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페미니스트들의 근본 심리는 억울함일 것이다.
남성 혐오는 표면적 현상일 뿐 근본 심리는 사회에 대한 억울함, 교육의 배신감이다.
최근 들어서 내가 본 페미니즘의 행보 중 여성을 공격하는 현상을 봤다.
레이싱 모델의 노출 의상과 대한항공 유니폼이 연상되는 옷을 입고 선정적 자세를 취하는 크리에이터를 공격하는 것이다.
대충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냐는 식이고, 대한항공에 들어가기 위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냐는 식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건 이들이 부분만 보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이다.
왜 페미니스트들은 같은 여성들을 보호하려고 하지 않나?
페미니스트라면 되려 이런 일을 하는 여성들을 보호하려고 하고 그것을 사회의 책임과 남성의 책임으로 돌리려 할 것이다.
허나 잘만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모두 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니니 좋은 직업을 가지는 사람들은 소수이고 먹고살려고 하면 성을 상품화해서 살아가는 방식도 필요한 것이 자본주의 논리다.
남성은 막노동을 하고 원양어선을 타서 돈을 벌어오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남성들은 자신들의 학창 시절에 대한 보상이 이것이라는 것을 납득하고 받아들여 일을 하고 적당한 무시를 당하면서 먹고사는 인생이라도 다행 이리고 여기면서 직업은 귀천이 없다는 학교(유교) 논리를 억지로라도 받아들여 살아가고 있다.
허나 지금의 페미니스트들은 공격적 태도의 양성평등을 주장하면서 과거 남성들이 여성들이 무시를 당하던 시절의 대가까지 자신들이 받겠다고 하고 있고, 이런 보상심리를 넘어서 같은 여성으로서 부끄럽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는 여성들도 공격의 대상으로 싸잡고 있다.
이건 페미니스트라고 보기는 어려운 행보다.
난 이런 현상까지 접하고 확실하게 생각이 드는 것은 지금의 페미니스트들을 현 교육의 피해를 자신들만 받았다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사회생활은 다르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나도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놀란 것은 어른들이 생각보다 착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어른들이 어른이 아니라 직장에서의 라이벌, 사회에서 라이벌, 인생에서의 라이벌이라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건 명백히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다른 어른상이었다.
그래서 나의 배움 모든 것을 리뉴얼해야 했다.
그리고 이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나와 같은 것을 느끼고 그랬을 수도 있고 다른 더 큰 것을 경험하고도 그랬을 수도 있다.
난 이제 교육의 세상에서 벗어나 사회의 세상에 맞는 '나'라는 존재로 뜯어고치기 위해서 군대를 갔다.
스스로 고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 가는 군대지만 난 가난으로 인해서 면제 대상이었다.
허나 집에서 입하나 더 줄이는게 더 나을수도 있고 나중에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다같이 겪는 문제는 나도 겪어야지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저런 생각과 가치관으로 군대를 지원해서 갔다.
다시 말하지만 학교 버전의 자신을 사회 버전의 자신으로 바꾸는 작업은 누구나 한다.
누구나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자연적인 순환 과정이다.
허나 지금의 페미니스트들은 마치 학교에서 배운 것을 사회에 그대로 적용을 시키려고 작정을 하고 자신들을 기준으로 사회를 탓하면서 사회를 바꾸려고 하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같은 여성을 공격하겠는가?
남성 혐오는 단지 표면적인 핑계일 뿐이고, 핑계를 대기에 너무 크고 좋은 먹잇감이라서 이들이 그냥 페미니스트로 보이는 것일 뿐 근본은 교육에 배신감을 느낀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는 자, 혹은 사회 적응에 한계를 느끼는 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이들은 사회 적응에 한계를 느끼게 됐나?
일단 이들은 억울할 것이다.
무려 24년 안팎의 기간 동안 사회에 나와서 잘 살아보려고 교육을 받았는데 막상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보니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다른 세상에 놀라고, 나름 옳다고 배운 것을 실천해보려고 했지만 녹녹지 않은 세상에 배신감도 여러 번 들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고 인터넷은 이들의 모임을 증폭시키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도 내 주장을 할 수 있으니 파워가 강해졌다.
1. 모임의 인원
인원이 많아진다는 것은 힘이 강해진다는 뜻이다.
내편이 많아지니 내가 맞다고 주장할 수 있다.
지구가 태양 주변을 공전한다는 것이 공리라고 해도, 태양이 지구 주변을 공전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태양이 도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내편이 많아지면 내가 옳은 게 되는 거다.
2. 피로감
1번은 어찌 보면 지금의 강해진 상태에서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이들의 처음은 아마도 피로감일 것이다.
무려 24년 동안 선생들의 말을 잘 들으면서 착실하게 살아온 인생이 그리 녹녹지 않았을 것이다.
입시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로 인해서 초등학교 때부터는 기본이고 좀 있는 집이면 유치원부터 경쟁의 시작이 바로 입시이기 때문이다.
다음 이유는 입사다.
좋은 대학에 가려는 이유는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선데, 좋은 대학에 왔어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도 경쟁이 되다 보니 피로는 더 누적이 되어서 어디서 풀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렇게 대학까지 졸업하면 이들은 아마 번아웃 상태로 사회에 나왔을 것이다.
근데 또 사회에(회사 생활에서) 적응하라고 하니 이게 뭔 일인가? 싶을 거다.
교육의 배신감이 절로 들것이고 이들은 당연히 사회에서 피해자인듯한 억울함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뿌리를 내렸을 것이다.
그렇다. 이들은 억울한 것이다.
시키는 대로 착하게 살아온 삶의 보상이 되려 말 안 듣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온 사람들의 것이라는 것이 한없이 억울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여자들도 공격하는 페미니스트 이름을 단 이단적 페미니스트가 된 것이다.
왜 이들은 같은 여성들을 공격하는가?
이들이 공격하는 여성은 성을 상품화해서 파는 여성들이다.
성이 상품이라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화 함께 해온 일이라서 굳이 말을 할 이유도 없거니와 요즘은 남성들도 상품화한다.
예전 남성들은 능력이 상품이었지만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다 보니 남성들도 이 반열에 끼어들었고 먹고살만한 사람들도 자신의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해서 자신의 성적 매력을 상품화한다.
논란거리가 아니거나, 논란거리라고 해도 비단 지금의 논란거리라는 뜻이 아니라는 거다.
근데 지금의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여성들을 감싸지 않고 공격한다.
왜냐면 학교에서 이런 직업은 잘못된 직업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이미 번아웃된 이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사회 버전으로 고쳐서 사용할 생각이 없다.
자신이 배운 것이 옳은 거니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모터쇼의 레이싱 모델, 스트리밍 서비스 공간에서의 BJ들을 공격하기 나선 것이다.
단지 이것뿐만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더 큰 것에 있다.
기존 공교육에서 배운 것에 반대되는 이들이 돈을 자신들보다 더 많이 번다는 것이다.
특 A급 레이싱 모델은 하루에 천만 원을 받는 G-star라는 행사가 있다. 고작 3박 4일 하지만 4일 일하고 3~4천만 원을 번다.
어지간한 대학 나온 사람들의 연봉을 4일 만에 번다.
BJ들은 생각 없는 부자 남자로부터 하루에 1억을 받은 적도 있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인 일일 것이다.
학교에서 성을 상품화하는 것은 나쁜 거라고 배워온 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보고 들은것이, 하지 말라고 하는것을 하고 나쁜거라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하는 여성들이 자신들보다 더 편하게 사는 것을 보고 느낀 건 배신감, 무기력증, 분노 심일 것이다.
과거, 음지의 여성들이라는 개념이 있었을 때는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사회에서 대우도 받지 못하는 일이고 돈을 얼마나 버는지는 몰라도 사회에서 보이는 면은 영화 나쁜 남자처럼 인생을 뜯기게 사는 사람들처럼 보여서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의 사람들이라며 신경도 안 썼을 것이다.
근데 그런 여성들이 사회의 양지로 진출을 했고, 그것도 모자라 착하게 살아온 어른들 말만 믿고 착하게 시키는 대로 잘 참고 살아와서 좋은 대학 가려고 있는 고생 없는 고생*을 다 한 나보다 돈을 더 잘 벌고 더 편하게 살 수 있으니 분노심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 내가 중학교 다닐 때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심지어 집안에 생계를 생각하며 공부하던 학생들도 분명 존재했다. 지금 공부만 하는 학생들은 그야말로 정말 입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이것을 고생을 한다고 볼 수 있지만 생존을 위한 공부를 하는 고생은 모를 거다. 그래서 고생은 하지만 진짜 고생은 모른다는 의미로 '고생 없는 고생'이라는 표현을 썼다.
근데 이들은 소수다.
특 A급 모델은 몇 명 되지 않고,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BJ도 그리 많지는 않다. 강한 공격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더군다나 결국은 같은 여자다.
이들을 생각 없이 공격하면 사회에 부적응한 내가 루저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은 뻔하다.
그렇다고 내가 사회에 적응하기는 싫다. 그러고 싶다고 해도 이미 번아웃된 지금의 나는 힘이 없다.
설사 힘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성을 파는 여자는 되고 싶지 않다.
그러면 이 분노심을 어디에다가 풀어야 할까?
바로 남자다.
남자가 자살률이 더 높고, 더 힘든 일을 많이 하고, 더 외롭고, 더 외면당하고, 와이프에게 맞는 게 쪽팔려서 말도 못 하는 상황인 것은 이미 분노심과 배신감에 물든 이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통계 수치다.
분명한 건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적으로 더 강한 위치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남성이다 보니 과녁이 크다고 여겨져서 뭘 어떻게 공격해도 빗맞을 수 없는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이다.
허나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도 남자가 월등히 많다.
주변의 거지들 봐라 90%가 남자일 거다. 원양어선 타서 6개월 넘게 바다와 싸우며 우울증을 겪는 남자들은 100%다.
결국 교육이 문제다.
이 모든 것은 교육과 사회와의 괴리감에서 생겨난 사회 현상이다.
교육은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어린 자들이 조금은 안전하고 안정이 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근데 교육은 지식만을 강요할 뿐 사회가 어떤 곳인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 보이고, 알려고 할 의지도 없어 보이고, 안다고 해도 가르쳐줄 구조가 못된다.
사회는 21c인데 교육은 1980년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이런 현상은 이미 예견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거부 사건이 사회와 교육의 거리가 이미 너무 멀리 왔다는 것을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숙명 여대의 교육 이념은 《정숙, 현명, 정대를 지향하는 여성교육과 민족의 정통성과 주체성을 확립하는 민족교육의 실현이라는 창학이념을 바탕으로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는 능력 있는 여성을 양성하고 국가와 민족,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여성지도자를 배출하는 데 있다.》라고 나온다.
근데 그 트랜스젠더분은 입학을 스스로 포기했다.
여론이야 어떻든 간에 시끄러운 현실이 자신에게 비롯된 거 같아서 자신이 한발 물러선 것이다.
문제는 이게 아니다.
사람들이야, 더군다나 배우는 입장의 학생들이야 각자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근데 학장은 뭐했나?
난 이 뉴스를 유심히 보면서 학교 대가리라고 하는 인간이 나와서 발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시대에 부응하는 여성 리더를 배출한다면서 일단 총장은 리더 역할을 거부했다.
거절이든 허가든간에 총장이 나와서 이런 사건을 수습해야 하는 거지 뒤에서 저절로 해결되길 바라는 사람이 리더인가?
그리고 거절이라면 교육이념을 바꿔야지 시대에 부응하는 여성 리더를 배출할게 아니라 과거지향적 여성 리더를 배출한다고 말이다.
미래 지향적이라는 것은 현재의 개념이 아닌 미래의 개념을 현재에 적용시켜야 할 단어인데 숙명여대 총장은 현재도 아닌 과거 지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미래는 이미 양성에 대한 개념이 없어지는 과정으로 흐르고 있으니 그것이 잘못이고 거부하고 싶다면 맞는 논리를 내세워서 과거지향적 여성 리더를 배출해야 한다고 해도 되지 않는가? (둘 중에 뭐가 맞고 틀리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라고 봐진다. 타깃이 되지 않아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대학도 이런데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는 오죽할까?
이렇게 틀에 박힌 교육, 1980년대 교육 방식으로 2020년대를 살아가려는 여성들이 도대체 어디서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할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더군다나 80년대처럼 고등학교만 나오거나, 대학을 나와도 소위 낭만이라는 것을 즐기며 졸업한 세대처럼 사회에 적응할 여력을 갖추고 유연하게 대처할 마음가짐을 갖춘 상태의 세대와는 다른, 경쟁으로 인한 피로감으로 찌든 시대의 여성이라면 어찌 보면 죄의 유무를 떠나서 억울한 감정을 드러낼만한 대상인 남성을 통해서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만한 교육 제도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다가 착하게 산답시고 시키는 말 잘 듣고 살아온 사람들은 소위 양아치처럼 학창 생활을 한 여자들보다 어렵게 사는 것을 확인하니 피로감에 분노감까지 더해져 무기력해지거나 폭력적인 형태가 될 것이고 후자가 바로 현 페미니스트로 자리매김했다고 봐진다.
그럼 이들의 분노의 방향은 정당한가?
당연히 정당하지 않다.
교육과 사회의 괴리감으로 인해서 자신들이 느끼는 배신감, 무력감, 허무함의 공격 대상이 단순히 남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들의 공격 대상은 남성뿐 아닌 성을 상품화해서 인생을 쉽게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이는 대상까지 하고 있으니 더 아니다.
그러니 이들의 공격 대상은 바로 정부가 되어야 하고 교육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을 해야 한다.
그래서 교육의 목적을 다시 명확히 하게 하고 사회와 교육의 괴리감을 줄여나가야 하며,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교육에 도입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해야 한다.
사회는 교육 방식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약육강식의 법칙)에 인간의 사회화가(교육이) 양념이 된 상태로 돌아가기에 교육 그대로 돌아간다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허나 이들은 정부를 향해 소리치지 않는다.
이들은 아직 자신들의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니 정부에게 요구해야 할 사항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같이 억울함만 호소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여성 할당제 같은 정책만 나오는 거고 그것이 이들의 억울함을 해결은커녕 해소도 시켜주지 않을 거다.
이 과정에서 남자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날이 올 테고 여차해서 여성할당제를 원양어선 취업에도 도입하자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꼭 좋은 직장과 직업에만 여성할당제를 도입할 이유는 없다.
페미니스트들이 요구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평등이기 때문이다. 왜 남자만 힘들 일을 해야 하는가? 에 대한 의미는 왜 여성만 차별당하는가?라는 의미와 같은 맥락이며 이미 경찰과 같은 직업에 여성할당제가 도입되어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이니, 당연히 육체노동과 정신적 괴로움을 동시에 느끼는 직업군에도 당연히 여성할당제는 도입이 되어야 하는 논리는 당연하다.
더군다나 결혼을 포기하는 남성들이 늘면 남자에게 있어서 여자라는 존재는 의미가 없기에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러니 지금의 한국형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의 억울함, 위협감, 허무함, 불안감 등등의 부정적 감정적인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해서 정부에게 소리를 쳐야 한다. 남성들과 함께 말이다.
이건 비단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함께 해야 한다.
어차피 우린 함께 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나라는 존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우린 다 사라지게 되는 것이니까.
이건 명확한 진리다.
다시 말해서 우린 서로 아껴주고, 사랑을 하며,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고 기르며, 나쁜 사람들의 위협을 미리 준비하게 하고, 공격을 막으며, 주변 친구들을 살펴서 나쁜 사람이 되지 못하게 보살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사회가 유지되고 국가가 영속할 수 있으며, 헌법의 보호를 받으면서 외부 세력에 안전하게 보호받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바로 교육이다.
페미니스트가 연애 프로그램에 나와서 남자를 찾는 것 자체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함께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는 증거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허나 그 페미니스트가 자신의 성향의 잘못을 모르고 자신 위주로 남자를 찾으니 또 다른 빌런을 만나서 털리고 자신은 피해가 코스프레를 하는 결과가 나온 거다.
함께 하려면 함께 하는 자세를 가지고, 방법을 배우고, 자신의 잘못을 수정해서 나왔어야 했다는 것을 모르니 변명에 변명에 변명을 하면서 병원 간다고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거다.
지금의 페미니스트의 행보에 정치도 동참하고 있다.
페미니스트의 분노의 방향이 잘못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정치도 표를 얻어먹고 사는 생물이니 정치도 그렇게 흘러가는 거다.
이렇게 되면 남녀의 결혼 비율은 점점 낮아지고 이건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며 출산율이 저조하면 국가의 존재가 흔들린다.
결국 우리나라는 없어질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하며 방어적 태도로 거부하듯이 보겠지만 옥스퍼드 연구진들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없어질 나라로 파악했다.
그 기간이 200년이 되지 않을 거다.
(혹시 이 기간을 보고 나와는 상관없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결국 함께 살아가는 세상인데 꼭 주변 사람들만 눈에 보인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세대까지도 생각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2939646&memberNo=37570062&vType=VERTICAL
그리고 나라가 진짜 없어지면 아마 그 시초가 바로 '문재인 정권'으로 인지될 것이다.
출산율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대통령, 페미니스트의 근본도 파악하지 않고 무조건 여성 기자들부터 챙겨서 질문만 받으려는 대통령, 이런 식으로 전체를 보지 못하는 대통령의 행보를 지적하니 국민을 고소한 세계 최소의 대통령, 국민의 세금을 팔아서 선진국 하겠다고 UN에 먼저 발언한 세계 최초의 대통령.(선진국이 되어서 국민의 무역 세금만 늘었다. 기존 대통령들은 이것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다.) 등등 등등 등등 등.
현재 한국형 페미니스트의 출현은 국가의 존폐 위기가 점화된 아주 작은 불씨라는 것을 정치인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출처를 인지하지 못한 그 작은 불씨를 발견하곤 정치적으로 이용만 해 먹으려고 하는 정치인들로 인해서 대한민국은 현재 위기를 위기라고 느끼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잡혀 있다고 본다.
그럼 해결 방법은 없는가?
없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정부가 심각성을 인지하고 나서 주지 않는 이상은 개인이나 남성 집단이 싸우는 방식은 서로 파괴적인 방법뿐이다.
누가 이 상황을 인지하고 제대로 대응해서 바꿔줄 거라고 보는가?
제대로 대응하면 페미니스트들은 잘 들어줄 거라고 보는가?
정치인도 그렇지만 현재 우리들도 분노심에 가득 차서 서로 혐오하고 공격만 하려고 하는 세상이니 더 좋은 세상으로 가는 방법은 없다고 본다.
세상은 1%의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인다.
그 1%를 도와줄 10%의 사람들과 그 10%의 사람들 밑에서 일하는 10%의 사람들, 그 10%의 존재를 안정적으로 해주는 사람들 정도가 세상을 움직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걸 유지시켜주는 사람들 50% 이상의 사람들이 이 세상을 존재하게 만든다.
근데 지금은 우리나라는 그 1%의 사람이 없다.
있다고 해도 영향권 밖에 있어서 손쓸 힘이 없는 위치에 있다. 어쩌면 정치를 모르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특정 후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은 하염없이 뒤로 퇴보하는 시간을 5년이나 보냈고, 중간중간에도 그랬다.
어쩌면 서로 싸우다 지쳐서 그만하자는 식으로 나오면 끝이 날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시점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사정이 그리 녹녹지 않은 상황으로 치닫게 되어서 화해는 좋지만 여기에서 피해자들은 다시 한강의 기적으로 일으켜야 할 시점으로 돌아가는 사정으로 매우 힘든 시점까지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여차하면 지금 정권이 주장하는 다 같이 못살자는 세상으로 만들어서 상대적 박탈감이 없어서 서로 웃고 사는 응답하라 1988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허나 인터넷을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스마트폰은 더 고급이 될 것이다. 그러니 상대적 박탈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나만 응팔이고 이런 사태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향해서 가고 있는 인스타그램의 그들은 2100년일 것이다.
결국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 해결점이 없다. 있어도 시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토드 필립스 감독이 조커를 만들 때 조커 같은 인물을 현상으로만 보고 태어난 근본 원인을 모른다면 우린 조커 같은 인물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취급하기만 하면 이런 사람들은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타날거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의 한국형 페미니스트의 행보를 보면서 이상한 집단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를 공격할 것 두렵게만 생각한다면 세대가 변해도 이들은 사라지지 않고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조커처럼 태어날 때부터 힘들었고, 직장에서 무시당하고, 정신적으로 문제도 있으며 사회에서도 약자로써 억울한 감정을 하루하루 담아가며 사는 사람이 자신이 존경하는 존재로부터 무시당하고,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존재에게 부정당하면 절대 사회악인 조커가 탄생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난 이런 이해 방식을 가진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래서 플라톤은 국가 원수는 철학을 해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페미니스트를 자신의 표로 만들기 위해서 얕은 술수나 쓰고, 자신의 인기에 이용하기 위해서 신경 써주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인지도 못하는 쇼맨이 아니라 말이다.
이번 대선은 최악이라는 오명을 쓰고 준비되고 있는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주는 반전이 있는 정권이 되길 바라본다.
그러면 언젠가는 국가 위기를 잘 방어한 정권으로 기역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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