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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기준, 외로움 # 4ㅣ인간이 느끼는 3가지 외로움

_교문 밖 사색가 2024. 12. 18. 12:57

선진국의 기준, 외로움 # 4ㅣ인간이 느끼는 3가지 외로움

 
 

외로움을 방치하는 사회는 선진국이 아니다. 우리는 아직 선진국에 진입할 시기가 아니었던 거다. 

 
 
ㅣ돈이 있는 경우, 다시 정우성
 
50대 정우성의 재산은 못해도 600억 정도는 될 거라고 한다. 거기에 잘 가꿔진 몸과 얼굴이 있다. 키도 크다. 약점이자 강점은 유명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정재와 같은 건물에 지내면서 젊음을 보냈다. 이제 중년을 보내고 있다. 연예인이다 보니 40대까지는 그래도 청춘이라는 생각을 했을지 모르나 50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중년을 피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래서 짧은 연애와 함께 가끔 더블데이트도 하면서 외로움을 달랬을 것이다. 돈이 있고 외모가 있으니 그렇게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관심사를 논할 사람은 찾지 못했을 거다. 친구 이정재에게 조차도 말이다. 한 번도 이정재와 그런 대화를 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연예계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하면서 호칭을 아직도 높인다는 정도가 전부다. 
 
이건 응삼이도 마찬가지다. 계절이 바뀌면서 동네 사람들과 농사일 얘기는 했어도 다른 이야기는 하지 못했을 거다. 차이점은 응삼이는 몰라서 얘기를 못한 거고 정우성은 알아도 할 사람이 없다는 차이다. 이 둘은 아이러니하게 결국 이 세상에 혼자라는 같은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① 정신적 외로움, ② 심리적 외로움, ③ 육체적 외로움이다. 그중에 심리적 외로움과 신체적 외로움은 친구와 가벼운 연애로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신적 외로움은 성향과 취향의 대화가 없이는 채우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외로움은 스킨십으로 응급처치가 가능하다. 
 
만약 그가 일을 사랑하는 유명인이 아니었다면 마약도 찾았을 것이고, 가치관이 없다면 망나니가 되었을 거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돈과 익명성이 생긴다면 자신은 법 위에 있는 존재라고 착각하며 살기 딱 좋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유명인이고 자신의 일을 계속하길 바라는 사람이며 난민에 대한 생각을 지속적으로 어필을 해온 사람이기에 그 가치관이 그를 잡아주었다. 다만 오십이 넘은 나이에서 오는 외로움의 감정은 지금까지 쌓아온 그의 명예 혹은 이미지에 비해 모양새 빠지는 현대 문명을 이용을 하면서 비혼 출산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가 모양새가 빠진 이유는 정신적 외로움을 충족하기 위한 지성미를 지닌 대화가 지속적으로 가능하며 성장의 기쁨을 함께 누릴 사람을 찾지 못해서다. 이제 그런 지성미를 지닌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희귀한 상태다. 거기에다 자신에게 맞는 외모와 나이대를 찾았을 테니 당연히 없는 존재를 찾는 꼴이라 발견하지 못했을 거다. 그리고 짧고 가벼운 연애로 응급처치 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른 나이대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지금의 큰 숙제는 정신적 외로움을 스킨십으로 응급처치하는 것이 더 급해져 앞뒤 재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린 것이다.
 
이건 그가 지성미를 몰랐다고 해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 세 가지의 외로움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표면적 수단도 결국 섹스로 귀결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플라토닉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섹스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죽어 저 세상에 가서도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결국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는 첫 번째이자 마지막 형태는 섹스다.
더군다나 인간은 동물과 달리 섹스를 하기를 갖기 위한 수단만으로 사용하지 않고 즐기는 방향으로 진화를 시켰고, 이것은 자손을 낳아서 나의 유사 영생이 진행되는 방법과도 통해서 인간의 생존에 들어가는 지속적 삶의 유지를 위한 3대 기본 욕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섹스는 간접적 영생 혹은 DNA 기준 영생에 들어가는 욕구다.
 
그래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인이나 섹스와 담을 쌓은 종교인도 섹스에 대한 욕구를 피할 수 없으며, 언어 이하의 인간들(양아치 등등)은 이런 지성의 의미를 모르기에 섹스를 사랑 이상의 감정으로 진화시키지 못해 폭력적으로 이용하고 도파민용으로만 사용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3대 외로움을 동시에 달래는 방법은 ① 내가 지성미를 지닌 상태에서 ② 대화가 통하는 상대를 만나서 ③ 그 사람과 교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진 후 ④ 섹스를 해야 가능한 것이다. 결국 마지막은 우리가 그렇게 거부하듯이 언급하는 섹스가 포함이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순서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외모가 마음에 들면 섹스부터 하고 대화를 시도하고 서로의 성향과 취향을 확인해서 만남을 이어가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개인주의가 발달해서 자신의 신체는 자신이 알아서 관리한다는 생각으로 발전한 서양은 기독교의 금욕주의를 벗어나 그렇게 연애를 하고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교의 금욕주의를 언급하면서 외로움을 달래는 과정의 순서에서 무조건적으로 섹스를 마지막으로 미루었고 대신 ① 도파민 기준 유사 섹스의 영역인 외모와 직업(돈)을 보고 만나면서 ② 티키타카가 대화랍시고 그것만 맞으면 그게 취향이라고 생각(착각)하며 ③ 서로의 성향을 파악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④ 금액적 조건 파악까지 맞으면 만남을 지속한다. 그리고 연애를 하는 중이니 섹스를 하면서 그냥 서로 사랑한다는 믿음으로 여전히 별의미 없는 대화와 돈 얘기, 그리고 어디에 돈을 쓸지에 대한 얘기만을 하면서 행복해하며 그게 사랑이라고 믿는 상태에 이르렀다.」
 

즉 우리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어떻게든 섹스를 피하고자 하는 관념을 지녔는데 남녀 관계의 모든 부분을 섹스와 (도파민 입장에서는 섹스와 다를 것 없는) 물질만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지성미가 사라진 행복 추구 방법이자 외로움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이 된 것이다. 이것은 실로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라는 것이 이상할리 없는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세상에서 정우성이 살아나갈 최고의 방향은 문을 닫았다. 앞글에서 언급했듯이 정우성이 서양에서 태어났다면 조지 클루니처럼 미모까지 겸비한 인권 변호사를 만나서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었겠지만 정우성은 한국인이다. 물론 송중기 같은 케이스도 있지만 정우성 나이에 이제 와서 서양 여자 쪽으로 눈을 돌려서 찾아본다는 것도 쉽지 않다. 미국인인 조지 클루니도 찾기 힘들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와 가치관을 버리면 조민기꼴이 될 수 있다. 근처에 있는 여자들은 어떤 관계든 가리지 않고 일단 섹스할 생각만 하고 접근하고 인스타그램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일단 꼬셔보려고 하는 태도 말이다. 솔직히 이건 아니지 않나? 아니면 대충 나이에 쫓기고 사회 관념에 몰려서 결혼할 대상 찾아서 그냥 하는 거다. 하지만 함께 살을 부대끼고 사는 사람과의 의미 없는 대화도 하루 이틀이고 그러면 스킨십도 더 빨리 싫증이 난다. 그러면 다른 대상을 찾게 되는데 그러면 이선균 꼴이 날 수 있고, 이병헌처럼 들킬 수도 있다. 그래서 어쩌면 서로 간의 합의해서 다른 대상들과 즐기자는 삶의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후자의 방식은 지금 가지고 있는 정우성의 가치관과 충돌하며 설사 정우성이 생각한 방식이라고 해도 이걸 합의할 여자는 더 찾기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은 지금의 정우성은 여차하면 마약에 손대기 딱 좋은 극도의 고립감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그 상황을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결국 주변 여자들에게 찝쩍거리지 않고 가능하면 같은 업계 사람이 아닌 대상을 찾아서 정신적 외로움을 스킨십으로 달래는 방식밖에 없는데 바로 그 방법이 모양새 빠지는 인스타그램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DM 오는 여자와 만나는 것이 아닌 스스로 DM을 보내서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제 정우성의 삶에서 최고의 방향은 폐업을 했다. 그러니 차선중의 삶에서 최선을 골라야 하는데 물론 금욕이라는 방식이 있긴 하지만 종교인도 하지 못하는 금욕을 그렇게 쉽게 강요하는 것이 지금 이 사회의 폐단이기에 그걸 강요하는 것을 사회적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남은 차선의 삶은 자신의 직업군과 최대한 먼 사람들 중에서 여자를 찾아서 동의를 구한 다음 섹스를 즐기는 방식 말고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삶이 지금 21세기에서는 일반인들도 남녀를 불문하고 이렇게 섹스를 즐기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과거 남자들이 이렇게 몸을 가꾸고 셀카를 찍으며 사람들 보라는 곳에 사진을 올리는 행위는 찾을 수 없는 행위였다. 하지만 지금은 인스타그램에 자신을 홍보하여 여자들에게 DM을 받아 원나잇을 즐기는 행위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일반인들은 아마 감정적 외로움을 느끼기에 스킨십으로 위로받기 위해서 일거다. 응삼이 시대와 달리 지금은 친구라는 개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지성적 외로움은 없을 거다. 왜냐면 지성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있다는 것을 유전자 단위로 무의식에서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자극적인 세상에 그 느낌에 집중할 사람은 없다. 
 
아무튼 이것은 연예인과 일반인이 구별되지 않는 SNS 시대의 새로운 연애 방식이자 외로움을 푸는 응급처치가 되었다. 이 방법이 정우성이 하기에는 촌스러운 방식일지 몰라도 정우성도 자신을 지켜가면서 외로움을 달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결론은 합리적이다.
 
이건 여담이지만 조주빈이 스스로 그런 악인이 된 것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누가 그런 삶을 살 거라고 설정하며 성장했겠는가? 조주빈은 응삼이의 21세기 클론이라고 볼 수 있다. 20세기에서는 친구도 있고 농촌에 살아도 이상하지 않았고 주변에서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의 온정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함께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하는 노점 붕어빵 장사하는 사람들을 신고해서 폐업(?)하게 만드는 몰인정 사회로 진입했다. 여기까지 온 거면 갈 때까지 간 시대인 거다. 이런 시대의 조주빈은 인스타그램도 활용할 수 있는 외모도 아니기에 21세기에는 그 외로움이 억울함, 분노로 세포분열했다. 그런 그는 세상의 암세포가 되어 여기저기 악을 전염시켜 버린 것이다. 영화 조커에서 조커가 스스로 조커가 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정우성은 최선의 차선책을 선택했고 지금의 자신을 유지하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그 증명 방법이 비혼 출산인 것이다.
 

[출처 : 동아일보] 아마 가치관으로 부부의 연을 맺고 있는 대표일거다. 하지만 정우성의 경우는 난민 문제를 생각하는 단계라서 이 부부처럼 한국에 국한 된 가치관을 공유하는 것보다 더 힘든 짝을 찾고 있다. 실제로 한국 안에서 잘살자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은 볼 수 있어도 한국 밖에서 잘살아보자,라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내 주변에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위치를 고려해서 가치관의 차이가 국내를 벗어나버리면 대화가 힘들다는 것도 참 어불성설이라고 볼 수 있는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