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01 # 3 파리 여행ㅣ21. March. 2024
비행기 안 -RER - 숙소
숙소는 외각으로 잡았다. 유튜브 영상 중에 생마르탱 운하에서 찍은 모습이 좋아 보여서 밤에도 산책 나갈 수 있겠다 싶어서 잡은 지역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런던살이 했던 지역의 느낌이 났다. 파리 사람들이 사는 지역의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건물은 파리스럽지 않아도 좋은 빵집과 아파트로 이뤄진 동네는 나름 한국스러워서 이질감도 없어서 좋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파리 사람들이고 되려 런던살이 했던 스위스 코티지 사람들보다 더 보기 좋은 사람들이어서 초반에 드는 위화감도 별로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런던살이를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파리가 사람들이 좋은 느낌이 있다. 시민 혁명을 이뤄낸 나라답게 흑인과 백인의 차이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고 삶 자체가 여유가 있어 보여서 느리게 사는 느낌이 있기에 위화감이 들지 않았던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숙소는 다른 건물과 함께 쓰는 정문이 있었고 그로 인해서 생겨난 중앙 정원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건물이 리모델링 중이라서 정원은 자제 창고로 사용되고 있었다. 신기하게 런던도 그렇고 파리도 그렇고 리모델링을 하는데 사람들이 사는 건 외관만 리모델링을 한다는 뜻인데 문제는 그렇게만 해도 괜찮은 건지 그렇다고 해도 공사 기간 내내 살아도 불편해도 괜찮은 건지 참고 사는 건지 궁금했다.
메인 도로 쪽 맞은편 건물과는 상당히 가까웠다. 그래서 내부가 잘 보였다. 되려 이게 더 낫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전이 보장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서로 내부가 잘 보이면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고가 자연스럽다. 그런 상태가 된다는 것은 동네의 안전이 보장된다는 뜻이고 그건 서로 좋고 타 동네에서도 이미지가 좋기에 여러모로 좋은 거다. 물론 불편하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상황일 때는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하고 사는 것이 안전에 도움이 된다면 감수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앞집에서 하는 행사 같은 것을 볼 때 따라서 할 수 있고 그것이 사람 사는 행위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별로 숨길 것도 없으면서 너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민감한 반응으로 사생활을 보호하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 우리나라는 스몰인사 문화가 없기에 눈이 마주치는 것에 대한 껄끄러운 감정이 있어서 그런 걸 거라고 짐작이 된다. 유럽은 옷가게에서도 공원에서도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말만 되면 스몰토크도 가능하니 가능한 주거형태가 아닌가 싶다.
어느 날은 동네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젖소 코스프레와 탈을 쓰고 진행을 하는 사람이 있고 앞에 번호표를 달고 뛰는 사람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유럽이니까 러닝 하는 거겠지 하고 생각 없이 봤는데 앞에 번호표를 보고 확신했다. 이런 동네 마라톤 문화가 생겨난 것도 이런 서로 간섭할 수 있는 밀접 주거 문화로 인해서 생겨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교통문화는 런던보다 별로였다. 런던은 차들은 아주 엄격히 질서와 규칙을 지켰다. 하지만 파리에서는 보행자 초록불일 때도 차들이 그냥 지나갔다. 그것도 연속으로 두 대나. 런던에서는 딱 한 건 봤는데 그것도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에서였다. 물론 차들이 보행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지나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런던만큼 믿음직스럽지는 않았다는 것은 분명했다.
2017년도에 파리에 왔을 때는 에펠탑 근처에 숙소를 잡아서 이런 것들을 볼 수 없었는데 그때는 이런 파리의 일상을 볼 수 없어서 더 오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스쳐 지나간 느낌이다. 하지만 이번에 이런 파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지난 파리 여행 때 관광지 투어는 다 했기에 여유가 있어서 볼 수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어릴 때 자주 다니고 많이 봐야 나이가 들었을 때 같은 것을 보더라도 더 깊은 것을 볼 수 있다. 뭐가 더 낫고, 좋고 한 것이 없는 거 같다. 연속된 삶을 산다면 말이다. 제일 안 좋은 것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에서 가장 좋지 않은 마음가짐은 이번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는 착각이다. 언제든지 다음은 있다는 마음으로 여행을 한다면 더 적게 보지만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다음에 오면 반드시 더 많이 보게 된다.