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마저 DM을 보내게 한, 외로움 # 2ㅣ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적어지는 이유
완벽한 존재는 외로움이 필수다. 외로움은 누구에게도 존재감을 어필할 수 없다. 결국 완벽은 현실에서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얼마 전 20년 지기 동생 내외를 만났다. 동생은 나와 4살 차이고 동생 남편은 나보다 1살 어리다. 런던살이 하러 가기 전에 잠시 만났으니 1년이 넘어서 다시 만난 거다.
이번 만남의 장소는 송도다. 우리집에 버스로 1시간이 넘는 거리다. 하지만 요즘 난 집에 있기에 버스로 부산 투어하는 여정이 기대가 되었다. 버스 맨 앞자리에서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을 보면서 나의 옛 동네도 지나치고 새로운 동네도 구경하는 즐거움은 나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확실히 시내버스 여행(?)은 내비게이션 보면서 차로 이동하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이 있다.
송도는 너무 많이 발전한 나머지 다른 동네가 되었다. 사람들은 거의 관광객들이었고 외국인들도 제법 보였다. 예전에는 남포동 들렸다가 밥 먹으러 들리는 부산 사람만 가는 촌동네였는데 말이다.
나는 그 동생을 나의 2차 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이 동생 말고도 나의 2차 관계는 3명 더 있다. 2차 관계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대부분 20년 정도가 되었고 곧 30년이 되는 관계도 있다. 사실 이런 관계는 어지간한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1차 관계로 지정을 해야 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1차 관계는 시기, 신뢰를 떠나서 무조건 대화가 통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그날 주제는 인공수정이었다. 둘 다 나이가 있다보니 자연적으로 아기를 갖지 못해서 결정을 했고 그날 연상동 삼신할배에게 처음으로 진료를 받았다고 했다. 나는 이들이 결혼 당시에는 아기는 그냥 생기면 갖고 아니면 아닌 데로 살 거라고 얘기를 들어서 살짝 놀랐다. 알고 보니 동생이 아기를 갖고 싶었는데 남편 눈치상 대충 그렇게 넘어갔다가 이제야 말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 한국 사회에서 아기를 낳고 기르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 동생 남편에게 좋은 아빠가 될거라고 운을 띄웠다. 너는 사는 데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가야 하는 방식을 알고 사는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별 말이 없이 적당한 표정을 지으며 가리비나 굽고 있었다. 그래서 또 다른 2차 관계의 동생 예를 들면서 그 동생은 자식이 뭘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모르니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학원을 여러 개를 보낸다고 했다.
한 번에 많은 학원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경험하게 해주는 차원으로 말이다. 그래서 영어는 확실히 좋아하고 검도도 좋아하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정확히는 검도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가 없다 보니 형들이랑 노는 것이 좋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검도 학원을 다니면서 자신(아빠)에 대한 예의도 좀 갖춰지는 것 같아서 좋았다고 했다. 피아노는 곧잘 배웠지만 지겨워한다는 것도 알았고 요가는 성향에 맞지 않았다는 것도 알았다. 어린이 모델은 아주 힘들어했고, 합기도도 좋아했지만 대회에 나가는 것이 엄청 스트레스였다는 것도 아들과의 대화로 알았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동생 남편은 자식이 엄청 지칠거 같다고 감정 섞어 말을 했다. 그래서 그냥 키우지 뭐..라는 흘리듯 남겼다. 앞에서 언급했듯 이 과정을 한꺼번에 다니게 한 것도 아니고 적당한 간격을 두고 아들이 지치지 않게 컨디션을 조절하며 한 것이라고 해도 반응은 없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자식과 대화를 하면서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을 듣고도 거부하는 반응이었다.
나는 이 말을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대화의 물꼬를 트면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하고 기왕 만난 거 대화를 해보자는 거였는데 실패했다. 나는 솔로 얘기도 했다. 자신들은 보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솔로를 얘기한 것이 아니라 요즘 사람들의 연애 한국 사람들의 연애 성향에 대해서 얘기해 보려고 시도한 것이었다.
동생 남편은 한국 드라마와 일본 애니메이션만 본다고 했다. 나는 최근에 본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넷플릭스에서 봤다고 했다. 그러더니 그건 옛날에 한 드라마잖아요,라고 넘어갔다. 이 드라마에 대한 내용이나, 추천 드라마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주술회전도 재밌게 봤다고 했다. 뭔지도 모르는 거 같았다.
어쩌다 워킹데드에 대해서 얘기가 나왔는데 동생이 그 드라마에 중독이 되어서 남편이 퇴근하고 들어오면 그 드라마 본다고 눈이 퀭해져 있다고 했다. 나는 워킹데드가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적인 현상 같다고 그래서 너무 현실적이어서 시즌 10까지 몰아보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동생의 반응은 오빠는 그렇게 느꼈구나..라고 넘어갔다.
이런 식으로 조개구이 집에서의 대화는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대화를 포기했다. 카페에 가서는 결국 우리 셋의 적이자 동생의 한 때 가장 친한 친구였던 애의 부산 입성 소식으로 시작해서 과거의 행적에 대한 험담을 하고 마무리했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제는 이들을 굳이 저녁시간에 만날 일은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끔 근처에 갔을 때 점심이나 사주고 한 끼 먹는 수준에서 넘어가는 일은 없을 듯했다. 그리고 나의 2차 관계들의 대화 수준은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랫동안 보지 않아야 그간 알지 못했던 이야기나 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딱 이 정도 되는 대화 능력만 지닌 사람들끼리 만나면 대화가 잘 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대화의 주제가 한계가 있고 단어의 수도 현저히 적은데 어떻게 만나서 대화가 될 수 있는가? 그러니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을 만나도 여기에서 특별한 수준으로 넘어가기는 쉽지 않다. 이 대화에서 취향도 성향도 느낄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과 과연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자신조차도 취향과 성향 없는데 말이다.
20대야 연애 얘기를 필두도 10대와는 다른 직장생활 그로 인해서 생겨난 인간관계의 비열함, 그 속에서 어쩌다 괜찮은 사람 만난 이야기 등등 변화가 빈번히 일어나는 삶 속에서 주제를 쉽게 찾을 수 있고 그 속에서 취향이 맞거나 성향이 맞아서 나와 잘 맞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건 내 생존본능과 일치되는 사람을 찾은 것뿐이다. 20대의 사회적 연약함으로 인해서 생존본능이 취향과 성향이라고 착각해서 생겨난 오류다.
이제 동생은 나의 15년 전 타로 결과대로 직장에서 대체 불가의 직원으로 인정을 받았고 동생 남편은 이제 사업이 풀려서 월 1억씩 번다. 이런 상황에서 생존본능은 무뎌질 수밖에 없고 그들이 생각했던 성향, 취향은 없는 데 있다고 착각하는 단계에 있다. 가령 나는 한국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말을 하는데 그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나의 생각과 반대에 있기에 자신들과 맞지 않는 생각을 가진다고 생각해서 자신들의 취향과 성향이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정도인 것이다. 사실은 없는데 말이다.
이건 그냥 듣기 좋은 얘기를 하면 나와 맞는 사람 불편 얘기를 하면 나와 맞지 않는 사람으로 구별 짓는 수준에 불과하다. 마치 어린애가 그렇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부부사이고 같은 직장에 다닌 적이 있으며 여전히 같은 업종에 연계까지 되는 일을 하다 보니 외로움도 덜 느낄 테고 키우는 강아지의 애교에 즐거워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별이상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이게 정확한 표현이긴 하다. 별이상 없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타인과 만나서 어떠한 성향과 취향이 없기에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들이라는 것도 명확하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 욕이나 하는 대화말로는 지속성이 있는 대화는 찾기가 너무 어렵다.
이들은 별이상없는 사람들이라서 여기에서 더 발전된 사람들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성향과 취향을 찾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이들은 그냥 사회적으로 안정을 찾을 만큼의 돈을 벌며 사는 사람 정도가 인지의 전부다. 동생 내외가 이렇게 잘 사니 나로서도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이제 이들에게 어떠한 존재도 되지 못한다. 나는 성향과 취향이 있고 그래서 이들과 교류를 하면서 다듬을 의사가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일방적이고 내 의견에는 반대를 하면서도 어떠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대화 수준으로는 지속적으로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만나서 밥만 먹고 앉아 있다가 헤어질 수는 없는 거 아니겠는가. 그리고 의미 없는 사람 뒷담화만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멀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온 관계고 서로를 응원하는 아주 가까운 사이들이다. 하지만 더 이상 만나서 나눌 수 있는 대화라는 것이 없고 그렇기에 나는 이들에게 어떠한 존재도 되어줄 수 없다. 이들은 취향과 성향이 없는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이도 나이인지라 취향과 성향을 찾으려고 하는 태도도 찾을 수 없다. 즉, 나는 이들에게 필요치 않은 존재가 된 것이다. 내가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알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심지어 이들이 돈도 더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내가 돈이 제법 있다고 해도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이들에게 그냥 오랫동안 알아온 좋은 사람으로 남게 되었다. 이렇게 친구들과 멀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외로움은 시작된다. 싱글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라는 것은 경제적 안정을 찾든 아니든 간에 이렇게 성향과 취향으로 멀어진다. 돈이 있으면 혼자만의 즐거움을 찾아 누릴 수 있고, 돈이 없다면 고립이 되는 차이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블로그에서 주야장천 얘기하던 공포의 40대이다.
인간은 감정적으로 나쁜 상태에서만 서로와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이라고 해도 지속적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되면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결핍을 느낄 수 없다면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속적 결핍이 중요하다.
그 결핍을 '지혜'가 된다면 금상첨화다. 그래야 지식을 필요로 하고 사람을 찾게 되고 돈도 내가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쓸 수 있게 된다.
결국 사회적 안정, 금전적 자유의 목적은 지혜의 결핍을 느끼고 채우는 과정에서 도파민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성미가 사라진 시대에 이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대상을 찾을 수 없으니 정우성은 외롭다. 응삼이처럼 말이다. 그래서 스마트 폰의 인스타그램 어플을 터치하고 DM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최고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삶의 태도가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결국 인간은 모두 다 외로운 존재일 수 밖에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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