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더라.
주인공은 커녕 조연도 아닌 NPC일수도 있다.
(2014년 12월 20일 최초 발행)
내가 참 싫어하는 노랫말 중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이기에~" 어쩌고 저쩌고 하는 가사이다. 노랫말은 근사하다만 참..
과연 이 세상에서 내 인생의 주인공은 과연 나인 것인가?
태어나서 자각 능력이 없을 때까지는 누구나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 거 같다. 내가 자고 싶을 때 자고, 울고 싶을 때 울면, 우리의 부모님 특히 어머니들은 그걸 어떻게든 알아내서 해결을 해준다. 내 인생을 중심으로 잡아서 살려고 육아 휴직도 내고, 모든 삶이 내 위주가 된다.
허나, 내 의지대로 사는 삶은 아니라는 단점은 있다. 생리현상 DNA 방식으로 사니 어쩌면 이때도 결국 주인공은 DNA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를 지나 자각 능력이 생기고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부모님이다. 말 안 들으면 생존의 문제를 제시한다. 집 나가라 그것도 너한테 쓴돈 다 내놓고 나가라고 한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선생님이다. 말 안들으면 고통을 주고 때린다. 경험상 그런 게 필요한 학생들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러고 싶으면 그런다.
학교를 다닐 때 내가 되고 싶은 꿈은 훌륭한 아빠였다. 훌륭한 아빠는 희생의 대표적인 아이콘이다. 하고 싶은 것을 참아가면서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집에 들어와서도 웃으면서 가족을 대해야 한다. 일탈을 꿈꾸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어떻게든 세상을 견뎌내야 가족들을 보살필 수 있다. 허나, 내 인생의 주인공인 선생님들은 내 꿈을 고작 이따위냐고 비야냥 거렸다. 난 그때 내가 잘못된 줄 알았다. 나의 의지를 쥐락펴팍하는 내 인생의 주인공들이 그렇게 말했으니 말이다.
다시 말해서 난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들로 인해서 꿈도 제대로 꾸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직장에 다니게 됐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직장 상사가 됐다. 그 사람 말이 법이었다. 그 사람의 말을 법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난 사회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당연히 학교에서 꿈꾸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니 무엇을 향해 가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주인 이소연 같은 사람은 어떤 교육과정을 거쳤기에 우주에 가는 꿈을 가지고 그걸 유지시켜갔는지 나의 교육 환경으로는 너무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도 직장에서 번 돈으로 아들 노릇을 할 수 있어서 집에서는 주인공까지는 아니어도 집에서 내 인생의 주인공인 어머니의 대접은 어느 정도 받을 수 있었다.
군대에 갔다. 난 IMF 면제였다. 당시 생계가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군대 면제가 잠시 되던 때가 있었다. 허나 학교에서 꿈을 꾸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내 인생의 꿈을 찾기로 결심했으니 내가 혹시라도 군인이 되고 싶어 하는지 몰라서 군대를 갔다.
내 인생의 주요 주인공은 조교를 거쳐서 자대의 병장들 한 달 먼저 들어온 맞선임들이었다. 사무직 보직을 받아서 홍상사와홍상사와 중대장님도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됐다. 여기에 부수적 인물들까지 합하면 내 인생에서 나 빼고 전부 내 인생의 주인공이었다.
내 인생에 돌아이 같은 주인공이 너무 많아서 힘들 때도 있었다. 특히 홍상사는 나이가 40대인 직업 군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괴롭히는 취미로 살았다. 하도 괴롭히길래 상병 때 "같이 영창 한 번 같이 가자!"라고 한 번 제대로 대들었더니 조용해졌다. 물론 쉽게는 반항한 건 아니었다.
역시 인생은 죽을 각오도 덤비면 안 되는 것이 없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버티고 버티니 나도 병장이 되었고 내무실에서 난 제한적 공간과 시간에서 잠시나마 내 인생의 주인공이 잠시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제대를 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없지었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주인공은 아니었다.
경제적인 능력이 없으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더군다나 뭘 하고 싶은지도 찾지 못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기에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라도 내 인생의 주인공이 있을 직장을 찾아야 했다.
몇 군대를 거쳐서 내 인생의 주인공이 있는 직장에 안착을 했다. 안정을 찾으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생각 끝에 난 직장에서 내 인생의 전체의 주인공이 될 수 없으니 퇴근 후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로 했다.
퇴근후 수영장도 가고 블로그도 시작했었다. 혼자서라도 영화도 보러 다니고 커피, 연극 관람하는 동호회도 들었다. 연극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직장 동료들을 이끌고 보러 다니기도 했다.
27살 가을, 오래전부터 계획한 혼자만의 여행을 드디어 떠났다. 첫 여행지는 부석사였다. 최소한 퇴근 후 집 밖에서, 회사 밖에서 서서히 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후로 난 해마다 가을이 되면 혼자 여행을 떠났다. 안동, 제주도, 부여, 선유도, 거제도... 등등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1년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겨울은 내가 너무 추위를 많이 타서 좀 이른 감이 있어도 가을이 좋았다. 이때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 부모님이나 선생님이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아주 신경 쓰는 나 자신이었다면 주인공 중 누군가가 마치 12월에 이런 여행을 떠나야 진짜 시기적으로 좋을 거라고 했다면 난 고민을 많이 했을 수도 있다.
허나, 이 때는 직장 밖에서, 집 밖에서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였기에 시기를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 (실제로 12월에 가야 하는 게 아니냐, 라는 말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혼자 여행을 한 곳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곳이 안동이다.
만약 이때 당시 인터넷 정보가 아주 활발한 때였다면 난 이 병산서원에 가지 않고 소수서원으로 갔을 것이다. 병산서원은 오전에 한 대, 오후에 한 대씩만 버스가 운행이 되었고 그곳에서의 정차 시간은 고작 5분. 오후 버스는 6시간이나 지나야 온다고 했다.
이걸 미런 정보를 알고 병산서원에 애써 혼자 갈 일은 없다. 주변에 6시간이나 구경거리가 있냐고 기사분에게 물었다. 아니라고 답했다. 난감했다. 중간에 안동마을이 있었지만 허나 난 내리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서 그냥 계속 버스에 머물렀다.
그리고 도착했다. 그리고 버스기사분이 시계를 보면서 한 25분 일찍 도착했으니 구경하고 오라고 했다. 배려심인 것이다. 난 이 배려심으로 이제 갈 엄두를 못 내는 안동 병산서원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인생, 즉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절대적 법칙이 있다. 허나, 목적을 향해서 노력하면 이런 배려심으로 인해서 충분히 변수는 발생하고 그 변수는 뜻밖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직장을 언젠가는 그만두어야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커피숍 준비를 했다. 그리고 오픈을 했다.
부산 시내에 조그마하게 시작했다. 시내에서 함에도 불구하고 담배도 피우지 못하게 했고, 너무 작아서 사람들이 걱정도 많이 했다. 허나 난 내 방식대로 담배도 못 피우게 하고, 타로도 하면서 내 가게보다 4배나 크고 술도 파는 커피숍보다 매출이 더 좋았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가게 알아보려고 들리기도 했는데 나에게 그런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야말로 내 마음대로 했는데도 성과가 좋았던 것이다. 혼자 떠난 여행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손님들과 이야기를 했고, 내가 읽어 밑줄 친 책을 손님들이 보면서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물론 가장 일등 공신은 타로였다.
타로를 보면서 연애 이야기, 인생 이야기를 하면서 길을 찾아가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시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가게가 꽉 차면 전화번호를 주면서 자리 비면 연락 달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 날 서울에서 놀러 온 사람들이 왔는데 막상 부산을 오니 어떻게 구경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해서 내가 관광코스를 짜주었는데, 몇 달 뒤에 다른 서울 사람들이 부산에 먼저 여행 온 친구들이 여기에 오면 관광코스를 짜준다고 해서 가게로 온 적도 있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주인공이 되었고 가장 영향력 있는 시기였다. 준비가 철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허나, 감옥이 따로 없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주인공이 됐으나 나의 커피숍은 나를 보러 오는 사람들 었지 나의 가게가 좋아서 온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을 구해서 일정 시간을 보게 하는 것은 어려워졌고, 난 자는 시간 포함해서 24시간을 가게에서 보냈다. 체력은 거의 다 떨어져 가고 건강도 좋지 않아 진다는 것이 느껴졌다.
딱 1년만 더 하려고 했으나 어느 날 찾아온 성형외과를 한다는 의사에게 좋은 흥정으로 팔게 되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내가 된다는 것은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허나 만약 누군가가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난 이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행복했으니까. 내가 내 의지로 내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느끼기도 한 것이다. (권력이라는 것을 이래서 차지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영화 속 주인공은 죽을 고생을 다 하면서 그런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이다. 이걸 풀어서 다시 생각을 해보면 주인공과 주인은 다르다는 것이다.
지금 난 내 시간의 주인이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허나, 주인공은 아니다. 주인공은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다. 어려움이 있다면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죽음도 불사한다.
좀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사람들의 야유에도 머뭇거리는 시기가 있다고 해도 극복하고 살아간다. 그렇게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인생에 대한 참된 행복을 깨닫고 살아가는 것이 좀 더 부자로 살아가는 것이 주인공이다.
허나, 지금 난 내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이런 주인공의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커피숍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라도 그렇게 열심히 했지만 말이다.) 때를 기다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나의 모습이 주인공의 자세는 아니라는 것이다.
주인공들도 이런 시기를 거쳤지만 영화에서는 이런 시기를 대사로 처리하거나 몇 년의 세월을 2분 안팎으로 처리할 뿐,영화 속에서는 그런 시기를 주인공의 주요 삶으로 나타내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서 난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아도 부모님의 그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어도 커피숍을 운영할 때보다 주인공의 모습을 갖고 있지 않다. 결국 주인공은 역경이라는 것과 함께 동반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고 그 위에 우뚝 서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난 역경이 있는 주인공이 너무 힘드니 다시 직장 생활을 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한 적이 있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커피숍을 할 때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행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다시 그걸 하려고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아무 기술도 없고 걱정도 없이 일하는 직장에서 일하면서 고정적으로 월급을 받으면서, 직장을 벗어난 시간은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던 시기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허나, 이 나이에 아무 걱정 없이 할 수 있는 허드렛일을 하는 직장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구할 수 있다고 해도 시간이 하루에 12시간 이상에다가 주 6일 근무였다. 개인적인 시간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고 예전 직장에 다시 들어가는 것도 탐탁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있다.
허나, 고정적인 수입이라고 생각이 되지 않는 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내 스스로 움츠려 들고 있어서 함부로 다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난 영화로 치면 현재 왕일지언정 매일같이 목숨 걱정하고 불안에 떨면서 살아가는 그런 조연보다 못한 출연진에 불과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신 난 노예로 살고 있지는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에 삶이 멈춘다. 그 외 시간을 활용해가면서 자신의 삶을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다.
직장에서는 직장상사를 주인공으로 모시고 있고, 집에서는 그 월급으로 부모님의 영향까지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여전히 부모님이 시키는 데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가끔 반항을 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부모님의 뜻대로 이끌려가는 노예이다. 대상이 부모님이라서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뿐이지.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시간을 주인공으로 살고 있느냐? 기껏해야 친구들 만나고 수다 떨고 술 마시는 것이 다인 삶이라면 절대 주인공이 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에서 당신은 얼마나 당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면 알 것이다. 기껏해야 그날 술잔 쏘면 그날만큼은 주인공의 대접을 받을 수도 있는 정도일 것이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는 이상은 결코 주인공이 된다고 할 수 없다.
안동 마을 안에 있는 탑이다. 허나 이 탑을 구경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최소한 이때 당시는 말이다.) 이 탑은 숨겨져 있다. 일제강점기 때 없애려고 불을 태우려고 했으나 실패해서 마을에서 보이지 않게 주변을 조성했단다. 난 안동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탔던 리무진 택시를 타고 기사분에게 이 설명을 들었다. 당시 버스가 활발하지 않아서 택시를 타야 했는데 택시 정류장에서 제일 앞에 있는 택시에 기사가 없었다.
그때 리무진 택시기사분이 나를 보고 웃으며 손짓을 했다.눈이 마주쳐서 피하지 못해 얼마나 돈이 더 비싸겠느냐,라고 생각하고 이때라도 좋은 택시 타보자는 마음으로 탔다. 뜻밖에 기본료가 똑같았다.(당시 1,800원) 그리고 혼자 여행을 한다고 얘기를 몇 마디 나누고 나니 이 기사분은 만원으로 안동 여기저기 나를 구경시켜주었다. 계획이 없는 여행에 대한 대가는 이런 행운을 통해서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워도 노력을 하는 자에게는 분명 이런 행운이 있다. 그걸 수용할 수 있는 정도로 노력하느냐.. 마느냐.. 의 차이인 것이다.
여행은 인생을 가르쳐주는 교과서인 것이다.
그럼 아무 방해도 받지 않는 시간은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가?
TV가 당신을 주인공으로 모시고 있는 것처럼 웃겨주고, 감동도 주고 그럴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당신은 TV 없이는 그 시간을 몸서리칠 수밖에 없어 TV가 주인이 되어 버린 것을 인지 못할 뿐, 결국 TV가 당신들 인생에 주인공인 것이다.
결국 세상의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직장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TV의 노예로 살고 있는 것이다.
(난 겨우~~~ 그 상태를 벗어난 상황일 뿐. 좋게 얘기하면 언젠가는 주인공으로 살아갈 때를 기다리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시기를 기다리는 시기를 보내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주인공은 있는 상태로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좋아지겠지..라고 살아가나, 설사 이렇지 않더라도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조건 좋은 남자나 여자를 찾는 것 그런 삶이 아니다.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서, 조금은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조금은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오늘이 힘들더라도 매일매일 성장(변화)을 하는 사람이다.
그게 꼭 대의적인 면이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건강을 위해서, 스스로의 삶의 질을 위해서, 스스로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러니 "이 세상이 영화라면 난 영화 속 주인공... 어쩌고 저쩌고" 하는 대중 가수들의 노랫말 속지마라. 지금 당신들이 살고 있는 삶이 영화라면 당신은 영화속 조연도 아닌 엑스트라인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런 현실부터 깨달아야 고칠 것은 고쳐나가면서 주인공이 되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들의 인생 모든 시간을 주인공으로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부분적으로 퇴근 후에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꼭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루하루 자신들의 삶을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삶을 살아가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도 좋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 시간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라. 하고 싶은 것을 배우는 것이 가장 좋다. 허나, 앞에서 말했듯이 학교에서는 선생님들도 그런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어서 당신들에게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그런 목표를 찾는 시간을 1년에 한두 번 정도 갖어라. 여행을 떠나되 계획적으로 놀러 가는 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무작정 떠난다는 쪽으로 여행을 떠나라.
앞의 내 경우를 말해서 안동 병산서원에 간다고 생각을 한다면 그냥 안동에 가라. 물어서 물어서 찾아가 봐라. 분명 위험이 있다. 그리고 그 위험을 극복하려고 하다 보면 성취감과 함께 인생이 참 별게 아니라는 것을 느낄 거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도 그렇다고 느껴지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서서히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고 목표라는 것에 대해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렇게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인생은 절대 목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런 구태의연한 교과서 같은 내용이 정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도 한 10년 변변찮은 여행이라도 다니다 보니 이제야 느껴진다. 물론 당시 순간순간 느끼는 것은 늘 있었다. 허나 몸에 베이는 그런 깨달음은 역시 10년이 걸린다. 모든 일은 10년이 지나야 깨닫게 된다는 것이 맞는 말인 거 같다.
그리고 하루하루는 그런 목표를 찾지 못했을때 건강(체력)에 유의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좋다. 운동을 하고, 좋은 음식을 찾아서 먹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 물론 직접 할 줄 알면 이성에게 강한 어필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하루 하루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다 보면, 그렇게 살다 보니 목표도 찾으면, 소소한 영화의 주인공에서 블록버스터 급 영화 주인공도 가능할지 모르지 않는가!?
어차피 영화 속 주인공도 한 시즌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주인공으로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느 정도 성장한 주인공은 다음 세대에 뭔가를 이루기 위한 또 다른 인물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한발 물러서서 주인공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대다수 주인공들의 삶이다.
다시 말해서 내 인생의 주인공 시점은 한 시즌이니(난 내 인생에서는 40대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루를 평생이라고 생각하고 퇴근 후 시간을 자신을 스스로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시간을 가져보기 바란다.
거대한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 보는 것도 좋지만 일단은 하루하루를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으로 만드는 습관부터 들이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게 모여서 능력이 쌓이면 블록버스터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거니까.
'46년 경험론 >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운다는 것은 능동태다. (0) | 2022.09.14 |
---|---|
좋은 미래는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 (0) | 2022.09.08 |
하이마트 취업이 꿈이라는 대학생 (0) | 2022.08.17 |
운명의 사각지대를 피하는 방법 (feat. 예의) (0) | 2022.08.17 |
간절하다고 이뤄지면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0) | 2022.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