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사는 방법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나로서 인정받는 것이다.
2016년 3월 29일 내용 보강 후 업로드
이제는 TV에도 나올 만큼 오래된 영화인 '명량'이라는 영화를 볼 때 나는 이순신이 과연 살아있는 사람인가? 아님 죽은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시대를 초월해서)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서 끝까지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어떻게 서든 우리에게 어필을 하고 있다.
무려 400여 년 전에 돌아가신 분이 말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애국심부터 리더십 등등 정말 많은 것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
* 과연 이순신 장군은 죽은 사람인가?
이 질문에 반대에 해당하는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다.
중국에 형벌 제도 중 사람을 끓는 물에 삶아 죽이는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 형벌을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때 들여와서 시행을 했는데 중국처럼 잔인하게 한 건 아니고, 그냥 적당히 끓는 물에 사람을 넣었다가 빼서 「"너는 이제 죽었으니, 이 마을을 벗어나지도 말고, 사람들과 말을 섞지도 말고 죽은 듯이 살아라."」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사람은 마을 밖으로는 나가지 못했고 동네 사람들과 말을 섞지도 못했다. 동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지나가지 흉하게 봤고 가족들조차 외면했다. 당연히 밥은 겸상은 되지 않았고 잠도 따로 잤다. 그리고 가장 잔인한 것은 1년이 지나면 이 사람의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 이 형벌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살을 했다고 한다.
과연 이 형벌을 받은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과연 살아 있던 것일까?
죽지는 않았다. 근데 죽은거와 다름이 없었다.라고 다들 생각이 들지 않나?
그럼 살아있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살아있다는 것만이 아니라는 결론이 난다.
즉 의사소통을 하고 감정 교류를 하면서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삶이 살아있는 삶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가장 최상의 분류가 아무래도 (삶의) 지식(지혜, 경험, 삶의 의미) 전달을 하는 선생님(단순 지식전달으로만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 말고) 같은 존재들일것이다.
선생님들 중에서도 학자! 책을 쓰면서 자신의 이론을 널리 알리는 존재가 훌륭한 존재일 것이고 그걸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방송과 강연에서도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는 존재들은 최상위 일 것이다.
또한 새로운 시대의 지식을 학생들에게 배움으로써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실천하는 선생님들이야 말로 이 시대의 최고의 살아있는 의미를 가진 존재들일 것이다.
반대로 친구들과 만나도 자신의 의견은 무시당하고 재미로만 치부되는 사람들 헤어지면 잊히는 존재들.
같이 보자고 해도 없어도 무관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숨 쉬고 살아있어도 존재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보통 투명인간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말이다.(왕따든 은따든 다 여기에 해당된다고 본다.)
어쩌면 이건 양반일지도 모른다. 만나고 싶지 않은데 그냥 만나야 하는 상황이 되어 만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암튼 이런 사람들은 살아있어도 죽은 존재들이라고 치부될 것이다.
즉 목숨 부지하고 숨만 쉬고 있다고 해서 사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답은 나온 것이다.
숨 쉬고 사는 동안 나의 가치관을 타인들에게 어필을 하여 좋고, 긍정적인 영향 혹은 올바른 영향을 미쳐야 그게 사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 안에 존중을 받게 되면 최상급의 삶을 사는 것이 된다고 봐도 좋을 거 같다.
허나 존중을 반드시 받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럼 존중에 노예가 되어 올바름을 실현시킬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올바른 영향을 미칠 수 없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그건 긍정적인 영향도 미치지 못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즉, 존중까지 바라는 것은 육체적으로 죽고 나서 후대에 인정을 받게 될 수도 있으니,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올바름과 장기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 생각하고 어필하는 것이 무조건 우선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사는 와중에 시대도 잘 맞아서 존중까지 얻게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금상첨화인 것이다.
즉 우리 삶을 살아있는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에게(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의 긍정적이고 올바른 에너지(가치관)를 효과적으로 전달을 하고 그 에너지를 받은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거나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게 하는 것이 진짜 이 세상을 살아있다는 의미로써 살아가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이순신 장군처럼 숭고하고 처절한 방법도 있겠지만 아주 쉬운 방법도 있다.
난 이런 방법 중 하나가 '블로그'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단순 지식 정보도 누군가가 보게 되어 그날 하루를 즐겁게 보내게 된다면 이것이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건 정말 쉽지 않은가?
그래서 난 주변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블로그를 하라고 한다. 꼭 상위에 랭크가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정성을 다해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면 누군가가 보고 좋으면 그것이 끝이지 꼭 상위에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노예가 되어버린다.
즉 올바른 영향을 미치는 것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지 존중까지 받으려고 하면 존중에 노예가 되어 되려 더 오버하거나 거짓 정보까지 흘려버리게 되면 살아도 죄를 짓고 사는 삶과 다름이 없어질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범죄자도 나름 삶을 인정받아서(범죄를 저질러서) 경찰에게 관심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인 거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건 올바른 영향, 긍정적 영향이 아니기에 살아있다는 것은 되지만 의미는 없는, 되려 해가 되는 삶인 것과 마찬가지 듯이 블로그를 함에도 상위에 링크되려고 해서 거짓 정보를 흘리거나 오버를 하게 되면 감옥에 사는 삶(그래서 결국 영향력 없는 삶), 감시받는 삶(존중과 반대 개념)과 다름이 없게 되는 것이다.
즉 절대적 가치 기준을 올바른 영향 긍정적 영향을 두고 블로그를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이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쉬운 방법론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더 좋은 방법은 얼마든지 존재할 것이고 그건 각자가 알아서 찾아 해야 할 것이다.
(난 TV 같은 영상매체에 나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블로그는 아주 최소한의 것이라고 보고 하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허나 이건 방법론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내가 긍정적이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모임에서 유쾌한 사람이면 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웃고 즐거워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올바른 가치관으로 미래를 보고 사는 사람이면 고민하는 친구의 고민의 무게를 조금 가볍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긍정적인 사람이면 나를 보고 부정적인 친구가 조금은 긍정적인 면으로 변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난 스스로 이렇게 변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고 변화를 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리고 아직도 계속 변화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즉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내 주변의 사람 세명이 그렇다고 하는 부분이 있다면 「나는 아니라도 난 그런 사람이다.」라고 생각해라.
즉 나는 좋은 사람이다.(혹은 일을 열심히 한다. 긍정적이다. 착하다. 등등)라고 생각해도 자신의 주변 세명이 아니라고 하면 넌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진짜 좋은 사람이 됐을 때 좋은 영향을 주변 사람들에게 미쳐서 다른 사람들도 그 영향으로 좋은 사람이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작더라도 가치 있는 진짜 살아 있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그리고 뭔가를 해야 한다. 직업적인 일로써 영향을 미치고 싶다면 일을 긍정적으로 열심히 해도 좋다. 허나 자신의 직업이 회의가 드는 직업이면 개인적인 활동을 열심히 해서 그것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인 것이다.
여행을 가도 좋고, 악기를 다뤄도 좋고, 특별한 사상을 알려주는 좋고, 지식을 전파하는 것도 좋다.
그것을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모임을 가지면 직접적인 영향으로 아주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이렇게 작은 실천인 블로그도 좋은 것이다.
*그래서 난 TV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사명감을 갖고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작은 연예인마저도 그렇게 해야 사람들이 악영향이라도 덜 받는 게 아닌가 한다. 학교 선생님은 더 그렇고 말이다.
https://www.youtube.com/shorts/zfuVm_5_ZlU
삶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고, 그렇게 되어 있다.
죽은 사람처럼 육체만 살아 있고 영혼 없는(죽은) 사람들은 돈이 많지 않은 이상*은 삶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돈으로 영향을 미쳐서 존재감을 알릴 수도 있으니까. 허나 좋지는 않다고 본다.
그래서 이 개념만 잘 파악하고 살아간다면 그래서 응용능력만 생긴다면 취업도 훨씬 쉬워지게 될 것이다.
면접관이 좋아하는 사람은 취업을 하기 위해서 공부한 사람보다는(취업해서 맨날 배우는 자세로 시키는 일 만하고 살아가는 죽은 사람보다는) 회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뭐라도 해서 결과를 만들어내어 회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게 우선일 거니까.
(면접자들은 취업하면 일 못하는 것은 다 똑같은 선상인 것이다. 그러니 다른 면에서 영향을 미칠 줄 알아야 하는 것인 것이다.)
https://blog.daum.net/spike96/16464371?category=12812
▲ 이글의 내용으로 취업을 시킨 사례다.
그리고 행복감이란 이런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느끼게 되어 있다.
남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더 많이 받게 있고, 그건 내가 존재한다는(살아있다는) 증거인 것이고,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은 행복이라는 것과 아주 직결되어 있는 감정인 것이다.
그리고 인연을 만나기도 훨씬 유리한 조건이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에 더 좋은 조건을 갖춘 샘이다. 그렇게 해서 사랑하는 사람까지 얻는다는 것은 굳이 행복에 대한 연결성을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마냥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면서 죽은 사람처럼 살면 안 된다.
그건 사랑받지 못하는 행동이다.
"많은 사람 필요 없다. 한 사람의 사랑이면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 치고 더 좋은 사람 안 바라는 사람 못 봤다.
그 한 사람이라는 존재가(그게 설사 절대적으로 신이 연결시켜준 존재라고 해도) 왜 고인물처럼 썩은(죽은) 자세로 죽은 듯이 사는 사람을 사랑하겠는가?
난 이처럼 '있는 그대로 타령'하는 사람, 오직 한 사람의 사람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난 이렇게 말한다.
넌 너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냐고? 그러면 아무도 답을 하지 못한다.
즉 우리가 이순신을 사랑(존경)하는 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자신이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알고, 그 올바른 가치관을 관철하기 위해서 왕(권위)과도 대립을 할 줄 알고 그리고 그것을 결국은 목숨을 걸고 실천했기에 400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계속 회자되고 있는 것이고, 존경하게 되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이 아주 큰 일이기에 서양에도 알려지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시대가 좋아서 인터넷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순신 장군처럼 아주 큰 일을 하지 안아도 외국에 알려지기도 하고 우리가 외국의 일을 알아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충성스러운 개들의 이야기들처럼 말이다.
즉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내가 잘하는 것을 해서 존재를 인정받아라. 그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려면 일단 자신을 파악해라. 그리고 삶의 목표를 찾아라. 거기에 그 목표를 이룰 가치관을 형성하고 의미를 부여하라. 그렇게 했으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단을 찾아라.(지식이든, 여행정보든, 요리정보든 말이다.) 그리고 그것에 해박해져라.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요즘 하는 일에 대해서 알려라. (모임을 갖든, 블로그를 하든 말이다.)
그럼으로써 주변 사람들이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관심 가지고 같이 하자거나 혹은 그 일로(혹은 대화만으로) 유쾌해지거나, 기분이 나아지거나 한다면 당신은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각인이 되고 있는 것이 되고 그럼 존재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당신을 찾게 된다면 당신들은 행복하게 살게 되는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얻게 되는 과정과 흡사하니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여기에서 좀 더 철학적으로 들어간다면, 앞에서 외국에 알려지는 것은 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이제는 큰 일을 하지 않아도 알려지기도 한다고 했지만 만약 큰 일을 한다면, 당신은 이순신 장군처럼 400년 뒤에도 회자가 될 것이고, 육체는 죽었으나 정신은 계속 살아있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영향을 미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건 죽었지만 죽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이고 만약 영혼이 있다면 당신은 몇 백 년, 혹은 몇 천년을 행복해 할 수도 있다.
허나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영혼은 아마 사라져 버려서 육체가 죽고 영혼도 죽는 그야말로 2번 죽는 일이 될 것이다.
어차피 영원히 살지 못할 인생, 진짜 이런지는 몰라도 그냥 속는 셈 치고 믿고 나의 영혼을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할 거라고 믿고 이제부터라도 삶을 살아가는 자세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아보는 게 어떤가 한다.
그게 곧 현재를 그리고 삶을 행복하게 사는 자세이기도 하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고 본다.(되려 더 행복했으면 행복했지 말이다.)
이래서 삶은 철학(가치관)이 중요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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