를 보낸 조상우의 말 한마디에도 제대로 대꾸를 못한 시절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기훈이 형은 이제 똥과 된장을 먹어보지 않아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해 이번에는 쫄지 않고 지속적 선동을 한다.
하지만 동그라미파 사람들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뜻대로 되지 않는 그의 선동에 그는 자신이 뭘 하려고 돌아왔는지를 잊어간다. 결국 그도 스스로 소수의 사람들이 죽는 건 대의를 위해서 당연하다는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된다. 이건 오징어 게임의 원리와 다를 게 없는 방식이라는 것을 모른 채 말이다. 동네 바보 형이 각성을 한다고 해서 천재가 되는 건 아니었다. 생각이 결여된 각성은 무식한 자가 신념을 갖는 형태가 되고 말았다. 그는 여전히 똥과 된장을 구별하는 능력을 갖추지는 못한 것이다.
심지어 죽는 사람들은 엑스파 자신 쪽의 사람들이었다. 대의를 위한답시고 전투 가능한 인원은 미리 빼놓는 잔인성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 조직을 파괴하려고 했다면 사실 오징어 게임에 참가해서는 안 됐다. 내부에서 기훈이 형 하나 들어간다고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내부에 있으면 외부에서 찾아와서 일망타진을 한다는 계획이 있었지만 그만한 역사가 있는 조직이 그리고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 조직에 겨우 총을 든 용병 몇 명만으로 싸운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기훈이 형은 그냥 그 게임에 참가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의식은 기훈의 본래 내재되어 있는 바보스러움을 이용해서 논리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게임에 참여하고 싶다는 무의식의 욕망을 최대한 받아들여서 가장 그럴싸한 명분을 복수와 정의라는 이름으로 설정하게 해서 그는 다시 게임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게 기훈은 그냥 자신이 이끌리는 무의식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다시 게임장으로 돌아갔다.
정의와 복수는 단지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사회의 옷, 그리고 지난 대회에서 우승을 할 수 있었던 선함이라는 옷을 입고 있는 상태였기에 의식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 그 옷을 입고 있다는 자체도 모르고, 그걸 모르니 벗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기훈이 형은 끝까지 그 단어(감정-복수와 정의)를 머릿속에 그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기훈이 형을 보면서 알게 된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싫다고 하면서도 바로 우리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대부분 부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당신은 당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여건이 되지 않아서? 절대 아니다. 그냥 노력 없이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일 뿐이다. 그건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욕망일 뿐이다. 마치 로또에 당첨이 되었으면 하면서 로또는 구입하지 않은 것과 같은 거다. 사야 당첨이 되는데 어차피 당첨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5,000원도 아까워 혹은 낭비라고 생각하고 사지 않는 사람이 로또에 당첨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그냥 욕망이다.
하고 싶다고 하는 건 자신의 에너지를 투자해서 하는 것이다. 설사 그 일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더라도 일단 하는 것이 바로 하고 싶다는 것이다. 기훈이 형이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것도 알면서도 다시 게임에 참여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직장도 다니기 싫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건 당신이 하고 싶다는 것을 그 무엇도 정하지 못해서다. 그러니 하고 싶어하는 일을 정해서 한 사람이 우선 그 일을 하고 남은 것이 당신에게 온 것이 그 직장이다. 당신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지도 못하고 세상에 남은 찌꺼기 일을 하고 있으니 이 말에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월 300만 원씩 정기적으로 입금이 된다면 당신은 그 직장 계속 다니겠는가? 차비 빼고 점심값 빼고 하니 대충 비슷하고 같으면 퇴직하고 집에 있을 거다. 거봐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이렇게 드러나는 것이다. 누군가는 알바라도 뛸 거다. 비교적 스트레스 적고 덜 고생하는 일로 말이다. 그건 돈을 갖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미래가 불안해서 더 많이 필요하고 생각해서다.
퇴직해서 여유로운 시간과 그 돈으로 다음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있는데 굳이 일을 하려고 그 돈을 써가면서 시간을 보내는 건 손해라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오징어 게임에 참여하기 전의 기훈이 형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노모가 일을 하니 시간은 남아도는데 노모가 준 용돈으로 경마나 하는 인생과 다를 게 없다. 우리가 더럽더라도 스스로 생존해야 한다는 의지를 포기하고 직장을 떠나면 다들 기훈이 형이 되는 거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청춘들이 이런 상태라고 봐지는 건 나만 그럴 건 아닐 거다. 어쩌면 우리나라 청춘들도 오징어 게임에 들어가서 물려받은 DNA와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받아온 비주체적 교육을 압도할 압력을 받아야 그나마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진짜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진짜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찾아서 하고 있는 성기훈은 456억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상태라고 본다. 그러니 그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딸이 있는 곳보다도 말이다. 단지 성기훈의 주변 상황이 그 행복을 압도할 정도로 주변이 삭막한 상황이기에 스스로는 느낄 수 없을 뿐이다.
즉 최선의 행복이라고 볼 수 없지만 차선의 행복은 되는 것이다. 최선의 행복은 나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까지도 행복해져야 가능한 것이다. 기훈이 형이 최선의 행복을 취할 수 없었던 이유는 성향상 주변의 그런 압력과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기훈은 만들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징어 게임장안에 있는 기훈이 형은 수많은 차선중에서 최선의 차선 상태인 거다. 만약 기훈이 형이 최소한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보지 않고도 알 정도의 지성만 있었더라도 그런 불행 속의 행복이 아닌 보편 속에 보편행복이라는 차선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직도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기훈이 형의 일그러진 신념은 친구 정배마저도 잃게 만들었다. 즉 지성이 없는 자가 행복을 추구하면 주변이 이렇게 희생당하게 되어 있다.
아마 기훈이 형은 끝까지 모를 거다. 성실한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노력 없이 남들에게 한 번에 존경받고 싶어 하는 그의 행복 추구로(혹은 욕망으로) 인해서 자신의 주변이 희생당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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