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쌓기/런던살이 2023-24

런던살이 Day 129ㅣChristmas Eve

_교문 밖 사색가 2023. 12. 25. 08:11

런던살이 Day 129ㅣChristmas Eve

 

누군가에겐 명절이고 누군가에겐 축제일 수 있다. 관점에 따라 누군가는 조용히 누군가는 시끄럽게 보내고 싶을 거다.

 

[니콘 D40] 크리스마스 주간 사진.


1. 크리스마스는 역시 백화점이다. 그래서 Selfridges 백화점으로 향했다. 백화점에 도착해서 남성층을 둘러보고 있는데 스트리트 파이터들의 싸움을 직관해 버렸다. 큰 흑인 두 명이 탄력성 넘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싸움을 하는 모습을 나는 좀 신기하게 봤다. 싸움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사람들은 피신하기 시작했다. 싸움은 약 2분 정도 했는데 런던에 오면서 유튜브로만 보던 상황을 가끔 이렇게 현실로 보면 이게 진짜 현실인가?라는 생각에 1초 정도는 잠기는 거 같다.
 
이 싸움을 목격할 수 있었던 건 버스의 지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늘 타던 139번 버스를 타지 않고 13번 버스를 타고 갔다. 그 버스는 베이커 가 입구에서 멈추더니 15분간 운행을 하지 않았다. 대중교통이 운행을 하지 않는 시간으로는 꽤 긴 시간이었다. 만약 그 버스가 제대로 운행만 했다고 하면 우리는 그 싸움을 보지 않고 여성층에서 구경을 하고 있었을 거다.
 
리버풀에 이어서 싸움을 두 번째 목격을 한 것인데 흑인들만 싸우는 것을 목격을 하니 흑인을 오해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2. 이브날 이렇게 외출을 감행한 건 현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상하게 시내에서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잠깐 든 생각은 그래도 우리가 몇 번 야경을 봤다고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네 답을 알 수 있었는데 음악이 나오지 않아서다. 지난 외출 때는 우리의 조지 형님과 캐리 누나가 지겹도록 들렸는데 너무 들어서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어도 그래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책임졌는데 오늘은 음악이 자체가 없었다. 가끔 흘러나오는 노래는 간혹 있었지만 심지어 그 노래는 크리스마스와 관련이 없는 곡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크리스마스를 느낄 수 없었다.
 
일행은 이 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는 우리나라 설과 같은 명절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가설을 제시했다. 생각해 보니 서양인들은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까지 휴가 기간이라고 들었는데 그렇게 생각을 하니 우리나라도 설과 추석 때는 시내가 한산한 것처럼 여기도 그런 흐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리적 추론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니 상점은 쉬거나 4시 이전에 문을 닫는 경우가 많고 내일은 지하철마저도 쉬는 날이 되는 거 같다. 하지만 지하철이 쉬는 건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은 든다.
 
저녁을 먹으러 토트넘 코트로 향했다. 바이런 햄버거는 그래도 7시까지 하기에 야경을 구경하면서 걸었다. 중심을 약간 벗어나니 한가한 것이 되려 더 좋았다. 음악도 없는 시내에는 사람들만 북적이는 복잡한 곳일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코번트 가든에 있는 바이런보다 분위기가 더 쾌적하고 넓어서 좋았다.
 
3. 집으로 가기 위해서 토트넘 코드 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기타 버스킹을 하는 분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오른쪽 팔이 팔꿈치 아랫부분이 절단되어 없었다. 오늘 자전거 타시는 분 중에 왼쪽 팔이 없으신 상태로 도로를 달리시는 분도 봤다. 자전기 타시는 분은 버스가 지연 운행이 되면서 보게 된 분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걸 보면서 다양한 삶의 형태라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을 받아들이게 하는데 그 대상이 피부색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가지신 분들도 해당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들을 거의 볼 수 없지만 런던에서는 가족의 도움으로 산책을 하는 분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물론 런던에서도 마냥 장애인들이 타인의 시선에서는 자유롭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보다는 나을 거다.
 
(side talk)
 
1.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크리스마스는 피해서 전에 오는 것이 더 크리스마스를 느낄 수 있다. 조지 형님과 캐리 누나의 노래가 빠진 런던의 크리스마스는 장범준 빠진 한국의 봄과 같다. 물론 언제부턴가 잘 들리지 않긴 했지만 비유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2. 모든 건 다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15분 지연 운행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보여줄 게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런 걸 보면 40대 이후로는 운명을 믿지 않을 수 없는 거 같다.
 
3. Day 123 내용에서 영화 타임머신을 얘기했는데 원작이 소설이다. 15분 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로변 교차로에서 신호 대기하던 중 창문 너머로 H. G Wells가 살았다는 명패를 봤는데 이분이 원작자시다. 참 별 걸 다 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폰 15] 일행이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물론 팁도 넣었다.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큰 결론은 공존을 위해서는 완벽한 세상을 꿈꾸는 것은 좋지 않다는 거다. 아니면 완벽의 의미를 바꾸던가 해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