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가 말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간디도 여기에 덧붙였다.
"방향이 잘못되면 속도는 의미가 없다."
이렇게 유명하고 세계를 대표하는 위인들이 이런 말을 했으니 우린 이 말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살다 보면 맞는 말이라고 느끼고 심지어 절대성마저도 인정하게 된다.
그럼 속도는 방향이 정해졌을 때만이 의미를 가진다 말인가?
방향을 우선시하는 명언을 잘 들여다보면 속도는 방향이 정해졌을 때만이 의미를 지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물론 방향이 정해졌을 때 속도가 빠르면, 거기에다가 정확성까지 높다면이야 금상첨화겠다.
그럼 묻겠다.
여러분들의 (인생의) 방향은 어떻게 정할 것인가?
일단 교육이라는 방법이 있다.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무려 20살 동안이나 감옥 같은 시스템의 학교에서 보내는데 방향을 정하는 방법이 교육이 되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허나 알다시피 그리고 이미 글을 올렸다시피 우리나라 교육은 지식 강요 주입식 시스템이라서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오직 좋은 학교 들어가서 취업하는 방향으로 정해져 있다.
어느 직장 필요 없다. 목표는 그냥 삼성이다.
심지어 서울대 석사면 삼성 과장부터 시작한다 하니 그것이 목표라는 서울대생의 야심 찬 목표에 참..... 구글, 애플도 아니고...
암튼 우리나라 교육에서 주체적 인생을 사는 법(방향을 스스로 정하는 법)을 배운다고 기대하지 마라.
그냥 평생 노예 인생으로 사는 방향으로 정해졌다.
좀 좋은 직장 노예냐, 안 좋은 직장 노예냐, 철세 노예냐의 차이다.
그리고 좀 좋은 직장 노예도 더 잘될 것을 목표로 하지 않으면 40세 넘어서 거의 철세 노예가 된다.
어쩌면 처음부터 철세 노예로 시작한 노예가 더 강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 교육은 우리가 인생을 사는 방향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왜 우리나라 교육은 이런 식의 교육밖에는 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주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우리들을 가르친 선생님들도 수능 치고, 직장 구하려고, 구한 직장이 학교여서 그런 거다.
그래서 사는 게 뭔지 모르니 가르칠 수 있는 게 지식 말고는 없으니 그런 거다.
왜 선생님을 했겠나?
평생직장 걱정 없이 살고 연금 받을 수 있는 직업이면 인생이 보장된다고 착각을 해서 그런 거다.
물론 일하다 보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허나 그렇다고 한들 평생을 보장하는 직업을 포기하고 다른 인생을 살려고 하는 방법도 모르니 그냥저냥 그렇게 하는 것이다.
교육 시스템도 우리 인생을 포기했고, 선생님들도 자기 인생 건사하기 바쁘니 학생 인생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없다.
아는거 가르치고 학부모들 욕이나 피해서 살기 급급한 인생이니 교육에서 인생 사는 방법을 배우는것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허나 결국 지금의 선생님들도 넓게 보면 피해자다.
배운것이 그거니 말이다.
두 번째는 부모님의 영향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학생들이 되고 싶은 직업을 말할 때는 부모님들의 영향이 아주 크다는 결과가 있다.
대체로 부모님들이 의사면 의사라고 생각을 하고 정치인이면 정치나 교수를 생각한다고 한다.
이 말을 풀이하자면 인생의 방향을 정할 학생 시기에 대체로 자신 근처에 있는 것을 보고 정한다는 뜻이다.
만약 부모님들이 전문직이 아니면 대체로 의사, 교사, 간호사, 군인이라는 직업을 말하는 건 교과서 자주 나오는 직업이기에 그렇게 말하게 된다고 한다.
교과서라는 것은 우리 학창시절에 가장 근처에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허나 이런 직업을 말하는 것도 나의 시대 얘기다.
요즘은 초등학생도 건물주가 1 목표이고 그 다음이 공무원이라는 것을 보니 이제는 부모님을 통한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거 같다.
(학생 시기에 뉴스를 보고 스스로 건물주를 선택한다는 건 너무 실망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뉴스를 보고 부모님이 별 뜻 없이 건물주가 최고라는 말을 듣고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설마 아무리 지금 우리의 교육 정책이 잘못됐다고 한들 건물주를 목표로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결국 교육은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데 의미가 없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결국 이 말은 우리가 인생의 방향을 정할 때는 교육보다는 근처에 있는 사람과 보이는 직업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 즉 간접적 경험을 토대로 정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공교롭게도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교육이 절대적으로 인생을 지배하는 구조라서 직접 경험으로는 절대 인생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초등학교 때는 오직 교과서 나오는 직업, 중고등학교 때는 선생님들의 꿈을 가지라는 말(헛소리에 가까운-꿈이 뭔지도 모르면서 하는 말이니), 그리고 부모님들이 평소에 하는 말들(뉴스 보고 건물주가 최고라는 말)에 기대서 방향을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대학에 간다.
대학에 간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전공을 선택해서 간다는 뜻인데 이미 시작부터가 인생을 조지는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즉 간디의 말처럼 방향이 잘못되었는데 속도만 열심히 내서 의미가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뜻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살고 있다.
여차해서 대학을 다시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각오와 정신적 그리고 물질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에 대학을 다시 준비하거나 두 번 가는 경우는 있다고는 해도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방향을 다시 정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어쩔 수 없는 환경과 강제성 가득한 교육 시스템으로 정해진 방향 그대로 속도를 내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될 시점에(첫 시점이 30세 정도다.) 모아둔 돈을 계산해서 다시 인생을 설계하고 직장을 그만두는 케이스가 대다수라고 봐진다.
그리고 남겨진 자들에게 그렇게 하다가 잘못하면 인생 망친다는 조언 한 마디식 듣고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남겨진 자들에게 인생 망친다는 소리보다 부럽다는 소리를 듣고 나올 수 있은 것일까?
다시 말해서 어떻게 해야 방향을 다시 제대로 잡을 수 있는 것일까?
필자는 그 방법이 '속도'라고 본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대충 대학 가서 갈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가서 죽어라 속도를 내고 일을 하고 돈을 모아야 한다.
그 돈으로 이제는 교과서에 나오는 혹은 부모의 영향 외에 직업을 가질 직접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간접 경험을 벗어나서 모아둔 돈으로 직접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이 바로 취미 생활이라고 전 글에 올렸다.
(=> 취미 생활로 인생의 방향을 찾는 링크 : 여러분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하는 이유 (노력의 기준점) (daum.net))
즉 취미 생활을 극대치까지 올려서 이 취미가 나에게 맞는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건지? 얼마까지 할 수 있을 건지? 등등을 파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속도다.
한 달에 한 번 할 것을 일주일에 한 번 하면 무려 4배나 빠르게 된다.
그리고 이 취미가 맞지 않으면 무려 4배 빠르게 다른 취미를 찾아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찾았으면 그것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서 기준점을 넘어서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여기에 대한 내용은 링크에 달아놓은 글에 있으니 이 글을 다 읽고 참고하시면 됩니다.)
그러니 답은 뻔하다.
인생은 방향이 맞고 방향이 잘못됐을 때 속도는 무의미하다.
허나 그 방향을 처음부터 제대로 정하지 못했을 때, 다시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속도가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도 우리나라 실정에는 더 잘 맞는 논리다.
우리나라 교육 실정에 자아를 찾기 위해서 서양처럼 '갭이어(gap year)'를 가지면서 자아를 찾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서울대 몇 명 배출했는지만이 중요한 시스템에서 삼성에 들어가는 목표로 밖에 살 수 없는 실정에 다양한 직접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할 일(직업, 직장)을 찾는다는 것이 그리 느긋하게 진행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보는 건 어렵다.
그러니 인생의 방향을 찾기 위해서는 속도가 우선시되어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
그럼 왜 선각자들은 인생은 마치 무조건인 것처럼 방향이라고만 말했을까?
그 사람들은 천재다.
천재는 머리로 다된다.
사유라는 것으로 자신들이 하는 일을 머릿속에서 다 처리하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서 그런 거다.
이걸 아인슈타인의 예를 들자면
아인슈타인은 중력의 원인을 시공간의 왜곡 현상으로 발생하는 거라고 발견을 했다.
뉴턴도 만류 인류의 법칙이라고 해서 중력을 말했지만 중력의 원인에 대해서 물으니 대충 그런 게 있다는 식으로 넘어갔다.
허나 아인슈타인은 중력의 원인을 발견했다.
오직 상상력(사고 실험-머릿속에서 생각만으로 하는 시험)으로만 말이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린 그걸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그 증거도 속속들이 발견이 되고 있고 심지어 블랙홀도 발견이 되었다.
그리하여 상대성 이론의 기념비적인 영화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로 인해서 중력이라는 것이 우리들에게도 친숙하게 알려진 것이다.
천재들은 이래도 된다.
근데 우린 천재가 아니잖아.
보통의 범인일 뿐이다.
더군다나 여기에 시대의 어려움이 겹치면 간디처럼 영국을 상대로 비폭력 운동을 벌여야 하는 명확성이 보인다.
크게 방향을 고민할 필요 없는 사회상도 여기에 한몫 거든다.
지금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라고 한다면 아마도 우리들의 방향은 간디처럼 명확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굳이 천재가 아니더라도 아주 강직한 올곧은 사람이라면 말이다.
근데 우린 그렇게 올곧은 사람들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범인이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범인답게 방향을 직접적인 경험을 빠르게 하는 속도가 필요하다.
물론 누군가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먼저 가서 이 방향은 잘못된 것이라고 되돌아와서 말해주면 좋다.
그것을 참고해서 다른 방향을 가면 된다고 여겨지니 말이다.
허나 먼저 간 사람이 나와 같은 사람은 아니라서 그 사람이 잘못된 길이라고 한 그 길이 되려 나에게 맞을지도 모른다.
이 방법으로 방향 하나라도 거를 수 있게 하려면 돌아온 사람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고 내가 필요한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서 자세한 질문으로 그 방향을 파악해야 한다.
허나 돌아온 사람도 갈길이 먼데 굳이 나에게 친절하게 알려줄까?
그러니 우린 친절과 함께 정보를 얻으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가를 정확히 계산해서 갔다 오는 경험보다 나은 금액이 나오면 당연히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허나 친절한 정보나 내가 직접 한 경험하는 금액이나 비슷하다면 직접 하는 것이 더 낫다.
물론 여기에는 경험을 할 시간도 포함해서 수치에 맞게 잘 계산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런 언어적 정보를 아주 우습게 봐서 이런 건 공짜라고 생각하는데 공짜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공짜 정도 수준에서만 말해주는 것만 봐서 그런 거다.
대가를 지불하고 알고 싶은 것을 자세히 물어보면 여러분들이 필요한 정보는 대가만큼 나오게 되어 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여러분들이 알고 싶어 하는 만큼의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보다도 더 큰 문제는 아마 여러분들은 내가 뭘 알아야 하는지 뭘 알고 싶어 해야 하는지 조차 모를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더 큰 문제는 더군다나 어차피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아무리 알아야 하는 절대적인 것을 알아서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고 한들, 믿고 싶은 것만 믿을 것이며, 반드시 알아야 할 듣기 싫은 정보는 무시할 것이라는 것이다.
자 그러니 이런 과정으로 내가 가는 길 하나를 거르는 생각이 쉽지 않구나.라고 생각이 된다면 내가 원하는 인생의 방향을 찾기 위해서 시간을 내어서 경험을 시작해보라. 그리고 귀찮음도 버리고, 게으름도 버리고, 핑계도 버려서 무게를 가볍게 해서 속도를 올려보라.
그리고 아니면 빨리 돌아와라.
그리고 또 다른 방향을 경험하라.
단언컨대 분명 인생의 방향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5개의 방향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빠르게 움직이면 5년이면 여러분들의 인생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10년안에 가능하다.
30살부터 시작하면 40살이전에 방향을 찾아서 40대부터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30대가 다 되어 가는데 자신이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전혀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단 하나다.
그냥 이렇게 (편하게) 살고 싶다.
그냥 이렇게 (습관적으로) 살고 싶다.라고 생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수백만 년 사는 존재들이 지구 상에 존재한다.
바로 동물이다.
동물은 수백만 년 동안 그렇게 살기를 바라서 지금도 드넓은 초원에서 혹은 시골집 앞마당에서 혹은 인간이 사는 집에서 그렇게 살고 있고, 인간은 600만 년 동안 동물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서 지금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물론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결국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계속" 무언가를 바라면서, 그걸 이뤄내는 과정을 "계속" 함으로써 성장을 한다는 것이다.
즉 "그냥 이렇게" 같은 머무르는 생각으로는 절대 인생의 방향은 찾을 수 없으며 내가 머무르는 동안 세상(혹은 보이지 않는 라이벌)은 어떻게든 더 발전하게 되어서 나는 뒤처지게 되어 과거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존재들은 하나같이 다들 잊힌다.
위인들이 지금의 우리들에게 머물러 있는 이유는 그들의 생각으로 인한 가치관을 행동으로 증명했고 그것이 오늘날에도 적용이 되고 있기에 위인들은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성장한 자들은 늘 동시대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
잠시 얘기가 딴 곳으로 흘렀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러니 내가 위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답게 존엄을 유지하고, 친구들을 만나서 밥 한 끼 근사한 거 사서 체면을 차릴 것이며, 부모님 생일이나 명절 때 돈 생각하지 않고 효도한답시고 크게 한방 쓸 수 있는지를 생각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을 찾아보라.
그렇게만 해도 앞으로 살아갈 방향에 대한 흐릿한 스케치는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좀 더 뚜렷하게 채색하려고 경험을 하는 것이고, 뚜렷하게 나왔을 경우 그게 나에게 맞는 색인지 아닌지를 파악해서, 맞으면 가는 거고 아니면 다시 돌아와서 다른 방향도 뚜렷하게 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건 바로 "속도"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경험해보고 방향을 정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지 못하니 말이다.
이렇게 직장 생활하면서 10년 정도 한다면 반드시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원하는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21년은 인생에 길을 잃은자들이 길을 찾거나 찾는 과정을 시작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46년 경험론 >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TV속의 조언들이 우리 인생에 비효율적인 이유! (0) | 2021.05.11 |
---|---|
슬램덩크에서 현실적으로 닮을 수 있는 유일한 케릭터 '진'(신준섭) (0) | 2021.03.01 |
여러분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하는 이유 (노력의 기준점) (0) | 2020.11.17 |
부부의 세계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불편한 진짜 의미 (0) | 2020.10.24 |
내가 믿지 않는 3가지 종류의 사람 (0) | 2020.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