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56 런던살이ㅣ20. January. 2024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다 안다. 다만 자신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헤르만 헤세 -
내가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큰 걱정은 인간성이 사라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것이다. 이제는 그 인간성을 살릴 수 있는 시점은 지났다고 생각하기에 나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살려고 하는 노력을 한다.
지난 글에서 나는 우리는 모글리와 같이 검색 사이트에서 사람들이 길러지니 인간성을 상실했다고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인터넷에 의지를 하니 그건 마치 모글리가 늑대에게 길러져서 늑대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는 논리였다. 태국에서는 레이디 보이가 있는데 그들은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서 아들들이 딸로 위장하고 살아간 결과 남성의 몸으로 여성의 삶을 살아간다. 결국 같은 이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바로 죽음이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인지가 부족해서 사람의 자상함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죽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만은 죽지 않을 거처럼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일주일 뒤에 죽는다고 가정을 하고 삶을 살아간다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다. 어차피 내 인생에 필요 없는 것들은 주변에게 나눠주고 어설픈 시비는 가볍게 웃음으로 넘기게 될 거다. 부모님에게 최대한의 표현을 하려고 할 것이고 남은 인생을 주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도움을 주려고 할 것이다. 아주 간단한 이치다.
그럼 우리는 그 죽음을 어디서 배울 수 있는가? 바로 가족이다. 3대가 함께 하는 가족에서 배울 수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란 손자가 어느날 할아버지, 할머니의 죽음을 보고 자신에게도 그런 시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거다. 솔직히 영국 사람들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죽음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 거다. 우리가 아무리 안타깝게 생각해도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거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오롯이 죽음의 의미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은 할아버지, 할머니뿐이다. 그건 3대가 함께 살아가야 배울 수 있는 거다. 어쩌면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주 사랑은 죽음으로써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다만 할아버지, 할머니도 함께 한 시간이 부족하고 함께해도 사랑을 주지 못한 사람들이면 자신들의 죽음으로 손주들에게 죽음을 가르쳐 줄 수 없다. 시간과 공간을 사랑으로 채워서 나눠주어야 죽음의 의미를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다.
그 다음이 부모님의 죽음이다. 하지만 그 시기는 우리의 40~50대 때 일어난다. 그건 늦다. 말 그대로 늦다. 나도 죽을 나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생각 혹은 심정의 변화 폭이 좁고 죽음을 죽음 자체로 받아들이게 된다. 인생의 굳은살이 깊게 박혀 있는 나이대에서는 부모님의 죽음을 어느 정도 준비도 할 수 있게 한다. 외모의 변화로 인해서 말이다. 더 중요한 굳은살은 너무 돈에 찌든 삶을 살다 보니 남은 유산에만 신경을 쓰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이 경우는 돈 없이 살기는 너무 힘든 세상이 되다 보니 부모의 죽음에 대한 감정보다는 자기 남은 인생에 더 집중하게 되어 유산에만 눈이 가는 경우다. 결국 너무 늦은 나이는 세상살이에 굳은살로 인해서 부모님의 죽음의 의미가 침투할 틈이 없다. 그래서 그냥 살던 데로 살아가는 인생을 유지하는 정도다.
여기에 인터넷에 의존하는 세대가 되다보니 인간은 더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는 거 같다. 반대로 인간이 영원히 산다고 한다면 인간은 친절하기 어려운 존재가 됐을 거다. 그리고 우리는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니 그런 삶을 이어가고 있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인간성이라는 것은 죽음을 인지한 사람들에게만 있을 수 있는 현자의 감정인 거다.
물론 이런 사태를 대비할 학문이 있다. 바로 철학이다. 철학은 인간이 죽음을 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이해시키기 위한 학문이라고 해도 좋다. 죽음이 없었다면 철학은 나오지 않았을 학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철학이 없다. 공자의 사상을 중국에서 왜곡 시켜서 재탄생시킨 유교를 받아들이 것이 전부이고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이어가고 있어서 문제가 된다. 비판적으로 잘 고쳐서 썼다면 인과 예를 중요하게 생각한 학문이 왜 지금 우리나라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설명할 수 있을 거다. 이렇든 저렇든 자체 철학은 없다고 봐도 좋다.
결국 인지되지 못한 죽음, 인터넷의 지배, 자체 철학의 부재, 이 세 개의 이유로 사람의 인간성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선두주자가 바로 대한민국이고 그 결과가 바로 저출산, 선진국으로써의 일본을 용서하지 못하는 태도, 리드는 하지 못할지언정 과거 도움을 준 국가에 대한 고마움을 제대로 표시하지 못하는 태도 등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전 세계가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고도 있다. 코로나로 인한 사람들과의 자연스러운 거리감의 확산, 자체 철학이 있는 국가도 물질에 지배당해 사라지는 실정, 인터넷의 지배로 우리보다는 그래도 브레이크가 있는 정도 수준이지 곧 이들도 멈출거 같다.
모든 상황에서 세 가지 이유가 충족이 되면 그 상황을 멈추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위험한 건 이제는 욕을 먹을 각오로 나라를 이끌 위대한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국가가 붕괴되는 건 둘째치고 위신이라도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그 국민은 살기가 어렵다.
https://spike96.tistory.com/1646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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