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74 런던살이ㅣ07. February. 2024
타인에게 노예의 정신으로 도움을 준다면 당신은 반드시 발전되어 있다.
그걸 보상이라고 생각하라. 행여 고마움까지 받는다면 두 사람은 인생의 동료가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내가 사람들에게 먹고 살려면 계속 성장을 해야 하고 방향을 모를 때는 성공한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의 노예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노예라는 단어에 반감을 가진다. 하지만 나는 이 단어를 바꿀 의사가 없다. 적극적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노예라는 단어를 쓰는데 여기에서 그냥 도와준다는 말을 하면 대충 도와주는 수준에서 끝난다. 물론 도와주는 사람은 아주 많이 도와줬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많고 적고의 기준은 원하는 사람이 목적을 이뤘는가에 대한 결과가 기준이 되는 거지 도와준 사람의 노력의 인내심이 기준이 되지 못한다. 여기에 공생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도움의 수준이 더 떨어진다. 도움을 주는 것도 대가를 바라는데 공생은 더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을 어떻게 살지 모르고 성장을 하는 방법을 모를 때는 성장하는 친구든 동생이든 어떻게든 빌붙어 있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 노예 생활을 하고 자신이 변화가 될 정도 수준까지 이르러야 성장이 가능하다. 이런 노력은 노예근성 말고는 찾을 수 없다. 행여 다른 언어로 노예근성만큼 노력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기꺼이 다른 단어를 사용하겠다.
그리하여 이런 노예 근성으로 이번 일행들과의 합숙은 서로에게 그런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이번 합숙은 서로가 성장하는 시간이 되었다. 각자가 잘하는 부분을 최대치로 노력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며 딱 6개월치의 성장이 이뤄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마 서로 떨어져서 각자 할 일을 했다면 이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을 거다. 그러니 6개월 동안 서로 노예 의식을 가지며 도와준 덕에 6개월치의 성장이 있을 수 있었던 거다. 그리고 서로 노예 의식을 가지고 도와주다 보니 공생이 되었고 공존이 가능해진 거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너 이만큼 해라는 식의 관계는 성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런 현재를 즐기기 위한 수단으로 서로를 사용하는 수준일 뿐이다. 노예 의식으로 도와준다면 각자가 할 수 있는 건 무조건 다 맡아서 끝까지 하는 것이고 할 수 있는 것의 크기가 달라도 피해 의식 없이 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서로 미안함을 느끼는 몇 마디 말로 다 해결이 되는 관계로 이어지면 공생이 가능해지는 거다.
그래서 합숙의 끝이 아쉽게 느껴진다. 직장이든 학교든 군대든 어떠한 만남에서도 아쉬움 보다는 벗어난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에는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일행은 내일 집 계약을 하고 대다수의 짐을 새 집으로 옮기기 위해서 짐을 쌌다. 진짜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을 실감하는 날이다. 그래도 평소 나의 주장대로 런던에서 6개월을 일행들과 살며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내니 뿌듯한 삶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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