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별짓기ㅣ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上
피에르 부르디외(1979년)ㅣ최종철ㅣ새물결
대중을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학자나 학자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서 추천하지 않는다.
프랑스 책들이 다들 그렇다고 하던데 내용을 애써 어렵게 표현한 점이 읽기에 불편함이 있다.
거기에 보충 설명을 너무 많이 하다보디 괄호안에 있는 내용은 그냥 넘어가고 쭉 읽어가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주석도 읽지 않았다. 그거 다 읽으면 내용의 흐름을 놓치기 때문에 더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下권은 한동안 읽을 생각이 없다. 다른 책으로 해장을 한 후 생각을 해보고 결정을 할 것이다.
page 24
'안목'은 역사의 산물로, 교육에 의해 재생산된다.
page 26
다시 말해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로부터 예술을 모방하는 예술로 이행하여, 오직 자체의 역사로부터만 독창적인 실험의 원천 그리고 시미어는 전통과의 단절의 원천을 끌어내려야 한다.
page 27
'대중적 미학'은 예술과 삶이 연속되어 있다는 확신 위에 기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page 29
순수 미학은 윤리적 요소에 뿌리를 두고 있다.
page 30
다양한 분류법에 의해 구분되는 사회적 주체는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탁월한 것과 천박한 것을 구별함으로써 스스로의 탁월함을 드러내며, 이 과정에서 각 주체가 객관적 분류의 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표현되고 드러난다.
page 36
취향은 진정한 귀족적 품격의 가장 확실한 기호이기 때문에 이 취향 자체 말고는 다른 무엇에 견주어서도 감히 언급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상류계급의 예의범절이건 전혀 상관이 없다.
page 37
유독 교육체계가 전혀 교육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학력자본과의 관계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역설을 드러내야 한다.
page 47
예를 들어 음악 취향만큼 한 사람의 '계급'을 분명하게 확정해주고, 이것만큼 틀림없이 한 사람을 '분류해'줄 수 있는 것도 없다.
page 57
귀족들은 본질주의자들이다. 존재를 본질의 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은 관청의 공공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상벌이나 각종 서류에 기록되어 있는 공훈이나 비행에 내적인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직 어떤 행동이 비록 형태는 조금씩 다르더라도 각 행위가 수행될 수 있도록 해주는 어떤 본질을 영구화하고 널리 알려주는 특별한 영감에 따른 결과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에만 그 행동을 상찬한다. 이들이 그러한 본질이 요구하는 바 그래로 - 고귀함에는 의무가 따른다라는 원리대로 - 스스로에게 부과하고, 그밖의 다른 누구도 요구할 수 없는 바를 스스로에게 요구하고 자신의 본질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도록' 강제하는 것 또한 바로 이러한 본질주의라고 할 수 있다.
page 60
학력이나 등급 구분에 의한 공식적 차이는 분류되는 각 개인들에게 누구나 그러한 차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믿음을 불어넣음으로써 실제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또는 재강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이를 통해 실제적인 존재를 공인된 존재와 일치시키려는 행동을 취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일기를 쓰거나, 진한 화장을 하는 일, 극장에 가는 일, 또는 댄스홀에 가는 일, 시를 쓰거나 럭비를 하는 일 제도의 명확한 요구사항과는 전혀 무관한 행동들도 다양한 매개를 통해 끊임없이 강조되는 암묵적인 요구로서 교육기관 안에 할당된 위치 안에 각인될 수 있다. 이런한 매개체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교과의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기대와 동료집단의 압력을 꼽을 수 있는데, 다시 이들의 윤리적 성향 자체는 교육기관에 의해 도입되고 재강화되는 집단적 가치에 의해 규정된다. 이러한 할당효과와 이 안에 담겨있는 신분배분 효과는 분명 학교안에서는 가르치지도 않고 심지어는 명확하게 요구하지도 않지만, 신분이 가리키는 위치에 부여되어 있는 속성과 그러한 위치가 부여해주는 각종 자격증이나 또는 이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사회적 위치 등으로 구성된 문화적 실천을 성공적으로 강제하는 데서 이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page 72
'인간적인 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분명히 만인에게 적합한 것 즉 평범하고 '쉽게' 즉가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먼저 미적 동물인 인간을 순수하고 단순한 동물성으로, 감성적 쾌락이나 관능적 욕망으로 환원해버리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대상, 특히 오감과 감수성에 가장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대상들의 재현을 '아름답다'고 말하도록 이끌어주는 재현의 내용에 대한 관심은 얼마든지 재현에 대한 판단을 재현 대상의 본성으로 종속시키기를 거부하는 무관심과 거리감을 택하기 위해 거부될 수 있다. 또한 소박하 시선을 묘사하지 않으면서 순수한 시선을 묘사하는 것이 결코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두 시선은 상대방과 비교해 스스로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대립적인 시선을 중립적으로, 즉 불편부당하고 '순수하게' 묘사할 수 이는 방법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대중 미학은 학문적 미학에 대한 거부인가 아니면 단순한 학문적 미학의 결여일 뿐인가? 아무튼 객관적으로 보면 미적 동기를 찾을 수 없는 보통 사람들의 체험방식에 체계적 미학의 일관성을 부여하려는 유혹은, 아무리 무의식적이라도 모든 '고급' 미학의 토대가 되는 보통의 시선을 한결같이 부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유혹만큼이나 위험하기 짝이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미학적 상대주의에 동의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왜냐하면 '대중 미학'은 '고급' 미학과의 관련 속에서 규정되고, 정통적인 예술에 대한 참조와 '대중적' 취향에 대한 부정적 판단은 단 한번도 미에 관한 대중들의 경험에 영향을 미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page 100
"이제까지 사람들이 말해온 대로 '예술을 위한 예술'은 자체 안에 정통성을 갖고 있지 못하고 아무 것에도 근거를 두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것은 마음의 방탕함이요 정신의 타락이다. 의무와 권리로부터 분리되고, 영혼의 지고한 사유이자 인간성의 최고도의 표현으로 고양되고 추구되는 예술과 이상은 그 자체의 대부분을 빼앗기기 때문에 결국 환상과 감각의 자극으로 축소되고, 따라서 죄의 원천이나 모든 예속의 기원, 성경에 따르면 지상의 모든 간음과 시기의 물결이 흘러나오는 독의 샘이 된다 · · · 예술을 위한 예술은 결국 시를 위한 시, 스타일을 위한 스타일, 형식을 위한 형식, 공상을 위한 공상과 같은 모든 질병, 즉 우리 시대를 역병처럼 좀먹고 있는 모든 질병처럼 아무리 세련되어 있어도 악덕이며, 악의 정수이다."
page 102
"나는 내 자신의 집에, 즉 내 자신이 디자인한 자그마한 집에서 살기 위해, 1/4에이커 정도 되는 자그마한 땅뙈기의 한 가운데 있는 집에서 물과 그늘과 잔디와 침묵을 즐기며 혼자 살기 위해 기꺼이 루브르 미술관, 뛸러리 궁전, 노트르담 - 그리고 방돔의 열주까지 덤으로 끼워 - 을 포기해버릴 생각이다. 그리고 집 안에 조각을 하나 들여놓을 생각이 들더라도 주피터나 아폴로 - 이처럼 멀쑥한 사람들은 이런 장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 또는 런던이나 로마, 콘스타니토플 또는 베니스의 풍경을 걸어놓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한 장소에는 전혀 살고 싶지가 않다! 나는 그곳에다 내게는 없는 것 즉 산, 포도밭, 목초지, 산양, 소, 양, 추수하는 사람들과 양치를 두고 싶다.
page 110
플라톤이 요구한 대로 즐거운 진지함, 즉 '진지함의 정신'이 없는 진지함, 항상 진지할 것을 전제로 하는 유희를 통해 진지함을 즐기려는 문화 게임을 진행해나가려면 반드시 예술가들처럼 존재 전체를 일정의 어린아이들의 게임처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오랫동안, 때로는 평생동안 세계에 대해 어린아이와 똑같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모든 어린아이는 부르조아로서 삶을 시작하며, 타인에 대해 마술적 관계를 맺으며, 타인을 통해 세계에 대해 마술적 관계를 맺지만 조만간 그러한 세계로부터 벗어나온다).
page 113
이처럼 필요를 통제함으로써 얻게 되는 힘의 적극적인 위력은, 항상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치품이나 과시적인 소비에 드는 암시 지출비를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기 때문에 일상적인 이해관심이나 절박한 요구에 지배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정통성의 측면에서 우월성을 요구한다. 이러한 자유 취향은 미적인 영역과 관계되어서는 속물적인 것이라고 규정된다. 귀족적 성격에 대한 이러한 요구를 비로소 가능하도록 햊는 조건, 즉 경제적 필요로부터 거의 완벽하게 자유로워져 있기 때문에 극히 희귀해진 물질적 존재조건에 대해 '순수하고', '무사무욕적인' 취향이 맺고 있는 관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그냥 넘어갈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극히 정교한 '등급분류'를 통해 행사되는 특권이 가장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기도 한다.
page 114
왜냐하면 취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모든 것, 즉 인간과 사물 그리고 인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분하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구분된다.
page 114
취향(즉 겉으로 표현된 선호도)은 피할 수 없는 차이의 실제적인 확증이다. 따라서 취향이 정당화될 때 순전히 부정적으로, 즉 다른 취향들에 대한 거부의 형태로 확인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아마 취향의 문제만큼 모든 규정이 부정일 수밖에 없는 다른 영역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취향은 무엇보다도 먼저 혐오감, 다른 사람의 취향에 대한 공포감 또는 본능적인 짜증에 의해 촉발되는 불쾌감이다. "취미에 대해서는 논쟁하지 마라"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은 "모든 취미가 자연(본성)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각 취향이 스스로를 자연스럽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말 거의 그렇기 때문에 취향은 아비투스가 된다. 그리하여 다른 취향을 비자연적이며 따라서 타락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거부하게 된다. 미적 불관용은 가공할 만한 폭력성을 갖고 있다. 다른 생활양식에 대한 혐오감은 각 계급을 갈라놓고 있는 가장 강력한 장벽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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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둘러싼 투쟁에서는 항상 특정한 생활양식에 대한 강요가 핵심적인 요구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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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생활양식은 언제나 부르주아적 생활양식에는 도전으로 비칠 수 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이들은 부르주아적 생활양식이 추구하는 가치나 권력들이 전혀 공허함을 실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생활양식이 전혀 현실적이지 않고 터무니없다고 비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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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합리적 예술교육은, 직접적 체험을 대신하고 작품에 친숙해지기 위해 오랜 시간을 버리는 대신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지름길을 제공해주며, 소위 취향의 자발성이 아니라 개념과 규칙의 산물인 실천을 가능하게 해주며, 이를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보충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나람의 해결책을 마련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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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식연구가를 일반적으로 교육학자와 똑같이 바라보아야 한다. 물론 그들은 아니꼽고 역겨운 얼굴로 아는 체하지만, 그 나름대로 쓰임새가 있다. 그들은 하위의 얌전한 종족이지만 절도와 우아함, 미려함을 통해 이 하급 장르를 개선할 책임은 그들에게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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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가라면 예술적 취향이나 박심을 뽑내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해야 한다."
메레, 「매력에 관해」
page 141
특히 듣는 사람이 자신의 가치에 만족해하는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든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며, 그가 모르는 사실을 굳이 지적할 필요도 없다.
메레, 「대화에 관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을 읽고 내용을 흡수해서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이는 행위다. 허나 요즘 사람들은 그냥 책만 읽는다. 활자만 눈으로 훑는다는 뜻이다. 책을 읽는 행위가 교양 있는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렇게 읽으면 책을 읽는 의미는 없다.
난 책을 읽어도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 문장만이라도 기억해서 그걸 내 삶으로 끌어들여 적용시키면서 살기로 결심했다. 생각보다 성공적이다. 그래서 내 삶의 방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이렇게 내가 읽는 책의 중요한 부분을 올려본다.
page 143
이전 세대들에 육화되어 있는 문화자본은 일종의 (처음부터 갖추고 있는 이점인 동시에 일종의 신용으로 기능하는) 선불=유리함으로 기능하며, 또 처음부터 익숙한 가족이라는 모델 안에 구현되어 있는 문화의 전범을 제공해준다. 그 덕택에 이 집 안에 태어난 신참들은 처음부터 극히 무의식적이고 쉽게 파악하기 힘든 형태로 정통적인 문화의 기본 요소들을 몸에 익히기 시작한다. 정통적인 행동방식이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은 희귀한 획득조건, 즉 암묵적으로 최고의 탁월함으로 공인되고 있는 시간에 대한 사회적 권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과거의 물건들 즉 축적되고 결정화된 역사, 귀족의 칭호와 작위, 성(城) 또는 '국보로 지정될 만한 가옥', 그림들, 수집품들, 수백 년 된 포도주, 고가구를 소유한다는 것은 곧 오직 시간의 흐름 속에서만, 시간을 통해, 시간을 거슬러, 즉 상속에 의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는 이 모든 물건을 통해, 그리고 오래된 물건을 선호하는 취향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함께 획득할 수 있으며 여유를 갖고 천천히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습득할 수 있는 성향들을 통해 시간을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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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란 이해관심에 따라다니는 환상이지만 그 나름대로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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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혼의 상태와 결부되어 있지만 이것은 동시에 신체의 상태 또는 이전의 용어대로 하면 체액의 상태와도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을 매료시키고, 열광시키며, 감동시키게 된다.
page 192
'취향'이란 말의 이중적 의미는 통상 취향은 자연스럽게 타고 난다는 환상을 정당화하는 데 봉사하는데, 실제로 문화를 통해 형성됨에도 불구하고 마치 타고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런 환상이 나타나게 된다.
page 198
따라서 일련의 공식적인 기준들은 실제로 은폐된 기준들을 위한 가면 역할을 하게 된다. 예를들어 특정한 학위를 요구하는 것은 특정한 출신계급을 요구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page 247
이처럼 학력자격과 그것을 부여하는 학교제도는 계급간 경쟁의 핵심적 쟁점 중 하나가 되고, 이러한 경쟁은 교육수요의 전반적이고 계속적인 증대와 학력자격의 인플레이션을 야기하게 된다.
page 289
그 자리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제일 높은 위치인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제일 낮은 위치이며,
page 305
요컨대, 경쟁이 영속하는 것은 상이한 존재상태가 아니라 존재상태들간의 차이 때문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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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격차의 존재가 증명하듯 필연적으로 패자로서 이런 종유의 경주에 참여하게 되는 사람들은 단순히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선행자들의 목표의 정당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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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은 객관적으로 분류된 실천을 변형시킨다.
page 318
즉 계급위치의 상징적 표현으로서 스스로의 의미를 드러낸다. 따라서 취향은 특수한 생활조건의 체계적 표현으로 파악될 수밖에 없는 구별적 특징으로 구성되는 체계의 근원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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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부모의 아들에게 할당되는 지위에 따라 이들이 사회세계에 대해 갖게 되는 성향은 통상 사회세계를 비관적으로 표상하도록 이끄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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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마시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과 더불어 마시기 위한 장소로, 이방인들과의 교류에서 행해지는 검열과 관습, 예절의 유예에 기초하여 친숙한 관계를 확립할 수 있는 장소이다.
page 334
카페에서는 전형적으로 민중적인 농담방법이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구사된다. 여기서는 퉁상 뚱뚱한 사람이 희생자로 지정되는데, 왜냐하면, 민중적 약호에 따르면 뚱뚱한 몸매는 결점이 아니라 독특한 개성이며, (누구나 의당 그런 사람이며 반드시 그렇다고 생각하는) 선한 본성을 가진 그 사람이 농담을 좋게 받아들여 별허물없이 생각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담은 한 마디로 말해, 상대방의 화를 돋우지 않고 웃기는 방법, 지나침으로 인해 오히려 중화되는 관레적 욕설 도는 조롱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지 친숙해야 이런저런 농담을 하면서 개인의 신상에 관한 여러 정보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러한 농담이나 조롱은 관심과 애정의 징표이며, 겉으로 보기에 헐뜯고 비난하는 듯 하나 실은 칭찬하고 한층 친밀한 관계를 맺는 방식의 일종이다 - 물론 이들 조롱과 욕설은 집단과 거리를 두려는 사람들을 시험하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
page 387
소수만이 스포츠를 할 수 있었던 시기에는 페어 플레이, 즉 자신을 차분히 억제함으로써 무심결에 자신이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을 정도로 게임에 몰두하지 않고 단지 '게임일 뿐인' 시합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놀이의 약호에 대한 숭배가 스포츠의 구별적 기능의 논리적 발전이었듯이, 스포츠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해당 스포츠의 희소성을 주장할 수 없게 되어버린 오늘날, 자신의 우수성을 증명하고 싶은 사람들은 여러 스포츠가 점점 대중화되면서 외견상 양과 같은 순응주의나 맹목적인 추종정신만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가치가 하락된 스포츠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무사무욕성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평범한 오락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면 특권적인 사람들은 다시 한번 통속적인 사람들의 무리를 혐오하고, 항상 다른 장소에서 더 높이, 더 말리 나아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경험과 순결한 공간의 배타성과 우월성을 구하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감각이 해당 실천의 분포상의 가치와 함께 실천이나 담론의 영역에서 실천이 미학화될 수 있는 정도를 결정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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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특정한 스포츠가 요구하는 신체의 움직임이 어떠한 경우에도 '품위 있는' 인격을 손상시키지 않을 때 그 스포츠는 부르주아적 경향을 갖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예를 들어 포워드 중심의 럭비에서 볼 수 있는 거칠고 격렬한 전투나 육상경기처럼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경쟁 속으로 신체를 던지길 거부한다. 그리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위, 위엄, 또는 품위를 논란의 여지없는 형태로 부과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신체를 하나의 목적으로 취급하고, 신체를 기호로, 자신의 편안함을 드러내줄 수 있는 기호로 만들려고 한다. 따라서 스타일이 가장 우선시되며, 신체를 유지하는 가장 전형적인 부르주아적인 방식은 특정한 공간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통해 어떤 사람이 사회공간에서 점유하는 장소의 크기, 동작과 보폭의 풍부함에 의해, 특히 절도 있고 안정되었으며 절제된 템포에 의해 식별된다. 이러한 템포는 대중의 성급한 말투나 쁘띠 부르주아지의 조급함과는 대립적인 것으로서, 이는 부르주아적 언어의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이는 자신의 시간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시간까지도 여유있게 사용할 권리가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page 437
취향은 중매자다. 색깔과 사람뿐만 아니라 '천생연분'인 사람들을 맺어준다.
page 459
플로베르는 이른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나는 저급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부르주아지라고 부른다."
page 460
오직 현학자나 문법학자들이나 누릴 수 있는 자유, 즉 법칙의 바깥에 서 있어도 좋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화자는 자신을 더 고급스런 규칙의 제조자, 다시 말해 취향의 창조자, 우아미의 판정지로 자임할 수 있다.
page 462
완전한 규정에 도달하려는 편안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덕처럼 일정한 외적인 전제조건을 요구한다(또는 역으로 강요된 행동은 물직적 강제가 있어야 비로서 가능해진다)고 주장하면서 배제했던 내용, 즉 탁월하려면 단지 존재하기만 하면 되는 사람들이 단순한 존재 자체를 통해 행사하게 되는 부과효과를 재도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완벽한 일치야말로 편안함에 대한 규정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역으로 이것은 '존재'와 '당위'의 일치, 그리고 이것이 갖고 있는 자기 긍정적인 힘을 입증해준다.
page 462
어떤 형태로 보나 사회적-경제적 필요의 노예일 뿐인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는 무소유자들은 소유욕에 사로잡혀 있다는 의심을 받게 되며, 따라서 잠재적으로는 막상 소유하고 있지 않은 또는 아직 소유하고 있지 않은 소유물에 의해 소유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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