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경험론/인생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하여

_교문 밖 사색가 2007. 8. 20. 06:57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하여

 

 

사람이 사람 사이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진리다. 그러면 상처를 받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당신도 상처를 주는 사람이다.  그러니 상처를 각오하고 대화를 통해서 연고를 바르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는 것이 인간관계라는 것이다.

 

 

[니콘 D40] 몬주익 언덕 올림픽 스타디움 in 바르셀로나

 

 

우린 사람을 사귀고 사랑함에 있어서 상처를 각오해야 함을 알고 있다.하지만 상처를 받기 싫은 것도 사실이다. 마음에 상처라는 것은 암만큼 치료되기 어려우니까. 그럼 사람을 사귀지 않으면 될까? 그럼 상처를 받는 일도 없을 테니까. TV랑 책을 친구 삼아서 지내면 그러면 될까?

 

하지만 좀 외로울 것 같다. TV랑 책은 나에 맘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을 거니까! 항상 TV랑 책은 나에게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라고만 할 거다.

그럼 인터넷은 어떨까!? 거긴 내 얘기를 글로나마 마음을 표현할 수도 있고 거기에 대한 반응도 있으니까! 물론 악플이 따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아직은 그런 면이 없었다. 그리고 동호회 특성상 악플이란 걸 쉽게 달수도 없기도 하다. 그럼 이렇게 사는 게 좋은 걸까! 상방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긴 하지만 외로움이 인터넷 동호회로 사라질까? 어쩌면 더 외롭지 않을까? 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대꾸라는 건 껍데기가 아닐까? 그리고 어차피 인터넷 동호회도 친목이 목적이니 만큼 인간관계를 피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보니 당연히 글로써 모든 감정을 전달해야 하고 그로 인해 생기는 오해는 없을까!? 난 있었는데. 찾아가서 말로 해명하고 싶었지만 그렇수도 없는 공간이라는 것도 확실하다.

 

결국 우리는 외로움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극복해야 한다. 거기에는 외로움을 극복하는 약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약이 있다. 그래서 우린 사람과 사람 사이를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l 그럼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를 덜 받는 길은 없는 걸까?

 

제일 훌륭한 방법은 겉으로만 친해지는 방법! 최고다! 직장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그저 웃음만으로 그저 화재거리나 얘기하며 좀 더 친해지고 싶으면 공동의 적을 뒤에서 얘기하면서 지내면 친해진다. 분명하다. 거기에다 마음속 깊은 얘기는 절친한 친구들에게 말하면 정말로 완벽한 인간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물론 겉으로만 친한 관계는 그 공간 안에서만 가능한 게 흠이긴 하다. 직장이면 직장! 학교면 학교! 딱 거기서만 가능하다.

어쩌다 밖에서 친한 척할 기회가 있다고 해도 그 순간뿐이다. 어디 함께 놀러 갔다 왔다 해도 설사 그게 아무리 재밌어서 다음날 화재거리가 되어도 겉으로만 친한 관계는 그 순간뿐이지 그 일로 인해서 친해지는 도약이 되진 않는다.

 

얼마나 편한가! 더 이상 친해지지 않아 서로 성가실 필요 없고 속마음 얘기할 친구는 어차피 정해져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모두가 겉으로만 친하니 뒤어서 욕을 얻어먹을 상대가 바로 당신이 될 수가 있다. 소문을 듣지 못하면 상관없다. 하지만 못 들을 리 없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의 순리니까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상처를 받게 되는 건가???

 

그럼 어쩌지? 참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그냥 모든 상처를 각오하는 게 어떨까!? 난 이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사람 사귀는 모든 건 어쩔 수 없이 상처 투성이다. 이건 진리가 아닌가 싶다.

 

[갤럭시 노트 9] 서피 비치

 

 

이런 진리를 피하려고만 하니 상처를 더 받게 되는 거다. 당연히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맞서면 같은 상처라도 받아들이는 양은 훨씬 적어진다.

바닷가의 조약돌은 처음부터 그렇게 반들반들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것들도 처음에는 공사장의 울퉁불퉁한 거친 돌들과 마찬가지 신세였다. 하지만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파도에 한 번, 두 번, 세 번.. 그렇게 백만 번.. 휩쓸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날카로운 부분이 상대방의 부드러운 부분에 닿아버리게 되고 그렇게 닿아버린 부분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고 또다시 파도는 그칠 줄 모르고 다시 한번 돌들을 휩쓸고 이번에는 반대로 그런 상황을 만들어 버리고 그러면 상처를 준 부분은 닳아서 깎은 지 오래된 연필처럼 뭉특해지고 상처를 받은 부분은 점점 단련이 되어 점점 단단해지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아주 반들반들한 돌멩이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젠 그 돌멩이들은 아무리 강한 파도가 자신들을 휩쓸어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없다. 이젠 너무나 둥글둥글해져 버렸으니까.

 

우리의 삶도 파도에 휩쓸리는 돌멩이와 별반 다를게 없다. 내가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부분을 상대방은 큰 상처로 다가갈 수 있고, 나 역시도 그런 반대의 경우를 겪게 될 것이다. 이건 사실 가족에게도 예외일순 없다. 하지만 가족은 특정공간 안에서 서로를 어쩔 수 없이 비라보게 되고 얘기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좋은 면도 보게 되고 그로 인해 악한 감정은 사그라들게 되고 그래서 가족이 되는 거다. 이것이 바로 파도를 벗어날 수 없는 돌멩이와 같이 이치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장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다.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만남은 계속 되게 마련이고 꼭 나쁜 면만을 보게 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진짜 가족처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는 좀처럼 되기가 어렵다. 왜일까!? 신뢰할 수 있는다는 확신이 없어서? 좋은 면을 보게도 되지만 이미 받은 상처는 치유가 되지 않아서? 뭐 사정에 따라 그리고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내가 볼 땐 아마도 상처 자체를 받기 싫어하는 게 가장 큰 이유 같다.

너희들에게 상처를 받을 이유 따윈 없으니까! 그런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런 이유는 사람이란 것이 다 자기 욕심만을 채우기 바쁘다, 라는 안이한 생각과도 함께 동반을 한다. 그렇기에 사람을 만남에 있어서 적극성도 결여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도 과거의 친한 친구들과는 얘기한다. 나이 들어서 만나는 사람들은 마음을 나눌 수가 없다고.. 그렇게 소극적으로 살면서 그렇게 상처받기 싫어하면서 말들은 뻔질나게 세상에 이치를 다 깨달은 듯 해댄다. 우습다.

 

피땀 없이 얻는 게 있는가? 얻는게 있어도 가치는 있는가? 그건 얼마나 영원을 약속할 수 있는가?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이 들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한 사람을 얻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을 했냐고! 그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돌멩이들이 파도에 어쩔 수 없이 휩쓸려 상처를 주듯이 우리의 삶이 달라 어쩔 수 없이 받은 상처일 뿐이다. 그 상처에 우린 아파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스스로 아물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우린 돌멩이가 아니니까! 우린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고, 결정적으로 입이 있다. 우린 대화를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우린 대화라는 것으로 서로의 살아온 삶의 격차를 줄일 수가 있다. 그리고 내가 받은 상처의 이유를 납득할 수 있는 원인도 제공받을 수 있다. 얼마나 편리한가? 우리가 돌멩이가 아닌 것이 말이다.

 

난 사람에 대해서 싫고 좋고를 따지는 것 보다 신뢰할 수 있느냐 아니냐로 구분을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꼭 좋다곤 할 수 없지만 배신을 당해서 상처를 받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하고 친해지는 것이 좋은 거다. 삶에 있어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러니 이런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일단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면 사소한 오해가 있더라도 언젠가는 통한다. 이건 경험상 사실인 것 같다. 물론 그 언젠가는 이라는 세월을 기다리는 게 어렵고 심지어 고통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의 노력 없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겠는가! 시간이 기다림이 지루하고 고통스럽더라도 언젠가의 종착지에는 반드시 노력한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먼저 진실되라 그리고 노력하라.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의 삶은 서로 틀린 삶이 아니라 다른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서로 다른 생각과 사상으로 인해 상처받을 수도 있다. 이것을 오해로 인한 상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입이 있으니 이런 오해는 대화로써 치유가 가능하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진실되고 사람을 귀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니 분명히 사람을 통해서 행복을 찾는 일은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스크린 샷] 딸에 등록금을 서로 1,500만원씩 모아서 해결을 하기로 했는데 하루 지나서 미룬다. 그리고 조성민이 미룬다는 것은 안하겠다는 것이라고 장가현은 20년의 경험으로 안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은 결국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의 특징은 자기 밖에 모른다. 자식 학원비를 자신의 카메라 렌즈를 사고 자전거를 사는 아빠라는 것은 자기 밖에 모른다는 결정적 증거다.

 


l 여담

 

이 글은 무려 3번이나 인터넷의 오류로 날아가버려 4번 만에 완성한 글이다. 첫 번째는 참 엉성했고, 두 번째는 엉성함을 보완하는 정도였고, 세 번째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맘에 들었다. 그래서 세 번째 글이 날아간 어제는 정말이지 옆에 사람만 없었어도 통곡을 했을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완성한 네 번째는 세 번이나 퇴고 과정을 거친 글에 전력을 다한 나머지 약간의 귀차니즘이 섞여있는지 참 짧아져버렸다. 사실 결론 부분은 정말 맘에 안 든다.

 

어떻게든 세 번째 글을 살리고 싶다는 맘뿐! 어쩌면 그 망상에 사로 잡혀 새로운 글을 쓴다는 기분 보다는 세 번째 글을 어떻게든 생각해 내 비슷하게 적어야지 라는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더 조잡한 것 같기도 하다. 비슷한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