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경험론/인생

우린 삶의 끝자락에서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까?

_교문 밖 사색가 2021. 10. 20. 17:06

2020년 3월 15일 글 재업로드

 

 

우린 우린 삶의 끝자락에서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까?

 

 

생에 마지막에 가져갈 것은 오롯이 기억뿐이다.

 

 

[애로우 시즌 8] 스크린 샷 : 이 사진이 이 글의 전체 주제를 담고 있다.

 

 

 

 

 

 

 

2년 전 한 의뢰자가 자신의 아버지를 걱정하며 아버지의 인생을 본 적이 있다.

결과는 2년 뒤인 올해 2020년에 돌아가신다고 나왔다.

 

 

그리고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다.

 

 

 

이런 일이 있으면 삶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린 왜 살고, 무엇을 위해 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학창 시절에 이런 고민에 대한 답을 난 낸 적이 있다.

우리 인생의 명백한 사실은 단 하나다.

'우린 반드시 죽는다'라는 것이다.

 

 

이것을 알게 되고부터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삶은 죽음으로 가는 여정이다.

이것이 내가 내린 학창 시절의 인생의 답이었다.

 

 

이건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다. (되려 더 확고해지고 있다.)

그리고 어차피 죽는 인생 행복한 죽음으로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인생의 목적은 행복한 죽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갤럭시 노트 FE] 오스트리아 장크트길겐 마을 볼프강 호수에서 주말을 즐기고 있는 가족

 

https://goo.gl/maps/6Pie7pVWnegYzidt6

 

Brunnwind - Ihr Lokal am See · Mondseestraße 12, 5340 St. Gilgen, 오스트리아

★★★★☆ · 음식점

www.google.com

 

 

 

그럼 행복한 죽음을 위해 삶의 여정을 어떻게 보내야 내가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일단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의 기본 요소인 돈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일단 우린 돈에 집착하면서 산다.

그럼 죽을 때 돈을 들고 저승에 갈 수 있을까?

누가 들어도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 돈에 집착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런데 우린 돈에 집착하면서 산다.

 

돈을 많이 버는 건 좋다.

어디에 쓸지를 생각하면 말이다.

 

내가 여기서 바보 같다고 말하는 건 돈을 쓰지 않고 돈 자체를 모으는 병에 걸린 사람들처럼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빌 게이츠처럼 벌어서 빌 게이츠처럼 세계 제일의 기부자로 산다면 당연히 돈을 많이 버는 건 좋은 거다.

 

 

 

더군다나 빌 게이츠는 자신의 재산 0.8%만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나머지는 다 기부하겠다고 했으니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존재인 것이다.

 

 

허나 우린 이런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하면서 돈에 집착하는 것이고, 그것이 잘못이라고 난 말하고 있다.

 

 

그럼 돈은 삶의 여정에 중요한 도구이지만, 삶의 목적인 죽음 자체에는 유용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난 이걸 사실 초등학교 때 알았다.

내가 초등학교 때 고스트 버스터즈 애니메이션이 MBC에서 했다.

 

한 에피소드는 뉴욕의 엄청난 부자가 자신이 죽을 때 재산을 남기고 가는 것을 아까워해서 저승으로 자신의 재산을 가지러 가려고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터널을 만들었는데, 그때 귀신들이 이승으로 나오는 사건이 생겨서 고스트 버스터즈가 이걸 해결하는 와중에 결국 그 부자는 재산을 저승까지 가지고 가지 못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이유를 지금까지 살면서 답을 풀어낸 것이다.

 

 

 

 

 

[키미션 80] 베니스, 애인사이 같으나 자세히 보면 4인 가족

 

 

 

 

 

그럼 우린 행복한 죽음을 위해서 삶의 끝자락에서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을까?

 

 

 

 

바로 기억이다.

 

그리고 우린 죽을 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대체로 후회를 한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칸트라는 사람이 있다.

그분은 죽을 때 "이 정도 살았으면 괜찮게 살았다."라고 하며 죽었다고 한다.

(참로고 나의 생일이 칸트와 같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행복하게 죽은 사람이 아닐까 한다.

 

 

이 사람 말고는 내가 볼 때 거의 다 후회를 하면서 죽을 거라고 본다.

왜냐면 우린 우리가 죽을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 가슴으로는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고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을 살기 위한 삶만을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우린 기껏해야 우린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정도의 착함으로 그리고 '난 착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유지하기 위해 적당한 착함, 그리고 요즘 세상에 못된 짓만 하지 않으면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만 살기에 자신에게 죽음이 직면했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기억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면 다들 후회하게 되어 있다.

 

 

 

자 다들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라.

당장 내일 죽는다.라는 가정을 해보라.

그리고 당신들의 일생을 뒤돌아보라.

누군가 찾아와서 당신들에게 한 마디식 한다고 생각해보라.

 

 

이런 식으로 살면서 누군가가 내 인생이 당신을 만나서 내 삶이 더 좋은 쪽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살게 되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없을 것이다.

 

 

그럼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꼭 이런 정도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와야 내 인생이 잘 산 것인가?

그냥 찾아와서 눈물 흘려주는 사람들만 있어도 괜찮은 삶이 아닌가?라고 말이다.

 

 

 

일단 이 글의 목적은 행복한 죽음을 위해서 내가 죽었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글이다.

그러니 눈물을 흘려주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하는 것은 가지고 가는 것이 없다.

 

 

죽음의 그 순간 그래도 사람들이 와주니 부끄럽지는 않은 죽음의 순간이구나..라고는 느낄지 몰라도,

죽어서 저승으로 가는 여정에 가지고 가는 것은 없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그 순간 부끄럽지는 않은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행복한 죽음은 아니라고 본다.

외롭게 죽는 그런 순간의 위기를 모면한 것은 다행인 거지 행복하다는 것은 아니다.

 

 

 

 

되려 죽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너에게) 한 게 없는데 그래도 찾아와서 눈물 흘려주니 고맙구나'라는 감정과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잘해줄걸...이라는 (고맙기도 하지만) 미안한 감정만 가지고 가게 될 수 있다.

 

여차하면 '네가 왜 여기서 눈물을 흘려주나? 넌 여전히 착한 척하느라 가식적으로 사는구나'라고 생각이 되는 사람도 올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lHxVy7X_9c

킴 케트럴 동생이 죽었을 때 사라 제시카 파커가 가식적으로 착한 사람인척 애도(착한 '척')를해서 그만두라는 메세지를 남긴 영상 

 

 

 

물론 이렇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해도 된다는 것을 말할 수도 있다.

 

허나 이런 경우는 6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나 어쩔 수 없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 세상이었기에 위로 차원으로 하는 말이다.

60세 이상의 노인들은 이렇게 해도 되는 격동의 시대를 보냈다. 

전생과 기아 그리고 군사정권과 부패에 맞서서 그야말로 생존하기도 어려운 삶을 살았으니까.

 

 

허나 우린 아니다.

인류 역사상 이런 시기가 없다고 할 정도의 평화와 안정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전생의 시기를 겪은 세대와 비교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인 2020년 3월은 코로나가 이렇게까지 심한 시점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의 코로나 시대가 전쟁과 기아 군사정권과 비교하는 것은 아직은 무리라고 본다.)

 

 

 

그리고 눈물을 흘려준다.라는 것을 생각해보자.

이해가 쉬우려면 역으로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당신들이 친구의 죽음으로 장례식장에 가보자. 눈물을 흘릴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그 눈물은 그동안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웠네...라는 정말 고마움의 눈물일까?

(너로 인해서 더 나은 인생이 되었다는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마 거의 대부분 지금 인생을 살면서 알게 된 친구의 친밀도 + 슬픈 상황이니 흘리는 조건 반사적인 눈물일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당신들은 거의 대부분 이 사람의 죽음을 잊고 일상을 살게 되어있다.

결국 죽는 사람도 이 정도는 알고 죽는다는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인생이 이 정도의 상황도 모르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사고사 말고는 없을 것이다.

 

이런 죽음은 저승으로 갈 때 어떠한 기억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행복하게 죽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린 노잣돈을 관에 넣어두는 풍습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승으로 갈 때 배 삵이 필요할 텐데, 좋은 기억으로 배 삵을 내야 하는데 그것이 없으면 관에 있는 노잣돈으로 대신해야 해서 말이다.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저승으로 가는 강을 건너면 이승의 기억이 지워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그래서 환생하면 전생의 기억이 없을지도 모르는 거 같다.

 

 

그래서 그런가? 구천을 맴도는 귀신들은 원한이 많은, 즉 고마운 기억 하나 없는 존재들이 아닐까?

 

 

 

다시 말해서 저승으로 가는 기억은 기억 이상의 좋은 기억, 고마운 기억(추억이라고 불러도 좋다.)이어야 한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로 하여금 더 나은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이 찾아와서 고마운 기억을 전달해준다면 그것이 행복한 죽음이 되는 것이다.

 

 

 

좋은 기억, 고마운 기억은 그냥 함께 지내는 시간이 아닌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사소한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낸 사람이 된다던가, 어려울 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된다 건가, 필요할 때만큼은 반드시 존재감을 드러내 주는 사람이 된다던가 하는 상대방의 시간에 적극적인 개입 말이다.

 

 

 

 

[키미션 80]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앞의 연인 in 피렌체

 

 

 

사소한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낸다는 것은.

 

 

상대방과 공감대가 형성이 많이 되고 성격이 유순하며, 상대방에 이해가 높아야 함께해도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다.

그리고 즐거움을 많이 느낀다는 것은 서로 많은 것을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서로 아무것도 아닌 일에 웃을 수 있고, 웃어야 즐거움이라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

이런 자세가 있어야 힘들어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고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도움이 필요할 때 (사소한) 도움이(라도) 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소한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내려면 서로 잘살아야 한다. 혹은 같은 직장에 다니거나 같은 동네에 살아야 하거나 물리적으로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허나 우리 삶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상대방이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 시간을 함께 보내주는 정도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약간의 여유 있는 삶은 필수다.

 

휴가를 원하는 때에 내야 할 테니까.

 

 

내 삶이 빡빡하면 어려운 사람(친구든, 자식이든, 애인이든, 부모든)이 힘들어도 내 삶을 돌보기가 바빠서 마음은 있다고 해도 현실은 내 삶을 보게 되어 있다.

그러니 내가 이 블로그에서 자꾸 성공하라고 하는 것이다.

 

 

성공해야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성공은 이러려고 하는 것이다.

 

자신의 상황에서 언제든지 여유를 낼 수 있는 정도는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서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하고 살아가야 한다.

안 그러면 요즘 뉴스에 나오는 택배 배송하시는 분처럼 과로사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는 말이다.

 

 

 

[니콘 D40] 에스파냐 광장 in 바르셀로나 : 사진을 서로 찍어주면서 확인하는 친구.

 

 

 

 

필요할 때만큼은 반드시 존재감을 드러내 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앞에 두 존재가 되어주지 못할 때, 당신이 큰 성공을 해 돈이 많다면 그 돈이 당신을 대신한다.

돈만 주고 전화 한 통으로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해도 이해한다.

거액이면 거액일수록 더 그렇다.

 

돈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아를 뜻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성공의 척도를 돈으로 보는 것이다.

돈은 죽을 때 가져가지 못한다. 그래서 내 삶의 여정에서 써야 하고 그 돈이 나와 인연의 연결성이 있는 필요한 좋은 누군가에게 전달이 되어서 요긴하게 쓰인다면 그 사람은 고마워하게 되어 있다.

 

 

이런 과거의 덕이 있으면 내가 죽음을 맞이할 때 그 돈으로 도움을 받은 사람은 나를 찾아서 고마움을 표시할 것이다.

그때 네가 도와줘서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애인과 사소한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낸다는 것은(feat. 태어날 자식)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관심을 많이 둔다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궁금한 것이 많아야 하고 그러려면 경험이 많아야 한다.

돈 버는 이야기도 좋고, 직장문제도 좋다. 허나 이런 이야기"만" 하는 애인은 쓸모가 없다.

 

연애의 연장선이 결혼인데 남은 인생을 평생 사소한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할 사이가 돈, 직장 문제밖에 없다면 남은 인생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결혼해서 자식까지 낳아서 기른다면 결국 돈 버는 이야기, 직장문제 밖에 말하지 못하는 부모가 된다.

그건 결국 자식을 돈버는 기계로만 만든다는 얘기다.

 

 

물론 아니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랑으로 키운다.라고 할 것이다. 

허나 결국은 사랑으로 키우며 돈 버는 얘기와 직장 얘기만 해줄 뿐일 것이다.

 

그리고 자식이 듣기 싫어해도 사랑하니 돈 버는 얘기와 직장 얘기를 듣기 싫어도 해주는 거라고 할 거다.

시대에 뒤떨어진 방법만을 말하면서 말이다.

 

 

이런 사람과 헤어지거나 어찌어찌 함께 살다가 죽음을 맞이 했을 때 과연 내가 고마워할까? 나를 고마워할까?

여기서 헤어진다는 것을 두 사람의 관계의 죽음으로 대치해보라.

헤어지고 나서 나를 고마워할까? 나는 그 사람을 고마워할까?

 

 

 

함께 한 시간이 징글징글하지 않았을까?

 

 

가끔은 이런 코로나 19 같은 사건이 왜 생겨나는지 같은 운명적인 이유도 얘기해보고,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왜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르는지도 얘기해보고, (모르면 찾아서 공부해서 얘기해보고) 가끔 읽는 책을 보면서 삶에 대한 고찰도 해보고,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얘기해보는 사람을 만나서 돈벌이는 안되지만 그래도 사소한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된다면 어떨까?

 

 

 

매일 같이 만나서 카페에서 얘기할 텐데 커피맛에 취해서 심취하는 시간을 그렇게 즐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대화가 전부일 테고 할 줄 아는 얘기는 돈 얘기뿐이면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더 많이 벌 수 없는 미래라면 그 만남은 불행하다.

어차피 직장 생활하면서 정해진 월급으로 사는 인생 돈 얘기한다고 돈이 벌리지 않을 것을 안다면 세상에 일어나는 돈과 상관없는 이야기에 재미를 느끼고 웃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삶이 답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정답이 아니라도 말이다.

 

 

이렇게라도 살려면 나 자신이라는 존재도 세상에 있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재미를 느껴야 한다.

세상에 관심이 없다고(나 밖에는 관심이 없다고) 관심을 두지 않으면 사소한 즐거운 시간도 없는 것이다.

 

 

 

이걸 확장한다면 결국 앞으로 내가 나아서 키울 자식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줄 수 있고 세계관을 확장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줄 수 있는 부모가 되는 것이고, 그 자식은 당신이 내 부모여서 내가 이렇게 잘 살 수 있었다고 마지막에 인사해줄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자식을 사랑해서 신체만 보호하고 정신적인 것은 모두 학교에만 맡기는 부모 이상이 되는 것이다.)

 

 

 

결국 내가 연애를 잘한다는 것은 내 자식을 잘 키울 수 있다는 것이고 행복한 가정을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꾸밀 수 있다는 뜻이고, 이건 결국 나도 행복해지는 길이 되는 것이다.

 

 

 

 

[니콘 D40] 몬주익 언덕 올림픽 경기장 in 바르셀로나 : 서로 모르는 사이라도 사진을 서스럼없이 찍어줄 수 있다는 것은 함께 사는 방식을 아는거다.

 

 

 

 

 

친구가 도움이 필요할 때 (사소한) 도움이(라도) 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 내가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는 뜻이다.

 

 

 

38살 동생이 친한 동생이 있다.

결혼을 해서 아들 한 명이 있다.

제주도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전국 여행은 해봤는데 제주도는 와이프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에게 연락이 왔다.

난 제주도 10개월을 산적이 있고, 그 후로 한 달 살이도 해본 적도 있고, 꾸준히 제주도를 갔었다.

 

 

숙박부터 카페까지 출발부터 도착까지 하루하루 코스까지 다 짜서 보냈다.

 

 

여행 후 제주도 천혜향을 보내면서 나로 인해서 제주도를 정말 잘 갔다 왔다고 했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을 해도 계획을 짜기 어려워서 곤란했는데 나의 계획표가 없었다면 왔다 갔다 길에서만 시간을 다 썼을 거라고 했다.

 

 

이건 내가 가는 피부과에서 나를 케어해주는 직원에게도 들은 말이다.

남자 친구와 제주도 가는데 제주도 여행 계획을 들어보고 계획을 수정시켜줬다. 서쪽을 완전히 포기시켰다.

그리고 다음에 갔을 때 정말 그렇게 하길 잘했다고 동쪽만 보기도 바쁜 일정이었다고 서쪽까지 갔으면 길에서 시간을 다 보낼 뻔했다고 했다.

(제주도 처음 가는 사람들의 실수가 바로 길에서 시간을 다 보내는 것이다. 작은 섬이라고 착각해서 말이다.)

 

암튼 이 동생은 한 번 갔던 기억이 너무 좋아서 3달 뒤에 또 제주도 계획을 짜서 갔다. 이번에는 알고 지내는 친한 형과 같다.

이웃 아파트에 살아서 서로 만나서 계획을 짜서 갔다고 한다.

 

허나 같이 간 형의 와이프가 그리 계획을 잘 짜지 못해서 나의 계획만큼은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이 말은 나에게 필요 이상의 경험은 타인에게 확실한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제주도 가봤다는 정도의 경험과 인터넷의 정보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경험은 다양한 것도 좋다. 허나 집중된 자세한 경험도 좋다.

그러니 좋은 것만 찾지 말고, 좋은 것이 아니라면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말고 실패마저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많은 경험을 하라. 많은 경험이 될 상황이 아니면 한 군데 혹은 한 가지를 집중하는 자세한 경험을 하라.

더 좋은 것을 못한다면 하던 것을 더 잘해버려고 하거나 더 잘 알아보려고 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인 것이다.

 

 

 

나의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닌 타인을 즐겁게 해주는 경험이 되는 것이다.

즉, 나의 이런 필요 이상의 경험은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

(남들이 쓸데없는 짓한다고 하는 것이 타인들과의 교감을 하게 하고, 도움이 되게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죽음과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하겠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애인끼리 헤어지는 것을 죽음이라고 대치해보라고 했다.

이건 쉬울 거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죽을 만큼 아프다는 것은 경험을 해본 사람은 쉬울 거고 경험하지 못해도 짐작은 할 수 있을 테니까.

 

 

이 말은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와의 관계의 끝, 혹은 상황의 끝, 이라고 대치를 시켜서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이 동생이 제주도를 갔다 와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를 끝이라고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서 계획을 짜주었다.

 

단순히 "어디 어디 좋다. 가봐라."가 아니라. 

울산 출발 시간, 울산 도착 시간도 다 물어보고, 숙소도 추천해준 다음 정해진 곳을 물어보고 그 위치에서 스케줄을 짜주고, 조식이 되는 곳인지 아닌지 확인해서 아침밥부터 저녁밥까지 스케줄을 다 짜줬다.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안 가도 되는 근처의 장소도 알려주기도 하고 했다. 이 동생이 바쁘거나 피곤하면 패스해도 되는 거니까.

 

내가 이렇게 해줄 수 있었던 것은 제주도를 그냥 자주 가서 해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제주도에서 10개월을 살고, 그 뒤로도 한 달살이를 또 해보고, 그 뒤로도 꾸준히 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이 순간순간 모이면 선으로 이어지고 나의 인생 끝자락쯤에는 우리는 서로 고마운 존재들이 되는 것이다.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것은 큰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상황을 끝이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대하면 정성을 다할 수밖에 없다.

대충대충의 정성이란(다음에 잘해주면 되지 같은 정성이란) 상대방과의 연결성을 끊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도와주려면 내가 쓸모없고 하기 싫다고 하는 일을 경험으로 만들어놓는다면 나는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된다.

이런 현실적 문제는 물론이고 사람 관계에서의 모든 상황에서도 말이다.

 

 

 

 

▲ 「애로우」라는 미국 드라마 중 한 장면이다. DC 코믹스를 드라마로 만들어서 지금은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초창기에는 영화보다 훨씬 나은 퀄리티로 내 눈을 사로잡았다. (이거 말고 플래시, 슈퍼걸, 배트 우먼 같은 작품들이 콜라보를 이루면서 애로우 버스를 만들고 있다.)

 여기서 그린 애로우는 시즌 8을 끝으로 죽게 되고 예전의 연애했던 새라 랜스는 죽은 애로우(올리)로 인해서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필요할 때만큼은 반드시 존재감을 드러내 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 성공해야 한다는 뜻이다.

 

 

 

돈이다.

결국 이건 돈 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계속 성공하라는 것이다.

나의 성공은 내 주변의 사람들을 돌 볼 수 있다는 뜻이고, 그렇게 한다면 나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고마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성공과 돈을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성공과 돈을 가진 사람들이 부정하게 행동한 것을 보고 경계심을 가져서다.

 

 

어떤 주부 의뢰자가 이런 말을 했다.

자식이 100원을 벌어서 너무 만족하는데, 10억을 버니 그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이냐?라고 거들먹거리듯 물었다.

 

 

그래서 난 왜 100원을 벌면 만족하고, 10억을 벌면 불행하냐고 물으니, 그제야 아~!라고 하는 것이다.

왜 적게 벌면 만족하고 많이 벌면 불행하는 것을 미리 정해서 생각을 해야 하는지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한 사람은 아주 많은데 말이다.

 

 

그리고 10억을 벌어서 자식 소풍날에 혹시 학교에 도시락을 못싸가는 친구가 있지 않느냐고 물어보고 몇 개 더 싸면 되지 않냐고, 좀 가난한 친구가 있어서 준비물을 못 사 오면 대신 사다 주면 안 되냐고 그래서 고마운 존재가 되면 안 되냐고 했다.

 

 

 

 

소지섭은 아는 동생이 자신을 찾아와서 금전적 도움을 요구하니 지금 돈을 빌려주는 건 어렵지는 않으나 그럼 또 빌리러 올 것이다.

그건 좋지 못하다.

그러니 차라리 보험설계사를 하라고 했다.

그러면 자신이 이 동생에게 보험을 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동생은 자격증을 따고 취업을 해서 소지섭에게 왔고, 소지섭은 그 동생이 일하는 보험사에서 가장 큰 걸 넣고 그 동생은 보험왕이 되었다고 한다.

 

 

자주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아도 필요할 때, 사소한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지 못할 때, 사소한 도움이 되고 싶어도 삶의 차이가 너무 나서 만나기 어려운 존재들에게는 이런 올바른 금전적 도움은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이 사람은 소지섭이 죽었을 때 소지섭을 찾아가서 형님 덕분에 내가 사람처럼 살 수 있었다고 말할 거라고 난 생각한다.

 

 

 

이정재는 「불새」라는 영화를 거절했었다. (이미숙과 베드신이 있는 영화였다.)

허나 당시에 매니저가 빚이 있어서 이정재는 영화를 하기로 했고, 자신의 영화 「불새」 계약금 전부를 매니저에게 빚 갚으라고 주었다고 한다.

 

 

다들 이런 사람이 나의 형, 오빠면 자주 연락을 못하더라도 죽을 때만큼은 찾아와서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 고마웠다고 눈물을 흘려줄 거라고 상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 영화는 흥행을 해서 이정재도 지금 위치의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관계는 잊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성공은 내가 죽을 때 후회만 안고 가게 되는 삶의 여정을 좋은 기억으로 바꾸게 해 주고 그럼으로써 나도 이 정도면 잘 산 사람인 거 같다...라는 기억과 함께 행복한 죽음을 맞이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성공은 이러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행복하게 죽기 위한 올바른 그리고 삶의 먼 이기주의 목표는 목적 없는 그냥 착하다는 개념만으로 사는 이타주의를 압도한다.
내가 행복하게 죽기 위한 올바른 그리고 삶의 먼 이기주의 목표는 내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게 만드는 척도가 된다.

 

 

 

 

내 삶의 목표는 "나도 잘 살아온 거 같다..."라는 말을 하고 죽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궁금해하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하며, 더 성공하려고 할 것이다.

 

 

 

내가 잘 죽기 위한 이기심이 나와 좋은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생각)하는 타인들을 위한 거름이 될 거라는 것을 난 알고, 깨달았고,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되려고 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한 기부를 3억이나...

 

 

 

 

 

(여담)

 

 

*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아직 젊거나 어린 자녀를 두고 있는 부모라면 성공을 시키려고 노력을 했으면 한다.

아직 어린애들을 100원만 벌어서 행복하게 살게 키우겠다는 건 그건 부모로서 책임과 의무를 버렸다는 뜻이라고 봐진다. (여기서 100원이란 현실적으로 월 200만 원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가 이렇게 생각하는 청소년이라면 자신의 인생에 책임과 의무를 버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공을 강요하라는 뜻이 아니다.

 

흔한 예로 서울대를 목표로 하면 연고대 갈 수 있으니 목표는 높게 잡으라는 뜻이다.

 

 

그러니 목표는 성공으로 잡되 그 이하의 삶을 살게 될지라도 실망하지 않고 바라보고 살면 되는 것이다.

왜 그렇게 실패를 두려워하는가?

 

 

타인들과 함께 사는 삶을 생각한다면 나의 실패는 타인들의 정보(거름)가 될 수 있고 그것은 고마움으로 되려 받을 수도 있는 자산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성공과는 거리가 먼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하기 싫더라도 좋은)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

그 경험으로 인해서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그 경험을 나눠줄 수도 있고 나중에 결혼해서 자녀가 태어나서 그것을 우연히 좋아하면 자녀들에게 인생에 길을 가르쳐주는 좋은 아빠, 엄마가 될 수 있다.

 

 

이 세상은 실패(손해)가 무서운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성공과도 경험과도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면 주변의 좋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내가 싫더라도 공부를 더 해야 한다.

그렇게 공부한 내용을 그 좋은 친구들과 함께 얘기하면서 좋은 시간을 가진다면 분명 그 시간은 즐거울 것이다.

 

 

그럼 하기 싫은 그 공부도 그 친구가 좋아서 할 것이다.

 

 

그러면 그 친구와 함께 늙어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린 이렇게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삶의 여정은 싫든 좋든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내가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왜 좋은 사람을 찾으려고만 하고, 필요한 존재를 찾으려고만 하는가? (왜 도움만 받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설사 내가 그런 존재를 찾았다고 해도 내가 그런 존재가 되지 못하면 찾아도 그런 사람들은 나에게 머물지 않는다.

 

 

 

 

 

(이 글과 함께 보면 좋은 글 => http://blog.daum.net/spike96/16464269)

 

 

 

 

 

지금 좋은 관계라고 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여행은 안전하다고 느낄 때 위험이 찾아온다.

 

 

우리 삶의 여정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좋은 친구는 늘 1명 더 많을수록 좋다.

그 한 명을 더 찾는 여정도 행복한 죽음을 준비하는 삶의 여정일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aJUdKQbjoC4&list=PL8VWUSva2SsEoLi4elNUL9Y984KA3U6BW&index=80&t=109s

친구의 죽음을 세상에 전하며 울음을 멈출줄 모르는 마이클 조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