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쌓기/런던살이 2023-24

런던살이 Day 122 (17. December. 2023)

_교문 밖 사색가 2023. 12. 18. 09:47

런던살이 Day 122 (17. December. 2023)

 

무엇이 한국적인가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 없다. 지금 세상은 누가 그걸 잘 표현하느냐가 관건이다.

우리는 그걸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모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 영웅도 괴물에도 관심없는 드라마 내용에 마지막 주인공의 행동은 그래도 영웅으로써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듯해보인다. 시즌 2에 사람을 구하는 결심의 의미를 말해줬으면 좋겠다. 늘 하듯이 '당연히 그래야 하는거 아냐?' 라는 대사로 넘어가지 말고.

 

 

'무빙'을 봤다. 너무 재밌게 봤다. 우리나라 자본이 손을 대지 않으면 이렇게 잘 만들 수 있구나..라고 느꼈다. 하지만 두 번은 보지 않을 거 같다. 같은 시점에 본 다른 드라마가 있다. 정확히는 애니메이션인데 옆동네 넷플릭스에서 하는 '푸른 눈의 사무라이'다. 이건 다시 볼 거 같다. 사무라이 정신이 궁금해서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다.

 

대충 서로 죽고 죽이는 내용은 비슷하다. 하지만 무빙은 다보고 나면 골조가 없는 순살 아파트처럼 재미의 느낌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전체 구조는 엑스맨 세계관을 표방하는 듯하다. 거기에다가 초능력자들을 한 학교 한 교실에 모으는 이유는 신세기 에반게리온 설정이고, 하늘을 나는 조인성은 마치 매트릭스의 키아누 리브스를 느끼게 한다. 이렇게 조합을 하니 한국적인 요소가 뭔지 생각해 보게 됐다. 한국적인 것이 없었다. 북한이 나오는 설정이야 다른 나라에서 만들면 자기들 걸로 조합하면 되니 그런 거 말고 한국의 정신 같은 거 말이다. 

 

결국 사랑으로 포장된 연애 서사가 전부 였다. 류승용과 조인성, 조인성 아들의 연애사가 한국적인 요소고 그게 전부였다는 것이 놀랍다. 그리고 이걸 이제야 발견한 나도 놀랍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드라마는 여명의 눈동자라고 생각하는데 결국 그것도 최대치와 채시라의 사랑이라기로 끌어간다. 근데 그건 초능력자 이야기도 아니고 일제 강점기 때 정신대에 팔려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세대가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서로를 위해 목숨도 버리려고 하고 그 와중에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생뱀을 먹으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시대극의 내용이기에 설득력이 1,000% 다. 하지만 무빙은 죽을 수 있는 싸움에서도 연애를 한다. 아무리 고등학생 모쏠이라고 하지만 그 상황에서 진짜 연애를 한다. 엄마 구하러 가야 하는데도 연애를 한다. 현실성이 거의 없다.

 

이런 초능력자 이야기에 '서울 뚝배기' 같은 토속적 인간미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그렇고 지금 시대는 그냥 시원한 액션에 볼거리 많고 재밌으면 그만인거라는 식으로 드라마가 전개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누차 말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은 공부해서 알게 되는 철학 말고 그냥 살면서 저절로 터득하게 되는 한국적인 철학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게 없다. 그러니 이런 작가들도 각본을 쓸 때 철학을 넣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우리나라 드라마는 철학이 없었던 거다. 그 자리를 늘 사랑이 채워나갔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일본을 보고 성진국이라고 놀리면서 연애도 돈으로만 하는 고자국가가 되었다.

 

드라마는 정말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문학 작품의 보급형이 드마라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기에 온 국민이 보며 웃고 운다. 그렇게 가랑비에 비젖듯 드라마는 우리의 현실에 알게 모르게 스며든다. 그렇기에 배우지 않고 살면서 알게 되는 철학적 요소를 넣는다는 것은 세대의 정신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역할을 한다. 예들 들자면 우리나라의 시대극은 일제 강점기를 잘 활용했다. 그러다 보니 안중근 의사는 한중일이 뭉쳐서 서구 세력에 맞서야 한다는 내용을 투옥 중에 친필로 써서 알렸지만 우리는 그런 그의 철학을 아예 모른 체 살아가며 드라마로 이어지는 영향력으로 무조건적으로 일본에 대한 반감만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일본에게 그런 모진 수모를 당한 안중근 의사가 그랬는데 우리는 그런 철학에는 관심도 없다. 그냥 일본이 싫은 거다. 세상은 불편적 적과 함께 동행해야 하는 구조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반일 감정이다. 학교 다녔으면 알 텐데 말이다. 학교에 친한 친구들하고만 다니는 건 아니지 않던가. 심지어 교사들도 말이다. 아무튼 지금은 그런 드라마가 나오지 않으니 젊은 세대는 일본에 대한 감정이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고 한다. 

 

옆동네 사무라이는 서양인이 각본을 만들었어도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다. 예로 양손이 없는 국수집 아들은 주인공의 액션을 보며 자신 안에 있는 위대함을 깨우고 싶어서 사무라이를 무작정 따라나선다. 하지만 매번 거절을 당하며 자존심을 구기지만 그래도 억지로 붙어 있으면서 자신의 존재가 쓸모 있음을 증명한다. 그래서 두 사무라이를 두 번이나 구하게 된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도 단점은 있다. 정확히 사무라이 정신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서양인이 나름 느끼는 사무라이 정신을 어떻게라도 표현을 하려고 했다는 점에서는 무빙과는 차이점을 보인다.

 

무빙은 단순히 세계관을 차용하고 캐릭터를 차용해서 재밌게 만든 오락물이지만 푸른 눈의 사무라이는 일본 사무라이라는 캐릭터만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멋과 품위까지도 차용함으로써 어떻게든 사무라이 정신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무빙이 매트릭스 케릭터를 차용했다고 해서 매트릭스 철학을 가지고 올 필요는 없다. 일본도 드래곤 볼 같이 한 놈 이기면 더 센 놈이 나와서 더 훈련해서 도전하는 단순구조의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은 에반게리온이나 공각기동대와 같은 자아 통찰적 작품도 있고, 건담 시드와 같은 전쟁의 본질에 대해서 다루려고 한 작품도 있다. 미국은 매트릭스로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잘 표현했고, 와치맨으로 초능력자들이 평화의 시대 때는 스스로 적으로 몰려서 국민을 뭉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의 영화도 있다. 아울러 내가 좋아하는 ER이라는 작품은 휴머니즘을 아주 잘 표방하며 그레이 아나토미는 섹스 드라마라는 오명도 있지만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아주 잘 표현한 드라마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나라 드라마는 그냥 다 없고 그냥 사랑이다. 그것도 이제는 뜬금없이 연애질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개인적으로 이제는 철학이라는 것이 한 국가의 소유물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정의에 대해서 얘기를 하더라도 그걸 이제 누가 어느 국가에서 먼저 하고 그걸 퍼트렸는지는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거다. 

 

에반게리온에서 자아에 대한 통렬한 자세로 주인공을 괴롭게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 철학이 일본스럽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프랑스에서 만들었어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 사무라이 정신이 꼭 사무라이스럽다고 할 수 있을까? 정의라는 철학을 잘 표현한 시대극이 사무라이 정신으로 표현될 수도 있는 거다. 그래서 되려 내가 푸른 눈의 사무라이를 보고 사무라이 정신을 못 느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무빙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게 한국스럽다 아니다,를 떠나서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설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재미만 추구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래도 된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 밖에 없다는 것은 국민들을 자꾸 복수나 폭력에 대한 정당성을 무의식 중에 심어놓게 된다. 무빙 자체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스마트 폰을 잘 사용하게 하려면 스마트 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를 만들게 아니라, 책을 읽게 만드는 습관을 길러야 하듯이 무빙이라는 드라마가 있다면 ER 같은 휴머니즘 드라마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서울 뚝배기 같은 토속적 시대극이 아니라 지금 현실에  맞는 인간미로 설득력 있게 만들어야 하는 거다.

 

그리고 그런 작품이 많아지고 시대와 잘 버무려지면 그때서야 한국적인 작품이라는 옷을 입게 된다. 결국 내가 무빙을 보면서 한국적인 것을 느꼈다고 하는 설정이 연애밖에 없다고 하는 건 우니라나 드라마가 모든 상황에서 심지어 억지스럽게 연애 상황을 넣어서 시청자를 설득하려고 하기 때문인 거다. 구룡표가 꼭 다방 아가씨와 연애를 해야 그런 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건지, 조인성 아들이 꼭 여자를 좋아해서 초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생각해야 한건지. 왜 다른 설정은 그렇게 찾을 수 없는걸까? 결국 국가가 정의나 자아나 평화같은 것들에 대한 철학이 전혀 없기 때문인거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작가들도 그런 소양이 없기도 한 거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우리나라에서 200만 부가 팔렸다고 한들 10만 부 팔린 미국보다 더 정의감은 없을 거다. 군인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실랄하게 알 수 있다. 작가들도 그런 거 배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봐진다. 읽은 작가들도 있을 텐데 말이다.

 

과거에는 우리나라 방송국이 그런 내용을 싫어해서라고 핑계를 댈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해외 OTT에서는 꼭 연애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제작이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작가들은 직업적 소명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가능하면 그것이 국가적이면 좋을 거 같다. 국가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하얀 거탑'처럼 주제에 충실한 드라마부터 시작해서 국민을 뭉치게 하는 철학적 메시지의 드라마를 만들었으면 한다.

 

(side talk)

 

1. 하얀 거탑을 본 적이 없는데 일본 스럽게 주제에 충실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보니 일본이 원작이라고 한다.   

2. 사냥개들 : 이 작품은 연애는 없지만 일본 애니 '더 파이팅'의 마쿠노치 이보의 캐릭터를 차용해서 만들었다. 

3. 지금 우리 학교는 : 이 작품도 일본 진격의 캐릭터를 거의 모두 차용해서 만들었다. 

 

결국 우리는 가랑비에 옷 젖듯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철학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세계관을 차용하고, 캐릭터를 차용하는 것이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세상에 그런 거 다 따지고 작업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냥 서로서로 다 차용하는 시대인 거다. 문제는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우리 것이 없는 것이 문제인 거다. 있다고 하는 것이 설정에 맞지 않는 연애사, 상황에 맞지 않는 초딩적 모쏠의 연애, 복수에 이용하는 연애 그런 거밖에 없다. 지금 생각해 보니 현재 우리나라의 드라마는 복수가 키워드로 자리 잡아가는 듯하다. 마스크 걸의 성공을 보면 말이다.

 

https://spike96.tistory.com/16464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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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Axy7Ylr97sQ

개인적으로 지금 철학적 드라마들이 나온다고해서 세상이 나아질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90년 대 이현도도 서태지와 신해철처럼 자아에 대한 노래를 불렀지만 지금 그 세대부터 나약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시기에 드라마도 함게 이런 사람들이 얘기하는 철학을 말했다면 그래도 지금의 대한민국이 엉망이 되는 속도는 좀 늦춰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든다. - 이현도의 사자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