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타인의 영향에 의해 바뀌게 되어있다. (feat. 영화 '관상')
내가 타고난 운명도 그렇게 되려고 해야 이뤄지는 것이다. 운명은 저절로 목적지까지 이끌어주는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다.
(2014년 3월 16일 최초 발행)
송강호는 20대 여자 시신의 상을 보고 사고 없이 70세까지 장수할 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죽었다. 바로 남편에 의해 살해가 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 인생이고 그래서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나의 팔자는 70까지 무병장수할 상이나 그것은 그야말로 타인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내 인생이라는 국한된 삶의 테두리 안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태어나서 부모님의 영향을 받고, 부자인 경우는 할어버지, 할머니 영향도 받는다. 그리고 친구의 영향을 받고 이건 간접적으로 친구 부모님의 영향도 받는다는 뜻이다. 또한 책이나 영화를 보고 깨달음을 얻는 영향도 받는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분위기에 휩쓸려 살게 된다. 이것을 풍수지리*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내 인생이 타인의 간섭을 받고 얼마든지 바뀌게 된다는 뜻이다.
*풍수지리는 배산임수같은 지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조건 좋은 땅에는 좋은 사람들이 살아서 사람이 성장하기 좋다는 것이다.
아무리 70세까지 무병장수 한다는 팔자를 타고났어도 부모님에게 가난을 물려받았다면, 친구와 함께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몸을 혹사는 습관을 들여 20대 때 당뇨가 걸렸다면, 회사의 회식 분위기가 한 달에 한두 번씩 폭탄주를 먹어야 하는 곳이라면, 사람들에게 꿀리지 않게 살기 위해 스트레서 받아가면서 억지로 삶을 살아간다면, 더군다나 중국에서 오는 황사나 미세먼지는 이제는 누구도 피해 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무리 70세까지 무병장수를 하는 타고난 팔자를 가졌더라도 이런 환경에 노출이 되어 있다면 우리는 무병장수 팔자를 그대로 살기는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여기 관상이라는 영화처럼 남편에게 살해당하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나타나는 사건이다. 영화처럼 이렇게 타인에게 직접적인 간섭이 있는 경우는 더욱더 70세까지 무병장수하는 삶은 어려워진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남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살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최소한 남의 좋지 않은 영향을 받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남의 좋은 영향을 받는 노력을 하면 더 좋다.
타고난 좋은 운명이란 내가 늘 얘기하듯이 우리 인생에 약간의 도움만 줄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70세까지 무병장수할 팔자로 태어났을 경우에 그런 노력만 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정도다. 담배를 피우는 습관을 버리면 다른 사람들보다 건강의 회복력이 빠를 것이다. 혹은 스트레스 많이 받는 직장에 가더라도 긍정적인 성격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는 정도, 이 정도 수준이다.
운명이란 딱 이 정도가 우리 현실에서의 운의 효과다. 정말 고작 이 정도인 것이다.
누군가는 운명이 고작 이 정도냐? 생각할지 몰라도 '고작'이라는 이 정도가 이런 운명을 타고나지 않은 사람보다는 훨씬 건강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어쩌면 완전 자연에서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하고 싶어 자연에서 일만 하면서 살아간다면 100세도 문제가 없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너무 효과가 미미해서 시시하다고 생각이 된다면 어떤 이는 반대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가정해보자. 남들보다 담배를 조금 피우는데도 폐병으로 콜록콜록거리면서 병원신세를 지어야 할지 모르고 담배를 끊었음에도 불구하고 회복도 느릴 것이다.이런 운명을 타고났으면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해도 항상 불만을 가질 성격이어서 항상 스트레스를 달고 살지도 모른다. 이런 운명을 타고난 사람에게는 고작이라는 정도의 크기가 죽음으로 내몰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고작의 의미가 긍정적인 것은 정말 작게 느껴지고 부정적인 것은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나를 해치는 것에 대한 보호본능이 있어서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결국 같은 크기의 '고작'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 노력 없이도 잘 되고 싶은 욕심도 있으니 더 그렇게 느낄 거다.
아무튼 내가 타고난 운명을 고작이라는 작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사람들은 자기가 살아갈 길을 가능하면 운명 속에서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운명은 그야말로 고작이라는 수준의 크기밖에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90% 이상은 모두 노력을 해야 스스로의 운명을 찾아 잘 살아나갈 수 있다.
그러니 스스로의 운명이 좋다는 말을 어디서 듣고 난 잘 될 거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절대 운명은 당신을 도와줄 수가 없다. 그야말로 운명은 고작 정도 수준의 크기로 밖에 도와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타고난 운명을 찾아 열심히 노력한다면 100명 중 2등까지 할 노력을 했는데 그 '고작' 정도 운명의 힘이 1등으로 만들어서 줄 수 있고, 당신이 91번째가 될 정도로 밖에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 80번째 안에 들어가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운명의 도움은 '고작' 이런 것이다.
이런 운명은 관심만 가지면 그리 어렵지 않게 주위에서 볼 수 있다.
공부를 아주 잘하는 의뢰자는 의사가 되고 싶어 했다. 근데 5번이나 떨어졌다. 근데 자신이 떨어진 의대보다 합격점수가 높은 공대는 다 붙었다. 이 사람은 의사가 될 운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고작이지만 운명은 우리의 삶을 간섭한다. 다시 말해서 이 사람의 노력은 늘 100번째 안으로 붙을 노력만 했던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난 다음에는 아주 낮은 의대로 가라고 했다. 그렇게 했더니 붙었다.
아주 낮은 의대는 굳이 100번째 안으로 해서 붙을 이유가 없는 곳이기 때문인 것이다. 낮은 곳이니 80번째 안에는 충분히 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떨어질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운명을 피해 가는 노력도 필요한 것이다. 대신 합격한 의대 수준이 낮아졌다는 것은 명해야 할 부분이다.
그래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결국 아무리 좋은 운명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운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90%의 노력은 한다는 뜻이다. 영화의 대사를 빌려서 말하자면 내가 미간이 넓어 70세까지 무병장수할 닭상이면 최소한 나를 공격할 족제비 상은 피해야 하는 노력을 해야 70세까지 무병장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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