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있다는 논리
운명도 언젠간 물리학으로 정의 내릴 수 있다고 난 확신한다.
똑같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유전자 조작에 의해서든 뭐든 간에 그야말로 똑같다고 하자.
그런 사람이 100명이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다 똑같은 환경에서 자랐다고도 하자.
그래서 하고 싶은게 같고 심지어 직장도 같은 직장으로 가고 싶어 한다.
허나 그 직장은 10명만 뽑는다.
지원자는 100명이고 딱 이들밖에 없다.
그러니 10명은 반드시 합격하고 90명은 반드시 떨어진다.
그러니 합격한 10명은 어떤 이유에서 합격하게 될까?
그것이 바로 운이다.
서로 다 똑같은 상태니 10명이 뽑히는 건 운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운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결론이 거부감이 들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내가 볼 때는 현실과 큰 차이가 없다.
더군다나 기업가 입장, 면접관 입장에서 보면 더 그렇다.
앞선 예의 현실적 버전의 예들 들면 승무원이 가장 비슷한 예라고 봐진다.
비슷한 신체에, 비슷한 외모에, 비슷한 학력의 사람들이 500명 지원하는데 50명 뽑는다고 가정해보자.
승무원이 되려고 노력을 하겠지만 그것이 면접에서 보이는 실력으로 이어지는 노력은 딱히 없을 거다.
있다고 한들 몇 명이겠는가?
그래! 한 10명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럼 남은 자리는 40자리가 된다.
이건 비슷비슷한 지원자들이 무려 490명이나 된다는 뜻이다.
면접관 입장에서는 10명을 제외하고는 다 거기서 거기다.
면접 상황에서는 돋보이는 존재로 보이기 위해서 특별히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거다.
앞에 내가 가정한 예와 크게 다를 게 없다고 본다.
이거 말고도 간호사도 그럴 것이고 대기업 면접도 결국 학벌 비슷비슷한 사람들과의 경쟁일 것이다.
결국 운은 이런 비슷비슷한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면접관들에게(선택권이 있는 사람들에게) 선택이 되는 도움의 힘을 가진다.
솔직히 면접관 입장에서 다들 비슷비슷하고 결격 사유가 없다면 누가 돼도 상관없을 테니 결국 자신의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사람이 마음에 든다는 것 같은 그런 생각 말이다.
물론 면접관들은 자신들 회사에 도움이 될만한 사람으로 엄격히 생각한 후에 결정을 내리겠지만 몇 백 명을 봤는데 비슷하다면 그리고 두 명 남았는데 너무 똑같은 인재라면 결국은 후보자들의 강한 운이 면접관에게 전달이 되거나 통하거나 해서 면접관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운을 키우는 방향은 내가 면접관들에게 어필이 되는 운을 키우는 것이고 두 번째 방향은 면접관 취향(회사 취향)에 맞게 운을 만들어야 한다.
솔직히 다들 합격의 최하 기준은 충족을 시키고 지원을 했을 테니 몇 백명의 사람들 중에 최종 합격의 기준이 뭔지 모르고 누군 합격하고 누군 떨어지는 것에 대한 의문이 생기거나 누가 물어본다면 운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물론 이 모든 것은 먼저 실력은 다 갖춰진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간혹 실력은 등한시하고 운만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현실(실력)을 무시하고 운만 있다고 한들 면접관이 바보가 아니어서야 아무 의미가 없고, 면접관이 바보인 회사는 안 들어가는 것이 더 좋은 거다.)
결국 같은 말인 거다.
허나 내가 말하는 운은 여러분들이 충분히 채울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여러분들이 원인 모를 상황을 말할때 말하는 운은 그날의 상황 그날의 면접관 기분 그날 마침 나에게 있었던 일들로 인해서 생기는 특별한 기운 같은 것을 말하는 차이일 뿐이다.
쉽게 말해서 나는 운도 여러분들이 만들고 쓸 수 있다는 말이지만 후자는 운은 여러분들이 어찌할 수 없는 특별한 힘이라고 치부를 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위로를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허나 위로는 위로다.
떨어져서 다음을 준비하는 힘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기왕이면 힘들더라도 운을 만들어 활용을 한 다음 합격해버리는 게 낫다.
할 수 있는 것만 해서 난 최선을 다했다고 하기보다는 해야 할 것을 해서 합격해 버리는 게 낫다는 뜻이다.
이 세상은 본인 기준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는 원하는 목적에 맞게 자신을 성장시켜나가는 사람들 위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그리고 운을 만드는 방법은 이글에서도 간단히 언급은 하겠지만 자세한 내용은 블로그 여기저기 흩트려 놓듯 올려놓았다.
필요하면 블로그를 정독해서 참고하길 바란다.
자! 이제 이걸 연애에 대입해보자.
괜찮은 이성이 있다.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고 그래서 연애를 해서 결혼할 만한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어 진다.
그래서 결혼하기 괜찮은 사람이라면 결혼까지 하려고 한다.
후보 1은 항공사 파일럿이라고 해보자.
후보 2는 국제변호사를 준비하는 유학생이고,
후보 3은 대학 교수가 확정되어 있는 강사고, 다들 수입은 넉넉한 수준이다.
이들을 예를 든 이유는 내가 주로 상담을 하는 사람들이 여성이고 나의 상담을 받고 만난 남자들이기에 적당한 예로 들기에 무리가 없어서이다. (물론 의사, 법조인 등등도 있다.)
암튼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한 명의 괜찮은 여자가 이들을 한날에 다 대시를 받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여자는 후보 셋 중 한 명을 만나게 되어 있다고 하자.
여자는 여행을 떠난다.
강원도다.
후보 1은 강릉에, 후보 2는 속초에, 후보 3은 양양에 있다고 가정하자.
여자는 친구들과 혹은 혼자서 강원도 여행을 계획했고 강릉으로 갔다.
속초로 갈 수도 있었고, 양양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강릉으로 간 것이다.
그리고 후보 1은 카페에 있다고 여자를 보고 반해서 대시를 했고 둘은 연애를 시작했다.
둘 다 행복하게 오랫동안 살았다고 가정을 했을 경우 그리고 남자가 더 행복했다고 했을 경우 이 남자의 운으로 여자가 속초가 아닌 양양도 아닌 강릉으로 가고 싶다고 느끼게 해서 끌어들인 것이고, 여자가 더 행복했다고 했을 경우 여자가 제주도가 아닌 부산도 아닌 강원도로 여행지를 정했고, 속초도 아닌 양양도 아닌 강릉으로 목적지를 정해서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대시를 받은 것이다.
마침 그날 그 시간, 그 공간에 말이다. (물론 이건 이해를 돕기 위한 쉬운 기준으로 말한 것이다.)
그리고 여자는 후보 2와 만나도 상관없었고, 후보 3과 만나도 상관없이 행복했을 것이다. 근데 마침 후보 1과 만난 건 후보 1이 나머지 후보들보다 운이 좀 더 강해서 여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더 강해서 만날 수 있었다고 봐도 좋다.
그리고 여자는 다시 서울로 돌아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카페에 들러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와중에 널찍한 테이블에서 서로를 모른 체 노트북만 바라보며 후보 2와 함께 1시간 이상 있었던 적이 있었고, 후보 3은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여자를 멀리서 보면서 말이라도 걸어볼지를 고민하다가 여자의 남자 친구가 오는 걸 보고 포기를 했다고 해보자.
아마 여자가 속초에 갔다면 후보 1과 3이 그랬을 것이고, 양양에 갔다면 후보 1과 2가 이랬을 것이다.
이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직장 버전으로 설명을 하면 좀 더 이해가 잘 될 것이다.
여자는 고려시대에 태어났고 혼기가 차서 시집을 보내야 했다. 그때 아버지가 적당한 신랑감을 고르고 있었는데 성에 차는 남자를 찾지 못해서 고을에서 50km 밖까지 딸아이의 남편감을 찾는다는 방을 붙인다고 해보자.
그럼 이걸 본 남자들은 최저 조건을 확인해보고 면접을 봐도 되겠다는 확인을 한 후 여자를 만나서 구애를 할 거라고 생각을 해서 여자가 있는 고을로 간다. 이런 남자가 100명이고 이 중에 후보 1,2,3이 있다.
이렇게 설명을 하면 이해가 편할 것이다.
허나 우리 삶은 이런 식으로 되어 있지 않다.
현실 버전은 서로 이동을 해서 만나거나, 둘 중 한 명이 누구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이동을 하는 예가 더 맞는 것이다.
만약 여자는 서울, 후보 1이 부산 사람이라고 가정을 해보자. 이 둘이 평상시에 만날 일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만날 확률이 사실상 더 높다.
후보 2와 3이 서울에 산다고 해도 후보 1이 운이 더 강하면 2와 3을 만날 일을 차단해서 강릉에서 만날 수 있게 하는 힘 운이다.
가령 여자가 소개팅을 제안받았는데 그 대상이 후보 2였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그 소개팅 날짜가 마침 여자가 강릉에 가는 날이어서 다음으로 미루게 되는 힘이 후보 1의 운의 힘이라는 것이다.
이 운의 힘을 우리는 인연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엄격히 말해서 인연이라고 할 수 없지만 우리 같은 양자적 존재가 양자적 세계에서 살아가면서 양자적 세계에 국한된 삶을 살고 있다면) 보통의 사람들은 그렇게 불러도 상관없다고 본다.
결국 인연이다, 라는 것도 만날 '운'이 있다, 라는 뜻이니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양자적 인연'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엄격히 분리를 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니 오해가 생기는 거니까.)
만약 이렇게 서로 혹은 한 명이 이동을 하지 않을(혹은 못할) 상황이라면 주변의 사람들 중에 한명일 가능성이 높다.
혹은 한 다리 건너는 소개팅이거나 업체 거나 아님 어플이거나 하는 것이다.
이런 만남도 운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경우도 많겠지만 대체로 우리의 삶은 주변의 상대를 랜덤의 경우로 누군가를 만나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
누군가에게는 듣기 싫은 얘기겠지만 정말 그렇다.
운이란, 타인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인가? 나아가 세상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인가? 가 운을 만들고 모으고 사용할 수 있는 힘인데 요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건사하는 것을 목표로 자식도 얼마나 좋은 유치원에 보내는 것으로 시작해서 학교와 학원 알아봐 주는 수준에서 끝이다.
어찌 보면 자기 자신이라고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타인인 자식에게 마저도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 0에 가까우니 보통 사람들은 운이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결혼할 시기에 적당히 나에 조건에 맞는 사람을 사는 지역(공간)이 가까운 사람을 만나서 서로의 합의 하에 결혼을 하는 거라고 봐도 좋다.
이 관계가 안정적이고 서로 교양이 있다면 서로의 관계를 웃으면서 유지시킬 수 있고, 한쪽이라도 불안해한다면 집착하게 되거나, 더 애정 표현을 과하게 하거나 해서 지치게 만드는 일이 벌어지는 수준이다.
그리고 후자는 사랑을 더 강하게 어필한다.
사랑해서 그런다고 말이다.
하지만 사랑이 아니다.
생존 본능에 가까운 집착적 감정일 뿐이다.
이런 랜덤적 만남을 난 그냥 '우연적 만남'이라고 한다.
사회가 정한 30살이라는 적당한 시기에 생존적 본능과 합해져서 가까운 공간에 사는 사람이나 그 소개로 만난 결혼은 그냥 우연적 만남일 뿐이다. 지구가 우연히 생겨났고, 그 안에서 생명체가 우연히 태어났으며, 그 안에 인간이 우연히 이렇게 진화를 한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인류라는 개념으로 나라는 존재를 바라볼 때 우린 거의 양자적 존재 정도고 양자역학에서의 전자는 확률로 존재하듯이 보통의 존재인 우린 그 정도 수준이기에 내가 결혼하고 싶은 시기에 확률로 누군가를 만나서 결혼을 하는 거다.
이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공자는 물리학적으로 보면 양자적 존재가 아니다. 거시적 존재로써(시공을 초월한 영향을 세계에 미치고 있는 존재로써) 세계 4대 성인으로 추앙을 받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공자의 아버지는 공자가 태어났을 때쯤에는 70세였다.
아내가 무당집 셋째 딸이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나이가 20세 전후였다.
공자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들은 만났어야 했다. 지금의 유교는 엄마 쪽의 무당집 전통에 의해서 전해진 거라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자의 뛰어난 지혜는 아버지의 삶의 경험에 녹아든 유전자를 받아서 그랬을 경우를 생각해보면 공자의 부모는 (공자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시공을 초월해서 세상에 영향을 미칠) 인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러분은 50세 많은 남자가 인연이라고 생각해서 만나고 싶은가?
아무리 내 아들이 공자가 될 사람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냥 우연은 우연이고, 인연은 인연이다. 좋고 나쁘고의 차이가 아니다.
인연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셰익스피어의 사적 언어에 갇힌 우리의 환상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외모와 합쳐져서 생겨난 아름다운 착각일 뿐이다.
인연이 더 좋고, 우연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린 인연과 우연한 만남을 따지기보다는 이 한 세상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것을 목표로 생각해야 한다.
한 상담자는 공군 파일럿을 만났다.
그 남자의 계획은 재대 후 외항사로 입사를 해서 외국에서 살아갈 생각이었다.
출신이 공군 조종사다 보니 여기저기서 오라는 곳도 많고, 기본 연봉은 2억 원이 훌쩍 넘는 수준이었다.
상담자는 나에게 상담을 받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KTX에서 만났다.
남자가 상담자 옆자리에 앉았는데 남자는 상담자를 보고 반해서 연락처를 물어봤고 서로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상담자는 연봉 2,300만 원 정도고 키도 작은 편이고 몸매는 왜소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얼굴은 괜찮은 편이어서 얼굴에 집중을 하라고 했고 마사지 법도 가르쳐 줘서 그걸 꾸준히 하지 얼굴에 균형이 맞춰지면서 예뻐졌다.
그리고 운을 키우는 연습을 계속시켰다.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연습을 말이다.
허나 잘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상담을 지속적으로 하는 거다.
그래야 자기변명에 갇혀서 안 하면서 하는 척하는 수준을 넘어서고, 한다는 자기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 이 남자를 만나게 된 거다.
상담자는 이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상담을 멈추듯이 진행을 했다.
그리고 하나씩 남자의 문제점이 시작되었다.
남자의 집착과 의심이 시작되었다.
상담자에게 난 운동을 시켰다. 몸매가 왜소한 건 결혼 후 성적 매력 어필에 문제가 된다.
그러니 몸매가 왜소해도 운동을 해서 탄탄한 몸매를 만들라고 했다.
그나마 상담자가 꾸준히 하는 것이 이거였다.
남자는 연애를 하면서 하나씩 간섭하기 시작했다.
상담자가 헬스장 가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허나 상담자는 운동이 좋다는 것을 느끼는 단계에 접어들었기에 계속 간다고 했고, 남자는 상담자에게 운동을 계속하는 대신 남자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도 했다.
이런 현상이 생기고 다시 상담 연락이 왔다.
그리고 남자를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줬지만 상담자는 시키는 데로 하지 못했다. 그러니 남자가 원하는 대로 되지도 않았다.
결국 헤어졌다.
헤어지고 나서도 남자는 상담자에게 매달렸다. 상담자는 조건이 너무 좋은 남자를 놓친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다시 만났다. 하지만 결국 헤어졌다.
완벽히 헤어지고 나서 난 상담자에게 아무리 운을 키워온 다 고해도 상담자가 바라는 욕심만큼의 능력과 운을 채우지 못하면 딱 상담자가 부족한 정도의 상태에 남자를 만나게 되어 있는 거 같은 현상을 느끼냐고 물으니 격하게 동의를 했다.
쉽게 말해서 내가 부족한 만큼의 부족한 대상을 만났다는 것을 느꼈다는 거다. 그래서 상담자는 더 성장하는 운을 만들고 싶어 했다.
이 상담자가 만난 사람이 인연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거다. 의심이 병적인 것과 결국 헤어졌으니 우리나라 정서는 인연이 아니라고 하지 인연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건 상담자가 운을 만들어서 이런 우연적인 만남은 생긴 거다.
KTX 옆자리에 연봉 2억이 넘는 남자가 앉아서 연락처를 물어본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닌 거니까.
그날, 그 시간, 같은 공간, 옆자리라는 우연이 다른 사람에게도 있을 수 있었지만 상담자에게 일어난 것은 상담자가 나와의 상담에서 운을 키워온 결과인 거다.
물론 누군가는 인연이 아니냐고도 하겠지만, 인연은 이 세상에 무언가를 할만한 힘을 가진 자와 만나기로 되어 있는 힘이 인연인 것이고, 운은 내가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욕구가 내가 한만큼 능력을 갖춘 상대방을 만나게 하는 힘이라는 큰 차이가 있다.
즉 공자의 부모님은 공자라는 세상에 영향을 미칠 아들을 낳기 위해서 만나게 된 인연이고, 상담자는 자기를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의 조건에서 자기가 다 채우지 못한 운만큼 빠진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근데 우리가 상식적 혹은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인연이라는 개념과 너무 비슷하니 이걸 굳이 인연이라고 표현을 하려면 '양자적 인연'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좋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 다른 상담자 중에 운을 만들어서 자기에게 딱 맞는 사람을 만난 경우가 있는지가 궁금할 거다.
물론 있다.
그리고 그들도 나에게 상담을 다 끝내지 못하고 만난 남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에게 부족한 만큼 딱 부족한 사람이었다고 인정을 한다.
그래서 상담을 끝까지 하고서 자신이 원하는 상대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결혼 준비도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 같은 양자적 사람들은 인연을 기다리면 안 된다.
운을 만들어야 한다. 타고난 운이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이 현실에게 운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리는 지하철에서 나를 쫓아와 자신이 안전한 사람이라고 어필을 하면서 연락처를 물어보기도 하고, 여행을 가는 기차 안에서 옆자리에 앉아 나에 연락처를 물어보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데 이런 우연이 생겨서 내가 내 마음에 드는 상대방을 만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아직 인연을 못 만나서라고 하지만 인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아주 거대한 개념이고, 우린 자기 욕심에 맞는 대상을 만나기 위해서 운을 만들고 키우고 유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당신이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해서라고 생각을 한다면 당신은 게으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하는 일이나 하면서 저절로 나를 구원해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게으름으로 30대를 넘겨서 친구들 다 떠나고 나만 남았다고 서둘러 경제적 조건 맞는 사람을 찾다가 못 찾아서 좀 깎아내리고 겨우 만난 사람과 결혼을 한다고 해서 인연을 만난 게 아니다.
물론 결혼식 날 표정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인연을 만난 사람처럼 행동해야겠지만 그리고 그런 착각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알겠지만 인연이 아니다.
누군가를 만날 운도 없어서 대충 같은 직장이거나 친구의 소개 거나 업체 거나 어플이거나 하는 나와 가까이에 있는 혹은 연결선 안에 있는 사람을 만날 거다.
물론 이런 사람과 결혼을 해도 표정은 인연을 만나서 행복한 표정을 지을 거다. 내가 결혼을 하니 이 사실 자체가 인연인 거다. 결혼이 어디 보통일이냐며 말이다.
이러다 보니 우리나라 이혼율이 60%나 되는 거다.
그러니 기왕이면 내가 원하는 조건을 만나려면 끝까지 이혼을 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에 맞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서 운을 키워서 딱 이 조건에 맞는 상대방을 만나는 삶을 살아라.
운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헛소리나 되는 일이 안될 때 핑계 삼아 말하는 안주거리가 아니라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운이 있어야 나와 비슷한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선택이 되어 취업도 하고, 내가 원하는 사람과 만나게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갈 수 있는 거다.
이 글은 원래 운이 있다는 원리를 논리적으로만 적으려고 했는데 글이 너무 짧아서 인연과 운의 차이점도 설명하게 되었다. 읽는 사람들의 이해에 방해가 된다면 분리를 시켜서 다시 올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설명을 물리학 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우린 (상대적) 양자적 존재로써 파동이다.
그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너무 많아서 신 혹은 운명 입장에서 여기저기 다 존재하는 파동적인 상태,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상태인데 그러므로 우린 관찰자에 의해서 결정되는 존재일 뿐이다.
우리가 입자가 되기 위해서는 관찰자가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대상이나 직장에 관찰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의 파동적 성질이 결정이 되어 입자화 된다.
확률적으로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나(=나와 비슷한 존재가 무수히 많은 상태의 나)라는 존재가(파동적 성질) 그 시간, 그 공간에서 의미가 있는 존재(입자화)로 된다는 뜻이다.
관찰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맞는 운(에너지)을 만들어서 빛을 발산시켜야 한다.
그래야 그 빛을 보고 관찰자가 내가 있다는 것을 인지(관찰)하게 되어 내가 입자(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YWryVDQWO0&t=11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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