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ㅣ김선욱 감수ㅣ김명철 옮김ㅣ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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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폭리방지법에 대한 찬반 주장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복지, 자유, 미덕이라는 세 가지 항목에 각기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복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지,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더 중요한지, 아니면 미덕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한지에 대한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들은 정의를 각기 서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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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우선 어떤 삶의 방식이 바람직한 것인지 심사숙고하지 않고서는 무엇이 정의로운 법인지 알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이란 좋은 삶을 묻는 질문에 중립적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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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고대의 정의론은 미덕에서 출발하는 반면, 근대의 정의론은 자유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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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혼동되는 상황을 생각하고 이를 정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것이 바로 철학으로 가는 기폭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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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리주의의 도덕적 추론을 시험하기에 시한폭탄 이야기는 적절치 않다. 이는 숫자의 중요성을 강조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경우에는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에 대한 양심의 가책도 얼마든지 버릴 수 있음을 증명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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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나이 많은 여성 교직자들은 전통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전통적인 도덕규범을 근거로 남자 방문객들이 밤새 체류하는 것을 반대했다. 이들은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이 남자와 함께 잠자는 것을 부도덕한 일로 여겼다. 하지만 전통주의자들은 시대가 변한 상황에서 자신들이 반대하는 진짜 이유를 대지 못해 곤혹스러워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공리주의 표현으로 바꾸어 말했다. "남자가 밤새 머물다 가면 대학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 "그들이 목욕을 하려 할 테고, 그러면 온수 사용이늘어납니다." 또 덧붙였다. "매트리스도 더 자주 갈아야 합니다."
개혁가들은 다음과 같은 타협안을 만들어 전통주의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여학생 한 명당 일주일에 최대 세 명까지 방문객을 허용하되, 각 방문객은 하룻밤에 50펜스를 대학에 비용으로 지불한다. 다음날 「가이언」지에는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이 실렸다. '세인트 엔스 여학생들, 하룻밤에 50펜스.' 미덕의 언어가 공리주의 언어로 그다지 훌륭하게 번역되지 못한 것이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객 제한 조치는 전면 철폐되었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규정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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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른 누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내 "독립은 권리이며 절대적인 것이다. 개인은 자신에 대한,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주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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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욕구와 충동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다고 할 수 없으며, 이는 증기 기관차에 인격이 있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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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고급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삶 대신 저급한 민족을 느끼며 살려고 하지 않을까? 밀은 그 이유가 "자유에 대한 사랑 및 개인의 독립성"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여, "이에 대한 적절한 호칭은 인간이란 존재가 어던 형태로든 지니고 있는 존엄성이다"라고 결론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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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하는 돼지보다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이 낫고, 만족하는 바보보다는 만족하지 못하는 소크라테스가 낫다. 만약 바보나 돼지가 이 말에 반대한다면, 그것은 문제를 자기 시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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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노동의 결과를 빼앗는 것은, 그에게서 시간을 빼앗고 여러 가지 일을 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군가 당신에게 일정 시간 동안 어떤 노동 혹은 보수가 없는 노동을 강요한다면, 당신이 어떤 일을 어떤 목적으로 해야 하는가를 당신이 아닌 그가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 · · · · · · ) 부분적으로나마 그를 당신의 소유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당신에 대한 소유권을 그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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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시장에 우호적인 시각은 보통 두 가지 주장에 근거한다. 하나는 자유를 중시하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복지를 중시하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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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자유로운 국가라면 시민은 모든 일을 직접 하지, 돈으로 해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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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을 소유한다거나 우리 목숨과 자유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주장에 기반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이성적 존재이기에 존중받아야 하는 존엄성을지녔다는 생각에 근거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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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는 미국 독립 혁명(1776)과 프랑스 혁명(1789) 사이에 나왔다. 이 책은 두 혁명의 정신적·도덕적 파장과 더불어 18세기 혁명가들이 인권이라 칭하고 오늘날 우리가 보편적 인권이라 부르는 개념에 든든한 토대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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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모든 인간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이유는 우리가 자신을 소유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는 자율적 존재로서 자유롭게 행동하고 선택할 능력이 있다고도 말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늘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자율적으로 선택한다는 뜻은 아니다. 때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는 단지 우리가 이성적으로 자유롭게 행동할 능력이 있으며, 이는 모든 인간의 공통점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칸트는 이성적 능력이 우리 능력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선뜻 인정한다. 우리는 쾌락과 고통을 느낄 능력도 있다. 그는 우리가 이성적 존재일 뿐 아니라 유정적sentient 존재라고 말한다. 칸트가 말하는 '유정적 능력'이란 감각과 느낌에 반응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벤담이 옳았지만, 절반만 옳았다. 하지만 쾌락과 고통이 '우리의 통치권자'라는 그의 주장은 옳지 않다. 칸트는 이성이야말로, 적어도 때로는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성이 우리를 의지를 통치할 때, 우리는 쾌락을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욕망에 조종되지 않는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은 자유롭게 행동하는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두 가지 능력이 합쳐져 우리는 특별한 존재,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존재가 된다. 이 능력으로 우리는 단지 욕구만 느끼는 동물이 아닌, 그 이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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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닐라다 에스프레소에 과자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욕구는 나의 선택이 아니다. 단지 그런 욕구를 갖고 있을 뿐이다.
몇 년 전, 스프라이트 음료 광고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당신의 갈증에 복종하라.' 이 스프라이트의 광고에는 (물론 우연이지만) 칸트의 통찰력이 담겼다. 내가 스프라이트(혹은 펩시콜라나 코카콜라) 캔 하나를 집어 드는 행위는 자유가 아니라 복종의 실천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욕구에 대한 반응으로, 내 갈증에 대한 복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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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가 말하는 자율적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자율을 반대 개념과 대조하는 것이다. 칸트는 대조를 위해서 '타율heteronomy'이란 단어를 만들었다. 타율적인 행동이란 외부로부터 주어진 결정에 따라 행동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보자. 당구공을 손에서 놓으면, 공이 땅으로 떨어진다. 이것은 공의 자유로운 행위가 아니다. 공의 움직임은 자연법칙, 즉 중력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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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가 말하는 자율은 이와 정반대다. 우리가 자율적으로, 즉 스스로 부여한 법칙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그 행동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외부에서 주어진 목적의 도구가 아니다.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능력 덕에 인간의 삶은특별한 존엄성을 지닌다. 바로 이것이 사람과 사물의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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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에 따르면,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그 행동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그 행동을 유발한 동기에서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동기이며, 도덕적 가치가 있는 동기는 특별한 종류의 동기다. 옳은 일을 하더라도 그것이 옳기 때문에 하는 것이 중요하지, 이면에 숨은 다른 동기 대문에 하는 것은 도덕적 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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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생명을 보본하기 위해 조심하는 행동에는 도덕적인 요소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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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유는 대부분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지, 삶이 의무이기 때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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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일을 하며 쾌락을 느낀다고해서 반드시 그 행동의 도덕적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쾌락을 느끼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옳은 행동이라는 이유로 선행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칸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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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이 의무로 행동하는 것이라면, 어떤 의무가 필요한지 밝히는 일이 남는다. 칸트는 이를 파악하는 것이 곧 도덕의 최고 원칙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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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의지가 자율적으로, 즉 내가 스스로 부여한 법칙에 의해 지배될 때만이 나는 자유롭다.
(· · · · · ·)
그러므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선천적으로 주어지거나 외부에서 부여된 법칙뿐만 아니라스스로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법칙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칸트는 이성이라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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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견해에 따르면, 도덕과 관련된 실천 이성은 도구가 아니라 "어떤 경험적 목적에 상관없이 선험적으로 정해지는 순수 실천 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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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존재로서 나는 감각 세계에 속해 있다. 내 행동은 자연법칙 및 원인과 결과라는 규칙적인 패턴으로 결정된다. 이는 물리, 생물, 신경과학이 설명할 수 있는 인간 행동의 한 측면이다. 한편 이성적 존재로서 나는 예지적 세계에 살고 있다. 여기서는 자연법칙으로부터 독립적인 존재로서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내가 스스로 부여한 법칙에 따른 행동이 가능하다.
칸트는 이 두 번째 관점, 즉 예지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자신을 자유로운 인간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감각 세계의 원인들로 인한 결정으로부터 독립적일 때(그리고 이성이 이 기능을 담당할 때) 자유롭기 때문이다."
내가 오로지 경험적 존재일 뿐이라면,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내 의지의 행사는 늘 어떤 이익이나 욕구에 좌우된다. 모든 선택은 어떤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타율적 선택이 될 것이다. 내 의지는 결코 1차 원인이 되지 못하고, 다른 1차 원인의 결과이자 이런저런 충동이나 경향성의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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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역시 우리가 늘 이성적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음을 기억하자. 우리가 오로지 예지적 세계에서만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오로지 이성적 존재일 뿐이고, 자연의 법칙과 필연성에 종속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든 행동은 "의지와 자율과 예외 없이 일치할 것이다."
우리는 필연적성의 영역과 자유 영역이라는 두 관점의 세계에 동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것과 해야하는 것 사이에,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과 존재해야 하는 방식 사시에 잠재적 격차가 있다. 달리 말해 도덕은 경험적이지 않다. 도덕은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둔다. 도덕은 세상에 대해 판결을 내린다. 하지만 과학은 아무리 강한 힘과 통찰력을 지녔어도, 감각 영역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도덕적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
칸트는 이렇게 썼다. "어리석은 사람의 이성으로 자유를 온전히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듯이, 가장 난해하고 복잡한 철학으로도 불가능하다." 그가 오늘날 세상에 있다면, 아무리 인지신경과학이 정교하다고해도 이 역시 불가능하다고 덧붙였을 것이다. 과학은 자연을 연구하고 경험 세계를 탐구할 수 있지만, 도덕 질문에 답을 하거나 자유 의지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다. 도덕과 자유는 경험적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으로 도덕과 자유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도덕적 삶을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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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적이라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부여한 법칙, 즉 정언 명령에 지배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정언 명령은 (자신을 포함해) 모든 사람을 단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칸트에 따르면, 자율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존중하고, 대상으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자기 몸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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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기초를 행복의 특정 개념(예를 들어 다수의 행복)에 둘 경우, 어떤 사람ㅇ느 다른 사람의 가치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럴 경우 자신만의 목적을 추구할 개인의 권리가 무시된다. 칸트는 이렇게 썼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기준에 맞춰서 행복하도록 나에게 강요할 수 없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각자 어울리는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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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집단적 동의라는 이 가상의 행위가 "모든 공법의 정당성을 판가름한다"고 결론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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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 가지 가상의 사고 실험을 해보자. 원칙을 정하려고 모인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잠시 잊게 된다고 사상해 보자. 즉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일시적으로나마 전혀 알 수 없는 '무지의 장막' 뒤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상상하자. 내가 어떤 계층, 성별, 인종, 민족, 정치적 견해,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건강한지 허약한지, 고등 교육을 받았는지 고등학교를 중퇴했는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는지문제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내게 무엇이유리하고 무엇이 불리한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선택하게 된다. 이처럼 협상에서 어느 누구도 우월한 위치에 있지 않다면, 우리가 합의한 원칙은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롤스가 생각한 사회 계약의 개념은 이처럼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가상적 합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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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헌법도 다른 합의와 마찬가지 위약점을 갖고 있다. 헌법이 비준되었다고 해서 헌법 조항들이 정의롭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1787년의 미국 헌법을 생각해보자. 당시 헌법은 장점도 많았지만 노예제를 인정했다는 오점이 있었으며, 이 오점은 남북 전쟁 이후까지 남아 있었다. 당시의 헌법을 필라델피아 대의원들에 이어서 각 주가 동의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정의롭다고 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이 결점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애초 합의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 할수도 있을 것이다. 당시 제헌 회의에는 흑인이 없었으며, 한 세기 지나서야 투표권을 갖게 된 여성 역시 없었다. 물론 제헌 회의에서 대표성이 강화되었더라면 보다 정의로운 헌법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협력의 공정한 조건이 만들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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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애초에 정한 계약 조건이 공정치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해서, 원하면 아무 때나 합의를 파기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완전히 공정한 거리가 아니라도 어느 정도는 이행할 의무가 있다. 부당한 요소가 있더라도 합의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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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시장 경제 사회의 유일한 대안은 재능 있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어 평등을 이루는 방법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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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좋은 학교를 다니는 학생은 그보다 못한 환경에서 자란 학생보다 불공정한 혜택을 누린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아무런 노력 없이 재능과 소질을 물려받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불공정한 혜택을 누린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하지만 롤스와 달리 프리드먼은 우리가 그런 불공정을 수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신 그 불공정과 더불어 사는 법을 터득하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이익을 즐겨야 한다고 말했다.
인생은 공정하지 않다. 자연이 낳은 것을 정부가 바로잡을 수 있다는 생각은 매혹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개탄하는 커다란 불공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익이 생겨나는지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무하마드 알리가 위대한 권투 선수로서의 기술을 타고났다는 사실은 ( · · · · · · ) 공정치 못하며, ( · · · · · · ) 무하마드 알리가 하룻밤에 수백만 달러를 벌 수 있다는 사실도 분명 공정하지 못하다. 하지만 평등이라는 추상적 이상을 추구하느라, 알리가 하룻밤 경기에서 벌 수 있는 돈이 ( · · · · · · ) 최하층 사람이 부두에서 비숙련 노동으로 벌 수 있는 일당보다 많지 않도록 제한한다면 ( · · · · · · ) 알리를 보며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불공정 한 일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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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재능을 높게 쳐주는 사회에 살게 된 것도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그저 행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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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가 중립적일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정의에 관한 논쟁은 필연적으로 영예, 미덕, 좋은 삶의 본질에 관한 논쟁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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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치의 목적은 시민의 미덕을 키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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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함께 살아도 떨어져 살 때와 정신적 교류가 달라진 게 없다면", 그러한 결사체는 진정한 폴리스, 즉 정치 공동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폴리스는 공동의 장소에 거주하기 위한 사람들의 결사체가 아니며, 서로가 부정을 방지하고 교환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결사체도 아니다." 그것들은 폴리스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폴리스의 목적과 목표는 좋은 삶이며, 사회생활을 위한 제도는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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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목적은 좋은 삶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최고 공직과 영예는 페리클레스Pericles처럼 시민의 미덕이 가장 뛰어나고 공동선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보았다. 재산이 있는 사람들도 발언권이 있어야 하고, 다수결주의자의 생각도 어느 정도 중시되어야 하지만, 최고 권력은 무엇보다 스파르타와 전쟁을 치러야 하는지, 치러야 한다면 언제 어떻게 치러야 할지 결정할 자질과 판단력이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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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사람(이미 홀로 자족하여 정치 결사체의 이익을 나눌 수 없거나 그런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폴리스의 일부가 아니며, 따라서 그는 짐승 아니면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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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 있는 사람은 올바른 것에서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투견을 보면서 쾌락을 느끼지만, 우리는 이를 극복해야 할 악으로 여기지 진정한 행복의 원천으로 여기지 않는다. 도덕적 탁월성은 쾌락과 고통의 총합을 따져 보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별하고 고상한 것에서 기쁨을, 비도덕적인것에서 고통을느끼는 데서 나온다. 행복은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며, "미덕에 부합하는 영혼의 활동"이다.
하지만 미덕이 가득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왜 폴리스에 살아야 하는걸까? 철학 수업에서, 혹은 윤리에 관한 책을 읽고 그 내용을 필요한 곳에 적용하면서 건전한 도덕 철학을 배울 수는 없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식으로 미덕을 갖출 수 없다고 주장하다. "도덕적 미덕은 습관의 결과로 생긴다." 즉 미덕은 행동으로 배우게 되는 것이다. "예술이 그러하듯이, 미덕은 무엇보다 실천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미덕의 습득은 플루트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악기연주를 책이나 강의로 배울 수는 없다. 연습을 해야 한다. ( · · · · · · ) 요리도 비슷하다. 요리 책이 아무리 많아도 책만 읽어서는 훌륭한 요리사가 될 수 없다. 요리를 많이 해봐야 한다. 유머도또 다른 예다. 유머 모음집을 읽고 웃기는 이야기를 모은다고 해서 코미디언이 될 수는 없다. ( · · · · · · )
도덕적 미덕이 행동으로 배우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처음부터 올바른 습관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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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헌법과 나쁜 헌법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도덕 교육은 규칙을 퍼트리는 것이라기보다는 습관을 기르고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 어떤 습관을 기르느냐에 따라 ( · · · · · · ) 적지 않은 차이가 생긴다. 사실 그 차이는 매우 커서, 어쩌면 이때 '모든' 차이가 형성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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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도덕적 행동이란 규율이나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이러한 생각은 도덕적 미덕의 두드러진 특징을 놓치고 있다. 올바른 규칙은 알고 있지만 그것을 언제 어떻게 적용할지는 모를 수 있다. 도덕 교육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규칙을 적용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우리에게 선한 것이 무엇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건강이 그렇듯이 늘 변한다. ( · · · · · · ) 의술이나 항해술이 그러하듯이, 행위자 스스로 이 상황에서는 어떤 행동이 적절한지 그때그때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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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 지혜는 정치적인 면이 내재된 도덕적 미덕이다.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시민들에게, 그리고 인류 모두에게 무엇이 이로운지 심사숙고할 줄 안다. 이때의 심사숙고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특정 상황에 대한 것이므로 철학적 사고는 아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그 자리에서의 행동에 주목한다. 하지만 단순히 계산 이상의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인간의 최고선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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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목적은 우리의 본성을 표현하고, 좋은 삶의 본질과 인간의 능력을 펼쳐 보이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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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들이 함께 모여 공동선을 심사숙고하는 동안 누군가 집안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노예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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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다른 사람의 재산이 될 수 있는 특질이 있다면(또한 그런 이유로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리고 이성적 사고를 스스로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의 이성적 사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준은 된다면, 그 사람은 천성적으로 노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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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격을 기르게 하고 좋은 시민이 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정의에 관한 논의는 좋은 사람에 관한 논의 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썼다. "이상적인 법의 본질(을 조사하기) 전에, 가장 바람직한 삶의 본질부터 밝혀내야 한다. 그것이 불분명하면, 이상적인 법의 본질 또한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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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목적은 자기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강력한 도덕적 사고다. 하지만 어떻게 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당신이 어떤 목적을 추구하든,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한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요구할 뿐이다. 중립적 틀의 매력은 분명 어떤 삶의 방식을 선호한다거나 선(좋은)에 대한 관념을 단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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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정치 질서를 고민하려면, 좋은 삶의 본질부터 따져야 한다. 따라서 무엇이 최선의 삶의 방식인지 알아내기 전까지는 정당한 헌법의 틀을 잡을 수 없다. 하지만 롤스는 동의하지 않는다. "목적론적 이론의 구조에는 치명적인 오해가 있다. 그 이론은 애초부터 권리와 선을 잘못 연관시킨다. 선을 독립적으로 먼저 규정하고 그에 따라 삶의 틀을 형성하려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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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가 선보다 앞선다는 주장에 대한 논쟁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유의 의미에 관한 논쟁이다. 칸트와 롤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에 반대하는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선을 선택할 여지를 남겨 두지 않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이런 우려를 낳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는 정의를 인간과 인간 본성에 맞는 목적이나 선의 적합성 문제로 본다. 하지만 우리는 정의를 적합성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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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인간이 자발적 존재라는 관념이 약한 것이라면(만약 우리의 모든 의무가 우리의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면), 어떻게 우리를 소속된 존재이자 자유로운 자아로 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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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는 과정은 어떤 통합이나 일관성을 염원하는 서사적 탐색을 해나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갈림길에 마주쳤을 때, 나는 내 삶의 전반에 가장 적합하고 마음이 가는 길을 찾아내려 애쓴다. 도덕적 고민은 내 의지의 행사라기보다 내 삶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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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 타이어는 이렇게 언급했다. "나는 개인으로만은 결코 선을 추구하거나 미덕을 실천할 수 없다." 내가 속한 이야기와 친숙하게 될 때만 내 삶의 서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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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책임의 세 가지 범주
1. 자연적 의무 : 보편적이고, 합의가 필요하지 않다.
2. 자발적 의무 : 특수하고, 합의가 필요하다.
3. 연대 의무 : 특수하고, 합의가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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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정은 그 범위가 전 세계로 확장되면 사라지거나 약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타타르나 일본에서 재난이 일어나더라도 유럽 사람들에게 재난이 닥쳤을 때와 같은 느낌은 오지 않는다. 이때의 관심과 위로의 감정은 다소 제한적이어서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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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적 자부심을 느끼려면 세월을 뛰어넘어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소속감에는 책임감도 동반한다. 내 나라의 과거를 현재로 가져와 도덕적 부채를 해결할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내 나라와 역사에 진정한 자부심 또한 느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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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연대는 자연적 의무나 인권과 대립하기보다는 보완하는 경향이 있다. (· · · · · ·) 즉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만 않는다면, 가족이나 동료 시민처럼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을 도움으로써 타인을 도와야 한다는 일반적 의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부모가 다른 아이보다 자기 아이를 구조하는 행위는, 그 과정에서 다른 아이를 밟고 지나가지 않는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부자 나라가 자국 시민을 대상으로 후한 복지 정책을 실시하더라도, 다른 나라 사람의 인권을 무시하지만 않는다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연대 의무가 지탄받을 때는 자연적 의무를 위반하게 만들 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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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선에 관한 특정 견해를 지지하지 말아야 하며, 시민은 정의와 권리를 토론할 때 자신의 도덕적·종교적 신념을 끌어와서는 안 된다. 자신의 신념을 끌어올 경우, 그리고 그런 주장이 우세해질 경우, 다른 시민에게 특정한 도덕적·종교적 교리에 기초한 법을 효과적으로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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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수많은 미국인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차를 몰고 출근하고, 서둘러 업무 회의에 들어가고,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고, 다이어트를 하는 등의 일상생활을 하다가, 문득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일, 재산, 휴식, 바쁜 일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삶에 목적의식이, 서사적 궤적이 필요해졌습니다. (· · · · · ·) 우리가 진정 사람들에게 그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말해 주고 싶다면, 다시 말해 우리 희망과 가치를 그들의 희망과 가치와 관련지어 소통하고자 한다면, 진보주의자인 우리는 종교적 담론이라는 영역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이 더 폭넓게 신앙 친화적인 공적 이성을 수용해야 한다는 오바마의 주장은 건전한 정치적 기관을 반영한다. 이는 훌륭한 정치 철학이기도 하다. 정의와 권리에 관한 논의를 좋은 삶에 대한 논의에서 분리하려는 시도는 두 가지 이유에서 잘못이다. 첫째, 본질적인 도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정의와 권리의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둘째,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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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결혼 논쟁의 진짜 쟁점은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동성 결합이 공동체로부터 영예와 인정을 받을 가치가 있는가, 즉 결혼이라는 사회 제도의 목적을 수행하는가의 여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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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 영예로운 제도라면 어떤 미덕에 영예를 수여하는 것일까? 이는 곧 사회 제도로서 결혼의 목적, 즉 텔로스를 묻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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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이성애자 사이로 인정하다면 "동성애는 이성애의 비해 천성적으로 불안정하고 열등한 관계이며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는 해로운 고정 관념을 공인하는 도장을 찍어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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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접근법을 탐구했다. 첫 번째 방식은 정의란 공리나 복지의 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방식은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선택은 자유 시장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행하는 선택(자유지상주의의 견해)일 수 있고, 사람들이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 있을 경우 '하게 될' 가상의 선택(자유주의적 평등주의의 견해)일 수도 있다. 세 번째 방식은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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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이견을 기꺼이 수용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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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물질적 가난을 없애려고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또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 · · · · ·) 진정한 만족감의 결필에 맞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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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국가적 봉사를 장려하기 위해서 대학생이 100시간의 사회 봉사 활동을 하면 수업료를 보조해 주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선거 기간에 전국을 돌며,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당신은 미국에 투자하고, 미국은 당신에게 투자한다." 이는 가장 인기가 높은 공약 가운데 하나였고, 2009년 4월에 오바마는 아메리코의 사회 봉사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자기 지역에서 자원 봉사하는 대학생들에게 학자금을 지원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을 읽고 내용을 흡수해서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이는 행위다. 허나 요즘 사람들은 그냥 책만 읽는다. 활자만 눈으로 훑는다는 뜻이다. 책을 읽는 행위가 교양 있는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렇게 읽으면 책을 읽는 의미는 없다.
난 책을 읽어도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 문장만이라도 기억해서 그걸 내 삶으로 끌어들여 적용시키면서 살기로 결심했다. 생각보다 성공적이다. 그래서 내 삶의 방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이렇게 내가 읽는 책의 중요한 부분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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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는 자유주의가 마음대로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철저한 개인주의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런 자유주의는 극단적 형태의 것이며 철학적으로 옹호하기도 어려운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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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샌델 교수는 '선(좋음) 권리(옳음)에 앞선다the priority of the good over the right'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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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공동체와 전통이 주는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으며, 나아가 그에 적극적으로 응대하는 것이 필요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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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는 정답을 얻으려는 데만 집중하지 말고, 여러 주장들의 비판적 만남의 과정 자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우리는 관점의 다양성을 잘 살펴봐야 한다.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하나의' 완전한 철학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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