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살이 Day 104 (29. November. 2023)
과거에는 아이들을 납치를 했었다. 지금도 그렇다 정신을 말이다. 그 범인은 스마트 폰이다.
일행의 수업이 하나 끝이 나서 늦게 등교를 하는 바람에 우리도 함께 나섰다. 시내 야경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일행이 수업을 듣는 2시간 동안 우리는 본드 스트리트 역에서 내셔널 갤러리까지 걸으면서 갈 예정이었다.
일행은 곧장 학교로 향했고 우리는 본드 스트리트 역에서 내렸다. 일단 옥스퍼드 서커스로 향했다. 그리 멀지 않다. 도착해서 우선 H&M에 들려서 싼 장갑을 샀다. 두 짝에 7.99 파운드였다. DSLR을 들고 다니니 한상 손이 노출이 되어 있어서 얇은 장갑이 필요했다. 매장에서 카메라를 야경을 찍을 수 있게 세팅을 하고 나섰다. 하지만 기대만큼 쉽지 않았다. 외장 플래시가 필요했다. 한국에서는 거의 필요 없기에 사지 않았는데 그리고 스마트 폰이 등장해서 DSLR의 필요성을 거의 10년 동안 무시하고 살다가 이제 와서 런던에서 느낀다. 런던에 올 때 사실 이 부분을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낮이 짧고 밤이 길고 그래서 시내 야경이 너무 예쁜 런던에서 그냥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후회하지 않을지를 말이다. 그래도 굳이 외장 플래시까지는 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ISO를 타협하고 대충 찍었다. 그래도 역시 폰카보다는 무게감이 있었다.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폰카가 너무 발전해서 굳이 이정도 차이로 DSLR을 사는 건 무리다. 정말 좋은 몇 백만 원 제품을 사면 몰라도 말이다. 내건 20년 전에 680,000원 정도 했던 초점도 세 개밖에 없는 정말 저렴한 제품이다.
그래도 사진을 정리할 때 품질 좋은 사진이 있을 때와 폰 사진으로 찍은 사진을 정리할 때는 느낌이 다르다. 폰카의 특유의 가벼움 때문에 화질이 좋아도 정리하는 맛이 살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DSLR을 들었고 마땅히 귀찮지만 않은 상황이면 망가지지 않을 때까지 쓸 예정이다. 그래서 런던에 적응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기 지금에서야 들고 다니는 것이다.
다시 옥스포드 서커스에서 피카딜리 서커스로 향했고 중간에 REISS에 들려서 겨울에 입을 외투도 한 번 골라서 입어봤다. 지난번에 일행이 양말을 사러 옆동네 REISS에 갔을 때 봐둔 외투였는데 오늘 입어보니 괜찮은 거 같아서 살지 고민 중이다. 일부러 옷을 사지 않으려고 많이 들고 왔는데 한국보다 춥지 않다는 말에 두꺼운 외투는 두고 와서 하나 사야 할 입장이긴 하다. 내 기준에 한국은 부산이었는데 부산보다 따뜻한 줄 알았던 내가 착각한 거다. 서울 기준이었는데 말이다. 역시 사람은 경험을 벗어나기 참 어렵다. 참고로 겨울에 서울 가본 적이 없다.
아무튼 그렇게 내셔널 갤러리에 도착을 했고 워터스톤(서점) 매장의 카페 들어가려고 하니 서점은 8시까지 하지만 카페는 6시까지 한다고해서 근처 네로에 가서 커피와 간식을 사서 책을 읽었다.
부산 서면에 가면 정말 볼일만 보고 온다. 해운대, 남포동도 마찬가지다. 시내에 이런 이벤트가 없다. 어설프게 겨울 왔답시고 전구 몇 개 달아놓은 수준으로는 어떠한 감흥이 생기지 않는다. 어릴 때야 친구나 형들 만나서 놀았지만 나이가 드니 서면이라는 동네는 어른들에게는 그저 그런 곳이었다. 결국 또 말하지만 사람의 감정을 알아주는 도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둘러만 보고 왔다는 이유로 감정의 풍요를 느낀다.
걷기만 해도 감정이 정화가 되는 도시의 힘은 어떻게 다시 돌아오지? 라는 강한 의지를 만들어낸다. 심지어 내셔널 갤러리는 공짜다. 물론 진짜 여기에서 살게 되면 세금 문제, 집 문제, 언어 문제, 직장 문제 등등의 일들로 떠나고 싶어 지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돈만 많으면 인터넷 빵빵한 걸로 설치하고 런던에 살고 싶다. 2 존에서 말이다. 심지어 지금 돈으로 여기 숙소와 동네도 만족스럽다. 돈만 있으면 옆동네로 가면 더 좋을 거 같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혼자 느낀다면 되려 외로울 수 있을거 같다. 즉 이 모든 것을 감사하게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대화가 가능한 일행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혼을 하려면 스스로 생각을 담은 대화를 할 능력부터 키우고 그 대화가 가능한 사람을 찾아서 해야 행복을 지속할 수 있다. 그래야 자녀들에게 생각을 유전시킬 수 있는 거다. 안 그러면 우리들의 자녀들을 스마트 폰에게 뺏겨버린다. 네이버나 구글이라 불리는 이모나 삼촌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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