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경험론/인생

오해를 극복하는 법

_교문 밖 사색가 2019. 8. 23. 18:55

 

오해를 극복 하는 법

 

                                                                낭중지추 : 뛰어난 사람은 숨어있어도 절로 남에 눈에 띄게 되어 있다.

 

 

 

[키미션 80] 헝가리 이슈트반 성당 가는 길

 

 

누구가가 나를 오해한다.

나는 그냥 놔둔다. 

어차피 한 번 볼 사이 나를 오해한다고 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일은 없다.

 

 

허나 자주 볼 사이다.

그래도 놔둔다.

여러번 볼 사이면 언젠가는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기회는 언제든 찾아온다.

그 때 증명하면 된다.

 

 

 

1. 어차피 한 번 볼 사이

 

내가 잘못을 해서 오해를 샀다면 한 번만 볼 사이라는 것을 알고 조심했어야 했다.

결국 그 오해도 '나'인것이다.

 

 

상식적인 듯한 만남인데 상황과 생각이 달라서 오해를 샀다.

그건 어쩌면 상대방이 옹졸해서 그럴 수 있다. 

그 나이에, 그 벌이에, 그 직위에 맞는 당연한 경험을 하지 못한 상태로 성장한 사람이라서 나를 오해했을 수도 있다.

미리 이런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만남 자체를 갖지 말았어야 한것이다.

 

 

허나 인간사가 이런것 하나하나 다 관리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이건 어쩔 수 없는것이다.

 

그러니 이건 놔두고 더 좋은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 더 이득이다.

 

 

 

 

2. 여러번(꾸준히) 볼 사이

 

 

한 번의 만남으로 오해를 샀다면 만회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만약 만회할 기회에 만회하지 못한다면 그건 오해를 산게 아니라, 그냥 그 자체가 나라는 뜻이다.

오해를 샀다는 내 생각이 알고보니 내가 나에게 한 오해(착각)였던것이다.

 

 

이걸 인정하는게 쉽지 않을것이다.

 

 

그럼 그 나이에, 그 벌이에, 그 직위에 맞지 않은 경험으로 성장하지 못한 사람을 여러번 만난다면 어떨까?

이런 사람에게도 나를 제대로 알리지 못하면 그 또한 오해의 모습이 '나'다.

 

 

나도 그 나이에, 그 벌이에, 그 직위에 맞게 성장했다면 이런 사람을 만났다고 해도 얼마든지 나를 어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이 보는 내 모습은 곧 '나'인 것이다.

 

 

 

《엄마속에 있는 나, 아빠속에 있는 나, 오빠, 언니, 동생 속에 있는 나.

직장 수속에 있는 나, 김대리 속에 있는 나, 이과장 속에 있는 나, 박부장 속에 있는 나.

초등학교 동창 1 속에 있는 나, 초등학교 동창 2 속에 있는 나.

중학교 동창 1 속에 있는 나, 중학교 동창 2 속에 있는 나.

제일 친한 친구 속에 있는 나, 두번째로 친한 친구 속에 있는 나.》

 

등등등등등......

 

난 다르다.

그리고 다 다른 모습 또한 '나'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다 다르게 행동했기 때문에 나온 나의 파생 인격이 그들 마음속에 자리를 잡은것이다.

그래서 오해를 풀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오해의 사람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난 원래(좋은 사람이라는 쪽으로의 원래) 이런 사람이야! 라는 것도 나다.

그럴때도 있을테니까.

그렇게 대하는 사람도 있을테니까.

 

 

허나 아무에게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난 나에게만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만 그런 사람이면서 남들에게는 안그러면서, 난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답을 듣고 싶다면 거기서 오해가 발생이 되는것이다.

 

 

 

전 직장에서 현주(가명)라는 여직원이 있었다.

그 여직원은 아부쟁이었고 아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나를 이용했다.

뒤에서 나를 씹었다는 얘기다.

 

 

난 처절하게 응징해줬다.

회식을 포함한 사석의 만남에서는 철저히 없는 사람 취급을 해줬고,(존재의 무시)

같이 일을 할 때는 누구보다 업무 협조가 잘 되는 사람이 되어주었다.

 

 

'누가 일을 제일 잘하냐' 라는 투표에 난 현주라는 이름을 적었다.

진짜 일은 제일 잘 했다. 그래서 투표한것이다.

 

 

이 현주라는 사람은 나를 점점 무서워했다.

그럴수록 뒤에서 나를 씹을 기회를 찾아서 나를 열심히 씹었다. 

그러나 이 현주라는 사람이 들은 답변은 타로씨(나)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나에게 연락을 해서 사과의 자리까지 마련했다.

 

 

허나 변명부터 시작했다.

자긴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지금까지 나에게 한 짓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보다 인간관계가 좋아서 그런 말들을 뒤에서 다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몰라서 변명부터 시작이 된것이다.

(아부쟁이도 적당해야 주변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건데 너무 심하게 아부를 떨면 주변 사람들이 적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나이였다.)

 

 

 

그 변명의 내용은 자긴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난 친한 동생이 돈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와서 200만원도 빌려준 사람이다.' 라고 나에게 어필을 한것이다.

 

 

"그래서? 내가 빌렸나?" 라고 난 대꾸했다.

자길 좋은 사람이라고 어필하고 싶으면 그 빌린 동생에게 어필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게 나를 뒤에서 씹으면서 아부를 해서 자신의 이득을 채우려는 본인의 태도와 무슨 상관있지?" 라고 하니,

이 현주라는 사람은 굳어서 그 때서야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자신은 꽤 괜찮은 사람으로 스스로 착각한것이다.

 

자긴 좋은 사람인데 직장 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아부를 선택했고,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해서 자긴 아부쟁이가 아니라고 착각을 했고,(나름의 개인적 이유가 있는 부정직한 행위는 부정직한 행동을 하더라도 당위성을 얻는다고 사람들은 착각을 쉽게 한다.) 대상은 내가 부서에서 가장 튀는 사람이니 나를 삼은것뿐이라고 생각해서 나에게 나쁜짓을 하지 않았다고 착각을 한것이다.(뒤에서는 나랏님도 씹는다고 한다는 말에 입각해서 자신의 태도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고 한것이다.)

 

 

즉, 이 현주라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에게만 괜찮은 사람이었던것이다.

혹은 200만원 빌려간 그 동생에게 그럴수도 있고.

 

 

그 뒤로 이 아부쟁이는 아부의 이용 도구로 나를 이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용서를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다른 사람을 이용했다. 역시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시간이 꽤 걸렸다. 1년 정도였다.

정직한 척 하는 나라고 착각을 하고 시작한 현주라는 인간의 나의 험담은 내가 진짜 정직한 사람으로 인지를 하게 해줬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나를 직장에서 안 어울리는 정직함을 척 하는 존재라고 오해를 한것이었다.

 

 

이렇게 계속 볼 사이면,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나'이면 그리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면 풀린다.

 

오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 번 볼 사이는 잊어라. 나도 그렇게 오해를 하는 사람이 있다. 

오해이기에 오해인지 모르고 오래두면 사실이 되어서 오해라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그런 오해를 안 한다고 착각하는 것 뿐이다.

 

 

계속 보는 사이가 나를 계속 해서 오해를 하는가?

어쩌면 나는 그런 사람일지 모른다. (최소한 그 사람에게는 말이다.)

그 사람이 자신에 맞는 성장을 하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그냥 인정하고 스스로를 고쳐라.

나도 내 나이에 맞는 성장을 하지 못한 사람일지 모른다고 인정하고 고치면 된다.

그럼 나는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내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