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살이 Day 76 (2023.11.01)
여행은 자아를 찾기 위한 가장 현명한 도구다.
영국에서 소도시 여행이란 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개성이 없는 런던의 미니어처 느낌이 드니 말이다. 오늘은 리버풀에 왔다. 항구도시답게 바다는 있지만 마냥 그래서 다르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내가 부산에 살다 보니 더 그렇게 느끼는 거 같다. 심지어 시내는 남포동 느낌마저 들어서 더 개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럴 때는 개인의 사적인 의미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비틀즈에 대한 추억 같은 것 말이다. 안타깝지만 나에게는 비틀즈의 추억이 없다. 90년 대에 내가 음악을 많이 듣고 비틀즈의 역사를 줄줄 꽤는 시절도 있었지만 20살이 되고부터는 음악은 듣지 않았고 25년이 지난 지금은 그들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비긴어게인 시즌 1은 의미가 있다. 여행의 극대치 수준이 바로 비긴어게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거기에 노홍철을 진정한 팀원으로 끌어들이는 유희열의 리더십은 충분히 공부할만한 요소였고 이소라의 음악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하는 것은 이 여행 프로그램의 백미라고 봐진다. 그래서 시즌 3까지 포함해서 총 5번은 정주행 하면서 봤다. 시즌 2와 3도 비교를 해야 시즌 1을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버풀 숙소 인심이 나빠서 우리는 짐을 가게에 맡기러 메튜거리고 향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기타와 악보대를 지고 걸어가는 익숙한 한 노인을 알아봤다. 비긴어게인에 나온 신발에 탬버린을 달고 노래를 부르던 그 할아버지였다. 쫓아가서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영어가.. 안타까웠다. 하지만 짐을 맡기고 엘버트 독에서 피자로 점심을 먹은 후 오늘 마지막 코스인 비틀즈 동상으로 가니 그 할아버지가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약간의 돈을 지불하고 할아버지를 촬영했다. 할아버지는 노래를 하면서 팬서비스를 해줬고 노래를 마치고 인사도 해주었다.
늘 궁금했다. 이 할아버지는 비틀즈 노래를 이렇게 거리에서 부르면서 삶을 살아가신다는 것이 행복한지 말이다. 그것을 물어볼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나는 이 할아버지가 후회는 안 하시는 삶을 사셨다고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제부터 시작을 하신 지는 모르지만 중간중간에 힘들고 버겁고 가난에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억울함을 느낄 때도 있었을 테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 계속하길 잘했다는 그 순간부터 후회하지는 않은 선택이었을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지 않고서는 2파운드 동전 하나에 그런 팬서비스를 해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가 내 자신이 되어 감에 있어서 아주 작은 인정에 감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아를 찾은 거다.
나를 찾는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은 하루가 되었다. 이 블로그에서 그리고 런던살이 일기에서 나는 우리의 자아가 나 자신 외에 나를 아는 사람들 안에 있는 나도 나의 자아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남들 속에 있는 자아를 찾아서 만들어간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자아를 완성하고 나서부터는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건 진짜 내가 바란 자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들에게 자랑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그리고 자랑은 작은 인정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된다. 반응의 크기만큼 내 자아가 완성이 되기 때문이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 성공은 그야말로 이미 텅 빈 채로 완성되어 있는 공허뿐인데 이미 텅빈채로 완성되어 있는 그 공허를 애써 채우려고 한 노력은 허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국가를 위해서 살아왔지만 그 국가는 국민을 인정해 주지(보살펴 주지) 않는다. 그래서 각자도생의 삶을 선택했고 배운 것이 타인(국가) 속에 자아를 위한 삶의 방식이라서 이 삶의 방식 말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즉 자아를 찾는 방법을 애초에 배운 적도 없고 남들이 인정하는 삶이라는 공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 대한민국 국민은 자아를 찾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부모님 직업을 무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무슨 일을 하든 벤틀리를 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회분위기를 흡수해서 일어난 현상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이뤄지는 분위기지만 그 말이 과연 이런 분위기를 원한 것일까? 개처럼 벌어서 귀족처럼 살면 된다는 분위기는 그래도 예전이 낫냐 지금이 낫냐는 판단의 가치가 없다. 나쁜 상황에서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거니까.
미스터 트롯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지혜를 흰 수염 가득한 리버풀 거리의 악사에게서 얻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HGzt0OnQz0M
(side take)
1. 나쁜 인심의 숙소를 가니 청소가 안되어 있었다. 엉망진창이었다. AirB&B 측도 이건 확실한 환불 조건이라며 해결해 주기로 했다. 그래서 급하게 다른 숙소를 찾아서 왔다. 마음에는 안 든다. 숙소가 기왕 이렇게 된 거 바로 런던으로 가려고 했으나 기차 예약변경을 한 가격이 1인당 200파운드가 넘게 나와서 그럴 바에야 다른 숙소를 찾는 것이 나았다.
2. 그래서 캐번 클럽에도 갔었다. 리버풀 밤 분위기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나가기도 편했고 기왕 리버풀에서 하루를 묵는다면 캐번 클럽을 가는 것이 더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입장료 5파운드가 생긴 것이 좀 걸렸지만 그래도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일행도 오기를 잘했다며 좋아했다.
3. 숙소를 바꾸며 중간에 저녁을 한식집 moiim에서 먹었는데 닭볶음탕이 너무 맛있어서 추운 리버풀의 날씨로 얼은 몸을 충분히 녹이고 마음도 녹였다. 서비스로 따뜻한 보리차와 김치도 주셨다. 내일 또 가고 싶은데 12시에 문을 열어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내일 기차는 2시 4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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