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의 조언들이 우리 인생에 비효율적인 이유!
TV는 불특정 다수에게 어필이 되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효율적이지 못하다.
운동 붐이 한창 불 때 스쿼트라는 운동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TV 채널마다 유명 트레이너를 불러서 스쿼트 자세를 알려주기 바빴다.
스쿼트 자세를 잡는 중요한 내용 중 하나는 절대 무릎을 발끝 앞으로 나오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무릎에 부담이 되어서 무릎이 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허나 막상 PT를 받으면 무릎이 발끝에서 나와야 한다고 한다.
TV 내용과는 다른 운동방식을 말한다.
그럼 TV는 틀렸다는 뜻인가?
아니다.
TV는 불특정 다수에게 정보를 전달을 하기 때문에 스쿼트라는 운동의 효율성을 극대치로 이끌어내는 방식을 말하는 것이 아닌 누구나 해도 아무도 다치지 않는 법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즉 PT를 받으면 무릎이 발끝에 나오게 하지만 회원의 자세를 잡아주면서 어디까지 무릎이 나와도 되는지 적정선을 잡아주기에 스쿼트 운동을 했을 때 최대치까지 운동 효과를 낼 수 있는 범위를 정해준다는 뜻이다.
결국 우리가 TV로 운동을 배운다면 운동의 효율성을 최대치로 뽑아낼 수 없게 된다.
만약 트레이너 없이 스스로 스쿼트 자세를 잡아서 무릎을 발끝을 벗어나게 한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통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TV로 보고 따라 했다면 통증을 느낀 사람들은 항의하게 될 것이다.
TV는 운동에 대한 효과를 최대한으로 올리는 정확한 자세를 알려주지 않는다.
한 명, 한 명에게 맞는 자세를 알려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 그럴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무릎이 발끝이 나와도 되지만 그 적정선을 전문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 혼자서 할 경우는 무릎을 발끝까지만 허용하라는 식의 말도 없다.
즉, TV는 무조건 최대한 단 명의 불만을 제기할 사람이 없는 안전하고 불만 없는 그래서 비효율적인 방법만을 말해줄 뿐이다.
(또는 어느 한쪽에 불만이 생길 수 밖에 없다면 불평, 불만, 항의가 많은 쪽의 편을 든다.)
비교적 과학적이라고 볼 수 있는 운동도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배우는데 하물며 마치 정답이 없어 보이는 연애와 인생은 어떨 거라고 보는가?
이런식으로 우리에게 지식과 지혜를 알려주는 TV와 책으로 연애와 인생을 배운다면 우린 과연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을까?
앞에서 얘기했듯이 우린 TV에서 스쿼트를 배우더라도 운동 효과를 기대하는 운동법보다는 다치지 않는 운동 목적에 맞지 않는 비효율적인 방식을 배운다.
이걸 연애와 인생에 빗대서 생각을 해보면 우린 TV와 책으로 연애와 인생을 배우면 사회 현상이 어지럽게 되지 않을 비현실적 방식으로 연애와 인생을 배우게 된다는 뜻이다.
조금 지난 방송인 '언니한텐 말해도 돼'라는 프로그램에서는 대기업에 다니는 남자가 여자 친구의 직업이 성인배우인걸 알고 나서 태도가 돌변한 내용이 나왔다.
그 내용을 들은 전문가들은 남자가 자존감이 낮아서 그랬다고 했다.
진짜일까?
그럼 여자가 대기업에 다니고 자존감이 높았을 경우 남자 친구가 성인배우라고 한다면 잘 사귀게 될까?
그것도 직장 선배에게서 알게 됐다면 말이다.
만약 이걸 TV로 본 사람들이 전문가의 조언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무조건 남자가 잘못됐다고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남자를 어떤 시선으로 보게 되고 연애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일단 이 방송이 나가고 나서 많은 사람(여자들일 거라고 본다.)이 남자를 욕했다고 한다. 그래서 방송에 고민자로 나온 여자분은 방송이라는 특정상 내용이 많이 자극적으로 연출이 되었고 그 남자도 연애 당시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준 사람이 비난을 자제해달라고 했단다.
이렇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남자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비난이 나온다.
반대로 생각해서 여러분들의 현재 남자 친구가 성인배우라고 생각해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더군다나 나름 사회적 위치가 있는 여자라면 좀 더 남자를 배척하는 결론은 낼 것이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의 직업이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직업이면 이런 대기업에 다니는 남자 같은 반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남자의 태도가 돌변한 건 저 상황에서는 삶에 있어서 그리고 연애에 있어서 보편적 정서인 거지 자존감이 낮아서도 아니고 남자가 나빠서도 아니다.
더군다나 결혼을 아주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만나는 우리나라 연애방식에서는 더 그렇다.
앞에서 말했듯이 TV는 이 세상의 질서를 망치지 않을 정도를 말한다고 했다.
만약 방송에 출연한 전문가들이 나처럼 말하면 어떻게 됐을까?
거기에다가 이런 상황을 미리 대비해서 보편적 직업을 여자가 가졌어야 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됐을까? (전문가니 이 정도는 말해야 했을 거다.)
분명 난리 났을 거다.
성인 배우는 인간도 아니냐며 윤리를 들춰낼 테고, 여자를 비하한다고 인신공격을 했을 것이고, 내용과는 상관없는 남자들의 잘못을 들춰내서 맞붙으려고 했을 것이다.
방송에서는 보편적 정서를 무시하고 잘못된 조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방송을 본 일부 사람들은 남자를 비난했으니 말이다.
자 그럼 이걸 스쿼트 자세를 빗대에서 생각해보자.
TV에서 나온 데로 스쿼트를 운동하면 하체가 튼튼해질까?
TV에서 나온데로 자신 스스로도 부끄러워서 남자 친구에게 말하지 못하는 언더 직업을 가졌어도 대기업 남자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그럼 반대로 내가 대기업에 다니면서 언더에서 일하는 직업을 가진 남친을 만날 수 있을까?
답은 금방 나올 것이다.
그러니 TV를 통해서 세상을 배우려고 하지 마라.
TV는 최대한 피해가 적은 곳에 최대치의 도덕적인 잣대를 기준으로 말하려고 한다.
그래야 비난을 받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받아서 피해가 없기 때문이다.
(아마 나처럼 말하면 프로그램 존폐의 위기가 올 것이다.)
아무튼 이런 방식으로 도덕적인 잣대 대면서 그것이 통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면 우린 아무도 고생하지 않는다.
그러니 현실을 보라.
우린 편집을 통해 방송되고 있는 TV 속 세상이 아닌 무편집본 현실에서 살고 있다.
TV는 우리들을 위로하기 바쁘고 희망을 주기 바쁘다.
그래야 우리들 현실의 괴로움을 잊게 하고 또 위로를 받으며 다시 희망을 갖게 한다.
나는 잘못되지 않았어! 다시 시작 하면 돼! 지금처럼! 같은 것 말이다.
사랑은 인종도 국경도 그리고 요즘은 남녀도 구분하지 않는다고 우린 무의식적으로 배운다.
TV에서는 늘 이런식으로 사랑의 위대함을 칭송하지 않는가!?
말 그대로만 보면 다 맞다. 요즘은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경우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이 말의 뜻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라는 의미의 말이다.
이 말은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아주 강하게 박혀 있을 때의 말이니 이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래서 이 말은 요즘 방식으로 바꾸자면 사랑은 가난도, 직업도, 미래도 따지지 않는다는 말로 바꿀 수 있다.
허나 현실은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어 있다.
현실의 사랑은 좋은 거 구분을 하고 따진다는 뜻이다.
설사 사랑이 진짜 인종도, 국경도, 남녀도 구분하지 않는다고 치자.
허나 결혼은 직업도, 예쁨도, 성실함도, 현명함도, 금전적 여유도 따진다.
이상적 사랑은 가난도, 직업도, 미래도 따지지 않는 관대함을 보이지만 현실의 결혼은 따질 수 있는 거 다 따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사랑(연애)을 하는 이유는 결혼을 하기 위해서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혼을 위한 연애가 아닌 연애를 위한 연애를 해도 무의식적으로 결혼을 염두에 두고 연애를 하는 민족이다.
사랑 = 결혼이라는 공식을 믿고 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진다고 믿는 다는건 TV 속 세상이라면,
사랑 < 결혼 이라는 공식은 리얼 현실이다.
가끔 사랑 > 결혼 이라는 공식을 우린 보게 된다는 건 나도 인정한다.
그래서 사랑은 아름답게 보인다.
허나 말 그대로 가끔이다.
마치 마라도나가 손으로 골을 넣어도 인정받은 것만큼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이런 가끔이 현실로 이뤄지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수치라는 것이다.
이런 가끔의 현상을 보편적 일반화시켜서 나에게도 그렇게 될 거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 바로 TV의 역할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주어진 환경에서 시키는 대로 살면서 안정적이라고 믿게 되고 그래야 사회에 분란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좋은 사람, 좋은 직업, 좋은 가치관(등등)을 가진 사람이 되어서 좋은 배우자를 만나려고 하는 것이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사랑 < 결혼, 이라는 공식이 나에게는 사랑 = 결혼으로 보이게(느껴지게) 된다.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 TV에서 말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의도는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현실을 더 빨리 깨우치고 TV 속 조언에서 벗어나 상상에서나 존재할 법한 인생 공식을 믿는 상황에서 탈출하여 진짜 현실로 돌아와 진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TV에서 말하는 대로 스쿼트를 했을 경우 여러분들은 원하는 만큼 또는 내가 운동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이 비유를 이해할 수 있다면 내 블로그 내용들을 이해하기 편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인생에서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ifCtQrdlJDo
▼ 방송 내용을 현실적으로 잘 해석해준 유튜버
https://www.youtube.com/watch?v=DIRRpmWZ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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