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망해가고 있다 # 1ㅣ본능의 관점
저출산의 원인은 다른 이유없이 그냥 사람들의 본능이 대한민국이 망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본능은 지능(뇌)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동물적 감각으로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우리에게는 아무래도 스파이더맨의 스파이더 센서라고 알려진 감각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나는 이 감각이 인간에게도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인간은 여전히 자연의 일부이고 동물적 존재이며 생각보다 대다수의 인간은 뇌(지능)를 쓰지 않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는 이족 보행을 하기 위해서 뇌를 사용했다. 이족 보행은 생각보다 어려운 행동이기에 실제로 뇌를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운동을 할 때 뇌를 실제로 사용을 많이 하며 스포츠는 더 하다. 그래서 뇌는 움직이기 위해서 사용되어진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 예로 멍게는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뇌가 있지만 바위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면 자신의 뇌를 먹어버린다.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뇌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너무 동물적 관점이다. 인간은 약하기에 사회적 관계를 맺었고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그리고 사회는 복잡해졌다. 이 말은 인간은 동물 사회에 비해서 시간이라는 축을 아주 적극적으로 만들어낸 세상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세렝게티 같은 세상은 야생의 모습이 아직 남아있다. 심지어 이건 문명화된 인간이 개입하지 않은 원시부족 사회에서도 그렇다. 이건 (뇌를 사용한) 인간 사회에 비해서 발전이 없다는 뜻이고, 그 세상은 거시적 관점에서 시간이 멈춰 있다고 봐도 좋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수렵채집의 시기를 넘어 농업의 시대로 넘어왔고, 산업혁명을 거쳤으며 핵에너지 시대를 맞이하여 에너지를 비교적 넉넉하게 사용하고 있고 그로 인해서 정보화 사회로 진입이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의 인간은 화성 이주를 꿈꾸며 달에 전초기지를 짓는 아르테미스 계획을 진행 중이다.
이런 시대를 살려면 뇌를 적극적으로 활용을 해야 한다. 주변 환경을 잘 살피고 이해를 하고 종합을 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힘을 발휘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현대 대다수의 인간(한국)은 그렇게 살고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되려 어떻게든 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그 선봉을 한국이 잡고 있다.
주변 환경을 잘 살핀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과의 직접적 관계를 아주 잘 유지하려는 노력을 말한다. 그래야 내 주변의 삶이 안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골이 비교적 안전한 이유는 시골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 전부를 다 알고 지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우리는 이웃을 모른다. 심지어 이제는 잠시 마주치는 순간에 아는척하는 것도 불편해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타인을 알아가려고 뇌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것의 극단적인 예로 아파트 단지에 말도 안되는 핑계로 택배차를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옆집이야 어쩔 수 없다고해도 외부인은 최대한 접촉을 피하겠다는 심산은 최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핑계로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는 형식의 사회구조를 이해하는 뇌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안전하면 뇌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이해하는 자료가 없고, 그래도 살아지다 보니 필요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렇다 보니 미래를 생각하는 힘도 사라졌다. 그냥 과거의 삶의 방식, 그냥 익숙해진 삶의 방식 그대로 산다.
다 같이 받는 교육으로는 자식이 더 잘 살 수 없다는 결론이 나니 부모가 더 공부해서 가르쳐야 한다는 개념은 없다. 세상은 더 어렵게 변하는데 그래서 부모가 더 세상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자신은 직장 다녀서 번 돈으로 교육을 시켜주니 다 한 거라고 생각한다. 사는 대로 사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도 더 잘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버티는 것만이 유일한 수단이 되었다. 익숙함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산다. 이런 활동은 전부 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몸속 유전자에 체화되어 뇌까지 사용할 이유가 없다고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뇌는 유전자와 독립적 관계다. 가령 우리가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하자. 하지만 나는 지금 피곤해서 누워있고 싶다. 만약 그대로 누워 있는다면 유전자가 시키는데로 하는 것이고 일어나서 운동을 한다면 그건 뇌가 시키는 대로 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뇌를 사용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는 미래를 향해가고 있는 생각을 말하며 능력은 향상됨 쪽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다. 힘이 들고, 괴롭고, 실패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말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인간의 형태를 한 동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과거 사회적 동물이라고 표현이 될 때는 그래도 사람과의 연결을 당연히 여겨서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고 그래서 사람과 친해지려고 뇌를 사용해서 살았고 때로는 방어적이 되어야 하기에 뇌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시대는 친구가 어디 있으며 가족 또한 의미가 없다.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만으로 그게 어딘가.. 싶은 세상이다.
우리는 이제 각자도생이라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건 세렝게티의 동물 사회와 다를게 없다. 우리는 진화하지 않는다(되려 퇴화했다). 하지만 (물질) 사회는 진화한다. 이과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어떻게든 인간을 우주로 진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지식만이라도 머리에 넣어서 뇌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는 우주는커녕 집 장만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이 뭐냐 차도 어렵다.
아무튼 문과들은 이런 시대에 발맞춰서 새로운 철학 사조를 제시해줘야 하는데 문과들은 그냥 옛날 (사람들) 얘기나 하고 있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에 취해서 말이다. 아무튼 그 공부한 내용을 새로운 시대에 맞춰서 잘 개량해서 우리들에게 전파를 해야 하는데 택도 없다. 그들도 이제는 생각하는 기능을 버렸기 때문이다. 뇌를 사용하지 않는다. 학교라는 안전한 담벼락이 버텨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뇌가 정지한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에 나오려고도 하지 않는다. 뇌가 정지했으니 그런 거다. 그러니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문과가 필요 없는 임계점을 넘어버렸다. 그래서 결국 문과는 뇌과학으로 대체가 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이과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에서 인간의 형태로 살아가는 동물 정도가 전부인 것이다. 세랭게티에 이과들이 진출해서 건물을 만들면 동물들도 그에 맞게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면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우리 안간이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에 본능을 더 강하게 느낄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런 시대에 선봉에 서 있으며 대한민국 국민들은 현재 본능이 아주 강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본능은 무의식으로 대한민국이 망할 거라고 느끼게 만들고 그렇다 보니 자식을 낳지 않는 현상으로 치닫게 되었을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동물들은 자신의 지역이 위기에 빠지면 미리 감지를 해서 이동을 하거나 새끼를 낳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저출산의 사회적 이유, 정치적 이유, 논리적 이유보다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뇌를 사용하지 않는 본능을 무시하는 뜻으로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같은 평민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뇌를 사용하지 않았다. 뇌를 사용해서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갔을 뿐이고 형태가 같은 외형을 갖추고 있었기에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아갔을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프랑스 대혁명 같은 인본주의 사상으로 사람을 다 똑같다는 생각이 퍼져서 그러려니 하고 살아간 사람들일 뿐이었다.
심지어 현대의 정치인들은 이점을 아주 잘활용해서 우리를 정치적으로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모르고 당하며 살고 있다. 뇌를 사용하지 않으니 당하는 꼴인 거다.
여기에 절대적 기여를 한 것이 바로 언어다. 언어는 인간의 최고의 발명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먹이 사슬 최하위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올라가기까지는 진짜 머리를 많이 굴렸을 거다. 만약 이때 언어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우리는 먹이 사슬 최하위의 존재로 살아가고 있을 거다. 세렝게티 대초원에서 말이다.
약한 인간은 혼자 살기 어려우니 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방식은 서로의 관계를 의식하면서 미래를 위해서 자신의 불편과 감정도 참고 이해관계를 더 잘 만들려고 했을 거다. 더 적극적인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키워서 남을 도와주고 댓가를 받기도 했을거다. 그러니 초기 인류는 비교적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살았었다. 인구도 적었을 것이고 환경이 그야말로 매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책도 읽지 않고, 책을 읽어도 책을 읽는 행위자체에 대한 의미만 부여하지 자신의 삶 속에 적용하는 뇌활동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 세상이 위험한지도 모르고 안전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건 사회의 책임이라고 떠넘기고 자신의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고, 악은 그저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만 여기며 악의 순기능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세상이다.
아무튼 과거는 세상이 크게 변하지 않고, 때로는 어수선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나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너무 급변하니 적응하기 쉽지 않다. 그러니 뇌를 사용해야 할 시대에 접어든 것이고 뇌를 사용하는 존재들이 인간이라고 정의를 한다면 그야말로 인간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제는 인간의 외형을 가지고 있는 뇌를 사용하지 않는 인간은 도태되는 세상에 아주 많이 접근을 한 상태다. 그러니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뇌를 꺼내서 만들어 놓은 책이라는 것을 더 읽어야 할 세상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유튜브가 있다고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결론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하지 않는 과거의 습성대로 산다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다윈은 말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존재는 사라진다.
우리는 이제 이족보행을 아주 당연히 한다. 이제 이족보행으로는 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아주 어린애들이 시도를 할 때나 사용한 것이 전부다. 같은 운동 매일하면 뇌를 쓰지 않게 된다. 같은 길로 매일 출근하고, 매일 같은 일을 하고, 매일 같은 루트로 퇴근을 하면 우리는 뇌를 쓰지 않는다. 인생 30대쯤에 접어들면 하던 대로 산다. 새로움이 없으니 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장 확실하게 뇌를 쓰지 않는 시점은 새로운 것을 어려워하고 자꾸 과거의 것만을 찾아서 삶을 이어 가려고 할 때라고 보면 된다. 익숙함은 뇌가 아니라 몸이 기억을 해서 움직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익숙한 것을 하면 덜 피곤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 그날은 힘든 거다. 뇌가 에너지를 가장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도 익숙해지면 이제는 뇌를 덜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뇌를 사용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라고 했다. 책을 읽게 하고, 글을 쓰게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라고 하면 장기적이고 효과를 봐야 하기에 너무 어려워하니 뇌를 다시 사용하게 위해서 여행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목표를 잡고 계획을 세우고 돌발적 상황에 놓여있어야 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것도 chatGPT가 더 잘한다고 다들 그걸 사용하기 바쁘다. 그나마 즐거운 여행을 이용해서 뇌를 사용하기 위한 방법도 이제는 점점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점점 더 뇌를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다. 쇼츠, 릴스가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어느 시점부터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부터 인정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하는 사람은 쇼츠, 릴스로부터 정보를 얻고, 기분전환용으로 사용할 줄 알며, 그것을 직접 만들어 봄으로써 새로운 문명에 접근을 하게 되고, 어떤 이는 그것으로 수익을 창출하게 되는 것인데 쇼츠, 릴스가 진짜 문제가 된다고 볼 수 있겠는가?
인간은 다 똑같고, 평등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상이 지금 문제가 된다는 것을 다들 무시하는 것이 가장 문제다. 과거에는 금수만도 못한 인간의 개념이 있었다. 물론 사회는 모두 똑같은 인간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개인 관계 단위에서는(가족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런 경계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각자도생의 시대이기에 아무도 그 경계선을 가족조차도 자식이나 부모에게 그어줄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동물처럼 사는 사람들속에서 살 수 밖에 없고 그런 사람들이 활기를 띄면 나도 모르게 그 세계에 적응하며 산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것을 보고 그것을 욕하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처럼 살 수 있다. 자신도 그렇게 살면서 말이다. 심지어 그걸 스스로 인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더 허다하다. 뇌를 사용하지 않으면 자신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타산지석은 뇌를 사용할 수 있는 문과의 가장 좋은 무기다. 칸트의 메타 인지와 연결 지어도 좋다.
지금의 저출산 문제는 이제 근시일 내에 회복되기 어려울 거다. 아무리 지금 기적적으로 정치를 잘해도 철학이 죽어있으니 최소한 10년은 걸릴 테고 지금부터 정치인들이나 학자들이 정신을 차린다는 가정하에 완만한 우상향이 되더라도 20년은 걸릴 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생각을 한다면 자연스럽게 최저점을 찍고 올라가야 하는데 그건 전쟁이 나지 않는다는 전제 하니 알 길이 없다. 결국 우리나라는 4,300여 년의 역사에서 늘 있었던 내부 갈등으로 인해서 국력이 약해지고 쿠데타가 일어나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거나 타국이 간섭해서 잡아먹히는 형태가 될 거 나는 방향이 가장 확률이 높을 거다.
결국 종점은 망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걸 본능으로 느끼고 있고 그로 인해서 자식에게 물려줄 국가 내지는 땅이 없기에 자식을 낳지 않고 가족을 꾸리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 같은 서민은 이 국가를 탈출할 방법을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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