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경험론/인생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이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다.

_교문 밖 사색가 2022. 1. 17. 14:04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이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다.

 

 

무지는 죄다.

 

 

 

 

 

동굴에 사람들이 묶여 있고 뒤에는 횃불이 있다.

횃불 앞으로 모형이 움직이고 그 모형의 그림자를 묶여 있는 사람들이 본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그 그림자가 현실 혹은 진짜라고 믿는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묶여 있는 사슬을 풀고 동굴 밖으로 나간다.

처음에는 눈이 부셔서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다가 조금씩 적응해간다.

 

 

처음에는 그림자를 보다가 그 그림자의 진짜 사물을 보게 되고 이윽고 태양을 바라보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허구이고 진짜 세상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 있으며 그래서 지금 이 현실은 동굴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과 같은 처지라고 풀이하면 된다.

 

 

여기에 대한 영화가 '매트릭스'가 가장 대표적이고 좀 쉬운 버전이 '13층'이라는 영화다.

그리고 요즘 영화로는 '프리 가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성향은 좀 다르지만 큰 맥락에서는 재밌게 표현된 영화다.

 

 

 

그럼 진짜 현실은 무엇인가? 이데아란 진짜 존재하는 것인가?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현실에 적응하면서 사는 것이 답이라고 했다.

 

 

 

서양철학의 거대 두 기둥이 이런 대립된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 뭐가 맞고 틀린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허나 두 사상을 합쳐서 2중 구조 이데아 사상을 대입시켜서 해석을 하면 이데아 사상이 현실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우린 학교에 다닌다.

그 감옥 같은 곳에서 우리는 선생님들에게 현실에는 별 필요도 없는 지식을 배운다.

 

그 와중에 돈과 사랑에 관한 그들만의 세상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 세상은 돈이 전부가 아니다.

 

 

아직도 이런 얘기를 하는 선생님이 있다면 아마 나이가 많이 든 선생님이거나 더 이상 자신의 세상을 확장할 수 없다고 여기는 현실 적응 주의자라고 본다.

 

허나 여러분들은 살면서 아마 절실히 느낄 것이다.

 

세상엔 돈이 모든 것이라는 것을..

 

 

집도 돈으로 사고, 차도 돈으로 사고, 아이패드도 돈으로 사고, 스마트 폰도 돈으로 사고, 먹을 것도 돈으로 사고, 입을 것도 돈으로 사고, 구직도 돈으로 준비해야 하고, 효도도 돈으로 해야 하고, 어른 구실도 돈으로 해야 하고, 데이트도 돈으로 해야 하는 아주 삶 자체가 돈이라는 것을 절절히 느낄 것이다.

 

 

허나 왜 선생님들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는 것일까?

과거 역사적 이야기와 가난 유토피아적 내용은 생략하자. 고리타분하니까.

 

 

현실적인 얘기가 중요하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잘 생각해봐라. 선생님들이 학생일 때 학교를 갔다. 그리고 대학을 가고 취업을 했다. 바로 학교다.

그리고 교사라는 직업은 '평생 직업'이다.

 

 

그 말인즉슨 학교 바깥으로 나가서 직장을 구하고 일상을 살아야 할 학생들의 삶은 거의 모른 체, 교사생활 이외의 아는 현실이란 것이 겨우 친구에게 (엿)들은 말, 가족과 친인척들의 삶을 (무신경하게) 보고 알게 된 것, (내 생활 소식말고는 의미를 두지 않는) TV 뉴스 등등 모두 간접적인 경험뿐이다. 

 

더군다나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직업이니 감정 이입해서 생각해본적도 없는 학교 밖 생존 경쟁에 대해서는 1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일 거다.

 

 

이런 사람들이니 돈 얘기는 금기시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학교 밖으로 나가 생존 경쟁에서 승리하여 더 많은 연봉을 득템 하는 승부수는 띄우지 않을 거기에 지금 받는 월급에 만족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고 한 20년 생활을 했으면 본능에 저장하여 DNA엔진이 구동해서 저절로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원리가 기본 탑재가 됐을 것이라는 거다.

 

 

더군다나 이런 불경기 시즌에는 자신들의 생각(본능)이 더 맞다고 판단이 될 것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친구들은 그만큼 더 고생을 해서 그런 거니, 난 그런 스트레스를 덜 받고 지금의 연봉에 만족한다며 자기 위로도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심지어 40대가 넘어서면 스트레스로 인해서 암이 걸렸다는 친구 소식도 접하게 되면 치열하지 않은 미래가 보장된 자신의 삶에 더 만족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들을 비하할 이유가 없다.

그럼 자신은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환상에 갇혀 살아가야 한다.

환상에 갇혀 살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이 한탄스럽기 때문이다.

 

안정을 위해서 교사가 되었는데 교사마저도 불안정하고 불만을 느끼면 더 나아갈 곳이 없다고 느끼는 극도의 불안감이 엄습하게 된다.

 

 

심지어 대충 버틸만여 환상에 사로잡혀서 살아갈 수도 있으니 교사라는 직업은 더할 나위 없는 직업인 것이다.

 

 

이들의 불만은 같이 일하는 촌스러운 동료들과 꼰대 중에 꼰대들만 모여 있는 꼰대 집단과 가르쳐봤자 보람도 없다고 느껴지는 학생들을 평생 봐야 한다는 지겨움일 것이다.

 

 

허나 여기에서 내가 촌스럽고 꼰대고 보람을 다른 곳에서 느끼면 다 해결이 되는 편리함도 있다.

 

 

대기업에서 살아남으려고 악착같이 일을 하고 명절에도 노트북 들고 일하고 쫓겨날까 봐 걱정하면서 정작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어서 불안에만 떠는 사람들보다야 나으니까.

 

 

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이들의 연봉은 변화가 없다.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돈이 더 필요한 사태가 벌어지면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발휘한다. 

 

조언하기, 들어주기, 바쁜척하고 만나지 않기, 남들하는 만큼만 하기 등등 등등..

 

 

결국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연봉에 만족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정해진 인생인데 그 돈은 현실을 풍족하게 살아가기에는 결국 부족하다.

 

허나 앞에서 말했듯이 이 직업은 평생 직업이고 안정된 직업으로써 절대 바꿀 생각이 없다.

그러니 이들은 결국 돈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 있다는 교과서적인 논리에 빠져들어 합리적인 도출을 해냈다고 믿는 거다.

 

 

허나 돈은 정말 중요하다.

이런 논리로 나만 안정되면 된다는 생각에 빠져 살면 다 같이 사는 사회가 완성되기 어렵다.

 

아이러니한 게 다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 직업이 개인주의에 빠지기 가장 쉬운 구조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해보자.

 

 

얼마 전 아주 친한 동생의 아버지가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 하셨다.

난 노트북을 덮고 곧바로 달려갔고 조의금 50만 원을 냈다.

장례가 끝나고 시간이 지나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같이 밥 한 끼 하자고 해서였다.

 

남편이라고 해도 이상할 거 없는 남자 친구와 같이 온 그 동생은 뭘 그리 많이 넣었냐고 했다.

 

내 나이쯤 되면 다 그렇게 넣지 않냐고 했다.

나보다 한 살밖에 어리지 않은 동생의 남자 친구는 아니라고 했다. 전 직장(대기업) 사람들도 그렇게 넣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50만 원을 적재적소에 사용해서 내가 구입한 것은 바로 고마움과 어른스러움인 거다.

다시 말해서 이런 시점에 적절히 넉넉한 돈은 사람의 마음을 사기에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돈이 들어간다.

 

그리고 단언컨대 50만 원으로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다면 아주 싸게 사는 거다.

 

 

위로, 조언 필요 없다.

그런 거 사람들 다 안다.

 

 

사람들이 어려울 때 원하는 건 내 편이 있다는 안도감을 원한다.

그걸 줄 수 있는 게 돈이다.

와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당연히 동생은 생각하고 그래야 하지만, 동생이 예상한 돈보다 많은 돈은 '이 사람은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겠구나' 하는 안도감과 유대감을 생성하게 한다.

 

 

세상에 가족 이외에 내 편이 있다는 이런 감정으로 어려움도 스스로 헤쳐나갈 용기를 얻는다.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감당할 수 있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이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는 건 좋지 못하다. 그리고 당연히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은 대신 해결해 줄 수도 없기도 하다.

 

 

* 어려움을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은 어려움을 감당하기 싫어서다. 체면이나 자존심 같은 것으로 말이다.

 

 

허나 그래도 내가 뒤에서 너 어려울 때 밥 한 끼 정도는 사줄 수 있다는 신호는 보낼 수 있다.

그게 돈이다.

남들 내는 돈 수준으로 인사 치례로 내면 그런 신호를 보내지 못한다.

말을 그렇게 하더라도 남들 내는 돈 수준이면 듣는 사람은 '말이라도 고마운 거지'라는 수준으로만 알아듣는다.

 

 

 

 

 

즉 돈은 현실 세계를 살아갈 아주 강력한 무기이자 나의 유용한 노예다.
허나 사람들이 돈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하는 이유는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 그걸 가르쳐줘야 하는 곳이 학교인데 학교(교사)가 그걸 모르니 되려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치고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고 가르치는 플라톤의 동굴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걸 듣는 학생들은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듣는다고 해도 결국 무의식 속에는 남는다.

무의식 속에 남으면 자신이 어려울 때 극복하고 헤쳐나가려고 하지 않고 돈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안도 쪽으로 기운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상업 선생님이 수업하기 싫어서 교사가 얼마나 좋은 직업인지 설파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얘기를 듣고 교사되겠다고 생각한 학생들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내 기억으로는 50명 중 한 7명 손을 들었는데 난 속으로 '미친놈들'이라고 생각했다.

암튼 그 상업 선생님은 손을 든 7명을 보면서 정말 잘 생각했다며, 너희들은 사회 나가서도 잘 될 거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생활을 해본적도 없는 사람이 그런말을 하는것이 아이러니하다.

 

 

자신의 사회 생활을 학교라고 생각해서 그럴거라는 것을 알지만 학교에서 사회 생활을 하는것은 진짜 사회 생활을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근데 진짜 사회 생활을 해본 적이 없으니 같은 거라고 착각하면서 사는 거지.

 

 

이래서 무지가 죄가 되는 거다.

 

 

암튼 자신에게 불안요소가 생겨서 그랬는지, 자신의 직업이 안정된 좋은 직업이라는 것을 다시 되새기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 그때 그랬을 거라고 본다.

 

 

이렇듯 우리는 진짜 우리들이 나아가야 할 사회에 대해서 1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배움을 얻고 있으니 당연히 우린 아주 힘든 생활을 하게 되어 있는 거다.

 

 

이것이야 말로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는가!?

 

 

이들은 동굴 속 횃불 앞에서 모형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들과 같은 존재다.

 

 

요약하자면 이들은 자신의 직업이 평생 직업이고 연봉도 예상 가능 범위 안에 있으니, 부족한 자신의 삶을 한탄하는 것보다는 먹고 살만한 인생이면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단계에 접어들어 자신을 설득하고 그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서 학생들에게 세상에는 돈보다 중요한것이 있다고 설파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진짜 세상에 나가서 싸워 이겨야 할 세상을 모르니 싸울 무기가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어른이 된 것이다.

무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도 관심이 없기에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도 모를 거다.

 

 

 

 

 

 

*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 (사랑은 아름다운 거다.)

 

 

인간 사회는 일과 사랑으로 이뤄져 있으니 돈 다음으로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 거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

좋은 말이다. 맞는 말이라고 TV나 대중 매체에서도 말하니 당연하고 의심할 여지없는 말이다.

돈보다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도 학교에서는 가르치기도 하는 이 사랑을 과연 선생님들은 알까?

사랑은 어떻게 시작하고, 유지하며, 끝내야 하는지 알까?

 

 

사랑은 아름다운 거라고 하는데 선생님들은 사랑에 있어서 삶에 있어서 아름다운 게 뭔지 알까?

 

 

아마 학교에서 사랑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섹스 때문이다.

사랑 = 섹스로 어어지는 학생들의 생각을 막기 위해서 방어적으로 사용하는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급기야 사랑과 섹스는 절대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절대적으로 별개라는 식으로 가르친다.

심지어 섹스는 폭력과 연결시켜서 가르치기도 한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진욱이(가명)라는 같은 반 인간은 선생님에게 '꼭 그런 짓을 해야 애를 낳을 수 있는 겁니까!"라고 반항적이지만 경솔하지 않으면서 강한 어조로 물었다.

 

공부를 잘하는 축에 속한 이 친구는 우리나라 교육에 최적화된 인간이었기에 섹스에 대해서도 충실한 부정적 태도를 갖고 있었다. 자신이 배운 것 외에는 다 틀린 거라고 생각하는 학교적 인간인 거다.

 

공부 잘한다고 칭찬받으면 학생으로서 충실하다고 생각하기에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외에 대한 것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도 이때는 이런 부류의 인간이어서 그런 생각은 나도 했고 생각보다 많은 같은 반 학생들이 그랬다.

 

암튼 이 말을 들은 선생님(여)은 "네 엄마, 아빠도 그 짓해서 너 낳았다."라고 받아치며 답을 했고 순간 교실에서는 웃음이 쏟아졌고 좀 논다는 애들은 진욱이를 한 마디씩 보태며 놀렸다.*

 

*참고로 이 시간은 연애나 사랑에 대한 사적인 얘기를 한 시간이 아니라 생물 시간 동물의 짝짓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얘기다.

 

 

그리고 점심시간 때 이 얘기를 했는데 진짜 우리는 섹스를 해서 낳았다고 생각하고 부모를 보니 좀 이상하게 보인다는 얘기가 오고 갔다. 이 말도 진욱이가 가장 강하게 어필을 했다.

 

 

 

요즘이야 '지켜줄게 식' 남자들이 얼마나 있겠냐만 서도 만약 여러분의 남편이 애를 낳기 위해서만 섹스를 한다고 생각해봐라.

 

1. 분위기의 문제가 생긴다.

2. 횟수와 스킬의 문제가 생긴다.

 

 

어쩌면 어떤 여자들은 남편이 될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와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것을 흐뭇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결혼하고 애를 갖지 않을 시점에 프랑스에 놀러 가서 에펠탑도 보고, 몽마르트르에서 산책도 하고, 어느 예술가가 살았다던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야경을 보며 저녁을 먹었는데 그냥 자면 어떨 거 같은가?

 

이왕 극단적인 예를 든 거 더 극단적으로 가보자면 심지어 여자가 적극적으로 섹스를 원하는 티를 내는데 남자가 애도 안 갖으려고 하는데 이런 천한 짓을 요구하는 여자를 혼을 낸다면 어떨까?

 

 

이걸 좀 순화해서 생각을 한다면 애를 굳이 갖지 않아도 이런 분위기면 섹스를 해도 된다고 생각해서 하는데 늘 같은 반복이고 심지어 여자 친구의 성감대는 무시하고 오롯이 책에서 본 대로만 훑고 지나가서 끝을 낸다면 어떨까?

 

 

남자야 사정하면 그만이지만 여자는 아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의 교육이 문제가 있는 거다.

국영수 잘해서 서울대 들어가서, 좋은 직장, 평생직장 다닌다고 해서 섹스 잘하는 거 아니라는 뜻이다.

 

 

어쩌면 교육(학교)은 섹스를 가르치지 않을 테니 너희들은 얼마든지 불만을 품을 수 있다. 대신 학교는 사랑이 중요하다고 가르치겠다고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지만.. 아닐 거다.

 

 

그럼 대학에서 이걸 가르치나?

아닐 거다.

 

 

되려 문제는 대학에서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사랑은 아름다운 거다'라는 방식으로 섹스를 연결시키고 남녀관계의 낭만적 관계를 연상하는 여자들이 대학에 들어가서 막힌 성욕을 봇물 터지듯이 터트리는 남학생들을 만나서 뜻하지 않은 섹스를 당한다면 과연 어떨까? 더군다나 첫 경험이 이렇다면 말이다.

 

 

이런 사태를 내가 처음 접한 건 중학교 다닐 때 9시 뉴스에 나온 야타족 사건이다.

이 뉴스를 기억하는 건 이들이 연세대생이었기 때문이다.

90년대다.

 

고급 외제차를 타고 지나가는 여자들을 꼬셔서 차에 태우고 강간을 하고 마약을 하게 해서 재미 삼아 놀아난 남학생이 바로 연세대생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부모의 급으로 인생이 나뉘는 현상의 최초로 인지한 뉴스이고 시점이다.

물질 문화가 도래했다는 신호로 내가 인지를 한 시점이라는 뜻이다.*

 

*고급 외제 자동차를 모르는 남자가 '야! 타!' 라고 해서 얼른 올라 탄다는 것 자체가 물질 문화를 대표하는 행태라고 볼 수 있다.

 

 

당시 9시 뉴스는 못 배운 인생을 사는 인간이 아닌 연세대생이 이랬다는 것에 강점을 두기도 했고 뉴스를 보는 사람들도 그랬다.

 

 

다시 말해서 국영수 잘해서 연세대(상위 대학에) 들어갔어도 사랑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섹스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가르치지 않는다는 결과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세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말하는 것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 섹스를 잘 가르치자라는 것이 아니다.

 

 

* 홈커밍 파티

 

난 서양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홈커밍 파티를 흥미롭게 본다.

남자가 파티에 가고 싶은 상대에게 제안을 하고 그걸 여자가 받아들이면 당일날 잘 차려입은 남자가 부모님의 조언을 듣고 여자 집에 찾아가 노크를 하고 그럼 여자 쪽의 부모님이 나와서 "네가 피터구나" 하면서 맞아주며 자신의 딸을 불러서 간단히 서로 인사를 한 뒤 파티에 가는 모습이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너무 함축적으로 잘 표현된 모습 같아서다.

 

 

[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크린 샷] 여자를 상대하는 법을 배우는 기회를 제공하는 학교문화는 남자를 남자답게 여자를 여자답게 어른을 어른답게 만드는 지식보다 중요한 화합의 문화라고 본다. 우린 이런게 없으니 남자나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의심에서 폭력으로 이어지는 상태가 된거 같다. 왼쪽 아래 컷은 메이 큰 엄마가 피터의 홈커밍 파티 준비를 도와주는 모습이다.

 

 

[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크릿 샷] 피터 파커가 여자의 집 앞에서 긴장하고 여자의 부모님을 처음 만나고 여자쪽 부모도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이다. 홈커밍 파티는 학생과 학생, 남과 녀 라는 화합을 넘어서 신구세대의 교류와 가족간의 교류도 활성화하는 중요한 문화다. (이 둘이 적인건 함정)

 

 

우린 이런 게 없다.

'여자는 이렇게 대해야 한다.'라는 교과서적인 정공법을 배운 적이 없다. 배운적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금기시되었다.

이런 남자들이 학교에 감금되다시피 해서 배운 사랑법이 폭력이라는 결과는 그리 어렵지 않게 도출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피해자는 고스란히 여자들에게 갔고 가고 있고 가게 될 것이다.

 

 

서양에는 Sex & Relationship이라는 교과과정이 있다고 한다.

배운 적이 없어서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처럼 억압하고 세상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교육을 받는 거보다는 훨씬 나을 내용이 있을 거라고 본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공존해야 하는 것은 공리이며 그에 따른 방법에 섹스가 있고 그 섹스를 어떻게 해야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고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거라고 예상은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상형은 건강한 섹스가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잘 생각해보라 섹스라는 것이 '우리 한 번 하자'라는 식으로 되는 행위인가!

 

건강한 섹스가 되기 위해서는 아침에 서로가 옆에 있음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하며, 아침을 먹으며 하루 일과를 공유하고, 각자의 삶 속에서 함께 하기 좋은 얘기를 들었을 때 서로를 생각하며, 저녁을 함에 있어서 오늘 들은 좋은 정보를 주말에 같이 구체적인 얘기를 나눠보며, 더 많이 웃을 시간을 갖고, 밤에 섹스를 할 생각이 있으면 저녁을 좀 더 근사한 곳에서 하거나 아님 내가 해주거나 하는 감성도 갖추고 행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을 통틀어서 섹스라고 불러야 하는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런 행위는 당연히 일상적 사랑에 가장 흡사한 행태라고 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다음 잘 맞는 사람과 사랑을 만들어가면서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인 것이다.

 

 

이것이 섹스라면 왜 교육에서 이걸 가르치지 않는가! 모르기 때문이다.

되려 교육은 섹스를 동물적 행위로 취급하려 한다.

허나 동물은 짝짓기 시기에만 교미를 한다. 인간은 섹스를 유희의 활동이자 교감의 활동으로 적극적으로 진화한 존재다. 그러니 섹스가 동물적이고 천하다는 생각을 갖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사육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럼 이들은 어떻게 해서 Sex & Relationshoip을 가르칠 수 있을까?

 

 

일단 이들의 성관계를 갖는 시기가 평균 14세라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섹스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것이며 인간관계 특히 남녀 관계에서 중요하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성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ER 시즌 8, ep 16 스크린 샷]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 드라마다. 이들은 징계 소집이 되어서 교육을 받고 있을 때 농담으로 서로의 첫경험 시기를 이야기 하고 있다.

 

 

한때 우리나라는 결혼을 해서 해야 섹스를 할 수 있다는 시기가 있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연애를 하면 해도 괜찮다는 분위기는 형성이 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 섹스의 내용이 티테이블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한국에 거주 중인 외국인들은 한국 여자들 보고 할거 다 하면서 자신은 안 한 여자처럼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뭐가 잘못이라고 그걸 숨기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건 섹스가 아직은 지극히 사적인 비밀창고 속에 있는 사회 분위기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섹스를 가르친다고 생각해보자.

남선생님이 가르치면 변태 새끼가 될 테고, 여선생님이 가르치면 천박한 여자가 될 거다.

교과과정에 있다고 해도 이런 상황을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다데, 교과과정이 없는데 가르치면 학부모의 항의는 불 보듯 뻔한 사태다.

 

 

이런 상태에서 미국처럼 자연스럽게 성에 대해서 받아들여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다.

허나 지금의 한국은 기형적 페미니스트들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 정치는 어떠한가?

정치인은 이런 거 신경도 안 쓴다. 어떻게 해야 페미니스트들로부터 표를 얻을지만 궁리할 뿐 올바른 정책은 생각도 안 한다.

 

이런 한국 교육 과정에서 과거는 절대적으로 여자들만이 피해자였으나 이런 과정으로 태어난 한국형 페미니스트들의 출현은 이제 남자들도 피해자가 되는 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선생(어른들)의 무지가 삶에 있어서 중요한 반쪽을 인지하지 못해서 지금의 교육 과정을 고수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남자가 여자를 괴롭히는 기형적 연애 형태를 낳게 했고 현재는 이에 대항하는 기형적 페미니스트를 양산했으며 그로 인해서 남녀가 서로 혐오하는 사태까지 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기형적 형태가 서로 소수로 이뤄지고 있지만 허나 일반인들이 경계를 해야 할 정도는 충분한 숫자로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리를 하자면 교육의 목적은 어린 국민이 사회로 진출하여 세상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크게 두 가지 길이 있다. 일과 사랑이다.

 

허나 지금의 교육은 사랑 즉 연애는 포기한 상태이다. 그래서 현재 남녀가 서로 혐오하는 세상이 되어간다.

일을 구하는 방식은 학교 공부도 상위 20% 학생들만이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한다는 식으로 가르친다. 허나 세상은 학교 꼴찌도 살아갈 수 있는 직장과 직업이 있다. 그리고 이들도 정직하게 살아가는 존재가 상위 20%만큼은 충분히 된다.

 

결국 교육은 우리의 중요한 한 부분을 무지에 의해서 무시를 하는 구조고 인지하는 부분도 상위 20%만이 사회에서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허나 상위 20%도 무지에 의한 무시당한 부분 즉 연애(여자를 상대하는 방법)를 모르니 인간을 무시하는 폭력적이고 쾌락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은 서로를 혐오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선생님들의 무지로 인해서 우린 우린 플라톤의 동굴 속 손발이 묶인 사람들처럼 그림자만 보고 이것이 현실이라고 교육을 받고 있다. 공부 잘하는 상위 20%만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우린 상위 20%의 사람들이 잘 사는 실체를 한 번도 직접적으로 본 적이 없다. 결국 말만 들은 느낌적인 느낌만 아는 그림자만 본 수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고등학교 꼴찌 출신도 자동차 정비하면서 돈도 많이 벌고 살 수 있고, 목수 하면서, 음악 하면서, 그림 그리면서 운동하면서, 춤을 추면서, 연기하면서 잘 살 수 있다.

이렇게 잘 살아도 함께 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면 정치를 해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고, 재벌도 무너질 수 있으며, 인기인이 되어도 대중에게 사라질 수 있다.

 

 

결국 학교에서 중요하다고 인지하는 부분만 가르치는 학교 시스템은 인생에 부분 20%의 그림자만 보고 가르치는 꼴이라고 볼 수 있다. 그걸 철석같이 믿고 따르는 학생들은 사회에 진출해서 교육과 다른 현실을 보고 크게 놀라고 상처받고 정신적 장애*를 겪는다.

 

*지난 글에 한국의 기형적 페미니스트들은 20대 중반까지 학교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서 번 아웃된 존재들이 다시 세상에 적응하기를 포기하고 차라리 세상을 학교에서 배운 대로 바꾸려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의 공격 목표는 단순히 남자들이 아니라 학교에서 배운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 더 잘 사는 레이싱 모델이나 노출로 수입을 얻고 사는 BJ들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라고 했다.

 

https://blog.daum.net/spike96/16464470

 

한국형 페미니스트들의 근본 심리는 억울함일 것이다.

한국형 페미니스트들의 근본 심리는 억울함일 것이다. 남성 혐오는 표면적 현상일 뿐 근본 심리는 사회에 대한 억울함, 교육의 배신감이다. 최근 들어서 내가 본 페미니즘의 행보 중 여성을 공

blog.daum.net

 

 

이런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서 지금 대한민국은 서로를 혐오하고 믿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이와 더불어 경제적 문제와 함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위기에 직면해있다.

 

 

남녀가 서로 혐오해서 2세를 낳지 않는데 어떻게 국가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2세를 낳더라도 제대로 된 교육이 되지 않는데 어떻게 국가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유대인의 교육은 우수했으나 그들은 공존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남에 국민을 노예 거래로 사용했으며, 고리대금으로 남에 나라 돈을 싹쓸이하고 베푸는 것이 없으니 히틀러 같은 빌런을 만나서 그런 학살을 당한 것이다.

 

빌런이 빌런에게 처리된 꼴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의 남녀가 공존하기 어려운 사회가 세상과 공존하기는 불가능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고도성장의 향수에 취해서 미래의 보이지 않는 위험을 무시하는 상태가 되었다.

 

 

국가는 미래의 보이지 않는 위험을 인지해서 대비를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국가를 믿고 안심하고 서로 합심해서 국가를 성장시킬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보이지 않는 위험을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경험이 있는 나라다.

 

 

국가는 현재의 교육을 점검하고, 수정하고, 개혁해서, 어린 국민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이질감 없이 사회생활을 하고 인간관계를 맺고 건강한 친구들을 가깝게 만들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교육을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 교육은 돈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니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식으로 가르친다.

사랑의 중심에는 건강한 섹스가 지속 가능한 즐거움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니 사랑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다.

 

돈보다 중요한게 있다고 하니 돈을 막쓰면서 합리화하는 건 마치 현 정부가 빚을 내면서 국가를 운영해도 된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야동이 해로울까! 현 정부의 이런 행태가 해로울까!

사랑은 아름다운 거라면서 섹스는 죄악시 여기는 행태는 사람들이 과연 올바른 사랑을 할 수 있는 행태인가!

 

 

교육은 생각보다 큰 효과를 보고 있다.

학교에 적응한 상위 20%의 사람들에 대한 동경을 가진 것으로 지금의 교육은 먹힌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말해서 하위 80%의 사람들 중에서 하위 20%의 사람들은 제대로 된 사람대접을 못 받을 때도 많지 않은가! 바로 교육의 효과다. 다 같이 공존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모르니 가르치지 않은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고 있는 거다.

 

사랑에 대해서는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고 있으니 어떤가! '연애 = 폭력'*이라는 것과 다름이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남혐 여혐은 연애가 시작되기도 전에 남자와 여자 간의 폭력이 진행된 상태라고도 봐진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무)교육의 효과다.

 

 

이렇듯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은 현 교육에서 버젓이 일어나 사회를 불안정한 상태로 만들고 있다.

 

사회를 알지 못하는 선생님들이 자신들은 어른이니 사회를 다 안다는 식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은 그것이 마치 다 진실인양 받아들여서 선생님들의 말을 충실히 따른다.

 

그리고 학생들이 사회에 내몰리면 배움과는 다른 세상에 놀라고 상처받고 두려워하며, 참고 숨고 그리고 살기 위해서 뜻하지 않게 자신도 사람들을 핥퀸다. 이런 사람들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것도 할 줄 몰라 서툴고 자기 멋대로다. 그래서 상대방이 헤어지자고 하면 차다리 죽여버리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당장 그 사람이 없으면 사회에 적응하며 살지 못하니* 원망이 극대치에 달해서 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적응하지 못하면서 기댈 곳이 없으니 사회에서 없어진 존재처럼 느껴지게 될 것이다. 무시가 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들도 처음에는 다시 만나 달라고 협박만 하러 갔을 거다. 죽여버리다고 생각하기 전에 몇 번을 매달리고 재회하고 기회를 얻었지만 그대로인 상태가 있었을 거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기대려고 생각도 해봤지만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으니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거다.

예전에는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포기했으나 요즘은 그 분노가 상대방에게로 향한다.

 

 

 

진짜 사회를 모르는 선생님들의 교육으로 인해서 지금의 사회는 엉망이 되었다.

사회를 다 안다고 생각하고 선택한 교사라는 직업으로 안정을 얻었으니 진짜 사회에 나아가야 할 학생들을 위해서 사회를 더 알려고 하지 않은 선생님들로 인해서 사회는 연애 문제로 살인까지 빈번하게 일어난다.

 

 

플라톤은 이데아 사상의 나머지 말은 이렇다.

밖으로 나간 죄수가 진짜 세상을 보고 동굴로 돌아와 자신의 동료들에게 진짜 세상은 따로 있으니 같이 나가자.라고 하니 묶여있는 죄수들은 지금 저 그림자가 안 보이냐! 저것이 진짜인데 어디가 진짜가 있냐는 거냐!라고 말이다.

 

 

허나 선생님들은 진짜 세상을 알 거다. 친구를 통해서 뉴스를 통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무실의 직접 경험을 통해서 말이다.

근데 그걸 인지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안정을 더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만 하지 진짜 세상을 더 알려고 하지 않을 거다.

 

 

그러니 이런 교육의 악순환은 끊어지기 어려운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학생들은 플라톤이 말하는 동굴에서 손발이 묶여있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동굴 속 횃불 앞에서 모형이나 들고 움직이는 것이 진짜라고 믿으면서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는 동시에 학생들을 속이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세상은 진짜 세상을 보고, 경험해서 돈과 사랑과 함께 사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노하우를 터득한 선생님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런 선생님이 없다면 자신의 현실을 의심하고, 관찰하며, 스스로 삶의 노하우를 터득하라.

그리고 이걸 계속 반복하라.

세상은 계속 변하니까. 정의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공간에 따라 사람에 따라 변하니까.

 

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