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ㅣ1859년
존 스튜어트 밀ㅣ박문재 옮김ㅣ현대지성
이 책을 읽고 우리나라에는 철학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철학이 국민 개개인에게 스며들어 교육화 되고 고로 사회의 척도가 되며 더 나아가 국가의 큰 기둥이 되어 국민들의 삶을 여유를 만든다는 것을 깨닫는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을 읽고 내용을 흡수해서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이는 행위다. 허나 요즘 사람들은 그냥 책만 읽는다. 활자만 눈으로 훑는다는 뜻이다. 책을 읽는 행위가 교양 있는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렇게 읽으면 책을 읽는 의미는 없다.
난 책을 읽어도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 문장만이라도 기억해서 그걸 내 삶으로 끌어들여 적용시키면서 살기로 결심했다. 생각보다 성공적이다. 그래서 내 삶의 방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이렇게 내가 읽는 책의 중요한 부분을 올려본다.
Page 17 : 혼인한 당사자들 간의 평등은 인류의 일상 생활을 도덕을 계발해 나가는 학교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고, 인류는 오직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고 대등한 관계로 살아가는 사회에서만 진정한 도덕적인 정서를 배울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이 대등하게 함께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진정한 미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실에서 가족은 독재를 배우는 학교이고, 독재의 악덕을 길러내는 곳이다. 밀은 평등만이 미덕들과 능력들을 계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에, 여성도 남성과 동일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Page 19 : (3) 사회적 행위가 아닌 모든 개인의 행위에 주어져야 하는 자유 : 따라서 밀은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모든 행위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이라고 규정한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영역은 사회적 행위에 속하기 때문에, 사회나 정부는 그러한 개인의 행위에 개입할 수 있고 개입해야 한다. 하지만 밀은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판단할 때에 오직 "직접적인" 영향만을 따지고, "간접적인" 영향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의 행동이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인 경우에는, 전자의 자유가 후자의 간접적인 피해보다 우선한다고 본 것이다.
Page 20 : (4) 인간 자신과 인류 발전을 이끌 원동력으러서의 개개인의 "개성" : 밀은 모든 개인에게 자유가 허용될 때에만 개개인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개성"이 온전히 발현되고, 이 무수한 개성들이 의견의 표현과 토론을 통해 함께 어우러질 때만이 개개인과 인류 사회는 발전하게 된다고 말한다. 사회나 국가는 일반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것들을 목표로 설정해서, 시민들과 국민이 일치단결해서 그 목표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에는 그 목표가 아무리 좋고 참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속에는 여전히 독선의 요소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그 부작용과 역작용으로 인해 결국에는 그런 개인과 사회와 나라의 발전은 가로막히게 되고 만다. "개성"은 겉보기에는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유로운 토록 속에서 개성이 극대화될 때에만 개인과 사회는 그런 부작용을 제거하고 역동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Page 22 : 미숙한 대중이 자유를 향유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를 향유하는 것도 어렵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Page 22 : "자유"는 "인간의 자유"라는 본성적인 측면과 "시민으로서의 자유"라는 사회적인 측면을 둘 다 지니고 있다.
Page 23 : 존 스튜어트 밀은 그런 철학적 토대들을 논외로 하고서, 현실에서의 인간의 불완전성을 전제한 가운데 시민적 자유에 대한 논의를 전개해나간다.
Page 36 : 국민의 의지라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국민 중에서 가장 수가 많거나 가장 능동적인 집단, 즉 다수파, 또는 다수파로 인정받는 데 성공한 사람들의 의지를 의미한다.
Page 39 : 자신의 존재를 어느 누구에게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행위에 일정 정도 제한을 가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어떤 행위규범들은 먼저 법률을 통해 강제되어야 하고, 법률로 정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많은 것들은 여론을 통해 강제되어야 한다. 무엇이 그런 규범들이 되어야 하는가는 인간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다.
Page 40 : 인간의 행동의 규율과 관련한 사람들의 견해를 결정하는 실제적인 원리는 모든 사람이 당연히 자기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하는 각 사람의 생각,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는 감정이다.
Page 45 : 영국은 그 정치사로 인해 생겨난 특유의 상황으로 인해, 유럽의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보다도 여론의 멍에는 좀 더 무거운 편이지만, 법률의 멍에는 좀 더 가볍다. 입법부나 행정부가 자신들의 권력으로 개인의 사적인 행위를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경계심이 존해하는데, 이것은 개인의 독립성을 지켜내고자 하는 어떤 정당한 관점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라기보다는, 정부를 대중와 반대되는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으로 보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국민 중 대수는 정부의 권력이 곧 자신들의 권력이라거나, 정부의 생각이 곧 자신들의 생각이라고 느끼지 못한다.
Page 51 : 따라서 인간의 자유가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고유한 영역은 이런 것들이다. 첫 번째는 "의식"이라는 내면적인 영역이다.
두 번째는 취향과 추구의 자유다.
세 번째는 각 개인의 이런 자유로부터 결사의 자유가 나온다. · · · 오직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거나, 자유를 얻기 위한 달느 사람들의 노력을 가로막고자 하지 않는 한, 우리 자신의 이익을 우리 자신의 방식으로 추구해 나갈 수 있는 자유만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
Page 57 : "출판의 자유"가 정부의 부패나 폭정을 방지해주는 안전장치들 중 하나라는 것을 반드시 증명할 필요가 있었던 그런 때는 지났다.
Page 59 : 한 개인의 의견의 표현을 침묵시키는 것이 심각한 해악이 되는 이유는 그런 행위는 현재의 세대만이 아니라 미래의 세대들까지, 그리고 그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찬성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인류 전체에게서 중요한 것을 빼앗아버리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그 견해가 옳은 경우에는, 인류는 오류와 충돌을 통해서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고 더욱 생생하게 드러낼 수 있는 아주 유익한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Page 59 : 우리가 어떤 의견을 침묵시키고자 할 때, 그 의견이 반드시 잘못된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또한 그 의견이 잘못된 것임이 확실하다고 할지라도, 그 의견을 침묵시키는 것은 여전히 정당할 수 없다.
Page 60 : 그들 자신이 인류 전체를 대신해서 그 문제를 결정할 권한이 그들에게는 없다. 그들이 어떤 의견이 잘못되었다고 확신해서 그 의견을 청취하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확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모든 의견을 침묵시키고 일체의 토론을 완전히 차단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은 생각이나 판단에 있어서 절대로 잘못을 범할 수 없고 틀릴 수 없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다른 의견을 단죄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전제 위에서 이루어지고, 이것은 일반적인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잘못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Page 60 : 누구나 자기가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는 하지만, 자신의 의견이나 판단이 틀릴 경우를 대비해서 어떤 예방조치를 위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아주 확실하다고 느끼는 어떤 의견이 사실은 그들 자신이 인정한 대로 틀릴 경우들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Page 61 : 통상적으로 자기가 속해 있는 "세계"는 완벽하게 옳고 절대로 틀릴 수 없다는 암묵적인 믿음 위에서 그 세계가 지닌 의견들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Page 62 : 그가 런던에 살고 있어서 기독교 신자가 되었던 것일 뿐이고, 베이징에 살았더라면 불교나 유교를 신봉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전혀 개의치 않는다.
Page 62 : 판단력이 잘못되게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그 판단력을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Page 63 : 우리는 동일한 잘못을 반복해서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하지만 정부들과 국가들은 권력을 행사해야 하는 많은 일들에서 잘못들을 범해왔다.
Page 65 : 인간은 토론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 경험만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고, 반드시 토론이 있어야 한다. 토론은 경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틀린 의견들과 실천들은 사실과 근거에 의해 점차 밀려난다. 하지만 사실들과 근거들이 인간의 지성에 어떤 효과를 미치기 위해서는 지성 앞에 호출되어야 한다. 사실들이 자신의 의미를 스스로 말해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실들이 지닌 의미가 드러나기 위해서는 거기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이 필요하다.
Page 66 : 그 사람은 인간이 자신의 능력의 범위 안에서 어떤 문제의 전체를 알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온갖 다양한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고, 온갖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그 문제를 바라보는 각양 각색의 방식들을 깊이 연구해 보는 것임을 알고 있다. 이 방법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지혜를 얻은 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지성의 본질을 생각할 때, 다른 방법으로 지혜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들과 비교해서 자신의 의견을 수정해 나갈 때에만 가능한 한 가장 완전한 의견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실천에 옮겨서 확고한 습관으로 정착시키는 것만이 신뢰할 수 있는 의견과 판단을 생산해내는 유일하게 안정적인 토대이다. 자신의 의견에 대해 반론을 제가하거나 취약점을 지적해주는 것을 피하기는커녕 도리어 기꺼이 반기는 태도로, 적어도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며 자신의 의견을 비판하는 모든 말들을 경청하고, 그 비판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다시 설명하고 나서 거기에 대한 그들의 논평을 또다시 들어보는 식으로, 자신의 의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빛을 밝혀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차단하지 않는 사람의 판단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개인이나 집단의 판단보다 더 나을 수밖에 없다.
Page 67 : 교회들 중에서 가장 비타협적이라고 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조차도 한 사람을 새롭게 성자로 시성하고자 할 때에는 거기에 대해 "악마의 대변자"가 말하는 것을 허용하고, 그 말을 인내하며 경청한다.
Page 67 : 진실에 도달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소홀히 하지 않고, 검증의 기회를 차단하지 않고 늘 열어두기만 한다면, 우리는 더 나은 진실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언젠가 인간의 지성의 수준이 더 높아졌을 때, 그 진실은 반드시 발견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Page 81 : 진리는 언제나 온갖 박해를 극복하고 결국 승리한다는 말은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을 거쳐 이제는 상식처럼 굳어졌지만, 사실은 인류의 모든 경험에 의해 틀렸음이 증명된 기분 좋은 거짓말들 중 하나일 뿐이다. 역사는 진리가 박해에 의해 진압된 사례들로 가득하다. 영원히 매장해버리지는 못할지라도, 수 세기동안 창고에 처박아두는 것쯤은 쉬운 일이다.
Page 82 : 진리는 단지 진리라는 이유로 거짓은 가질 수 없는 어떤 힘이 있어서 지하감옥과 화형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공허한 감상일 뿐이다. 진리에 대한 인간의 열정은 거짓에 대한 열정보다 결코 더 강하지 않고, 법적인 처벌, 또는 심지어 사회적인 제재를 충분히 동원한다면, 거짓은 물론이고 진리를 전파하는 것도 얼마든지 중단시킬 수 있는 경우가 많다.
Page 82 : 진리의 진정한 이점은 이런 것이다. 즉, 어떤 옳은 의견을 박해해서 한 번ㄷ, 두 번, 또는 수십 번 매장해 버리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 의견을 다시 내놓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게 되고, 그때마다 박해가 계속된다고 해도, 그러다가 운좋게도 좋은 환경을 만나 박해를 피하게 되면, 이후의 모든 박해를 이겨낼 만한 힘을 기를 수 있게되어, 언젠가는 인류 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Page 87 : 지난날 오랫동안 사람들이 법적으로 처벌받는 것을 두려워했던 가장 큰 이유는 중 하나는, 법적인 처벌을 받은 사람은 사회에서 낙인이 찍혀서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게 된다는 것이었다.
Page 88 : 사람들은 과거에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대해 공개적이고 직접적으로 해악을 가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었다. 오늘날에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해약을 가하지는 않지만,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통해서 그글에게 가하는 해악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Page 91 : 어떤 결론이 도출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지성이 이끄는 길을 끝까지 따라가는 것이 사상가의 첫 번째 의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위대한 사상가가 될 수 없다. 진리와 관련해서 인류가 점점 더 발전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은, 독자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이미 옳다는 것이 증명된 의견들을 늘 좇아가기 때문에 오류를 범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적절한 연구와 준비를 갖춘 후에 스스로 사고해 나가다가 많은 시행착오와 오류들을 범하는 사람들이다.
Page 91 : 위대한 사상가들을 배출하는 것이 사상의 자유가 필요한 유일하거나 주된 목적이 아니다. 도리어 그런 목적 못지않게,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정신적인 수준을 가능한 한 최고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사상의 자유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훨씬 더 필수불가결하다. 왜냐하면, 정신적인 예속상태가 일반화된 곳에서도 개별적으로 몇몇 위대하 사상가들이 배출되어 왔고, 이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그런 곳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지적 활동은 결코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지적 활동이 잠시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들은 이단적 사고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한동안 중단되었던 시기들이었다. 한 사회가 옳다고 전제하는 대원칙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봉쇄되어 있는 곳에서는, 인류 역사에서 찬란하게 빛난던 몇몇 시기들에서 나타났던 사회 전반에 걸친 고도로 활발한 정신 활동을 찾아볼 수 있는 가능성은 전무하다. 인류에게 중요하고 큰 문제들에 대한 논쟁이 요원의 불길처럼 거대하게 활활 타오를 때에만, 인간의 지성은 그 토대로부터 뒤흔들리게 되고, 그 충격은 지극히 평범한 지성을 지닌 사람들에게조차 가해져서, 그들의 지성이 고양되어, 그들도 생각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일정 정도 되찾게 될 수 있다.
Page 93 : 자신이 의견이 옳다는 것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이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결코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의견이 아무리 옳다고 할지라도, 그 의견의 옳고 그름에 대한 전면적이고 자유로우며 무제한한 토론이 허용되지 않으면, 그 의견은 살아 있는 진리가 아니라 단지 죽은 독단적 의견으로 취급될 뿐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Page 97 : 즉, 그들은 자신의 주장과 그 근거들은 거침 없이 제시하면서도, 그들과 다른 의견을 펴는 다른 사람들의 주장과 그 근거들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랬을 경우에는, 설령 어떤 문제에 대한 그들의 결론이 옳다고 해도, 그 문제에 대해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전체적으로 틀릴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진 사람ㄷ르의 입장을 깊이 들여다본 적도 없고, 그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경청해서 숙고해 본 적도 없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한다면, 그들 자신이 제시한 주장에 대해서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Page 106 : 사람들이 어떤 것을 옳다고 한결같이 칭찬하면, 그것이 왜 옳은 것인지를 들어보 적이 없어서, 그 이유나 근거를 알지 못해도, 사람들은 그것이 옳다는 것을 믿는 것처럼, 기독교인들은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규범들을 그런 식으로 믿는다.
Page 127 : 각각 진리의 어느 부분을 반영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격렬하게 충돌하는 것은 해로운 것이 아니다. 도리어 진리의 절반을 담고 있는 어떤 의견들이 쥐도 새로 모르게 억압되고 있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가공할 해악이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도 찬반양론을 모두 들을 수밖에 없는 곳에는 언제나 희망이 있다. 하지만 오직 한 쪽의 의견만을 들을 수 있는 곳에서는, 그 의견 속에 들어 있는 오류들이 진리로 여겨지고 굳어져서 편견으로 자리 잡게 되고, 그 의견이 마치 전체인 양 과장됨으로써, 그 의견 중에서 진리인 부분은 진리로서의 효과를 지닐 수 없게 되고 만다.
인간의 정신적인 능력들 중에서, 어떤 문제에서 진리인 부분과 오류인 부분을 가려내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극히 드물고, 각 사람은 진리의 오직 한 부분을 대변할 수 있기 때문에, 진리의 각각의 부분들을 담고 있는 다양한 의견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진리의 각각의 부분들을 경청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Page 128 : 첫째로, 우리가 어떤 의견을 틀리다고 생각해서 침묵을 강요하는 경우에도, 그 의견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로 인해서 옳은 것일 수 있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우리의 판단에는 절대로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가 침묵을 강요하는 어떤 의견이 전체적으로 틀린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의견 속에는 진리의 일부가 들어 있을 수 있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통념이나 지배적인 의견이 진리 전체를 담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오직 서로 반대되는 의견들이 서로 충돌하게 할 때에만 진리의 나머지 부분이 드러날 기회가 생긴다.
셋째로, 설령 기존의 정설이 진리일 뿐만 아니라 진리 전체를 담고 있다고 할지라도, 격렬하고 진지하게 반대하는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정설을 받아들인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 정설이 왜 진리인지를 보여주는 합리적인 근거들을 거의 알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한 채, 그 정설은 그들 속에 하나의 선입견으로만 자리 잡게 된다.
거기에다 넷째로, 진리 전체를 담고 있는 교설의 의미 자체가 상실되거나 약화되어서 사람들의 성품과 행동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그 진리에 걸맞은 성품과 행동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단지 입으로만 외치는 교조적인 주장이 되었을 때, 그 교설은 도리어 이성이나 인격적인 경험으로부터 생겨나는 어떤 진정한 확신의 출현과 성장을 가로막게 된다.
Page 129 :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토론하는 사상의 자유를 끝마치기 전에, 의견을 표현하는 방식이 적절하게 절제되어 있어서 공정한 토론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 조건 아래에서만 모든 의견의 자유로운 표현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런저런 많은 이유들을 들어서, 이 경계선을 어느 지점에 설정해야 한다고 못박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상대방을 공격하면, 상대방은 그 공격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험이 증명해주듯이, 반대자가 자신의 의견에 대한 강한 확신을 보이면서 그 공격을 강하게 밀어붙이는데다가, 그 공격이 설득력이 있고 강력해서, 답변하기 어려운 것일 때마다. 상대방에게 그 반대자는 절제를 잃은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
이것은 실제적인 관점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어떤 의견을 단정적으로 말하게 되면, 비록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심한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식의 의사 표현 방식을 엄격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옳다. 하지만 그런 식의 의사표현 방식이 지닌 더 큰 문제는 상대방에게 확신을 심어주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자폭하는 꼴이 되고 만다는 데 있다. 그런 의사 표현 방식 중에서 최악의 것은 궤변을 일삼고, 사실들이나 근거들을 은폐하며, 자신의 주장을 구성하는 여러요소들에 대해 거싲으로 제시하고, 반대 의견을 왜곡해서 제시하는 것이다.
Page 130 : 절데되지 못한 토론이라고 말할 때에 그것은 보통 독설이나 야유, 인신공격 등을 말한다. 만일 그런 무기들을 사용하는 것을 논쟁의 양 당사자에게 공정하게 금지한다면,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 더 많은 공감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금지조치를 취하게 되면, 그것은 오직 지배적인 의견을 공격하는 데 그런 무기들을 사용하는 것만을 금지하는데만 적용된다. 그리고 소수 의견들을 공경하는 데 그런 무기들을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용인될 뿐만 아니라, 그런 무기들을 사용해서 소수 의견들을 공격하는 사람은 정의를 향한 열정과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보인 사람으로 칭송을 받기도 한다.
Page 135 : 인간은 절대로 틀릴 수 없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안다고 하는 진리들은 대체로 단지 부분적으로만 옳은 진리들일 뿐이다. 인간이 지금보다 훨씬 더 역량이 발전해서, 지금처럼 진리의 한 부분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모든 부분들을 두루 인식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서로 반대되는 의견들이 완전히 자유롭고 충분히 비교되고 토론되고 나서 그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의견의 일치는 도리어 바람직하지 않고, 의견의 다양선은 인류 사회와 개개인에게 해악이 아니라 이득이다. 이러한 원칙들은 사람들의 의견만이 아니라 행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Page 136 : 이러한 원칙을 실천하고자 할 때에 만나게 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들이 그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하는 데 있지 않고, 대체로 사람들이 그 목표 자체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데 있다. 만일 개성의 자유로운 발전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들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문명이나 인격 수양이나 교육이나 문화라는 용어들로 지칭되는 모든 것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등한 요소일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의 필수적인 일부이자 조건이라는 것을 안다면, 사람들이 이 자유를 과소평가할 위험성도 없을 것이고, 이 자유를 어느 지점까지 허용하고 어디서부터 사회적 통제를 허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게 될 것이다.
Page 138 : "특히 남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시도 잊지 않고 바라보아야 할" 목표는 "각자의 개성에 맞춰서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먼저 "자유와 다양한 상황"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반드시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이 두 조건이 결합될 때, "개개인의 활력과 갖가지 다양성"이 생거나고, 이 둘이 합쳐져서 "독창성"을 이루게 된다.
Page 139 : 첫째로, 그들의 경험은 자나치게 좁은 것일 수 있다. 또한 그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올바르게 해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둘째로, 그들이 경험한 것들에 대한 그들의 해석이 옳은 것일지라도, 그 경험이 어떤 사람에게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관습은 특정한 시대와 사람들에게 일반적이었던 환경과 개성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환경이나 개성은 그 관습이 전제한 환경이나 개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특정한 관습이 옳을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 적절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단지 관습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관습을 따라 살아가는 경우에는, 인간에게 주어진 독특한 능력들과 자질들의 교육이나 발전이 그 사람에게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Page 140 : 사람이 세계 또는 그를 직접적으로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정해준 대로 자신의 일생을 살아간다면, 그에게는 원숭이 같이 흉내 내는 것 이외의 다른 능력들이 있을 필요가 없다. 반면에, 자신의 일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정하는 사람은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능력을 사용하게 된다. 보기 위해서 관찰력을 사용해야 하고, 미리 내다보기 위해서 추리력과 판단력을 사용해야 하며, 결정을 하기 위한 자료들을 모으기 위해서 활동력을 사용해야 하고, 결정하기 위해서 분별력을 상용해야 하며, 결정을 내린 후에는 자신이 신중하게 결정한 것을 실현해내기 위해서 확고한 의지력과 자제력 사용해야 한다.
Page 141 :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
Page 145 : 개인이든 가족이든,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관련된 일들에서만이 아니라 오직 자신과만 관련된 일들에서조차도, 내가 무엇을 더 선호하고, 나의 개성과 성향에 맞는 것이 무엇이며, 나의 능력을 최고로 발전시키고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무엇인지를 자기 사진에게 묻지 않는다. 그런 것들 대신에, 그들은 나의 위치에 어울리는 것이 무엇이고, 나와 같은 지위와 경제적 수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하는 것이 무엇이며,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심하게도) 나보다 더 나은 지위와 경제적 수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무엇을 하는지를 묻는다.
Page 145 : 그들에게는 관습에 의해서 정해져 있는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 외에, 그들 자신만의 고유한 성향이라는 것 자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의 정신 자체가 노예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저 즐겁기 위해서 하는 일조차도, 남들이 무엇을 하며 즐겁게 노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사람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서 한다. 그들은 군중 속에 묻혀 있기를 좋아한다.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것들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할 뿐이다. 그들은 범죄를 꺼리는 것과 동일한 수준에서 특이한 취향이나 튀는 행동을 꺼린다.
Page 145 : 그들 각자가 타고난 본성을 따르지 않는 것이 습관화되고, 그 결과 그들에게는 이제 그들이 따를 본성조차 사라지게 된다. 인간으로서 타고난 자질과 능력들은 시들시들해지고 결국은 굶어죽는다. 어떤 것을 강력하게 원하는 마음도 없어지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힘도 없어진다. 그들 자신 속에서 생겨난 어떤 의견이나 감정, 즉 그들 자신만의 고유한 의견이나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다. 그렇다면, 이것은 인간 본성의 상태로서 바람직한 것인가, 아니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인가?
Page 150 : 개성을 짓밟고 말살하는 것은, 그것을 무슨 이름으로 부르든, 그리고 그것이 신의 뜻을 시행하는 것이라고 하거나, 인간의 명령을 집행하는 것이라고 하거나 상관 없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독재다.
Page 152 : 천재라는 말 자체 속에는 이미 그들이 다른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개성이 강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Page 153 : 천재들 중에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있어서, 자신들에게 채워진 족쇄를 부수어버리는 경우에는, 천재들은 그들의 평범한 사람들로 만드는 데 실해한 사회의 공격대상이 된다. · · · 사회는 그들을 향해 마쳤다느니 정상이 아니라느니 심한 독설을 퍼부으며 엄중한 경로를 보낸다.
Page 153 :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으로는 자신들을 독창성이 없어도 아주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Page 154 : 독창적이지 않은 지성을 가진 사람들은 독창성의 용도를 알 수가 없다. 독창성이 그들에게 무슨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Page 155 : 현재의 인간 지성은 낮은 수준에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사회가 지금 당장 현재 상태보다 더 나은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Page 158 : 온갖 다양한 식물들이 동일한 자연 조건과 기후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도덕적 기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면, 그런 조건에서 모두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던 사람에게는 그의 본성 중에서 더 고귀한 것들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건강하게 작용해서 그의 모든 능력들을 최고로 발전시키고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반면에, 어떤 사람에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으로 작용해서 그의 모든 내면의 삶을 불안정하게 하거나 파괴해버릴 수 있다.
Page 186 : 단지 술을 마시고 취했다고해서 처벌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업다. 하지만 군인이나 경찰이 근무 시간에 술을 마시고 취한 경우에는 처벌하는 것이 정당하다. 요컨대, 어떤 사람이 순전히 자기 자신과만 관련이 있는 행동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 행동이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명백한 해악을 힙혔거나 그럴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그런 행동은 자유의 영역에 해당되지 않고, 도덕이나 법의 규제 아래 놓이게 된다.
Page 186 : 반면에, 개인이 어떤 행동을 통해서 특정한 공적인 의무를 어기지도 않았고, 자기 자신 외에는 누구에게도 이렇다할 만한 해악을 끼치지도 않았지만, 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쳤을 것이라고 막연히 추정되는 경우에는, 인간의 자유라는 좀 더 큰 이익을 위해서, 사회는 그런 불이익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Page 187 : 기성세대가 선량함과 지혜로움에서 너무나 통탄스러울 정도로 결핍되어 있다면, 다음 세대를 온전히 지혜롭고 선량한 사람들로 만들어낼 수 없다.
Page 191 : 하지만 개개인에 대한 검열과 관련해서 그런 한계를 설정했던 사회가 인류 역사 속에서 단 한 번이라도 존재했던 적이 있었던가? 또는, 사회가 인류의 부편적인 경험이라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서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있었던가?
Page 211 : 먼저, 개인의 어떤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침해할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사회의 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해서, 그런 모든 경우에 사회의 개입이 언제나 정당하다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개인이 합법적이고 정당한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이나 손실을 안겨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기대하고 있던 이득을 가로채기도 하는 일이 필연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지만, 개인의 그런 행동들은 정당하기 때문이다.
Page 228 : 자신의 자유를 포기할 수 있는 자유는 개인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
Page 238 :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특정한 사람들을 교직을 비롯한 특정 직업들에서 배제할 수 있는 권한을 정부에 부여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학문이나 직업과 관련해서 국가에서 시행하는 시험을 보아서 통과한 모든 사람에게 국가가 학위나 인증서를 교부하는 것은 정당하다. 하지만 그런 학위나 인증서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 하는 것은 민간 속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게 하여야 하고, 국가가 나서서 강제적으로 그런 학위나 인정서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어떤 혜택을 부여해서 그런 것들을 소유하지 않은 경쟁자들에게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나의 생각은 훔볼트의 생각과 동일하다.
Page 252 : 정부가 개인의 노력과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고 촉진시키는 활동이라고 해도, 그 정도가 지나쳐서는 안 된다. 정부가 개개인과 집단들의 활동과 역량을 이끌어내는 대신에, 그들이 해야 할 활동들을 정부 자신이 하고, 정보를 제공하고 조언해주며 때로는 경고를 하면서 그들이 스스로 잘해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대신에, 그들에게 족쇄를 채워서 그런 상태에서 일하게 하거나, 그들을 옆에 세워두고서 그들의 일을 직접적으로 나서서 할 때, 폐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Page 253 : 국가의 가치는 결국 그 국가를 구성하는 개개인들의 가치다.
Page 253 : 국가가 비록 좋은 목적이라고 할지라도 국민 개개인들을 더욱 유순하게 만들어서 국가가 말을 더 잘 듣는 사람들이 되게 함으로써 그 국민을 왜소하게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국가는 머지않아 그런 왜소한 국민으로는 진정으로 위대한 일을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Page 253 : 그런 국가는 모든 것을 희생해서 국민을 국가가 시키는 대로 하는 완벽한 기계로 만들어놓았지만, 그렇게 부드럽게 잘 돌아가는 기계로 만들기 위해서 국민에게서 활력을 없애버렸기 때문에, 결국에는 그런 국민이 전혀 쓸모 없게 되어버린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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