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살이 Day 126 (21. December. 2023)
사람이건 물이건 흘러야 신선하다.
내가 영국에 있다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느끼는 일은 집 보러 다닐 때다. 나는 이제 곧 떠나야 한다. 이르면 1월 중순이 될 테고 늦어도 2월 전반기에는 떠나야 한다. 그래서 혼자 남을 일행의 집을 오늘 두 군데 보러 갔다. 하나는 180만 원대 집이고 하나는 220만 원대 집이다.
180만 원대 집은 나이든 여주인이 집을 계약할 사람만 볼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큰 길가에서 기다렸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일행은 나왔는데 집을 다 본 건지 의문이 들정도였다. 그래서 물어보니 할머니가 자기는 평일 아침에는 무조건 집을 비우는 사람만 찾는다고 했다고 했다. 그래서 직장인이었으면 했다고 한다. 일행은 그 말을 듣고 얘기를 한 거실만 보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자기는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아마 혼자가 편하지만 돈은 필요하고 밤시간은 혼자사는 것이 드러나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서 운영 방침을 그렇게 정하신 거 같다. 그런 거 치고는 180만 원은 너무 비싸게 부른 거 같다. 아무튼 길가에서 본 할머니의 표정도 마치 분리불안이 있으신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집도 사실 바로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근처를 빙빙돌게 안내를 한 것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긴 했다.
이런 경우는 집이 좋더라도 안하는 것이 좋다. 경험상 집주인이 좋아야 그 집에 애정이 생겨서 지낼만하다. 가난한 유학생 입장에서는 좋은 집은 구할 수 없으니 집주인이라도 좋아야 집이 좀 불편해도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집주인 잘못 만나면 이것저것 신경 쓰여서 공부를 망칠 수 있다. 그러니 처음 유학 오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냥 기숙사를 하는 것이 나을 거 같다. 기숙도도 말을 들어보니 엉망진창이긴 하지만 그래도 관리인에게 항의라도 큰소리 내면서 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다시 한번 이 집을 구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며 램지 할아버지를 본받아야 하겠다.
그렇게 뷰잉 하나를 마치고 다음 뷰잉 장소로 향했다. 시간이 좀 남아서 추위를 피해 근처 현지 빵집에 들려서 커피와 파니니 하나를 시켜서 먹으면서 나는 책을 읽고 일행들은 다른 집이 있을지 찾아보는 시간을 갖었다.
우리는 지금 사는 지역이 마음에 들어서 가능하면 이 지역을 중심으로 집을 찾고 있지만 일행은 혹시 몰라서 학교 근처도 찾아봤는데 싼 가격에 나온 매물이 2군데 있어서 연락을 해둔 상태다. 버로우 마켓 근처라서 치안은 좋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싸면 일찍 일찍 다니면서 안전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생각해야 가격대에 맞는 집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학교 근처의 집에서 연락이 오면 그날 시내에 나가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시간에 맞춰 220만 원대 집으로 향했다.
비틀즈 앨범에 나온 애비로드 횡단보도 근처였는데 고급 연립주택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아파트 형식에 24시간 경비하시는 분도 있었다. 매물자를 기다리는 동안 밖에서 입주민 한 명이 경비하시는 분에게 작은 선물과 함께 크리스마스 카드를 건네면서 인사를 하는 것을 봤다.
매물자는 이전 입주민이었는데 1년 계약을 하고 이직을 하는 바람에 이사를 가야 해서 나머지 기간을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 거라고 했다. 처음으로 양복 입은 런던 직장인을 만났다. 마치 드라마 슈츠에 나오는 사람 같았다. 생각보다 쾌적한 방이었고 샤워실도 함께 있었다. 하지만 너무 독립적이어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마주칠 사람이 없기에 되려 이런 환경은 더 외로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지금 일행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구조의 집이 필요했다. 주방은 공용이었다.
대충 감을 잡은 것은 250만 원대 이상은 주방까지 딸린 집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좀 더 찾아보겠지만 이리저리 하다보면 180만 원대 이하의 집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약간 보이는 거 같다. 환율이 우리가 여기 막 도착했을 때처럼 1,730원 대를 호가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집을 찾는 시기도 아니니 뷰잉도 잘 잡히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행이 찾은 대학가 집은 150만 원 이하의 매물들이었다.
사실 동네 근처에서 왔다갔다하면서 본 매물이지만 이런 식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니 기분이 전환되는 느낌을 받았다. 확실히 인생이건 물이건 고여있으면 섞는다. 그러니 움직이든 있는 곳에서 성장을 하든 둘중 하나는 해야 사는거다.
'경험 쌓기 > 런던살이 2023-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런던살이 Day 129ㅣChristmas Eve (18) | 2023.12.25 |
---|---|
런던살이 Day 128ㅣ23. December. 2023 (17) | 2023.12.24 |
런던살이 Day 125 (20. December. 2023) (11) | 2023.12.21 |
런던살이 Day 124 (19. December. 2023) (11) | 2023.12.20 |
런던살이 Day 123 (18. December. 2023) (11) | 2023.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