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쌓기/런던살이 2023-24

Day 139 런던살이ㅣ03. January. 2024

_교문 밖 사색가 2024. 1. 4. 09:33

Day 139 런던살이ㅣ03. January. 2024

 
 

그 아무리 화려한 선물이라도 보내신 분의 정이 변하면 형편없어지기 마련입니다.
- 햄릿ㅣ오필리아 -

 

[Galaxy A34] 영상으로 봐도 당시 느낌이 전달되어 좋다.


야간 개장하는 큐 가든에 갔다. 일행의 에세이 과제가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아서 어제는 안 가는 방향으로 설정을 했다. 하지만 모처럼 날씨가 너무 좋은 바람에 급 나가는 걸로 방향을 선회했다. 5시 이후 입장권을 구매해서 늦게 나가야 했는데 그렇게 가는 것보다는 빨리 나가서 근처 카페에서 동네 분위기를 즐기다가 입장하자고 했다.
 
가는 길은 버스로 환승 1회 포함해서 1시간 30분이 걸렸고, 지하철로는 역시 환승 1회 포함 1시간이 걸렸다. 바로 가는 오버그라운드 열차가 있는데 오늘 공교롭게도 파업이어서 옵션에서 제외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버스를 타고 구경하는 것을 선호해서 가는 길은 버스를 타고 갔다. 2층 버스에서 지나가는 동네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동네를 보니 맨체스터가 생각이 났다. 딱히 비교군이 없어서 그런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말이다. 근처 코스타로 들어갔다. 갑자기 비가 많이 왔다.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5시 15분에 멈춘다고 했으니 큰 걱정없이 기다려보기로 했다. 커피와 파니니를 먹으면서 일행이 언어교환을 가서 알게 된 흑인분이 자꾸 연락이 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얘기했고, 지금까지 적은 에세이도 검토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일기 예보 보다 비가 빨리 그쳤다.
매장을 나가기 전, 테이블에 있는 할아버지 옆에 돈이 떨어져 있길래 Is it yours? 라고 말도 걸어보았다. 확실히 예전보다 자신감이 들어간 목소리가 나왔다. 속으로 I think, it is yours라고 할걸..이라는 아쉬움을 느꼈다. 아무튼 할아버지는 감사를 표하셨다. 비가 온 외각의 도시에서 템즈강을 건너는 건 러시아 스러웠다. 확실히 비가 오는 런던의 외각 도시는 스산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입장권은 22.5 파운드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 번 가기에 아깝지는 않은 돈이었다. 초기 진입은 5 파운드에 세금 붙여서 팔면 딱이겠구만.. 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들어가면 갈수록 본 가격에 가까운 퀄리티를 보여주었다. 음악이 곁들여진 빛의 움직임은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과학과 아름다움을 조화롭게 느껴지게 하는 힘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인상적인 장소는 블랙홀을 연상하게끔 만든 터널을 지날 때였는데, 그 단순한 구조물과 단란한 빛의 움직임에서 아주 약간이지만 블랙홀에 들어가서 다른 차원으로 나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국민이 이 감성을 이해할 수 있으니 만든 구조물일텐데 문득 울진에 있는 다리 중에 물고기 입으로 들어가서 나오는 다리가 생각이 났다. 이러면 안 되지만 좀 촌스러움이 느껴졌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울진의 다리가 더 만들기 어려울 텐데 왜 이런 생각이 났냐면 교육의 힘에서 느껴지는 감성이 달라서 그런 거 같다. 블랙홀은 교육의 힘이 느껴지는 천체지만 울진의 물고기는 그냥 그렇다. 영덕의 대개와 같은 특산물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그렇다.
 
사람도 그렇고 물건도 그렇고 정신이 빠지면 뭔가 허전한 건 같은거 같다.
 
그렇게 한바퀴 쉬지 않고 돌고 오니 대충 1시간 15분 정도 걸었던 거 같다. 우리는 그 안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보다 어제 일행이 사 온 양념 통닭과 라면을 먹는 것이 더 나을 거란 판단으로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튜브를 기다리는 동안 어떤 가족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고 자기 동생이 한국 여자와 결혼해서 서울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똥침'을 안다고 즐겁게 얘기했다. 계속 얘기했다 신나게.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하지 않는 그 행위를 어떻게 알게 된 건지 모르겠다. 딱 봐도 30대 같았는데 말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문화로 우리나라는 안다는 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지하철을 타자마자 비가 다시 제법 왔다. 그리고 역시나 숙소역에 도착하니 비는 그쳐있었다. 운이 좋은 날이다. 마침 새옷을 입고 갔는데 비에 젖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새 옷은 전에 얘기한 REISS 숏 패딩을 말한다. 그렇다 하나 장만했다.
 
돈이 있으면 아직도 나는 런던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블랙홀 터널을 지날 때에 느껴지는 감성(정신)을 한국에서는 느껴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에서 느끼는 건 이제는 이만큼 살고 있으니 대한민국도 좀 솔직해지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는 길이 마치 경주의 돌담길을 연상하게 해서 그런가 첨성대가 생각이 났는데 무덤보다 낮은 곳에서 별을 관찰했다는 말도 안 되는 미화로 거부감이 드는 행위는 그냥 안 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말이다. 경주는 내가 좋아해서 자주 가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번이라도 정신을 느껴본 적은 없기에 살고 싶다는 생각도 나지 않는 곳이다.
 
사람도 도시도 나라도 정신이 미화되지 않고 정직하고 올바른 태도로 발현이 될 때 정을 느끼고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거 같다.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는 동네를 벗어나고 태어난 김에 뿌리내린 동네를 벗어나 내가 살고 싶은 이유를 찾게 되어 살게 되는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행복한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떨 때는 욕밖에 나오지 않는 도시지만(주로 돈) 그래도 역시나 살고 싶은 도시라고 느껴지는 것은 정신을 느낄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인간의 감성을 이해하는 도시라는 표현을 다시금 느끼는 하루였다. 물론 그 정신이 사라지는 것도 매일같이 느끼고 있어서 아쉬움이 크다. 
 
(side talk)
 
첨성대 근처에 동굴과 월지가 있다. 그곳에서 우리나라 최소의 여성 자위기구 딜도가 발견이 되었다. 그래서 음기가 강하다고 양기를 채우기 위해서 세워진 건축물이 첨성대라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이런 얘기를 성숙한 자세로 얘기 할 수 있는 시점은 지났을 거 같다. 숨기는 것이 있는 나라, 아직도 억지스러운 미화가 필요한 나라가 과연 선진국일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물론 이 설이 맞다는 증거는 없다. 그리고 별을 관찰하기 위한 건축물이라는 증거도 없다. 그러니 함께 가르쳐야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아마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거다. 늘 그렇듯 인문학자들은 일반 국민들의 삶과 정신의 태도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