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경험론/인생

죽음을 준비하는 나의 자세 (엄마 ver.)

_교문 밖 사색가 2020. 4. 8. 14:22

 

이전 글에서 난 삶은 죽음으로 가는 여정이라고 했고, 우리의 목표는 결국 행복한 죽음이라고 말을 했다.

(이 글을 다 읽고 봐도 좋아요 => http://blog.daum.net/spike96/16464394)

 

 

그리고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선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주거나 받는 것이 가장 현명한 자세라고도 생각한다고도 했다.

 

 

 

 

[갤럭시 노트 9] 올해 남해는 한가하다.

 

 

 

난 요즘 남해에 자주 내려간다.

양봉일을 해야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에만 해도 50개 규모였는데 이제는 180개 규모가 되었다.

겨울에는 한 달에 7일 정도지만 따뜻한 봄이 오니 왔다 갔다 하면서 한 달에 반 이상은 남해에서 보내야 한다.

 

 

물론 수입도 그만큼 준다.

그래도 가야 한다.

 

 

 

우리 엄마 나이가 올해 67세다.

앞으로 살아계실 시기가 이제 13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물론 그 이상 사실 수 있을것이다.

허나 그나마 일도 하고 산책도 하고 그러면서 인간답게 살아계실 날은 넉넉 잡아 13년이다.

 

 

아들로서 엄마의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으로는 그리 길지 못하다.

 

 

 

내가 남해에 내려가 양봉일을 돕는 것은 아들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책임감으로 내려가는것은 아니다.

여기에 아들로써 당연히 내려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모든 아들 딸들은 한 달에 일주일 이상 정도는 시골에 내려 야서 부모님 일을 도와야 한다는 논리가 형성이 되기 때문이다.

 

나도 내 할 일이 있고 그걸로 벌이를 해서 먹고살아야 하는데 책임감으로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프리랜서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내가 남해에 내려가 손을 보태는 이유는 엄마가 나랑 일하는 걸 좋아해서이다.

내가 돈을 주고 사는 사람들보다, 내가 남해에 있는 친척보다 일을 더 잘하기 때문이다.

10시부터 점심도 먹지 않고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자세를 좋아한다.

 

손발도 잘 맞는다.

난 사람의 심리를 잘 파악하기에 이렇게 보조일을 하면 내 논리를 버리고 오롯이 엄마의 논리로만 일을 한다.

그래서 난 비단 엄마뿐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협업에도 손발이 잘 맞는다.

 

 

 

그리고 엄마가 여기까지만 하자고 해도 저기까지는 해야 내일 마무리를 지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엄마를 다그치기도 한다.

(양봉은 추워지면 벌이 죽기에 시간제한이 있다. 겨울은 3시까지 일을 끝내야 하는데 힘들어서 일을 남기면 기간 안에 일을 마치지 못한다.)

 

 

손발이 잘 맞는다는 것은 단순히 보조일만 잘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전체 상황을 보고 리더가 힘들어서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때 그러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면서 바른 방향도 제시를 해야 한다.

 

 

 

암튼 이렇게 일을 하면서 난 우리 엄마가 죽을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죽을까? 라고 생각을 한다면 결국 나밖에 없을것이다. 라는 결론이 나온다.

남편 잘못 만나서 평생 번 돈도 다 뜯기고 집도 날리고 인생에 좋은 기억이 없다.

 

 

 

결국 엄마에게 남은 것이 나밖에 없다.

 

 

 

그래서 난 남해에 간다.

여기서 내가 엄마 때문에 라고 하면서 내 인생 한탄해버리면 엄마가 죽는 순간 가져가는 기억이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되려 엄마가 죽을 때 나에게 미안해만 하면서 죽을지도 모른다.

(잘살아보려고 나름 잘해보려고 하다가 실제로 나에게 지은 죄도 있으니 말이다.)

 

그럼 난 죄책감을 안고 남은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난 남해에 가서 절대 게으름 피우지 않고 그 이상으로 부지런을 떨면서 엄마일을 돕는다.

 

 

물론 일을 하면서 나도 짜증이 나는 행동을 엄마가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참는다.

13년밖에 남지 않은 세월에 얼룩을 묻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갤럭시 노트 9] 남해 바랫길 1코스 선구마을

 

 

엄마와의 해외여행을 계획했었다.

동부 유럽이 좋다고 여겼다. 여차하면 프랑스도 좋았다.

런던은 너무 복잡해 보였고 자연을 좋아하는 엄마는 동부 유럽에 여유가 좋다고 여겼다.

 

 

엄마가 죽는 순간에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가능하면 올해 가고 싶었다.

꽃보다 할배에서 이서진이 여행을 간 나이가 43살이기에 그 시기를 일부러 맞춘 것도 있다.

여차하면 생각만 하다가 핑계로 미루고, 미루고, 미루게 될까 봐여서 그랬다.

 

 

그래서 코로나 19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말을 해봤다.

공황장애로 비행기가 무섭다고 했다.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괜찮아지셨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평생 가는가 보다.

그 무서움을 나도 알기에 바로 내 생각을 접었다.

 

 

효도랍시고 내 생각 위주로 한 오류도 여기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사실 엄마 위주로 해외여행을 생각한다면 뉴질랜드로 가야 하는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TV를 보면서 유일하게 가고 싶다는 나라가 뉴질랜드였으니까.

 

 

결국 효도도 내 경험으로만 하려는 태도가 드러난다.

그래서 경험을 많이 해봐야 한다.

어차피 공황장애로 인해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뉴질랜드를 이미 갔으면 최소한 나라 배정은 틀리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부산으로 돌아와 뭘 해 드려야 할까?

뭘 해드려야 좋은 기억으로 평생 남아서 다른 세상으로 가실 때 가지고 가실까? 라는 고민을 해봤다.

 

 

그러는 와중에 이미자 콘서트 플래카드를 보았다.

처음 볼 때 저거다! 라고 생각했지만 엄마가 이미자를 좋아하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내 기억에 한 번도 좋아한다고 한 적이 없었던 거 같다. 그리고 콘서트 장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도 기억이 났다.

 

 

연예인을 멀리서 보는 것을 아주 싫어했었다.

제알 앞 석도 마찬가지로 여겼다.

 

 

그래서 미스터 트롯 공연도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좋아해도 말이다.

차다리 미스터 트롯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화면 크고, 화질 좋고, 음질 좋은 TV를 사주는 것이 더 낫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허나 있다.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알긴 안다.

엄마는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걸 좋아한다. 대체로 시골 사람들이 그렇다.

그리고 시골 사람들 자랑은 자식밖에 없다.

(물론 가방도 좋아하시고 옷도 좋아하시지만 이제는 시골 살이에 자랑할 일이 없어서 약간 시큰둥하신다.)

 

 

근데 이제는 성공이라는 것을 멀찌감치 떠나보낸 내 인생에 엄마에게 자랑거리가 되어주기는 어렵다.

그나마 아직은 내 몸이 노동을 못할 정도로 엉망은 아니니 그래서 난 남해에 간다.

 

 

 

엄마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주는 건 어쩌면 엄마랑 함께 일하는 것 밖에 없는 건지 모른다.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호수에 간다고 한들 이미 그보다 더 좋은 풍경의 남해바다를 매일 보니 좋아할 리가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갤럭시 노트9] 요즘같이 미세먼지 없는 날은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집앞 풍경이다.

 

[니콘 키미션 80]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호수

 

 

 

엄마가 엉뚱하게 일을 시켜놓고 당신이 짜증을 내는 것을 보고도 그러려니 하면서 그냥 엄마 말 잘 듣고 웃으면서 일하고, 욕할 사람 있으면 같이 욕해주고, 일 끝나고 미스터 트롯도 같이 봐주고 그렇게 강하지는 않지만 평범한 일상을 좀 더 오래 보내게 되는 것만이 내가 우리 엄마가 가는 길에 남겨줄 수 있는 유일한 좋은 기억일지 모른다.

 

 

 

그래서 남해에 간다.

 

 

엄마가 마지막 날이 나와 함께 한 날이 행복했다고 생각하고 눈을 감을 수 있게 말이다.

 

 

 

 

 

 

오늘만 생각하는 삶을 산다면 하루 수입에 연연해서 어쩔 수 없이 일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 섞인 태도로 일만 하고 돌아오는 반복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허나 이렇게 엄마의 마지막 날을 목표로 생각하고 일을 하면 웃으면서 일을 할 수 있다.

엄마의 짜증도 넘길 수 있고, 양봉일 끝나고 같이 고사리도 끊으러 갈 수도 있다.

(고사리는 캐지 않고 줄기를 끊어서 채취한다.)

 

 

그리고 남해에 와서 벌지 못하는 수입은 뭐 엄마랑 여행 간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할 수도 있다.

 

 

[갤럭시 노트 9] 고사리 끊으러 함께 간 루키. 말을 안들어서 함께 가도 묶여있는 신세다. 옆에서 우릴 지켜주면 자유로울텐데...
[갤럭시 노트 9] 고사리 끊으러간 뒷 산

 

 

그러니 인생은 멀리 봐라.

그래야 오늘을 참을 수 있고, 오늘을 견딜 수 있고 그래서 오늘을 짜증 대신 웃을 수 있게 되고, 오늘 소중한 사람을 더 잘 보살필수 있다.

 

 

오늘만 보는 삶은 내일이 불안하고 더 먼 미래는 보이지도 않는다.

보이지 않는 미래로 인해서 가까운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지금부터 시작을 해야 할 일도 보이지 않아서 오늘의 벌이에만 신경 쓰고 무사한 하루에 만족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된다.

 

 

 

여러분들의 부모님들도 죽는다.

 

난 아직도 영정 사진을 언제 찍자고 해야 할지 타이밍을 보고 있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안하게 하고 우울하게 하여 멀리하려고 하니 타이밍을 잘 맞춰서 영장 사진을 찍자고 얘기를 해야 한다.

 

5년 동안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타이밍은 어머니 주변의 누군가가 일을 치르셨을 때 그때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실 테니 그때라고 생각을 하는데 앞으로 13년 동안 이 시기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난 5년 전부터 이러고 있는데 지금부터 생각을 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부모님을 생각하지 않고 있을 때 일이 발생하면 영정사진이 없어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치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건 나쁜 게 아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을 내려주며 그 답을 실행으로 옮긴다면 오늘 하루가 미래에 좀 더 다가가는 한 발자국이 되며 그 발자국이 모이면 여러분들의 꿈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나의 죽음을 생각하다 보니 결국 어머니의 죽음까지 준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건 어머니에게 좋은 기억을 심어주기 위함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죄책감을 가지고 살지 않게 해주는 일일 거라는 짐작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내가 행복하게 죽기 위한 올바른 그리고 삶의 먼 이기주의 목표는 하루살이 이타주의를 압도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나를 위함이다.

결국 그 나를 위함이 주변 사람들을 돌보는 결론으로 나오는 이유는 우린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난 이제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전 글도 봐야 이 글을 잘 이해할 수 있어요 => http://blog.daum.net/spike96/16464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