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트랑 Day 26ㅣ21. July. 2024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존재는 바로 몸과 의식주 이상의 생각이 합쳐진 상태의 실체를 말하는 것 같다.
오늘 나는 아픈 증상이 많이 호전된 거 같아서 오랜만에 밥을 먹고 싶었다. 너무 오래 죽으로 버티니 되려 지금의 증상은 장염 때문이 아니라 영양실조에 가까운 증상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특히 오리고기가 먹고 싶었다. 나는 오리고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겁이 나기도 했다. 라면 먹던 날도 짜장면과 햄버거를 먹고 싶어서 괜찮겠다.. 싶어서 먹었는데 컨디션이 더 악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죽도 햇반도 다 떨어졌으니 마트는 갔다 와야 했다.
마트 간 김에 마트 커피숍에서 할 일을 했다. 그러면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마셨다. 위에 염증 증상이 일어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일행이 쓰려고 하는 책 이야기를 거의 마무리할 때쯤 베트남 아이가 와서 껌이라면서 들이밀고 사라고 눈빛을 보냈다. 우리는 필요 없다고 했다. 우리가 사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를 파악한 베트남 아이는 노트북을 건들기 시작했다. 껌을 사지 않으면 방해를 할 거라는 신호였다. 나는 일행보고 노트북 앞에 있는 스마트 폰을 집어서 넣으라고 했다. 그리고 나도 주섬주섬 물건을 들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일행이 먼저 일어났다. 그 틈에 베트남 아이는 나에게 더 가까이 와서 껌을 사라고 나에게 한 번 더 요구했다. 나는 사지 않을 거라고 하니 내 왼쪽 팔을 꼬집고 자리를 떠났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말이다. 한국인이 우리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오늘 일행과 나눈 대화는 쇼펜하우어에 대한 이야기였다. 일행은 한국의 쇼펜하우어 유행에 반대하는 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커피숍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커피숍에서 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커피숍에서는 의식주 이상의 이야기는 그냥 이상한 이야기로 치부되어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이런 시선을 종종 느끼는 편이다.
나는 오늘 베트남 아이가 오늘 우리에게 접근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보고 있다. 현상은 다르지만 말이다.
실체는 어디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걸 인간에게 적용을 하면 나는 의식주 이상의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면 인간은 실체적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실체적 존재는 의식주 (이하의) 얘기만 하는 물체적 존재들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그런 눈총을 종종 받는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이재용 회장이었다면 그 눈총은 아마 존경과 부러움으로 바뀔 거다.
내가 눈총을 받는 건 카페에서 나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했고, 증명을 하는 것은 더 이상한 태도고 그러니 그런 대화를 하려면 호텔 커피숍에서 하라는 식의 눈총인 거다.
아무튼 그건 꼭 대화의 내용을 들어서가 아니라 실체의 고유파동을 만들어서 주변에도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아주 약한 베트남 아이가 우리의 존재를 인지했거나 혹은 오늘 우리의 중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좀 더 강해서 질량이 적은 베트남 여자아이가 온 거라고 보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대화도 대충 다 끝냈고 커피도 다 마셨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니 아직 염증증상이 있다고 느껴서 또 오늘까지는 죽을 먹기로 하고 그에 맞게 장을 봤다.
나는 거지에게 적선을 하지 않는다. 일단 나의 아버지가 놈팽이였기에 내가 돈이 없었다. 두 번째 이유가 어떤 책을 읽었을 때 거지들에게 적선을 하기보다는 그 돈으로 자신을 더 아끼는데 쓰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자신을 아끼라는 뜻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서 자신의 주변을 살피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더 발전하려는 자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보람된 일이지만 그 상태를 유지만 하려는 자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되려 부작용이 된다고 파악한 내 생각이다. 그 위치가 거지라면 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굳이 나의 돈까지 필요한 상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베트남 아이의 태도로 보아 배가 고파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뒤에 배경이 있어 보였다. 그게 부모든 조직이든 간에 말이다.
함께하는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노력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회를 만든다는 거다. 근데 노력하지 않는 자와 함께하는 사회가 되는 순간 노력하는 자들은 안 그래도 힘든데 더 힘들게 된다.
내 개인경험상 약자로 계속 살려고 작정으로 사는 사람을 도와줘봤자 계속 도와달라고 앵앵거리고 도움을 끊으면 욕밖에 돌아오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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