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쌓기/런던살이 2023-24

런던살이 Day 131ㅣBoxing Day

_교문 밖 사색가 2023. 12. 27. 08:51

런던살이 Day 131ㅣBoxing Day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 문제는 잡을 능력을 길렀느냐 못 길렀느냐의 차이다.

 

[니콘 D40] 크리스마스 주간 사진.


1. 일행의 에세이 내용을 가지고 토론을 했다. 속에 있는 내용을 모두 쏟아내니 몸이 가벼워졌다. 아.. 이런 식으로 억하심정이 쌓이고 남들에게 말을 못 하면 화병이 되는구나..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요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건 계절갈이와 여러 상황적 요소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에세이 선정 주제의 내용을 보니 세계의 벽은 높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서 틀에 박힌 주어진 주제를 잘 쓸 생각하지 말고 진짜 써야 할 내용을 알려 주었고 일행들과 토론을 해본 결과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되려 교수들에게 좋은 반향을 일으키는 학생으로 보이기에 좋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뻔한 내용 잘 써봤자 변별력도 없고 뻔한 내용은 영어권 학생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기에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글을 쓰는 것이 더 낫다.
 
아무튼 오늘 일행이 받은 학교 에세이 주제를 보니 역시 인문학자들을 과거만 보는 인간들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거의 현장에서 느낀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진짜 생각을 안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냥 많이 아는 걸 생각할 줄 안다는 범위에 넣어서 직위만 가지고 우려먹는 인간이라는 걸 느끼는데 어쩌면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자신들도 미래를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지만 볼 주 모르고 실패를 두려워하고 그래서 명성을 잃을까 봐 두려워해서 이런 식으로 과거만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아무튼 여러모로 세계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왜 학교를 자퇴하는지 알게 되는 날이었다. 손흥민을 만든 건 세계적이 코치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부모가 자식을 세계적으로 만드는 건 어쩌면 생각보다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걸 경험한 부모들이 그 자식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어려운 걸 해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쉬우니 그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2. 이렇게 속에 있는 내용을 토해내니 몸이 가벼워져서 늦은 오후지만 해가 진 오후에 스타벅스로 산책을 나섰다. 오늘 산책을 나선 또 하나의 이유는 오늘이 Boxing Day라 소규모 행사장에서 할인 행사를 하는 날이라서 미리 봐둔 REISS 외투를 보러 갔다. 298 파운드 옷이 170 파운드로 할인되었다. 마음이 흔들렸지만 참았다. 하나 사고 싶었긴 했는데 지금 런던이 그리 추운 것도 아니고 길어봤자 2월 전반기에 갈 것이고 나가면 얼마나 나간다고..라는 생각에 더 고민을 하러 스타벅스로 갔다.
 
3. 스타벅스에서 모처럼 일행의 타로를 봐주었다. 지금 쓰는 책이 잘 팔릴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지금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서 이제는 늦었다고 나왔다. 예전에는 잘 팔린다고 나왔는데 원래 8월 초에는 나왔어야 할 책을 아직도 쓰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은 쇼펜하우어다. 혼자 살아가라고 하는 쇼펜하우어에 지금 대한민국은 빠져있다. 일행이 쓰는 내용은 그와 반대다. 그리고 쇼펜하우어에 맞서는 철학자 하나도 제대로 언급할 수 없기에 역풍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나마 쇼펜하우어가 유행하기 전에는 함께 해야 한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도였는데 쇼펜하우어는 혼자 못 살아가는 인간이 뭉쳐서 사는 거라고 하는 정도니 말 다 한 거다. 거기에다가 일행이 쓰는 내용은 대한민국을 떠나 유학을 가야 한다는 내용인데 요즘 세계정세도 정세고 학비도 너무 많이 올라서 생각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다.
 
이런 타로를 보고 얘기를 나누는 중에 옆 테이블 자매가 자신들도 타로를 봐달라고 했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이렇게 빨리 이뤄질 줄 몰랐다. 원래 영어를 잘하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면서 숙소에서 1~5유로씩 받으면서 보는 것이 목표였는데 영어를 못하는 데 이렇게 훅 들어오니 좀 많이 당황스러웠다. 사실 나는 거의 굳어 있었다.
 
아무튼 언니분이 (혼자) 런던에 살지 아니면 남편과 함께 나이지리아에서 살지를 보고 싶다고 했다. 간단한 질문이기에  
흔쾌히 보았다. 결론을 간단히 말자면 언니분은 나이지리아에서 살면 풍족한 환경에서 살 수 있지만 아주 큰 괴로움을 느끼게 되고 런던에 살면 조금 어렵겠지만 자신이 이뤄놓은 무언가가 있기에 그걸 활용해서 자신이 살아있음, 존재의 쓸모에 대한 감사를 느끼면서 산다고 나왔다.
 
이 얘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동생분은 completely perfect,라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이건 의미가 있다. 원래 의뢰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문제에 갇혀 있어서 답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거나 너무 확대 해석해서 받아들일 때도 있다. 그래서 의뢰자를 자세히 아는 친구가 옆에서 검증을 해주는 것은 무조건 맞다.
 
하지만 타로를 다 보고 숙소에 왔어도 뭔가 답답함이 지워지지 않았다. 입은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것을 해서 즐거워 웃고 있는데 가슴은 내가 이걸 영어로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 같은 것이 박혀있는 느낌이었다. 10년 전부터 영어를 찔끔찔끔했더라면 오늘 타로는 영어로 내가 할 수 있었을 텐데 기회는 알고 보면 모든 사람들에게 오지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니 대부분 자신에게는 기회조차 오지 않는다고 착각을 하며 사는 것이 인생 같다. 나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일행들과 함께 있었느니 기회를 스치기라고 한 것이다.
 
아무튼 나는 외국에서도 내 타로가 통할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 통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나라와의 삶의 방식이나 문화의 차이로 인한 예기치 못한 오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확인해 보고 조정의 기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오늘 보니 최소한 큰 맥락에서는 문제가 없는 듯했다. 사례를 하겠다고 해서 나는 1 파운드만 달라고 했는데 10 파운드나 주신걸 보면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REISS를 들리지 않고 스타벅스에 들어갔다면 우리는 그 자매 옆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일행들이 사지 않아도 구경이라도 해보자고 해서 들린 REISS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보니 자매 옆자리가 비어있었던 거다. 마치 크리스마스이브날 13번 버스가 15분 지연 운행을 한 날처럼 말이다.
 
(side talk)
 
1. 일행이 스타벅스에 있을 때 일행의 첫사랑은 바로 옆 리젠트 파크에 있었다. 첫사랑이 런던에 있어도 연락하지 못한 이유는 첫사랑에게 연락할 능력을 키우지 않아서였다(day 106 내용). 내가 오늘을 위해서 영어를 배워뒀다면 동네 지인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텐데 나는 오늘 그 기회를 놓친 거다.
 
2. 자매들은 강아지를 데리고 있었는데 그 강아지가 우리가 오니까 반응을 보였고 심지어 내 다리 사이에서도 누웠었는데 그때 동생분이 Are you OK? 했을 때 Of couse! I have 3 puppy. So I love puppy.라고 했었어야 했는데 그냥 평범한 답변만을 했던 것도 후회가 된다. 원어민을 만나면 후회밖에 남는 게 없는 거 같다.
 
3. REISS에서 옷을 살지를 결정하는 것을 까먹고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