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쌓기/나짱살이 2024

return to Busanㅣ08. August. 2024

_교문 밖 사색가 2024. 8. 9. 13:33

return to Busanㅣ08. August. 2024

ㅣ비행기 안

 

 

생각보다 불편한 비행이었다. 새벽 비행이어서 다를 잘 거라고 예상하고 좌석을 어느 정도 젖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고장 난 좌석이었다. 복도 좌석인 나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한 가족이 쪼르륵 앉았다. 내쪽 좌석은 부모가, 복도 넘어 좌석은 아이들이 앉았다. 비행 중간 내 옆에 앉은 아빠가 창가로 좌석을 바꿔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애초에 비행 시작하기 전에 부탁을 한 것도 아니고 비행 두 시간이 지나서나 나를 애써 깨워서 부탁을 하는 것이다. 나는 어차피 구석이 싫어서 창가 쪽으로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아들과 자리를 바꾸기 위해서 일어나 달라고 했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아빠는 아들을 달랬고 다 달래질 때까지 나는 서서 기다리다가 자리를 바꾸는 아들이 앉을 때 나도 앉을 수 있었다. 이걸 비행 두 시간이나 지나서 선잠이라도 자려고 하는 나를 애써 깨워 부탁을 하는 건 좀 무례한 행동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해서 그냥 좋은 마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아빠는 부산에 비행기 바퀴가 닿자 어젯밤(?)에 배려를 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이게 한 세트다.

우리는 마냥 법대로 규칙대로 살 수 없다. 이럴때도 있는 거다. 나트랑에 올 때 아들은 따로 잘 왔는데 이번에는 여행의 피로가 가중되어서 엄마를 찾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빠가 이걸 캐치하지 못해서 올 때처럼 자리를 앉았는데 아들이 엄마를 찾아서 실례를 무릅쓰고 그랬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거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마냥 내가 이걸 좋은 마음으로만 배려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 거다. 이것도 사실인 거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감사를 전달하는 언어가 있는 거다. 여기까지가 법의 영역대를 벗어난 무례함의 영역대를 예의의 영역대로 끌어들여서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세상으로 만드는 상식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나는 진에어 비행기 안에서 희망을 본 것이다. 아직까지는 대한민국이 그래도 살만하다는 희망말이다.

 

ㅣ공항

 

비행기 밖으로 나가니 나트랑에 막 도착한 습한 더위를 느꼈다. 못해도 15일까지는 있어야 했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갈 때 무비자 연장 신청을 하고 좀 더 있다고 올 걸..이라는 생각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습한 더위였다. 도착 시간은 아침 7시였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려고 청사를 밖으로 나가니 안내문이 보였다. 택시 바가지 요금을 예방하기 위한 가격표를 명시해 놓은 안내문이었다. 나는 김해공항에서는 국내선만 이용하다 보니 택시 안내문은 처음 본 것이었다. 이걸 본 택시 기사 한 분은 어디까지 가냐고 물었고 위치를 말하니 못 본척했다. 딱 봐도 가까운 곳이니 패스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택시는 줄을 서서 있으니 나는 제일 앞에 있는 택시를 타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못알아들을 말로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하길래 나도 귀찮으니 그냥 국내선까지 걸어가서 타고 만다고 생각하고 걸어가니 택시들이 일제히 움직이면서 정렬을 다시 하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들이 다를 케리어를 끌고 국내선으로 이동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택시 하나를 잡아서 탔다. 택시 기사분은 앞으로 택시를 탈때는 2층 도착 구역에서 타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여기는 대체로 기사들이 장거리만 잡아서 가려고 하는 분위기라고 하셨다. 아마도 국제선이기 때문일 거 같다. 자기는 본업이 가수여서 쉬는 날만 택시를 하기에 별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나이는 정정한 70대처럼 보였는데 가수라고 하시는 놀랐다. 대충 행사 가수라는 짐작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자신이 직접 가수 30명 정도 데리고 있으면서 사업자 신고를 하고 운영도 하신다고 하셨다. 

 

내일(금)도 행사가 있다고 하셨다. 기사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약간 비싸진 택시 요금을 확인하며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ㅣ아파트 단지 앞

 

택시에서 내려서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려고 하니 왠 할머니 한 분이 물을 뜨고 돌아가시는 길에 나를 꼴아봤다. 내 표현이 격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곱같게 보는 것이다. 내가 그래도 이 아파트에 산지 언 25년이 되어가는데 그런 표정으로 보는 어르신이 있다는 것은 지금 대한민국이 얼마나 문제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본다.

 

그래도 행여 내가 인사를 하면 불안이든 뭐든간에 나오는 그 표정이 풀릴까 봐 인사를 하니 여전히 그 표정이다. 순간 영국을 떠올린 내 잘못이다. 옆집이 이사를 온 이후부터 이사를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작년부터 내가 이 아파트에 머무는 확연히 줄어들었고 사실 5년 전부터 줄어들기 시작한 걸 보면 이제는 떠날 때도 되었다는 신호라고 봐지는 할머니의 표정이었다.

 

그 할머니의 표정을 굳이 표현하지만 서부영화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데 한 외부인이 말을 타고 오는 모습을 보고 경계하는 표정이었다. 근데 그 표정이 겁에 질렸다기 보다는 그래도 내가 사는 마을이니 똥개도 자기 집 마당에서는 50은 먹고 간다는 표정이었다.

 

이제 나는 여기에 살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신호를 보낸 할머니의 표정이었다. 일행이 어서 영어공부 좀 빨리해서 유학갈 생각 좀 하라고 하는데 공부를 안 하니 생겨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ㅣ집 안

 

샤워부터 했지만 욕실에 나오자 마자 땀은 그대로 흘렀다. 냉장고를 작동시키기 위해서 문을 열어보니 곰팡이가 가득했다. 생각해 보니 냉장고를 끄고 문을 열어놓지 않았던 거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소독약을 만들어서 냉장고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풍기를 틀고 해도 됐는데 왜 그냥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청소를 다 하니 너무 잠이 왔다. 배도 고팠다. 집에는 햇반과 3분 카레가 있어서 대충 그렇게 먹고 이때 선풍기를 틀어놓고 잠을 잤다.

 

내가 코를 고는지 알지만 그 소리를 듣고 내가 잘자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잘 잔 시간이었다.

 

집이 적응이 되지 않으면서 덥기도해서 뭐가 제대로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빨래를 했다. 사람이 뭘 할지 모를 때는 시간이든 공간이든 제한 구역을 두어야 한다. 그러면 그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우선순위가 정해진다. 하지만 적응 기간은 좀 더 걸릴 듯하다.

 

밤이 되니 열기는 좀 식었다. 생각보다 열대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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