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쌓기/런던살이 2023-24

런던살이 Day 111 (06. December. 2023)

_교문 밖 사색가 2023. 12. 7. 09:54

런던살이 Day 111 (06. December. 2023)

 

인생을 조건 반사적으로 살면 미래가 없다.

 

[니콘 D40] 개들도 이런 놀이의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과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다. 개들도 경험적 정보가 없으면 안전한 사람들에게도 이빨을 보이는 본능을 드러낸다. - 프림로즈 힐 -


모처럼 맑은 날이라서 프림로즈 힐로 산책을 나섰다. 비에 젖은 듯한 느낌을 주는 프림로즈 힐이 햇살을 받으니 초록 잔디가 반짝반짝 거리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런 풍경을 담고 싶어서 사진을 찍는데 옆에 있는 할머니가 Are you professional?이라고 하시는 거다. 싸구려 DSLR이 나를 그렇게 보이게 했다. 난 No, I'm not. I'm amateur.라고 했다. 또 틀렸다. 나는 아마추어도 아닌 취미 수준도 아닌 그냥 들고 다니는 수준이기에 그래도 적당한 단어는 It's my hobby.라고 답을 했어야 했다. 원어민과 대화는 사실상 없었기에 그냥 professional이라는 단어에 조건 반사적으로 amateur라는 단어로 대답을 했던 것이다. 심지어 amateur 앞에 an도 붙이지 않았다.
 
오늘따라 러닝 하는 사람들이 그것도 때로 모여서 많이 달렸다. 모처럼 맑은 날이라서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 모양이었다. 언덕 꼭대기에서 늘 찍는 산책기록 사진을 찍고 자주 보지만 질리지 않는 풍경을 오늘도 하염없이 보다가 내려왔다. 내려오는 도중에 아까 잠깐 대화를 나눈 할머니를 또 마주쳤다. 할머니는 영어로 뭘 찍냐고 물어보면서 이 풍경이 너무 아름답지 않냐면서 햇살과 햇살에 비친 잔디와 산책 나온 강아지들... 하시는데 내가 It is. 같은 대꾸라고 하면서 들었으면 몰라도 아무 대꾸가 없으니 갑자기 하시던 말을 멈추시고는 Can you speak English?라고 물어보셨다. 나는 당당하게 I can't speak English but I can understand.라고 답을 했다. 분명 I can hear you.라는 문장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익숙하지 않은 대화에 습관으로 입에 붙은 말만 조건 반사적으로 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의 대화방식이 딱 이렇다고 본다. 내가 이런 현상을 처음 느낀 건 '썰렁하다'는 유행어가 시작되고부터라고 여겨진다. 이미 그전부터 그랬겠지만 이런 집단현상적으로 동일한 단어를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현상은 이때가 처음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진지하고 내 생각을 이야기를 했는데 이걸 듣는 일행은 썰렁하네,라고 답을 하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나는 개그를 한 것이 아니라 생각을 얘기했는데 나오는 대답이 썰렁하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발견한 최초의 무지성이었던 거 같다.
 
어떨 때는 이런 무지성 답변이 지겨워서 "그냥 얼어 죽어라!"라고 한 적도 있었다. 이게 개그 같냐고 하면서 말이다. 생각 좀 하면서 살라고 했다. 아마 중학생 때였던 거 같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지금 생각해 보니 인간이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현상이 생기는 거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마치 내가 영어 답변을 알고 있지만 현지인과 대화를 해본 적이 없기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이건 우리나라 교육이 하나같이 천편일륜적이어서 그런 거다. 그래서 생각도 다 갇혀서 타인의 생각을 들으면 그에 대한 답변을 스스로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들었던 대답 중에 하나를 찾아서 내뱉는 수준밖에는 성장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마치 시리나 빅스비처럼 말이다. 
 
이래서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경험이 더 좋지만 여건이 안되면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다. 그냥 읽으면 안 되고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책은 인풋용이지 그냥 저절로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종이가 아니다. 사람들은 이런 착각으로 인해서 자신의 학력을 마치 자신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증명을 하려는 듯 우쭐댄다. 이제 학력은 종이를 많이 본 사람 수준으로 전락했다. 그 안에 글자를 외운 사람은 그래도 인정받아서 삶을 살아가고 그걸 내뱉는 수준에 이르면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최고 수준은 교수가 된다. 앵무새가 용량이 큰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똑똑하다고 한다. 이제는 이 똑똑한 자리를 AI가 차지하고 있다. 이런 사람이 자기 생각을 말하면 사람들은 그걸 카피하려고 한다. 그리고 학력이 낮은 사람들이 생각을 말하면 헛소리라고 한다. 같은 생각이라도 그렇게 대처를 한다. 무지성의 한계다. 같은 말을 들어도 학력에 따라서 다르게 판단하는 자신을 그것도 생각이랍시고 착각해서 자신은 생각하는 존재라고 여기기에 자신이 무지성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는 태반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학력 되는 사람이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교육의 일관성으로 말할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배출이 되어서 그런 시대가 온 것이 제일 큰 원인이지만 이제는 자기 생각을 말해서 어떻게 변할 세상도 아니기에 입을 다물고 그냥 살아가거나 자신만 대비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삶을 살아가는 정신적 자세는 배울 길이 없다. 생각으로부터 나온 말은 미래적이어야 한다. 과거를 얘기하는 이유도 미래를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현재만 얘기하길 바란다. 학자들은 이미 일어난 일을 분석하고 말하기만 좋아하지 스마트 폰이 등장해서 일어날 시대의 일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당연히 AI시대의 일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이과 학자들은 그래도 사라질 직업이나 생겨날 직업 같은 거라도 하는데 말이다. 다들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서 그렇지. 그러면 인문학자들이 상상력 좀 발휘해서 잡아주면 좋을 텐데 안 한다. 이런 학자들은 거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작가들의 상상력에 맡겨버리고 그냥 검은색의 글만 보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갇혀서 산다. 스마트 폰 없던 시대에 있었던 옛날 글들 말이다. 
 
이들도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는 국민들의 질문에는 그냥 함께 힘을 모아서 살아가야 한다는 조건 반사적인 말밖에는 할 줄 모를 거다. 우리는 이제 아무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거다. 법치주의 국가는 빨리 망한다. 진시황의 법치국가는 30년 밖에 가지 못했다. 법이 최고가 아니라 최저의 유지 수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성도 조건 반사적으로 하는 시대가 왔으니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다들 알아서 대비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인간성이 조건반사적으로 됐다는 것은 인간이 동물화 즉 (디지털) 원시인이 되어간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