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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망하는 이유 # 11ㅣ행복을 가로채는 학교

_교문 밖 사색가 2025. 4. 26. 16:08

대한민국이 망하는 이유 # 11ㅣ행복을 가로채는 학교

 

'남녀 칠 세 부동석'이라는 언어가 아무도 모르게 대한민국을 죽이는 범인 중 하나였다.

 
 
문과 학자들이 일을 안 하니 우리는 행복에 대한 정의는 명확한 것이 없지만 그래도 우리들 인생에서는 크게 두 가지 보편 행복이 있다.
하나는 사회적 안정이다. 기왕이면 높은 연봉과 함께 명성까지 있으면 좋겠지만 요즘은 딱히 명성도 필요가 없어서 연봉만 높고 비교적 쉬운 일을 하는 것을 추구하는 듯하다. 그 돈으로 명품을 자랑하는 것이 명성으로 대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직장에서는 그런 인생을 살기 어렵다 보니 요즘은 대다수 크리에이터 일로 빠지는 경향이 있다.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냥 찾아오는 듯 살고 이것을 위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는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일이다. 착하고 현명하며 외모 출중한 배우자를 만나 그들의 자녀들이 성숙한 자아를 지닌 사회인으로 키워 그들과의 기쁨 속에서 죽을 때까지 사는 것이 행복의 또 다른 방향 중 하나인 것이다.
 
여기에 이의를 가진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학교라는 곳은 전자에 최적화되어 있다. 오직 서울대를 목표로, 하고 싶은 것이 뭔지 학생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몰아붙인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저항 없이 따른다. 그래서 우리는 68 (교육) 혁명 같은 것이 생길 리 없다. 그 근거로 부모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자신들이 배운 삶의 방식이 딱 그거니 그거밖에 몰라서 그게 정답이라고 착각하고 학교와 협심하여 자녀들을 몰아붙인다. 이것도 모자라니 사교육 시장을 1조 원으로 만들었다. 조부모도 마찬가지다. 전쟁으로 인해서 배움만이 살길이었던 시대에 살아서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세대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는데 그들은 이제 늙어서 이런 시대를 읽을 수 없다. 그냥 사는 대로 사는 거다. 그래서 손주들에게 공부만이 살길이라고 가르친다.
 
이렇게 전 세대를 걸쳐서 학교와 협동으로 학생들을 서울대로 몰아붙이니 우리나라 행복추구권은 전자에 집중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학생들이 뭘 원하는지도 파악해서 서울대로 보내려고 한다면 그나마 나으련만 우리나라는 절대 그럴 리 없다. 오직 의대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게 맞는듯하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명성이 사라진 사회에서 괜히 하고 싶은 거 추구하다가 돈도 잘못 버는 서울대 출신은 주위에서 괜히 불쌍히 보는 경향도 있기 때문이다. '그 머리로 그냥 의대가지 왜 그러셨어요..' 하는 소리나 들으면서 말이다. 여차하면 진주 경상대 의대보다 더 불쌍한 취급받는다.
 
그리고 막상 하고 싶은 것을 선택했는데 생각보다 한계에 부딪히는 일이 많다. 과거 지식을 배우는 정도까지는 재밌어했는데 그 이상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까지 가면 다 포기하고 싶은 상황이 온다. 그렇게 따지면 의대만 한 곳이 없다. 배운 것만 가지고 돈 버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예술, 물리학, 인문학은 지금까지 나온 것을 다 배우고 새로운 것, 세상에 없던 것을 찾고 추구하고 만들어야 하는 학문이기에 여기까지 오면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이게 아니라는 생각을 절로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에 명성까지 필요 없는 세상이 되다 보니 지금 시대의 대한민국은 의대가 답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고 싶은 거 찾아서 하던 시대도 명성이 사라짐에 종식되어가고 있어 보인다.


서구권의 연애는 비교적 중학교 때는 다들 하는 모양이다. 운전면허도 대체로 16세면 취득이 가능하다. 섹스도 평균 14세 정도면 다들 경험을 한다고 한다. 늦어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어지간한 사람들이라면 하는 듯하다. 그래서 영국이나 미국의 청소년 드라마를 보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섹스를 경험하지 못하고 졸업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을 종종 본다. 심지어 여학생들이 그런 고민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온다.
 
덴마크에 시집을 간 한국 여성은 아들이 엄마에게 여자친구와 섹스를 어디서 해야 할지 물었다고 한다. 적잖게 놀란 그 여성은 대충 무마하고 남편에게 이 얘기를 하니 집에서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 여성은 문화충격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청소년 시기에 섹스는 다들 집에서 하는 것이 그들의 문화고 어차피 청소년 때 다하는 거 가장 안전한 집 최선이라는 결론에서 나온 문화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어릴 때부터 콘돔 사용하는 교육을 하고 국영방송에서는 유치원 프로그램에서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를 의인화해서 성교육을 시행한다.
 
서구권이 우리가 죄악시 여기는 이성에 대한 활동과 교육을 적극적으로 하거나 혹은 말리지 않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하는 모든 행위는 우리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사람에게 먹을 권리를 박탈하고 수액으로 삶을 연명하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는 식탁 예절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 교육이다. 그러니 우리의 행복추구권의 한 방향인 이성을 만나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서 아들 딸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일련의 과정을 함께 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논리다. 그리고 그건 어릴 때부터 하는 것이 정상이다. 
 
심지어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를 통해 행복을 확보할 수 있는 확률은 10% 정도가 전부다. 그 이하면 이하가 되는 세상이지 그 이상은 되지 못한다. 1%가 서울대 입학을 하는데 10%면 정말 많이 쳐준 거다. 
 
그럼 나머지 90%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거의 평균 25년 동안 공부로 인한 행복추구권만 강요받다가 학교를 졸업하니 나머지들에게는 행복은 알아서 챙겨야 한다고 피투 당한다. 되려 이것이 비정상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의문은 마치 사치인 양 우리는 그냥 학교 행정 절차를 모두 정상으로 받아들인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인 거다.
 

*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의 첫장면은 1층에 부모님이 계신집에서 2층에서 자녀가 섹스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첫 번째, 세 번째 줄 왼쪽 인물들). 집에 계신 아버지의 직업은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다. 2번 째줄 왼쪽 여자는 고등학교 졸업전에 섹스를 경험하지 못하고 졸업할까봐 걱정을 한다. 여기 인물들은 그렇게 고교 시절을 보내면서 자신이 게이인줄 자각하고 고환에 문제가 있는지도 파악하며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아간다. 그렇게 찾은 정체성으로 사회로 진출을 준비하는 것이다.

결혼 후 당신의 성생활이 만족스럽다면 그건 부끄러운 일인가? 아닐 거다. 행복의 요소 중 하나라고 크게 공감을 할 거다. 그런데 그게 하루아침에 당신을 만나서 저절로 된 것일까? 아닐 거다. 여러 사람들과의 연애를 통해서 축척된 경험치에서 나오는 기술일 거다. 거기에 일상을 매너 좋게 당신을 대한다. 그것도 여러 사람들과의 연애를 통해서 축척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에 세련되게 말하는 법, 섬세하게 마음을 챙기는 법 모든 것이 전부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축척되는 것이다. 교과서만 보고 서울대 들어간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경험을 20살까지 적극적으로 금지당하는 것을 넘어 죄악시한다. 전 국민이 학생들에게 우리 자녀들에게 부모도 합심해서 조부모도 협력해서 행복추구권을 박탈했다. 자신들도 그렇게 살았다면서 말이다. 대신 학교에서 10% 안에 들어가면 사회적 행복추구권을 획득할 수 있다면서 강요한다. 전 국민이 그렇게 살고 있고 대충 과거부터 그래온 대한민국 삶의 방식이니 그래서 학생들은 저항 없이 그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글로벌 네트워크화되어있고 교육을 그렇게 강도 높게 받는데 우리는 이성으로 또 다른 행복추구권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다. 인터넷은 불안만 확산될 뿐 희망은 확산되지 않는다. 철학, 문학마저도 지식화해 암기하는 민족의 현실태가 지금의 대한민국인 것이다.
 
과거 일부의 학생들은 여기에 저항을 하고 학생 때부터 섹스를 하며 공부를 멀리했다. 그들 중 일부는 가정행복권을 쟁취했다. 우리는 그들을 '노는 년'이라고 불렀고 그들에게는 '노는 년이 더 잘 산다',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아무도 이것이 지금의 삶의 방식에 저항해서 얻는 행복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얘기했지만 노는 년들은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학생들이 알지 못하는 사회언어, 남자언어를 공부해서 스스로 행복을 쟁취한 부류들이다. 부정적으로 봐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나머지 90%들이 배워야 할 대상들이었던 거다. 
 
만약 그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벌을 받아야 한다면, 자녀들의 정상적인 섹스를 위해서 집을 일부러 비워주는 서구권의 부모들이 있는 사회는 왜 우리보다 강력한 국가를 이루고 살고 있는 것인가? 소위 노는 년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그렇게 부르는 것이지 서구권은 그냥 그냥 일상인데 말이다.
 
인터넷으로는 서구권의 인종차별, 폭력 같은 불안요소들만 우리에게 확산이 되고 나머지 90%가 배워야 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인 연애문화는 퍼지지 않는다. 되려 지금 우리 사회는 더 폐쇄적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봐진다.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확률이 10%인 나라가 과연 지탱가능할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심지어 이들의 가정이 행복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이들도 연애문화를 거세당한 건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행복이 한 방향인 나라가 지속가능할까? 이것도 또한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정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비정상을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회가 붕괴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대한민국 사회가 붕괴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초입에 들어섰고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니 되돌아갈 임계점도 지났다. 아니 애초에 우리는 돌아갈 무엇도 없는 세상 속에 살고 있었을 거다. 그러니 연애문화도 수입을 했어야 했는데 다들 모른척하며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수입할 시기를 놓쳤다. 지금 시대는 불안이 우리나라를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을 하려면 여유가 있었던 90년대 개인의 언어가 발달하던 때에 했어야 했다.


지인이 영국에서 유학 중 졸업 논문을 제출하고 졸업식까지 시간이 남아서 트래킹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같은 과 이탈리아 (여자) 친구는 같이 가자고 했다. 그 여자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말만 하면 된다고 했다. 왜냐면 그 남자 친구도 기회가 있으면 다른 여자들과 그런 여행을 하기 때문이다. 트래킹을 함께 함에 있어서 분위기만 따르면 당연히 섹스가 동반된다. 하지만 이들은 그걸 따지지 않는다. 아무리 연애 중이라고 해도 더 잘 맞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니 다른 이성을 만날 수도 있는 것이 그들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스스로 만들고 쟁취하는 것이다. 그걸 막을 이유가 사귀는 사이에서는 없다. 
 
물론 환승을 한다고 해서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술도 마시면서 욕도 하고 그러겠지 하지만 상대방이 다른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말리지는 않는다는 것이 그들 연애문화의 핵심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 혼자 여행을 떠나더라도 이성을 만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말릴 수 있는 특권이 있다고 생각하고 강력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문화를 가진 나라다. 운동을 배우더라도 트레이너가 이성인지 아닌지도 중요하다. 본인이 상대방의 행복을 책임져줄 것도 아닌데 막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마도 거의 대부분 섹스와 환승 때문이다. 
 
연애가 인간의 보편 행복추구권의 큰 방향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살다가 먼저 찜한 사람이 그 사람이랑 쭉 가는 거라고 착각해서 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닌, 때가 되면 놀러나 가서 섹스하고, 밥 먹고 섹스하고, 영화 보고 섹스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이랑 섹스하면 연애하는 거나 다름이 없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어 섹스가 삶의 일부가 아니라 인생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게 된 결과가 지금 대한민국의 연애 문화다.
 
이 부작용으로 능력 되는 사람들은 돈으로 섹스를 사면 그 사람이랑 연애를 했다는 착각에 행복해한다. 이성적으로 아닌 줄 알아도 감성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행복해한다. 서울대 의대 나와서 돈도 벌고 그 돈으로 예쁜 여자들과 섹스도 하고 그렇게 서울대 생들은 행복을 둘 다 가진 존재로 살아가는 거다. 들키면 가정이 붕괴될 수 있어도 그들은 자신들에게 없는 또 다른 행복을 추구한다. 돈으로 구입하는 행복은 쉽기 때문이다. 명성이 명품으로 대체되니 이런 기형적 행복도 생겨났다.  
 

결국 우리는 행복의 내용은 외면한 채 형식만 추구하고 살아가는 사회로 발전시키고 있다.

 
 
만약 당신의 동창이 서울대 의대를 나왔다고 하자, 부러워할 거다. 그 이유는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와이프는 미인이다, 부러워할 거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20살 어린 애인은 따로 있다고 들으면, 더 부러워할 거다. 우리나라 학교가 학생들에게 강요한 교육 방식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이런 기형적 행복 속으로 몰린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이 바른 방향이 맞는지 의심해야 할 결과치라고 본다.
 
학창 시절 연애 능력을 거세당하고 연애 혹은 이성쪽으로는 섹스만 전부라고 생각하고 무지성으로 학교를 다니다가 졸업을 하니 연애를 하라고 하는데 연애도 성공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버려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서 삶을 살아가는 행복추구권을 박탈당하는 줄도 모르고 세상의 10%들을 위해서 20년을 넘게 바치는 90%들은 어쩌다 10%들이 놓치거나 흘리거나 깜빡한 행복을 주워서 살아가는 안타까운 존재들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25년의 인생을 순삭 당해버린 것이다.
 
물론 공부 못해도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 서울대나 의대 나와서 기형적 행복을 추구하다가 들켜서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이런 상황 다 고려하면 결국 10% 이하의 사람들만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사는 건 변함이 없을 거다. 한 번 주위를 둘러보면 알 거다. 내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행복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솔직히 내가 제일 행복한 거 같다. 다들 그냥 참고 살고 그러니 말썽이 없다 보니 멀리서 보면 잘 사네.. 하는 덜 불행한 정도가 전부다. 그렇다 다들 타인들의 무관심 속에서 잘 사네.. 정도의 삶이 전부다.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학교에서 거세를 당하고 사는 인생이 이런 거다.
 
그나마 이런 삶도 이제는 그 %가 점점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 이혼율이 30%대에서 50%로 늘어난 것이다. 이런 참고 사는 삶도 90대 종식이 되고 2000년대 들어서는 왜 참고 사냐는 식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참고 산다는 것도 불행의 일종이라는 증거다. 끝까지 참고 살다가 마지막에 장례식이라도 치러줄 거라고 생각하고 살면 한 번 참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근데 내가 본 어른들을 보니 이혼할 수 있을 때 했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생겨난 문화가 바로 '졸혼'인 거다. 이혼의 때를 놓친 어른들의 문화다. 사실 오픈 메리지와 다를 게 없는 형식인데 나이가 지긋하게 들었다 보니 뭔가 애해 한 느낌이 있긴 하다. 서로 만날 사람이 없어질 때쯤 서로의 간섭에서 벗어나자는 식의 의미로 보는 것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기에 사람들은 큰 거부감을 드러지 않고 있는 정도다.


다시 말하지만 아직 행복에 대한 무언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래도 사회적 안정과 행복한 결혼이라는 이 두 가지 방향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이 없을 거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학교는 확실히 행복한 결혼을 적극적으로 사형시키고 있다. 어차피 서울대에 (근처라도) 가지 못할 사람들에게는 서구처럼 부모의 적극적 개입이 가능한 연애를 허용함으로써 사람을 알아가고 이성에 대한 매너를 익혀가며 세심한 배려심에 대한 생각도 하게 해서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할 기회를 줘야 하는데 지금의 교육은 그 기회를 완전히 박탈하고 있다. 물론 교육이 그럴 기회를 준다고 해도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한국의 가정에서는 연애를 교육하기는 불가능할 거다. 어떻게든 다시 학교로 집어넣으려고 안달일게 뻔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전 국민이 학교와 연합해서 학력 행복추구권만 추구하기 때문이다.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도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설사 안다고 해도 그 방법을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10대 때 거세를 당했으니 알아도 스스로 배워서 익혀 나가야 하는 방법은커녕 배워야 한다는 생각 자체도 모르니 연애는 사랑은 결혼은 자식은 그냥 되는 거라고 생각을 고착화시켜 버렸다.
 
지금의 어른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결혼을 해도 행복하기는커녕 불행만 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녀들도 그렇게 사지로 몰아붙이고 있다. 다 돈 때문이라고 하면서 돈 많이 벌려면 학력이 높아야 한다고 하며 말이다. 아마 돈이 많아도 불행하긴 마찬가지 일 텐데 말이다. 돈이 많으면 좀 더 편리할 뿐이고 그 편리함으로 잠시 위로를 받기에 좀 덜 불행하게 느껴지게 할 뿐 행복하게는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무튼 우리는 그냥 이런 불행의 사슬을 끊을 수 없고 끊으려고도 하지 않을 거다. 불행의 원인을 행복의 근원으로 생각하는데 어찌 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대한민국에서 삶을 이어가려면 이 불행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제 와서 나만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고 해서 행복할 수 있겠는가? 기본적으로 행복은 주변 사람들이 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나만 행복한 방법을 안다는 것도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아이러니를 지닌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아는 게 힘이라는 것을 아는 90년 대때 행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린 죄로 2020년 이후로는 모르는 게 약인 시대로 도래한 것이다.
 
결국 서울대 의대 나와서 기형적 행복을 들키지 않고 추구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자만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고 이 행복이 대한민국에서 얻는 최고점의 행복이라는 것은 미숙한 사회라는 뜻이다. 이런 대한민국의 미숙한 사회가 행복하게 유지되는 것은 명백히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